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들은 창문을 쳐다봤다. 오전부터 어두침침하던 하늘이 기어코 비를 쏟아냈다. 비야 꾸준히 오는 편이지만 창문을 크게 두드리는 비는 드문지라 시선이 갈 수 밖에 없었다.
들고 있던 신문을 내려놓은 리들은 감상에 빠졌다. 어두컴컴하고 눅진한 대기를 관조하노라면 학창시절이 떠올랐다. 지하에 있는 슬리데린들의 보금자리, 엄중한 초록과 은빛으로 감싸인 자신의 고향 같은 곳. 그곳에서 꿈꾸던 야망들은 다 강렬하기 그지없었었다. 지금은 그런 야망들과는 거리가 있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시절의 ‘계획’들을 실현해 냈다면 지금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원하는 만큼 찬란한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마지 벽난로에서 사납게 타오르는 저 초록 불꽃처럼…….
벽난로가 왜 저렇게 타오르지?
금세 감상에서 빠져나온 리들은 곧 그것이 플루가루 네트워크로 누군가 이쪽으로 넘어오려고 하는 반응이라는 걸 깨달았다. 이 집의 벽난로는 플루가루 네트워크 사무국을 통해 넘어올 수 있는 사람을 최소한 제한하였기 때문에 리들은 금방 방문자가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다니엘라.”
“빌어먹을 오후야, 리들.”
사라졌던 몇 년 새에 험해진 다니엘라의 입버릇은 아직도 어색한 감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적할 생각은 들지 않았다. 교제한 지도 꽤 됐는데도 아직도 자신을 성으로 부르는 것도 지금만큼은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뭘 하다 그렇게 젖었어?”
옷자락과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들이 벽난로 앞 바닥을 적셨다. 물기를 짜내보려던 다니엘라는 금세 포기하곤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바닥에 내팽개쳤다. 리들은 그걸 보고 금세 알아챌 수 있었다.
“……지팡이는?”
“……호그와트에.”
리들은 자신의 미간을 꾹꾹 눌렀다. 도대체, 호그와트에서 강의나 하고 있어야 할 교수가 학기 중에 잔뜩 젖어가며 지팡이는 두고 외부를 돌아다녀야 할 이유가 뭐지? 따지고 싶은 것은 많았지만 리들은 입을 다물었다. 하나하나 따져봤자 다니엘라 입에서 납득이 갈만한 이유가 나오지 않으리란 걸 이젠 알고 있었다.
지팡이도 없이 주문을 외워 몸을 말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리들은 아씨오로 담요를 가져와 다니엘라 어깨에 얹었다.
“너 점점 사람 챙기는 게 익숙해지는 것 같은데.”
“누구누구 덕분에.”
리들은 다니엘라를 자신이 앉아있던 소파에 앉혔다. 그리곤 소파 양 손잡이를 잡고는 다니엘라를 내려다봤다.
“……리들?”
“이제 설명해.”
물론 이유가 납득이 가든, 안 가든 따질 건 따질 생각이었다.
학창 시절, 자신의 야망을 싸그리 뒤엎어 버린 장본인은 가끔 지나치게 위험한 행동을 하곤 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은 슬리데린의 덕목이나 언제,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어 걱정되는 자신도 생각을 조금은 해주면 좋을 텐데.
리들은 자신 등골을 기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억누르며 다정하게 미소 지었다.
“수업 중일 시간에, 지팡이도 없이, 호그와트가 아닌 곳에, 홀딱 젖은 채로.”
네가 또 갑자기 사라질 바엔 호그와트에 재직하는 게 널 붙잡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하잖아.
“똑바로 설명해 주겠어, 다니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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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난로가 이상하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어. 아까 봤잖아, 플루가루 네트워크 쓰는데 시간이 지나치게 오래 걸리는 거.”
그건 그랬지.
플루가루 네트워크 사무국에서 이 집의 벽난로가 마법적으로 좀 이상한 부분이 있다고 고지했다고 한다. 트릿-이 집의 집요정-이나 리들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집주인의 본인확인이 필요하다고 해서 호그와트에는 반차를 쓴 참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젖은 건?”
“그건 호그와트 나오는 중에 사자 녀석들이 장난을 치는 거 수습하느라 비 맞았어. 어차피 집에 올 거라 굳이 안 말린 거였고.”
네가 있는 줄 몰랐지.
리들은 다소 머쓱해 보이는 다니엘라의 표정을 보곤 진실임을 깨달았다.
“지팡이는.”
“……그건 그냥 까먹었어.”
지팡이 빼고는 다 납득이 가는 이야기였다. 리들은 다소 허탈한 감정을 느끼며 자세를 바로 했다.
“지팡이 들고 다녀.”
“없이도 마법 잘만 쓰는데.”
“그래도 들고 다녀.”
리들은 툴툴거리는 다니엘라를 내려다보며 웃어버렸다.
그래, 네가 내 통제를 얌전히 받아들일 리가 없지. 애초에 단 한 번도 자신의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유일한 존재라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아닌가. 리들은 다소 포기하는 기분으로 다니엘라의 머리를 헝클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