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신공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후덥지근한 온도, 비릿한 향이 섞인 바람, 탁 트인 시야, 넓게 펼쳐진 수평선, 그리고 화려한 여성용 기모노를 입은 약장수…….
"왜?"
약장수는 다짜고짜 내뱉어진 말에도 그다지 놀란 기색이 없었다. 그저 “무엇이?” 하고 그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되물을 뿐이었다.
“왜 당신이 여기 있느냐고 물어본 거야.”
떠돌이 약장수에게 물을만한 질문은 아니었지만, 여행자에게는 아주 타당한 질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약장수랑 얽히기만 하면 자꾸 이상한 일에 휘말렸다. 큰 여관에서도 그랬고, 배에서도 그랬으며, 산골에서도 그랬지. 여행자는 지난 여행을 떠올리다 눈을 질끈 감으며 미간을 짚었다.
“그저, 이리저리, 다니다 보니.”
“대답이 필요한 질문은 아니었어…….”
약장수는 자신을 ‘여행자’라고 불러달라던 서역의 요괴를 바라봤다. 굳이 이곳의 언어로 번역하자면 '마녀'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봤을 때보다 이곳의 언어가 능숙해져 있었다. 어딜가나 자신을 마주치는 게 말이 되냐며 외치는 것과 다르게 일반적인 여행도 제법 잘하는 모양이다.
여행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약장수에게 눈을 흘겼다.
“……이 마을에도 ‘모노노케’가 있어?”
다소 불안해 보이는 표정의 여행자에게 약장수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그 침묵에서 뭘 읽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여행자는 짜증이 담긴 신음을 내뱉었다.
바닷가의 마을은 한적했다. 대부분 사람이 어업에 종사하고 있었는데, 너무 작은 마을이라 여행객들이 묵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당연히 여관이 있을 리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마을 사람들은 제법 친절했는데, 그들은 한 주민의 집에 약장수와 여행자를 묵을 수 있도록 해줬다.
여행자는 마을 사람들이 약장수에게서 이것저것 사 가는 것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약 잘 파네……. 저것들 효과가 있긴 한가? 여행자는 마을 사람들 손에 들려있는 약통을 바라보다 약장수가 약가방에서 막 꺼내는 물건을 보고는 표정을 구겼다. 아, 저 놈의 춘화집 진짜.
“(역겨워…….)”
“오오오, 그건 서역 말이오?”
여행자의 중얼거림에 집주인이 말을 걸어왔다. 누가 들을 줄은 몰라 살짝 당황한 여행자는 턱을 괴고 있던 손을 떼며 대답했다.
“네…….”
“무슨 뜻이오?”
“……그냥 감탄사였습니다.”
집주인은 소리가 특이하다느니, 서역의 옷은 이상하게 생겼다느니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작은 바닷가 마을이라 폐쇄적일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친화력들이 좋았다. 많은 곳을 여행하는 것치곤 사회성이 그렇게 좋지 않은 여행자에겐 다소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집주인의 질문에 적당히 대답해주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이 느껴지는 곳엔 짐을 풀기 전, 소개받았던 집주인의 딸이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는 수줍음이 많은지 여행자와 약장수에게 제대로 말하지도 않았다.
“무슨 일이야?”
자기 아버지의 질문에도 아이는 입만 벙긋거렸다. 아이는 흔들리는 눈으로 집 안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다 뒤돌아서 도망쳐 버렸다.
“잠시 실례하겠소. 애가 부끄러움이 많아.”
집주인은 딸을 따라 집을 나가버렸다. 여행자는 머쓱하게 아이가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방금 그건 수줍음보다는…….
“제 엄마가 없으니까 불안하겠지.”
“네?”
약장수 곁에서 약을 구경하던 마을 주민 하나가 던진 말에 여행자가 고개를 들었다. 약장수 또한 입을 연 주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집 애 엄마가 작년에 사라졌어. 야반도주를 한 건지, 파도에 휩쓸린 건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남편이 엄청나게 찾아다녔어.”
“저 어린애까지 돌보면서 얼마나 힘들어했는지.”
“그래도 금방 기운을 찾아서 다행이야.”
“애가 있으니까 그래야지.”
마을 사람들이 한마디씩 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 여행자는 입술을 오므렸다. 기시감이 느껴지는 상황에 시선이 절로 약장수에게로 향했다. 약장수는 여전히 약들을 정리할 뿐이었다. 그래, 넌 차분해서 좋겠다.
“아이고, 이 말을 안 해줬네. 밤에는 밖에 나가지 마.”
“무슨, 일이, 있습니까?”
“작년에 애 엄마가 실종된 게 이맘쯤이거든. 마을 사람들끼리는 찝찝해서 밖에 안 나가기로 했어.”
마을 사람들은 다시 자기들끼리 수군대기 시작했다. 여행자는 속으로 탄식했다. 이야, 진짜 나오겠는데. 다시 약장수를 흘끔거리자, 이번에는 약장수 또한 여행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자는 입 모양으로 ‘모노노케?’, 하고 물었으나 약장수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집주인은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돌아왔다. 해가 긴 계절인 걸 고려하면 제법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어린 딸도 함께였는데, 딸의 눈가가 붉은 것이 한바탕 운 것 같았다. 집주인은 서글서글한 태도로 별일 아니었다고 둘러댔고, 별로 엮이고 싶지 않았던 여행자는 수긍했다. 약장수도 별말 없었다.
“튀고 싶다.”
“충분히 도망치실 수, 있을 텐데요.”
여행자는 자기가 도망쳤을 때의 여파를 상상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쩌면 모든 걸 뒤집어쓰고 쫓기는 신세가 될 수도 있지. 도망자가 되는 건 지긋지긋했다.
“어차피 네가 해결할 거잖아.”
여행자의 심드렁한 대답에 약장수 물끄러미 그를 쳐다보았다.
“네 일이잖아. 네가 일은 잘하니까, 어떻게든 될 테지.”
약장수는 별 말없이 자기 약 가방을 정리했다. 조용한 밤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마을 주민 하나가 죽은 채로 발견됐다.
내 이럴 줄 알았지. 마치, 범인을 아시는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너도 알면서 시치미 떼지 말자, 우리. 글쎄, 그저 아야카시일지도 모르지요. 진짜 짜증나게 군다, 너.
약장수와 여행자, 둘이 뭐라고 속닥거리든 주민들의 분위기는 아주 심각했다.
“작년에 죽은 이의 망령이야…….”
“지금 뭐라고 했어?”
집주인과 마을 사람 사이에 싸움이 일어났다. 약장수는 더 보고 있을 요량 같았지만, 여행자는 슬쩍 그 난리 통에서 빠져나왔다. 싸움하는데 옆에 있어봤자 휘말릴 가능성만 높아질 터였다.
해변을 걷던 여행자는 걸음을 멈췄다. 집주인네 딸이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자는 천천히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
“바다에 뭐가 있어?”
소녀는 당황했지만, 여행자가 홀로 있는 걸 보고는 경계를 좀 덜 하는 것 같았다. 아이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행자는 말을 더 걸어볼까 싶었지만 어제에 이어 아이의 상태가 제법 불안해 보았기에 옆에서 묵묵히 바다를 바라봤다.
“서역은, 멀어요?”
“멀지? 왜, 서역에 가보고 싶어?”
한참 뒤에야 아이가 입을 열었다. 그냥 서역에 대한 호기심이었나 싶어 여행자는 가볍게 대답했다. 그러다 이어지는 질문에 여행자는 그 질문이 결코 가벼운 호기심에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신도 못 쫓아올 만큼 멀어요?”
아이는 떨고 있었다. 여행자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다시 시선을 바다로 옮겼다.
“……그건, 조금 생각을 해봐야겠구나.”
“난 여길 뜰래. 여기서 도저히 못 있겠어. 이건 아니야!”
이후로 이틀간 밤마다 주민들이 죽어 나갔다. 벌써 세 명이나 죽었다. 당연히 마을의 분위기는 흉흉해졌고, 약장수와 여행자가 머무는 집의 집주인도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것 같았다. 집주인이 따로 말하진 않았으나 약장수와 여행자가 떠나주길 원하는 눈치였다.
“떠나시면 되지요. 떠난다고 하더라도, 당신에겐, 문제가 없지 않습니까?”
이를 바득바득 갈며 외치던 여행자는 입을 다물었다. 마을과 좀 떨어진 언덕에 있었기 때문에 바다가 잘 보였다. 여행자는 바다를 멀거니 쳐다보던 아이를 떠올리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역시, 신경이 쓰이시는 모양입니다.”
“……조용히 해.”
놀리는 듯한 말-실은 평소의 말투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여행자에겐 그렇게 들렸다.-에 날카로운 반응이 튀어 나갔다. 여행자는 하늘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내쉬곤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우리가 마을에 도착한 날부터 사람이 죽어 나갔는데 우리를 의심하지 않는 건, 우리가 밤에 돌아다니지 않았다는 걸 집주인이 알고 있어서야. 알아?”
여행자의 말은 사람이 죽어서 발견되는 상황에 여기저기 찌르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고 다니는 약장수의 행위를 비난하는 말이었다. 약장수는 “과연.”이라며 여행자의 복장을 두드렸지만, 여행자는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작년에 일어난 실종사건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확실한 거 아는데, 너 때문에 마을 사람들이 나까지 싸잡아서 날카롭게 쳐다보잖아.”
“어쩔 수 없습니다. 퇴마의 검을 뽑기 위해선.”
“그래. 그놈의 형태, 내력, 까닭. 알고 있어.”
여행자는 약장수와 마주칠 때마다 봐왔던 ‘퇴마’에 대해 떠올리곤 진저리를 쳤다. 약장수는 손에 들고 있던 퇴마의 검을 들어 올렸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검은 아직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여행자는 인상을 구긴 채로 퇴마의 검을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뭐, 곧.”
약장수는 바다를 쳐다보았다. 여행자 또한 약장수를 따라 바다를 쳐다봤다.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벨 수 있을 겁니다.”
“오늘 밤은 마을 모두가 이곳에서 지내기로 했네.”
자꾸 사람이 죽어 나가자, 마을에서 내놓은 해결책이었다. 건물은 마을 사람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컸는데, 마을의 큰 행사 때 사용하는 건물이라는 설명이 뒤따랐지만, 약장수나 여행자, 모두 귀담아듣는 눈치가 아니었다. 집주인은 민망한지 헛기침하곤 오늘 밤만 지나면 정말 떠나라는 이야기를 하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으로 가버렸다.
여행자는 건물을 훑어보다 시선을 멈췄다. 아까 건물 안으로 옮겨둔 자기 가방 옆에 아이가 쪼그리고 앉아있었다.
“얘.”
아이는 겁에 질려있었다. 가방을 놔뒀던 곳은 건물 안에서도 구석진 자리였고, 가방이 제법 커서 마을 사람들은 아이를 눈치채지 못했으리라. 여행자는 자연스럽게 자기 가방을 살피는 척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 괜찮아?”
“여기, 여기는.”
“굳이 말 안 해도 돼. 숨 크게 들이마셔.”
여행자는 아이가 하려는 말을 막고는 심호흡시켰다. 창백하게 질린 아이는 여행자의 말대로 숨을 여러 번 쉬고 나서야 안정을 되찾았다. 물론 여전히 긴장한 상태였다.
“여기서는, 나쁜 일을 한댔어요.”
“누가 그런 이야기를 했어?”
“엄마가…….”
아이는 여행자의 소매를 잡으며 웅얼거렸다. 여행자는 아이의 등을 쓸어주고는 자기 가방에서 잉크병과 깃펜을 꺼냈다. 생소한 물건에 아이는 겁에 질린 상태에서도 호기심을 내보였다. 여행자는 아이의 손바닥에 깃펜으로 뭔가를 그려줬다.
“이게 널 무섭지 않게 만들어 주진 못해. 하지만 네가 다치거나 아프지 않게는 해줄 순 있어.”
둥근 원 안에 알아볼 수 없는 말과 문양들이 빼곡하게 그려져 있었다. 아이는 마법진이 그려진 손으로 주먹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행자는 “그래.” 하고 작게 속삭이곤 천장을 바라봤다. 빗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여행자는 사람의 눈에 잘 띄지 않게 붙은 부적들을 볼 수 있었다. 언제 또 붙여뒀담. 약장수를 쳐다봤지만, 굳이 묻지는 않았다.
바깥에 있던 모든 마을 사람이 건물 안으로 들어온 후에 건물은 봉쇄하다시피 닫혔다. 비바람으로 인해 문과 창문을 막아둔 판자가 덜컹거리자. 분위기는 싸했다. 마을의 사람들은 그래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다. 지나가는 비바람일 것이다, 비바람 때문에 모인 것은 아니었지만 다 같이 있으니,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도 없을 것이고 비바람도 덜 무섭지 않겠느냐. 뭐 그런 이야기였다.
쾅!
바깥에서 큰 소리가 울렸다. 발작 같은 비명 몇 개가 튄 후엔 정적이 내려앉았다. 여행자는 몸을 떠는 아이의 어깨를 잡아주며 주변을 살폈다. 아이만큼이나 바들바들 떨던 마을 주민 하나가 번쩍 일어나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
“올해도 제물을 바쳤어야 했어!”
“이보게!”
“제물을 바치지 않으니까 또 태풍이 온 거야. 신이 노하신 거라고!”
마을 사람들은 급히 일어나 비명을 지르는 사람의 입을 막고 억지로 앉혔다. 그러나 이미 어수선해진 분위기는 수습되지 않았다.
“제물, 말입니까.”
“외부인은 끼어들 일이 아니야!”
집주인이 약장수에게 으르렁댔다. 약장수는 집주인이 뭐라고 하든, 마을 사람들이 어떤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든 신경 쓰지 않으며 한 발짝 내디뎠다.
“최근 삼 일간, 이 마을에 있었던, 살인사건은.”
약장수의 약 가방에 저절로 열리며 천칭들이 튀어나왔다. 천칭들은 건물의 외곽을 따라서 줄 세워졌다. 마을 사람들은 기겁했지만, 약장수는 비장한 투로 말을 마저 이었다.
“모노노케의 소행입니다.”
여행자는 자기 근처의 천칭 하나가 인사하듯 꾸벅 숙이는 걸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이는 그걸 발견하곤 여행자를 올려다보자, 여행자는 아이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었다. 아이는 눈을 꼭 감았다.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졸음이 쏟아졌다.
“자고 일어나면, 끝나있을 거야.”
아이는 여행자의 수면 주문에 저항하지 않고 잠들었다.
여행자와 아이가 어울리지 않게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내는 것과 별개로 건물 안은 점점 급박한 분위기가 흘렀다. 얼이 빠진 마을 주민 하나가 천칭을 보며 “저게 뭐야.”하고 중얼거렸다. 약장수는 모노노케의 거리를 재주는 천칭이라고 친절히 답했다.
“모노노케라니, 이 마을은 신께서 돌보는 마을일세. 그런 삿된 것이 마을을 위협할 리가 없어!”
금방 정신을 차린 집주인이 나서자 다른 마을 사람들도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약장수는 사람들이 떠들도록 내버려 뒀다. 건물 안은 바깥의 빗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처음에 제물에 대해 언급했던 마을 주민이 자신을 붙잡고 있던 사람들을 뿌리치고 또다시 벌떡 일어섰다.
“제물을 안 바쳐서 그래! 신께서 노하셔서 삿된 것으로부터 우릴 보호하시지 않는 거야!”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그 사람을 붙잡으려 했지만, 그 전에 약장수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말하는, 제물이란?”
마을 사람들은 다시금 입을 꾹 다물었다. 심지어는 제물에 관해 이야기하던 사람조차 할 말을 잃은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약장수의 시선을 받은 사람들은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다시금 적막한 건물 안에 빗소리만 가득해졌다. 그러나 정적은 금방 깨졌다.
“뭘 그런 걸 물어보고 있어. 본인도 뻔히 눈치챘으면서.”
어른들의 추한 모습을 보지 않게끔 아이를 재우던 여행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을 사람들 앞에서는 예의 바른 태도와 다르게 심드렁하고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그 ‘신’이란 게 무서워서 이제까지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친 분위기잖아, 지금.”
“외부인은 빠지라니까!”
집주인이 윽박질렀다. 여행자는 격앙돼 본인의 딸조차 신경 쓰지도 않는 집주인을 경멸스럽게 쳐다봤다. 마을 사람들이 웅성대기 시작했다. 아무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않는 가운데 누군가 입을 열었다.
“……우리 마을은 태풍이 자주 와.”
“뭐 하는 건가!”
“예로부터 바다의 신께서 부족함을 느끼셔서 태풍을 보내는 거라는 이야기가 있었어.”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숙였다. 집주인도 입을 다물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는 제물을 바쳤어.”
이야기하던 주민은 여행자를 흘끔 보곤 말을 이었다.
“……저 여자의 말대로 사람들을 제물로 사용했지.”
다시금 건물 안은 정적이 흘렀다. 약장수는 퇴마의 검을 들어 올렸다. 퇴마의 검은 달그락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그것은 내력이 아닙니다.”
그때, 여행자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었다. 건물의 유일한 출입구. 천칭들이 일제히 여행자가 바라보는 문 쪽을 향해 기울어지며 딸랑, 하는 소리를 냈다.
똑똑.
빗소리 사이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 누구.”
“우리 마을 사람은 다 이 안에 있어. 문을 두드릴 만한 사람이 없다고!”
“아예 외부인일 수도 있지 않은가.”
누가 나서기도 전에 약장수가 문을 향해 부적을 뿌렸다. 부적들은 문에 붙자마자 검은 글자에 이어 붉은 문양으로 바뀌었다.
“여긴 지금 모노노케의 공간. 인간이 여기까지 다다를 수 있을 리 없소.”
마을 사람 몇 명이 기겁하며 문과 멀어졌다. 다시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그러고 보니 어젯밤에 옆집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어.”
“그걸 왜 이제 이야기하는가!”
“문 두드리는 소리가 특별한 일이라고 생각 못 했지!”
오늘 사망한채 발견된 시신의 옆집에 살던 사람의 말에 다들 더더욱 겁을 먹었는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소란스러운 가운데 집주인이 겁도 없이 성큼성큼 문 쪽으로 다가갔다.
“지금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다 믿는가!”
“문을 열어선 안 되오!”
약장수가 집주인을 잡아챘지만, 그는 그 손길을 뿌리쳤다.
“이 마을은 신께서 보살피는 마을일세! 모노노케 같은 게 있을 리 없어!”
그때였다.
처음 제물에 대해 언급했던 사람이 문 쪽으로 달려갔다. 약장수가 미처 말릴 새도 없었다.
“신께서 오신 거야! 신께서! 제물을 바치지 않는 우리를 벌하시려고!”
부적이 덕지덕지 붙은 문이 열렸다.
새까만 일렁임이 사람을 삼켰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약장수가 부적으로 문을 닫았지만, 쉬이 잊힐 광경이 아니었다.
“저, 저, 저게 뭐야……?”
“죽, 죽은 거야?”
“아마도.”
약장수의 말에 또다시 정적이 흘렀다.
“치바현을 방문했을 때, 들은 이야기가 있어.”
여행자가 자기 가방을 뒤적여 수첩을 꺼내며 이야기했다.
“여기 있네. ‘바다에서 사망한 사람의 영혼이 돌아와 문을 두드리는데, 그 모습은 거무스레하여 인상조차 분명하지 않았다.’”
약장수가 고개를 돌려 여행자를 쳐다봤다.
“그 이름은?”
“그곳의 사람들은 그 요사한 걸 ‘쿠로뉴우도(黒入道)’라고 부른다지.”
약장수는 의뭉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모노노케의 형태는 ‘쿠로뉴우도’.”
약장수의 말이 끝나자, 아까는 달그락거리기만 하던 퇴마의 검이 맑은 ‘달칵’ 소리를 내며 이를 부딪쳤다.
“……제물을 바친 게 원한이 아니라면, 다른 원한은.”
누군가가 띄엄띄엄 말을 꺼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집주인에게로 모였다. 집주인은 자기를 쳐다보는 사람들을 둘러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왜 날 쳐다보는 거요!”
마을 사람 하나가 약장수를 보며 입을 열었다.
“작년의 제물은 저 치의 딸이었어. 근데 그걸 알게 된 애 엄마가 격렬하게 반대했어.”
“……내 아내는 외부인이라 마을의 사정을 잘 몰랐으니까.”
“제물을 바치는 전날, 저 치가 자기 아내와 대화를 해보겠다더니 그다음 날 저 치의 아내가 실종됐어.”
집주인은 바닥만 내려다봤다. 약장수는 흥미롭다는 듯이 “호오.”라며 반응했다.
“그래서, 부인께선?”
집주인은 고개를 돌렸다. 내내 입을 다물고 있던 마을의 촌장 나섰다.
“그 여자는 자기 딸 대신 제물이 됐네. 그게 다야.”
“하지만, 자기 아내 찾겠다고 그렇게 헤맸는데.”
“나에게만 이야기하고 자진했네.”
집주인이 할 말이 많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촌장을 쳐다봤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자기 얼굴을 쓸어내렸다. 촌장의 말에 다른 마을 주민들도 할 말을 잃은 표정이었으나 다들 다른 말을 하진 않았다.
쾅!
아까와 다르게 문을 강하게 치는 소리가 들렸다. 주민 몇 명이 소리를 꽥 질렀다.
“모노노케는 아니라는데.”
여행자의 말에 촌장이 그를 쏘아봤다. 여행자는 아이의 곁에 다시 앉은 채였다.
“외부인은 모르는 사정이 있는 걸세! 모노노케라는 삿된 존재가 아무리 강해도 곧 신께서 우릴 도울 테니 경거망동하지 말게나.”
“와, 이 상황까지 와서도 신을 찾네.”
촌장이 여행자를 다시금 노려봤다.
“아내는, 아내는 신을 부정했어.”
“자네……!”
집주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날 밤의 일을 떠올렸다. 신은 없다며 욕하던 아내와 화를 내던 자신. 그날은 바람이 많이 불어 파도가 거셌었다. 집주인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신의 죄를 중얼거렸다.
“촌장님께서, 아내를 제물로 데려간 거라고 하셨지만, 나는…….”
퇴마의 검이 다시금 맑은 소리를 내며 이를 부딪쳤다.
“모노노케의 내력은, 인신공양을 말리려다 물에 빠져 죽은 여인의 원혼.”
집주인은 고개를 푹 숙이곤 눈물을 흘렸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반복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 몇 명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그럼, 저 치만 모노노케에게 넘겨주면, 해결되는 게 아닌가?”
“그렇지! 자기 남편에게 죽어서 그게 억울한 거니 자길 죽인 사람을 넘겨주면 좀 잠잠해지겠지!”
비약적으로 진행되는 대화에 여행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산 제물을 바치던 마을답네.”
“시끄러워! 저 약장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고 입만 나불나불대면서 하는 게 없잖아!”
입을 다물고 있던 촌장이 고개를 번쩍 들며 약장수를 가리키곤 소리쳤다.
“저놈을 잡고 있게! 자길 죽인 놈을 주면 그 모노노케도 좀 얌전해지겠지! 그리고 나선 신을 기다리세나! 분명히 신께서 우릴 구해주실걸세!”
촌장의 말에 마을 사람들이 약장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약장수는 사람들을 피하며 문 쪽에 부적을 더 뿌렸다. 문의 부적을 뜯어내고 있던 몇몇 주민이 날아와 붙는 부적에 놀랐으나 다시 그 부적들을 떼어내기 시작했다.
약장수는 여행자를 살폈다. 여행자는 여전히 구석에 앉아 아이를 보호할 뿐 움직이지 않았다.
‘냅둬.’
여행자는 입 모양으로 무정하게 말했다. 마을 사람들에 대하여 모든 정나미가 떨어진 게 분명해 보였다.
“결계를 벗어나선 안 되오!”
“아까도 문을 연 한 명만 잡아가지 않았나!”
촌장은 집주인의 손목을 끌어 문 앞에 섰다. 그리고 몇 장 남지 않은 부적을 보곤 집주인에게 말했다.
“이 정도면 열 수 있지? 자네의 죄니 자네가 해결하게.”
“……예.”
집주인은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마냥 힘을 주어 문을 열었다. 종이인 부적은 금세 찢어지고 문이 열렸다. 시꺼멓게 일렁이는 무언가가 건물 안으로 쏟아졌다.
주민들의 비명이 들린 것도 잠시, 여행자는 수첩을 닫아 펼쳐놨던 결계를 없앴다. 보호 마법진을 미리 그려놓길 잘했지. 그리곤 아이부터 확인했다. 아이에게 그려줬던 마법진이 잘 발동했는지 아이도 무사했다.
“하여간, 왜 남편에게만 원한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몰라. 제물을 바친 건 마을 전체였으면서.”
여행자가 혀를 차며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털었다.
“안 그래, 약장. 어라.”
둘러본 건물 안엔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까, 약장수까지도.
“……설마 같이 휩쓸린 거야?”
당황한 여행자가 여전히 까만 무언가가 일렁이는 문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정도에 휩쓸릴 놈 아니잖아, 너!”
문밖으로 소리쳤지만, 그 소리가 약장수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여행자는 자기 얼굴을 쓸어내리다 다시 아이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제까지 약장수의 퇴마를 생각했을 때 저렇게 휩쓸린 것 같아도 금방 퇴마를 끝내리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한참 후에 문 바깥에서 오묘한 색이 빛무리가 어두운 일렁임을 뚫고 베어냈다. 저 안에서 까닭을 알아내고 퇴마의 검을 해방했나 보지? 여행자는 조용히 짐작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윽고 모노노케의 공간에서 느껴지던 느낌이 사라지고, 분명 눈앞에 없었던 약장수가 갑자기 건물 안에 나타났다. 여행자는 현실에 돌아왔음을 직감하며 아이에게 걸어둔 수면 마법을 해제했다.
태풍이 지나갔는지 빗소리는 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여행자의 질문에 약장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에 답을 읽은 여행자는 한숨을 푹 쉬며 중얼거렸다.
“약장수, 당신이랑 엮이면 되는 일이 없어…….”
여행자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그녀는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누르며 중얼거렸으나 약장수는 별 말없이 약가 방을 짊어졌다. 그러나 여행자가 계속 약장수에 대한 불만을 중얼거리자, 입을 열었다.
“당신이라면, 충분히, 마을 주민들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요?”
퇴마가 끝나서인지 다시금 느릿해진 약장수의 말에 여행자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기분 나쁜 인간들이 어떻게 되든 내 알바야?”
약장수는 여행자를 빤히 쳐다봤지만, 여행자는 태연한 표정으로 ‘뭐.’라며 응수했다.
둘의 대치는 금방 끝났다. 수면 마법에서 풀려난 아이가 여행자를 불렀기 때문이다. 여행자는 아이에게 어디까지 설명을 해줄지 고민했으나, 아이는 설명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내내 잠이 들어있었지만, 어렴풋이 자신의 마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눈치였다.
“엄마가,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아야 한댔어요.”
여행자는 아이의 말에서 혼자 남은 막막함을 읽었다. 여행자는 아이와 눈을 맞추며 이야기했다.
“널 근처 다른 마을에 데려다줄 수 있어. 아니면 날 따라서 서역으로 가도 돼.”
아이는 깜짝 놀라며 여행자를 쳐다봤다.
“둘 다 힘들 거야. 풍비박산 난 마을에서 홀로 살아남은 것도, 서역에서 나와 살아가는 것도. 선택은 네 몫이야.”
아이는 떨리는 눈동자로 한참 여행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푹 숙였다.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면 기다려 줄 수 있어.”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곤 여행자를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서역으로 갈래요. 절 데려가 주세요.”
“그래, 그럼.”
아이에게 자기 물건을 챙겨오라고 집으로 보낸 사이 약장수와 여행자는 바다를 바라봤다.
“결국, 데려가시는군요.”
“본인이 가고 싶대잖아.”
“평소엔, 모른 체, 하시지 않습니까?”
“……조용히 해.”
여행자는 약장수를 흘겨봤다. 아이를 보면 아직 인간 시절의 자신이 떠오른다고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았다. 그는 약장수에게 향했던 시선을 거두곤 바다를 바라봤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일출이 예쁘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알려지지 않은 일출 명소라는 소개를 듣고 온 거였지.”
“마을에 있는 동안, 일출을 보러 나간 적, 없지 않으십니까?”
여행자는 장난하냐는 듯한 눈빛으로 약장수를 쳐다봤다. 약장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내내 모노노케로 인해, 밤마다 사람이, 죽어갔었지요.”
만약 새벽에 일출을 보겠다고 나갔다간 범인으로 몰렸으리라. 약장수는 휴양지로 뽑은 여행이 망했다며 투덜대는 여행자를 바라보곤 고개를 저었다.
“서역으로, 돌아가십니까?”
“어. 애 데리고 오래 여행하는 취미는 없어.”
여행자는 거의 다 뜬 해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아이가 짐을 다 챙겼는지 자신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진짜 다신 보는 일 없자, 우리.”
“작별 인사 치곤, 차갑군요.”
여행자는 약장수를 흘겨보곤 자기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그건, 무슨 의미, 입니까?”
“꺼지라고.”
약장수는 자신도 같은 손동작을 해 보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행자는 퍽 순진해 보이는 그 모습을 표정을 구긴 채 바라보다 고개를 아이에게로 돌렸다.
“다 챙겼어?”
“네.”
“가자 그럼.”
여행자는 약장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아이의 손을 잡고 걸었다. 아이는 고개를 돌려 약장수를 쳐다봤다. 약장수가 고개를 꾸벅 숙여주자, 아이 또한 고개를 숙여 보였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약장수는 그 자리에 없었다. 놀란 아이가 여행자를 바라보자, 여행자는 날숨을 크게 쉬곤 원래 그런 존재라고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