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편 이전
“첫 바다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가고 싶어.”
17살, 바다에 대한 그녀의 말버릇 같은 답변이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바다에 가본 적이 없었기에 ―이전의 부모와 가봤을지도 모르지 않냐고 물었지만, 자신은 기억나지 않으니 노카운트라는 답변을 받았다― 내가 바다에 가보고 싶지 않냐고 물을 때마다 돌아오는, 일상적인, 한결같은 말이었다.
…
“비! 가만히 서서 뭐 해?”
변신하려는 거 아니야? 맑은 목소리가 모래사장에서 가만히 서 있는 범블비를 불러냈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는 듯, 범블비는 비클모드에서 소리가 들리는 곳을 ―비클모드라 티는 나지 않았지만― 조금 올려다보았다. 새하얀 프릴이 달린 오프숄더로 된 블라우스를 입고 샌들을 신고 서 있는 21살의 엘리샤의 모습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밀짚모자나 카플린까지 쓰고 있었다면 엘리샤가 자주 보던 만화책 ―순정 만화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에서 나오는 바닷가에 온 여자아이의 모습과 똑같을 것이 분명하다고 범블비는 생각했다.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뭐야 그게~! 재미없어! 근데, 기왕 온 거 변신해서 걸을래? 계속 비클모드로만 있는 건 불편하잖아.”
그리고 네가 차로 가는 속도랑, 내 걸음 속도랑 안 맞으니까. 제 앞에서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엘리샤의 모습에 범블비는 짧은 한숨을 내뱉으면서도 비클모드에서 변신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그다지 오지 않는 곳이라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도 있었지만, 눈앞에 있는 상대는 제 고집이 만만치 않은 사람이기에 ―사실 거절했을 때 올 후일이 귀찮은 것이 주된 이유였지만― 범블비는 별다른 거절 없이 변신한 후 엘리샤를 내려다보았다. 만족했다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
“그런데 갑자기 바다는 왜 오자고 한 거야?”
“응? 왜, 오기 싫었어?”
“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엘리샤의 걸음걸이에 맞춰서 뒤에서 걷던 범블비의 질문에 엘리샤는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는 맑은 검은색 눈동자에선 그걸 왜 물어보냐는 듯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에 범블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말끝을 흐릴 뿐이었다. 사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궁금했다. 17살, 모두가 여전히 어리다고 여기지만 자신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간다고 말하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는 나이이자 누군가를 크게 사랑하기도 하고 크게 미워하기도 하는 나이. 그런 나잇대 일 때 엘리샤는 바다에 관해 물을 때면 버릇처럼 말했다. 첫 바다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가고 싶다고. 하지만 범블비 자신은 엘리샤에게 붙어있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그녀가 다른 사람과 바다에 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랬다면 분명 자신에게 자랑했을 것이 분명하다는 걸 그는 잘 알고 있다― 이 생각은 철회됨과 동시에 그렇다면 어째서 자신과 첫 바다를 오는 것인가가 궁금했다. 그녀가 잊어버렸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은 채.
“그런데… 왜 하필 나야?”
“응? 뭐가?”
“아니… 너 이전에 ‘첫 바다는 좋아하는 사람이랑 가고 싶어.’라고 했잖아.”
“어….”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는 엘리샤의 모습에 범블비는 “아아―.”라고 탄식을 내뱉었다. 인간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한다는 것과 기억력이 자신들 사이버트로니안보다 좋지 않다는 것을 잠시 잊고 있었다는 듯.
“내가 그런 적이 있었나….”
머리를 긁적이다 부드러운 모래사장을 신발로 쓸어내듯 차낸 엘리샤는 모래알을 제 샌들 안에 한껏 머금으며 말했다. 아마 혼잣말이었으리라고 범블비는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어? 아니, 뭐… 그렇다면 바다에 처음 가는 걸 굳이 나랑 갈 필요가 있었나 싶어서….”
“흠~, 그래?”
“아니 절대 싫다는 건 아니야!”
두 손을 내저으며 외치는 범블비를 올려다보며, 엘리샤는 제 배를 감싸 안고 크게 웃었다. 이에 범블비가 왜 웃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는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더 크게 ―덕분에, 샌들에 모래가 더 들어갔지만― 웃었다.
“푸하하! 그런 거 당연히 알고 있는걸!”
“뭐?”
“그야, 범블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
아니, 제일 친한! 제일 친한 친구니까? 그런 거 당연히 알 수 있다고? 자신도 모르게 나왔던 것인지 술술 말하던 엘리샤는 급하게 말을 돌렸다. 당황한 듯한 기색이 얼굴에 훤히 드러났다. “아 신발에 모래가 너무 많이 들어갔네~!”라며 엘리샤는 시원하며 푸르른 바닷물에 제 발을 담갔다. 샌들 안에 가득 담긴 모래가 바닷물에 흘러 섞여 사라졌다. “하하하!” 소리를 내며 범블비는 웃었다. 자신 또한 이미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너 진짜 성격 고약해.”
“너야말로.”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서로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건 서로라는 것처럼, 당신을 제일 소중히 여기는 건 자신이라는 것처럼.
“…있잖아. 범블비.”
“왜 그래?”
“음… 역시, 아무것도 아니야!”
“뭐? 엘리!”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범블비는 보며 “그걸 속아?”라고 말하며 소리 내어 웃던 엘리샤는 곧 웃음을 멈추고 재밌냐는 듯 보는 범블비에게서 등을 돌려 바닷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발에 시원한 바닷물이 차올랐다. 사실은 그때 말했던 그 말을 잊지 않았다고, 좋아하는 사람과 —사람은 아니지만— 이렇게 첫 바다에 왔다고, 서로 같을 마음일 때 이렇게 오게 되었다고, 생각하던 말을 속으로 삼켜내며 엘리샤는 살며시 미소 지은 채 바다를 바라보았다. 가볍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그녀의 머리칼을 가볍게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