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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이라면 괜찮지 않을까?”

나나미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진다. 일 마치고 나면 돌아가서 쉴 생각이었는데 빨리 끝났다고 데이트하자니. 제 누나가 하는 말을 무시하려다 대답했다. 쉬고 싶다고. 그런데도 제 손을 잡아당겨 굳이 인파가 많은 곳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나미는 좀 더 길게 숨을 뱉어냈다. 나나미는 이렇게 더운 날, 굳이 사람이 많은 관광지로 올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북적이는 사람들 가운데 다른 것이 섞여 있다면 그저 사람과 부딪치듯 가까이 다가가 빠르게 처리할 뿐이었다. 점점 갈수록 자연스럽고 대담해지는 행동에 나나미의 입안이 썼다.

느릿하게 걸으며 관광지 여기저기를 구경하는 것이 고전에 들어오고 나서는 처음인 것 같았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면서도 혼자서, 혹은 함께 온 사람들끼리 여유로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고전에 들어오고부터 시작된 임무에 바쁜 생활의 연속으로 지쳐있던 몸이 일을 마치고 우연히 돌아가는 길에 있던 관광지를 보자 걸음을 멈추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걸 알아챈 제 누나가 보조 감독에게 데리러 와달라 전화를 하던 중 갑자기 알아서 들어가겠다는 답과 함께 끊은 것이 지금에서야 고맙게 느껴졌다.

인파 밖으로 나오자 사람들은 아직 구경하는 걸 선호했는지 관광상품에 진열된 가게 쪽은 한산했다. 땀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흐르는 땀을 손바닥이나 손등으로 대충 닦아냈다.

“역시 관광지네. 사람도 많고… 덥다. 그렇지?”

“그렇네요.”

“켄토 아이스크림 먹을래 음료 마실래?”

관광상품가게 옆으로 나나미는 나란히 있는 디저트 가게 두 곳을 보다 날씨가 더운 탓인지 고르는 것을 포기해버렸다. 눈동자만 굴리다 결국 입을 열었다.

“안 먹어도 되니 고전으로 돌”

“잠깐만 기다려~!”

대답을 다 하기도 전 둘 중 아무 곳이나 들어간 그를 기다리려 근처 나무에 서 있었다. 잠깐의 짐을 내려놓고 손수건을 꺼내 땀을 닦아내던 중 양손에 마실 음료를 들고 해맑게 웃고 있는 제 누나 옆에 어째서인지 저보다 위 학년인 선배가 따라붙어 있었다. 한명이 들어가서 두 명이 되어 나온 상황에 나나미는 손수건을 주머니에 넣고 짐을 챙겨 들어 다가오는 두사람에게로 빠르게 다가간 뒤 붙었다.

“켄토?”

“뭐야~ 진짜 나나밍이랑 있었어요?”

“내가 그랬잖아. 켄토랑 임무 마치고 잠깐 들렸다니까. 켄토 같이 만난 김에 셋이서 갈까?”

절대 사양이다. 평소에 이 인, 선배가 자신에게 한 행동을 떠올리면. 나나미는 고민에 빠졌다. 그는 동료들을 가족만큼 소중히 하는 사람이지만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제 동생에게 일방적인 통보가 아닌 물어보는 식으로 말했다. 굳이 이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간단한 일이었다. 나나미는 그가 내미는 음료를 손에 쥐고 바로 빈손을 잡았다. 남들 앞에선 보이고 싶지 않은 행동이었지만 지금 상황에선 무척이나 필요한 행동이었다. 선글라스를 살짝 내려쓴 선배의 눈을 빤히 쳐다본다.

“저 누나랑 데이트 중인데요.”

조금은 부끄러워졌지만, 그의 말에 두사람의 얼굴은 상반된다. 당연히 기쁜 쪽은 제 누나였다. 선배의 표정은 어째서? 라는 얼굴이었지만 나나미는 그것을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고전에 있을 때마다 자신을 놀리려 툭하면 누나에게 기대고 껴안고 하던 행동을. 물론 그는 그때마다 자기보다 고작 한살 어린 덩치가 큰 후배를 귀엽다는 단어를 써가며 받아주었다. 그떄 상황을 떠올리니 조금은 인상이 써졌다.

“미안해서 어쩌지? 오랜만에 켄토랑 데이트라서 둘이서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이렇게 귀여운 후배를 혼자 여기다 두고요?”

“대신 다음에 맛있는 거 사줄게.”

더 대화하면 선배의 뜻대로 될 것 같은 불안감에 나나미는 잡고 있던 손을 당겨 다른 길 쪽으로 향했다. 대화 도중에 끌려가던 그가 제 후배를 향해 손을 흔들며 점점 멀어지기 시작하자 황당해하고 있던 후배의 얼굴은 점점 웃음을 참을 수 없어 소리를 내어 웃는다.

“무슨 일 있나?”

“신경 쓰지 마요. 원래 저러잖아요.”

“물론 그렇긴 한데… 뭐. 그럼 다음은 저기 갈까? 저기에 오리 가족이 살고 있데.”

“오리 가족… 그래요.”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었지만, 손에 들고 있는 음료를 마시면서 속을 달래며 걸어간다. 도착지쯤에 몰려있는 인파가 신경이 쓰였지만 음료를 마신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 이번엔 자신이 앞장서서 걷는다. 뒤에서 따라오는 목소리에 나나미의 입꼬리는 따라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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