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폭력 소재
1.
이 시기의 바다는 물론 인산인해다. 사회 이해 함양을 위해 외출을 허가받는 집행관으로서 향하기에 더없이 적절한 장소란 뜻이다. 집행관 외출에는 감시관이 동행하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면허 없는 집행관 카즈키 레이지는 감시관 기노자 노부치카의 자차 조수석에 올라타 있다. 처음으로 직접 보는 바다. 갈매기 귀엽겠다고 생각하면서.
"수영은 할 수 있나?"
"해본 적 없는데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뭐야, 무경험에 그 자신감은."
"저 욕조 싫어하지 않아서요."
"전혀 상관없는 이야긴데."
"그래도 수영을 못할 것 같은 신체라면 집행관 적성이 안 나오지 않았을까요…."
"집행하러 물속까지 쫓아갈 일은 거의 없어."
"그건 그렇죠."
실없는 대화가 끊긴다. 둘 다 말이 많지도 않고 침묵이 불편한 관계도 아니다. 둘이 사랑하는 사이라서 아무 말 안 해도 모든 게 통하기 때문이면 (내가) 좋았겠지만…
애초 침묵의 어색함이란 상대와 상호작용할 거리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데서 민망함을 느낌으로써 발발한다. 상처를 주고받지 않기 위해 내가 지금 할 말이 없긴 하나 그것이 상대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은 결코 아님을 필사적으로 증명할 필요가, 즉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대와 상호작용할 거리가 떨어졌다는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도 그 이후의 '상대를 위해 안절부절못하는 프로세스'를 밟지 않기 때문에 서로가 말을 하든 말든 하등 상관이 없었다. 운전자는, 그러니까 나의 사랑하는 드림캐 기노자 노부치카는 절대로 인품이 나쁜 건 아닌데, 오히려 천사임, 그러나 시빌라 치하에서 사람이 좀 여러모로 힘들었기 때문에 일일이 타인의 정서를 배려해서 말을 붙이거나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를 못 느끼는 28세가 되어 있었고, 그 옆에 앉은 드림주는 25세가 될 때까지 제대로 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어서 첫 상관의 무뚝뚝함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 만한 DB가 뇌 내에 없으므로 분위기가 개 삭막해도 그렇군 하고 받아들인다는 설정이다.
따라서 차 안은 몹시 고요했다. 국도를 부드럽게 빠져나간 자동차가 해안도로에 막 접어드는 순간까지 말이다. 마침 관계성에 대한 설명이 끝나서 사건이 일어나기 좋은 타이밍이라 그쯤에서 차내 디바이스가 울렸다. 발신인의 콜사인은 LABO.
아무래도 바다는 못 보겠군, 8년 차 감시관은 받기도 전에 감이 왔다.
"이쪽은 셰퍼드 1. 무슨 일이지?"
[네네~ 비번일에 유감이지만, 방금 아카네쨩 일행이 쫓던 잠재범이 그쪽으로 도주했어. 그런데 마침 도내에 새로 에리어 스트레스 경보가 울렸거든?]
우아한 목소리가 담배를 입에 문 채 씹는 발음으로 간단히 상황을 설명한다. 같은 방향이라고 해도, 기노자가 수신받은 GPS를 확인하면 목적지였던 바다와 범인의 도주지는 딱히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그렇지만 근무 중인 형사들은 새로운 사건 현장으로 향해야 하니 이쪽이 잡아 오란 얘기다. 단순 외출에 수사 지원용 드론이 동원됐을 리 없으므로 현재 집행관에겐 도미네이터가 없다. 그러나 집행관을 감시하러 동반한 자신은 도미네이터를 소지한 채지. 그래.
이거 바다 휴양 합작 아닙니까? 부하가 눈으로 그렇게 물었지만 기노자는 그 시선을 무시했다. 안타깝지만 우리에겐 휴양이 없다. 그가 원작에서 등장하자마자 세 번째로 뱉은 문장은(참고로 첫 번째는 "나다.", 두 번째는 "배속되자마자 사건이 터지다니 안됐군."이며 직후 그는 남의 말을 끊으면서 이어 말했다) "미안하지만, 형사과는 일손이 몹시 부족하네" 이다.
기노자 군, 자네라면 사냥개 한 마리로도 충분하겠지?
고저 없는 국장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 감시관은 눈을 꾹 감았다 떴다. 검푸른 차체가 순식간에 홀로그램을 입고 공안국의 경찰 차량으로 변모한다. 매끄러운 유턴.
2.
도착한 곳은 황금빛 모래밭 대신 철과 돌로 이룬 방파제가 둘러싼 바닷가의 폐기구획으로, 차에서 내리자마자 덥고 습한 해풍이 훅 끼쳤다. 와 바다다…. 저쯤에서 일렁이는 칙칙한 수평선을 통해 어쨌거나 바다를 난생처음 보긴 한 카즈키가 영혼 없이 감탄했다. 그가 상상한 바다는 맑고 푸르고 반짝이고 지천에 떠밀려 온 산호 조각이나 예쁜 조개껍데기가 널려있는 뭐 그런 풍경이었으므로….
한편 기노자는 머릿속이 바빠 대꾸해 줄 여유가 없다. 인간도 동물이기 때문에 도망치는 인간을 물리적으로 잡아챈다는 것은 말 그대로 사냥이다. 그러므로 추적과 전투에 탁월한 이가 집행관이 되며, 감시관의 역할은 그들을 적재적소에 풀어 사냥을 성공시킨 뒤 다시 공안국에 데리고 돌아오는 일이다. 오늘 부릴 수 있는 개는 한 마리, 모든 상황에서 명령 저항도가 낮고 지구력이 장점인 녀석. 형사 둘이서 잠재범 하나를 잡는 게 어렵지는 않겠지만 문제는 장소다.
"폐기구획은 시빌라의 눈이 잘 닿지 않아 분석과의 빠른 지원이 어렵다. 곳곳에 잠재범이 도사려서 변수도 많아. 흩어지되 모든 상황은 공유한다. 단말기의 통신을 쭉 켜 둬라."
"알겠습니다."
짧은 작전 브리핑 끝에 흩어진다. 몰이와 강습은 시너지가 좋다. 마지막으로 사냥감의 목덜미에 꽂아 넣는 이빨은 도미네이터의 심판이 될 것이므로 자연스럽게 몰이는 카즈키, 강습은 도미네이터를 쥔 기노자의 몫이 된다. 범인 대신 갈매기를 쫓아가고 싶었던 카즈키는 시멘트 바닥을 울적하게 차고 달렸다. 잠재범 같은 건 진짜 없어져야 해… 건전한 생각이 드는데 색상이 깨끗해질까.
"목표 발견했습니다."
[좋다, 맞은 편에 가서 대기하지. 계속 몰아.]
몰이 담당으로서 주인에게 표적을 데려다 바치기 위해선 어그로를 좀 끌 필요가 있다. 사실 집행관도 잠재범이기 때문에 범죄 잘 저지를 것 같은 이미지로는 딱히 꿀리지 않았다. 숨길 것도 없이 발소리를 내는 것도 모자라 깡통을 차서 확실히 주의를 끌고 지금부터 널 잡아 죽이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은 채 쫓아간다. 놈이 경황없는 틈에 감시관이 끝을 내줄 것이다.
"뭐야! XX, 꺼져!"
얼떨결에 도망치기 시작한 표적에게서 들려오는 욕설을 추임새 삼아 달리다 보면 머잖아 상대의 체력도 정신력도 슬슬 바닥나는 게 보인다. 만약 이 순간 카즈키에게 도미네이터가 있었다면 지금쯤 제 선에서 집행해도 되었을 뻔했다. 뭐, 쉽군….
…
아, 플래그 세웠다.
카즈키가 깨달았을 때는 옆에서 날아든 무쇠 배트를 피하기에 조금 늦은 타이밍이었다.
3.
뻐억, 둔탁한 소리와 함께 균형을 잃은 몸이 조금 떴다가 바닥을 구른다.
[무슨 일이냐!]
착용자에게만 들리는 디바이스의 지향성 음향으로부터 기노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지만 대답해서 동료가 근처에 있다는 걸 눈앞의 적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다. 아니, 간접적으로 대답하는 게 좋을까.
"총 세 명입니까… 아무 곳으로나 도망친 줄 알았더니, 이 동네에 친구가 있었나 보죠."
중얼거리며 땅을 짚고 몸을 일으키는 순간 등이 밟힌다. 윽, 반사적으로 신음하면 감시관이 듣고 있단 생각에 마이크를 끄고 싶다. 하지만 그래선 현장 상황을 전달할 수 없지. 화상 회의처럼 나만 음소거하고 얘들한텐 마이크 하나씩 달아주면 좋을 텐데….
[지금 그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기다려.]
알겠습니다, 하고 속으로 대답한다. 이제 기다리면 감시관이 올 것이다. 그동안 목표물을 한 장소에 잡아두고 있는 걸로 괜찮겠지. 적당히 어울리면 된다. 싸웠을 때 이길 자신이 없진 않지만 3:1은 아무래도 좀 빡빡하고, 혹시나 상대에게 날붙이가 있으면 더 성가실 거고, 굳이 격렬하게 저항해서 힘 뺄 이유가 없으니까… 카즈키는 머리를 처박은 채 얌전히 늘어진다.
"말본새를 보니까 공안국 녀석이네? 이거 살려둘 필요가 없겠지?"
아니 근데 죽어도 곤란하지. 여차하면 굴러서 빠져나갈 생각으로 다시 몸에 긴장을 넣는다. 음, 기노자감시관님살려주세요, 라고 뱉을 수는 없으니 대신 12행시를 하면 감시관이 알아들을까. 기로 시작하는 문장이….
"공안국 놈들은 이상한 총을 쓰던데."
"너 이 자식, 뭐 하는 놈이야?"
"공안국이 아니라 우리 물건 빼돌리러 온 거 아니냐?"
질문이 쏟아졌다. 계속 무시하기도 좀 그렇고 반응은 해야 할 것 같은데 한 번에 관심이 쏠리자 카즈키는 급작스레 피곤해졌다. 대체로 그들의 질문에 발끝으로 차거나 건드리는 등의 거친 행동이 동반되는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 집행관이 몹시… 내향적이기 때문이다.
"쫄아서 이제 뚫린 입으로 지껄이지도 못하는 거냐?"
그렇지만 하나씩 차근차근 해나가자. 카즈키는 큰맘 먹고 입을 연다.
"아뇨, 그게 아니고."
소통의 기본은 솔직함이라고 했다.
"…낯을 가려서."
뭔 헛소리지?
달려가며 듣고 있던 기노자는 덩달아 어이없어하다가 폭행이 이어지는 소리에 짧게 한숨 뱉었다.
4.
집행 모드, 논 리셀 패럴라이저. 침착하게 조준하여 대상을 무력화하십시오――
5.
합류한 기노자 감시관의 깔끔한 3연속 집행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연행을 위해 드론과 호송차가 내려오길 대기하고, 정신 잃은 잠재범들을 실어 보내고 나자 어느덧 해가 지고 있었다. 이곳에서 보는 바다는 역시 탁하다. 드론이 조달한 구급약품으로 여기저기 땅에 갈리고 터진 살갗을 대강 처치한 카즈키는 수평선을 멍하게 바라보다 감시관의 차에 올랐다.
기노자는 시동을 걸며 조수석을 흘겨본다. 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새로운 반창고가 이곳저곳 붙은 뺨을. 네 화법은 가끔 맞을 만하다는 걸 알려주는 게 좋을까? 아니, 세상에 폭력을 당할 만한 행동이란 건 없지. 그러나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됐다. 저도 경험적으로 배운 바가 있겠거니 넘기기로 한다.
대신 짧은 운전 끝에 어깨를 툭 두들긴다. 그래, 일단 경험하고 배우란 뜻에서 데리고 외출을 다니는 것이니까. 사실 그의 지론상 경험에서 배우는 건 우매한 자나 하는 짓이지만 감시관에겐 좀 맹한 개도 돌볼 의무가 있다.
"내려."
"예? 벌써 도착했습니까."
"그럴 리가. 인근 해안가다. 네가 가고 싶어 했던 큰 해수욕장은 아니지만, 바다 구경 정도라면 할 수 있겠지."
차에서 내린 카즈키는 풍경을 바라보곤 숨을 들이마셨다. 걸을 수 있는 구역은 작지만 그래도…
포말에 발을 담글 수 있는 상상 속의 그 바다였다.
6.
밤바다는 시원했다. 잠깐 신발을 벗어두고 걸었다. 물을 머금어 단단하고 축축한 모래나 발등을 쓸고 가는 잔물결의 감촉이 무척 부드럽다. 손을 적시고 돌이나 깨진 조개를 줍다가 다시 바다에 던져 넣고 떠오른 달을 눈에 담는다.
그러는 동안 해변에 선 채 바다를 바라보는 감시관은 말이 없었다. 본래도 쓸데없는 말을 꺼내는 타입이 아니지만 수평선 너머 아득한 곳을 향한 얼굴엔 분명 자신이 모를 감정이 깃들어 있다. 집행관은 묻지 않는다. 그의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당신에게 저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렇지만 당신은 저를 이곳에 데려다주셨어요.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을 섞어두고 그 안에서 잠재범을 골라내라고 한다면 카즈키에게는 어렵지 않았다. 감이나 촉, 사냥개의 후각이라 불리는 능력을 인정받아 형사과로 왔다. 그러나 가끔 냉정한 상관의 사심 없는 호의가 벅차서 단 한 사람 앞에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이 어려워진다. 한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내가 모르는 당신은 아주 많지만 그래도 오늘 받은 만큼의 다정함을 알고
아주 밝고 뜨겁고 경쾌하지는 않은
다만 이 밤의 해변 같은
일면을 배우는 일이 자신의 답례일 것이라 믿고서
그대로인 거리에서 바라본다. 바람이 앞머리를 흔들게 둔다.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잔잔한 파도 소리. 함께 외출할 때면 항상 시간이 천천히 가길 바랐다. 현장이 아닌 일상의 세상은 너무도 평화로워서… 쭉 이런 순간이 지속되면 좋겠다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하지만 주인이 조금 가라앉아 있을 때 그의 개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게 되었다. 침묵이 아무래도 좋을 때와는 다르게…
파도가 쓸어내듯 드러나는 마음이 있다.
"볼일 마쳤으면 슬슬 가지."
"감시관님."
부르면 대답 대신 시선을 던지는 이 사람을 좋아한다.
"바다, 즐거웠습니다."
물끄러미 부하를 바라보던 기노자가 돌아섰다.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