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마끼리 친하면 자식들도 친해지고 그러면서 가족끼리 친해지게 된다는 말은 ‘우리’에게도 포함되는 말일 줄이야. 어릴 때만 그렇고 중간엔 나에게도 일이 있었기도 했고 못 만날 거라고 생각도 못 했는데. 아직 해가 중천인데 세상 피곤하다는 얼굴로 팔짱을 낀 체 멍하니 이제 막 장작에 붙은 불을 바라보는 그를 보다 슬쩍 팔꿈치로 등을 미는 엄마의 행동에 왜 그러냐며 고개를 돌리니 어째서인지 나를 보며 씩 웃는 두 분의 얼굴에 아닌데요 라고 답했다.
“어머어머. 얘는? 그렇게 사랑스럽다는 듯 쳐다봤으면서.”
“세상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라고 생각했어.”
“병찬아 네가 이해해주렴. 여기 오기 전까지 과제 하다 와서 그래.”
“정말요? 그… 으렇구나.”
“아냐. 우리 병찬이가 네 딸을 좋아하는 게 틀림없다니까?”
소꿉친구끼리 엮이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드라마나 영화 만화나 소설 같은 곳에선 그렇다 쳐도… 애초에 나만 보면 레이저를 쏘듯 쳐다보는데 좋아하는 건 무슨. 둘만 있으면 어색해 죽을 것 같은데 차라리 초면인 사람과 농구를 하는 게 더 빨리 친해지겠다 싶은 정도였다. 어머니끼리의 대화는 점점 꽃을 피우는 동안 어느새 꾸벅꾸벅 조는 얼굴이 보인다. 저럴 거면 방에 들어가서 자던가. 괜히 신경이 쓰여 손바닥을 내밀었다. 얼굴이 닿으면 툭 밀어야지 하는 장난이 생각이 나서. 빠르게 고개가 아래로 숙어지자 손을 바로 내밀어 밀어내려는 순간 타이밍을 놓쳐 고개를 살짝 들려는 순간 손바닥이 뺨에 닿았다. 살짝 닿은 손바닥에 고개가 잠깐 멈칫하는 듯싶다가 손바닥에 얼굴을 푹 기대며 자는 얼굴이 보이자 뒤쪽에선 어머어머 감탄사가 쏟아진다. 자고 있던 눈이 천천히 떠지자 손을 떼어 내듯 툭 밀었다. 말이 툭이지 빠르게 행동했던 탓에 고개가 획 반대쪽으로 넘어간다.
“아!”
“괜찮니? 병찬아 너 뭐 하는 거야!”
“엄마가 장난쳐서 그렇잖아.”
“내가 무슨 장난을...”
“박병찬...”
목은 괜찮나 싶어 살펴보던 나와 엄마를 번갈아보던 상대가 덜 뜬 눈으로 내 이름을 부르자 엄마는 무언가를 기대하는 얼굴로 바뀌었다. 그거 아닌데. 기대하지 마요. 엄마에게 목이 잡힌 그는 갑자기 눈이 부신 듯 두 눈을 찡그리더니 앓는 소리를 낸다.
“...이 두 명이야… 으으….”
그러더니 몸이 앞으로 쏠려 엄마 품에 안긴다. 가까이 있던 두 사람과 조금 떨어져 보고 있던 한 사람은 그의 행동에 소릴 내며 웃는다. 여전히 앓는 소릴 내는 그를 일으키더니 방으로 들어가 자라며 부축하며 여자들이 쓰는 텐트 쪽으로 들어간다.
“병찬아 미안해. 대학생들은 과제가 많은가 봐. 밤을 새워서 했다더라.”
“진짜요? 와…”
“그런데 정말이야? 병찬이가 우리 딸을”
“아, 아버지들은 언제 오신대요?”
“…낚시하는 중일 테니까 오래 걸릴 거야. 병찬이도 피곤하면 자고 오렴. 저녁 먹을 때 깨워줄게.”
“그럼 들어가서 잠깐 쉬고 올게요.”
웃으면서 등을 토닥여주는 행동에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면서 남자들이 사용하는 텐트 쪽으로 들어가려다 밖으로 나오는 엄마와 마주쳤다. 잘 거야? 응. 저녁 먹을 때 깨워줘. 빠르게 대화를 마치고 텐트 안에 있는 매트 위로 누웠다. 아. 피곤하다. 천창을 보다 손을 들어 확인했다. 그렇게 세게 밀 생각은 없었는데. 아니 가만히 있었으면 오히려 눈과 입으로 따발총을 맞았을 거다. 잠이 덜 깨서 다행이긴 하다만 바로 옆에 붙어있는 옆 텐트 쪽에서 일정한 숨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밤을 새워서 과제라니… 대학 생활은 힘든가 보다. 난 그래도 좋으니 대학 가고 싶은데. 정면을 보고 있다 옆으로 돌아누웠다. 주변에 있던 목소리가 바람을 타고 흩어질 때쯤, 조금은 시원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자연스레 감기는 눈을 말리지 않으… 려고 했는데 옆 텐트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더니 짜증 부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잠든 지 얼마 안됬는데 잠깐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이 시끄러웠다. 무슨 일이 있나 했는데 옆으로 가서 자라는 말이 들려왔다. 잠깐. 누가 옆으로? 투정 부리는 목소리에 달래주는 목소리가 점점 다가오자 눈을 감았다.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이라면 걔밖에 없잖아?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꼭 감았다.
“봐 병찬이도 자잖아.”
“내가 왜 쟤 옆에서 자야 하냐고. 엄마 나 그냥 아빠 차에서 잘래.”
“빨리 가서 자.”
“텐트 고칠떄까지 의자에서”
“그냥 들어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소리에 짜증 내는 소리가 이어졌다. 등 떠밀려 들어왔나 보다. 텐트가 흔들리고 바로 앞에서 투덜이는 소리가 이어진다.
“박병찬 자냐.”
하마터면 대답할 뻔했다. 대답하지 않자 갑자기 눈가에 무언가 닿았다.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자 이번엔 코끝에 닿는다. 예상으론 검지인 것 같다. 얼굴 여기저기를 툭툭 건드리던 상대가 갑자기 행동을 멈춘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다시 이어졌다.
“자는 애를 왜 건드려.”
“내가 뭘 건드렸다 그래.”
“담요 하나밖에 없으니까 병찬이도 덮어줘.”
“같이 덮을 테니까 그만해. 엄마 나 너무 피곤해.”
한숨을 크게 쉬며 몸 위로 덮어지는 담요에 조금은 덥게 느껴졌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얘는 왜 웅크리고 자는 거야. 추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또 이어졌다가 다시 조용해지면서 아까와 같은 평화가 찾아왔다. 이미 잠이 달아나 슬쩍 눈을 떠보니 등을 진 작은 몸이 보인다. 분명 같이 덮고 잔다고 한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담요가 전부 내 쪽에 올려져 있었다. 웅크리고 잔 것 때문에 추운 줄 알았나보다. 본인은 팔짱을 낀 체 자고 있었다. 눈치를 보며 슬쩍 일어나 담요를 살짝 덮어줬더니 움츠러든 몸이 살짝 펴지는 듯 했다. 잠깐 뒤척이다 몸을 쭉 펴더니 반대쪽으로 돌리니 다시 마주 보게 된다. 뭐가 마음에 안 드는지 인상을 찌푸리면서 점점 앞으로 내 쪽으로 다가온다. 거의 닿으려 할 때쯤 멈추더니 다시 몸을 뒤로 돌린다. 잠버릇이 안 좋네. 얼굴을 안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나 역시 등을 돌렸다. 닿은 등이 따듯해 분명 달아났다고 생각한 잠이 몰려온다. 이번엔 눈을 천천히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