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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노을이 물드는 하늘은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인다.

선선한 바람이 부는 저녁 시간. 노을이 아름다운 강변. 움직이기 편하지만 잘 차려입은 옷을 입은 남녀 한 쌍이 수로 근처를 서성이고 있다.

남성은 10대 중후반 소년의 외형, 여성은 40대 혹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중년의 외형. 서로 닮지는 않았지만, 얼핏 보면 모자 관계같이 보일 정도로 나이 차이가 나 보이는 한 쌍은 손을 꼭 마주 잡고 나란히 걸어가고 있었다.

 

“로세우스여, 피곤하지는 않은가?”

 

소년은 제 외형과는 어울리지 않는 중후한 목소리와 늙은이 말투로 여성에게 물었다. 꽃의 거리의 아름다운 풍경을 살펴보던 로세우스는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릴리아 님은 쉬어주시지 않아도 괜찮은가요?”

“음, 물론이지. 내가 나이를 좀 먹긴 했어도 벌써 지치거나 하진 않네.”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은 릴리아는 거리에 늘어선 가게 창문에 비치는 제 모습을 힐끔 바라보았다. 객관적으로 귀여운 미소년으로 보이는 제 모습을 감상하듯 즐거운 얼굴로 매무새까지 가다듬은 그는 로세우스 쪽으로 몸을 슬쩍 기대었다.

 

“역시 꽃의 거리는 좋구먼. 지금은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거리가 한적하지만, 이런 일상적인 모습을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 아니겠나.”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감정 기복이 덜한 차분한 언행으로 대답하고 있었지만, 로세우스는 진실로 이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아주 옛날, 새파랗게 젊은 시절 학업을 위해 가시의 골짜기를 떠나 기숙사형 마법 학교에 다닌 적은 있었어도 그 외에는 거의 고향을 벗어나는 일이 없었던 그는 이곳의 모든 게 신기하고 재미있어 아이처럼 설레고 있었으니까.

릴리아는 흥미로 반짝이는 정인(情人)의 달빛 같은 눈동자를 보며 쿡쿡 웃었다. 비록 개인적인 약속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연륜 있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로세우스지만, 그 실체는 자신보다 50살은 어린 귀여운 연하라는 걸 새삼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의 재미를 알아가는 상대의 모습에 뿌듯함까지 느낀 릴리아는 자신들을 이곳에 보내준 이를 언급했다. 비록 피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함께 길러온 소중한 아이에 대해서 말이다.

 

“실버 녀석, 대견하기도 하지. 우리 둘이서 여행을 다녀오라는 말도 하고 말이야. 근사한 선물을 사 가야겠어. 후후.”

 

‘트레인 선생님께서, 젊은 시절 아내 되시는 분과 함께 꽃의 거리로 신혼여행을 갔다고 하더군요.’ 꽃의 거리를 행선지로 추천해 주고, 로세우스와 함께 갈 것까지 권유한 실버가 한 말에 담긴 뜻이 무엇인지 자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분명 영특한 로세우스도, 실버의 속뜻을 알고 있겠지.

릴리아는 새파랗게 어린 소년처럼 가슴이 설레어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후후후.’ 음악 소리처럼 들리는 감미로운 목소리에 시선을 돌린 로세우스는 이유 모를 웃음에 고개 기울일 뿐이었다.

 

“즐거우세요, 릴리아 님?”

 

그건 왜 웃냐는 물음과는 조금 달랐다. 릴리아는 그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또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여행 와서도 제 눈치를 보는 건 곤란하다. 릴리아는 상대가 걱정하지 않도록 명쾌하게 답해주었다.

 

“당연한 걸 묻는구나, 물론 그렇지!”

“그렇다면 다행이에요. 릴리아 님은 혼자 여행하시는 일이 많으시니, 제가 방해가 되는 건 아닐까 했는데.”

“그대 말대로 나는 혼자서 여행하는 걸 좋아하긴 하지만, 그대랑 여행하는 것은 더 좋다네.”

 

조금도 망설이지 않는 릴리아의 본심 담긴 대답에 새하얀 얼굴이 붉게 물든다. 하늘에 번지는 노을처럼, 와인 색에 가까운 그 틀어 올린 머리카락처럼.

비록 자신보다는 어릴지라도 요정의 평균 수명으로 보면 결코 젊다곤 할 수 없는 로세우스를 마치 아이 보듯 어여쁘게 응시하던 릴리아는 손을 뻗어 상대의 뺨을 매만졌다.

 

“곱기도 하지. 그대는 처음 만난 그 시절부터 쭉 곱구나.”

 

다정한 손길에 안 그래도 상기되었던 얼굴이 더 붉어진다. 로세우스는 할 말을 고르는 듯 입만 뻐끔거리다가, 희미하게 웃으며 대꾸했다.

 

“릴리아 님도 옛날부터 지금까지 쭉 근사하셨어요.”

“후후. 고맙구나.”

 

부드러운 뺨의 감촉을 한껏 음미하던 릴리아는 다시 손을 마주 잡고, 저 너머에 보이는 가게를 가리켰다.

 

“그럼, 이번엔 어디로 가볼까. 그래, 꽃의 거리의 명물이라는 포도 주스라도 먹으러 가지! 그리고 저녁도 먹고!”

“예, 릴리아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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