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리 와, 유하. 빨리 가야 금방 탈 수 있어."
"조금 기다리면 되지 않아요?"
"그러다가 다른 기구도 놓친다니까?"
손찬오는 그의 손을 잡은 채 걸음을 빨리 움직였다. 오늘은 그들이 신라에서 넘어온 날이 3년하고도 1개월이 된 무렵이었다. 처음 보는 세상과 문물에 적응할 수 있던 건, 그들이 1400년을 넘을 수 있도록 도와준 이와 그들은 보이지 않으나 주변을 맴돌았던 혼의 도움이 가장 컸다. 둘 중에 먼저 적응한 건 당연히 손찬오였다. 어색할 법도 한데, 주변 사람들과 어울러져 새로운 문물과 문화를 금방 배우고 써먹었다. 얼마 전에는 요즘 유행하는 말이라며 생전 처음 듣는 말을 배워온 탓에 그 말을 들은 채유하는 알아듣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그에 비해 채유하는 아직까지도 스마트폰이라고 하는 연락수단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나 문자 등 연락하는 수단이 전부였지 그 이상으로 즐길 만한 부분은 전혀 챙기지 않았다. 원체 욕심이 별로 없는 자였고, 없는 욕심으로 가장 원하는 게 손찬오란 사람이었으니 그와 보내는 시간만으로 채유하의 삶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비록 돈벌이 수단으로 시작하게 된 소설이 어중간한 인기를 끌게 돼 담당자의 지각하면 안된다는 연락으로 불만이 있기도 했으나, 자신이 직접 일하며 집안 사정에 보탬이 된다는 사실 또한 옛 사람의 입장에서 특별했으니 마냥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그렇게 새로운 세상에 적응과 조금이나마 편한 생활을 위해 일하게 된 두 사람은 3년이란 시간 동안 바삐 움직였고, 정신 없는 나날 중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고만 것이다.
'여기까지 와서 재밌는 추억 하나 없잖아!'
정확히는 손찬오의 생각이었다. 좋은 추억이 없냐고 하면 이뤄지지 않을 줄 알았던 사랑이 새로운 세상과 함께 이루어져 사랑하는 사람과 보내는 나날 자체가 하루하루 특별했으니, 좋은 기억들이야 차고 넘쳤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은 것을, 그리고 더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마음은 시대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손찬오는 채유하가 지금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길 바랐고, 할 수 있다면 웬만한 좋은 것들만 주고 싶었고, 그 안에 자신이 있길 바랐다. 채유하에 비해 손찬오는 욕심 많은 성정이었으니. 단지 그뿐이랴, 손찬오는 지금 시대에만 있는 놀거리를 즐기고 싶었다. 당장 집 앞 놀이터만 해도 뛰어다니며 놀기에 딱 좋았다. 저는 이제 애가 아니라며 그네만 딱 한번 타보고 내려왔지만. 세상문물에 빠르게 익숙해지고, 유행하는 건 직접 해봐야 하는 성정이 떠날 일은 없었다. 이맘때쯤이면 연인끼리 가는 명소를 생각하자 오랜 고민도 없이 결론을 내놓았다. 바로 놀이공원! 짜릿하고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들과 무서움보다 다정한 시간을 보내기 좋은 놀이기구, 어울림은 뒤로 미루고 일단 착용하는 머리띠 등 생전에 해본 적 없지만, 손찬오가 가장 잘 해낼 것 같은 일들이 바로 놀이공원에 있었다. 마냥 넉넉한 삶은 아니지만, 놀이공원이란 사치를 부리기 딱 좋은 시기라고 느꼈다. 오래 가는 여행은 아직 터무니없기도 했다.
더 고민할 바에 제 연인을 설득하는 게 먼저라고 손찬오는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 겨울을 맞이한 주말에 그들은 놀이공원에 도착했다.
계획을 놀고 세우기보다 즉흥적으로 움직인 게 편한 성격에 손찬오가 생각한 플랜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일단 줄이 가장 긴 놀이기구부터 기다렸다가 타고, 제 연인이 계속 무서운 놀이기구만 타길 바라지 않을 테니 조금은 쉴 수 있는 기구도 타고, 지치면 간식을 사먹고, 귀여운 머리띠를 하며 야경을 즐긴다, 이 정도. 연인 사이에 흔히 할 수 있는 계획이었다. 그게 얼마나 특별한 일인지 놀이공원에 있는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지만. 손찬오는 웃으며 제 연인의 손을 잡았다. 매일 보는 얼굴인데도, 데이트만큼은 특별하게 입어야 한다며 잔뜩 꾸민 모습이, 마치 저를 위한 선물 같아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그를 향한 웃음은 무언가 숨기기 위한 웃음이 아니라는 걸 손찬오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롤러코스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줄도, 옆에서 떨린다며 제 손 하나를 꽉 붙잡은 연인의 모습에 지루하지 않았다. 날이 추우면 좀 더 붙고, 서로의 머리카락으로 장난도 치고. 신라시대에 살면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평범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안전벨트 착용하겠습니다~"
직원의 목소리와 함께 자리잡은 두 사람은 여전히 손을 잡고 있었다. 손찬오는 맨 앞에 앉자고 떼를 썼으나 아쉽게도 통하지 않았다. 내가 옆에 있는데 뭐가 문제야? 하며 바라보는 눈빛에도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으니 넘어갈 방법이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점점 가까워지는 하늘을 보며 손찬오는 생각했다. 전장을 누비던 화랑에게 무서울 게 있나.
*
"아, 찬오야. 저기 있는 게 우리 사진 같아."
"... ...진짜 사는 거야?"
"응, 갖고 싶다고 먼저 말한 건 너였잖아요."
손찬오는 늘어놓은 작은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 안에는 웃는 사람, 울상을 진 사람, 고개를 숙인 사람 등 다양한 얼굴이 있었으며, 그중에 창백해진 제 얼굴도 있었다. 무서웠냐고 말한다면 전혀 아니지만! 사진은 결코 제 결백을 주장하지 못할 인상이었기에 사진을 꼭 구매하겠다 말하던 과거의 자신이 조금은 미워지기 시작했다. 애초에 갖고 싶었던 건 제 사진보다 연인의 사진이지 않은가. 제 옆에서 작게 웃는 얼굴을 보자니 구매의욕이 다시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하나만 살래?"
어차피 같이 살고 있으니까. 이후의 일정은 손찬오의 예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천천히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타며 직접 몰았던 말과 느낌이 다르다는 얘기를 하거나 서로에게 어울린다고 생각되는 동물귀 머리띠를 고른다거나 허기지면, 길에서 파는 간식을 사먹기도 하고. 이 또한 장에서 파는 간식거리를 먹을 때를 떠올리게 하는 상황이었지만.
그리고 마지막으로 두 사람을 반기는 건 커다란 관람차였다. 불빛이 잔뜩 들어온 놀이기구와 상반되게 짙은 하늘. 전혀 다른 세상에서 뚝 떨어진 상황과 다름없는 나날에서 두 사람이 버틸 수 있던 건, 오로지 두 사람이 함께였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믿기지 않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게."
채유하는 중얼거리며 목소리를 내었다. 3년이란 시간은 제가 살아온 시간보다 짧긴 해서, 여전히 떠나게 된 날을 떠올리고 있었다. 편찮은 아버지를 두고 온다는 건, 제 삶에 있어 가장 괴롭히는 시간이었어도 자식의 도리를 저버린 것만 같아 어떠한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저 스스로가 좋은 딸이 아니었고, 아버지 또한 좋은 아버지는 아니었단 말만으로 하루를 넘기는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제 말에 어떠한 의문도 없이 고개를 그저 끄덕이던 오라비만이 나아갈 수 있던 힘이었다.
'어차피 잊게 될 거야. 그래도 말하고 싶은 거야?'
'그게 도리에 맞다고 생각해요.'
'찬오랑은?'
'난 괜찮아. 형님이 있으니까.'
'그래, 그럼…'
'…다녀와'
'오라버니, 저 이곳을 떠나고자 해요.'
'…믿을 수 있는 자와 함께더냐.'
'지금껏 그의 믿음으로 살아왔는걸요'
'…그래, 알겠다. 그동안 고생하였다.'
듣지 못하였다면, 평생을 신경썼을테니까. 채유하는 손찬오를 향해 웃어보였다. 그의 뒤로 보이는 불빛과 하늘이 어색하면서도, 두려움은 들지 않았다. 그가 오로지 저의 믿음이었기에.
"아무리 그래도 아직까지 휴대폰을 제대로 못 쓰는 건 너무하잖아~"
그의 말에 손찬오는 웃으며 대꾸한다. 두렵지 않았냐고 묻는다면, 제 앞길을 살아가기보다 제 연인이 보내던 시간보다 더 고생스런 시간을 보내게 하는 건 아니지 걱정이 들었다. 그러니 저는 제 연인이 괜찮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 저 웃음이 괜찮다는 의미였으니 안심할 수 있었고. 평소처럼 장난스런 말이 나오는 이유도 그래서였다.
"앞으로도 괜찮을까요."
"괜찮을 거야."
내가 그렇게 만들어줄게, 하고 생각하면서도 내뱉지 않았다. 말로 하지 않아도 전해졌으리라 믿고 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게 하는 일이, 이제 화랑도, 손가의 막내도 아닌, 채유하의 손찬오가 할 일이니까. 두 사람은 함께 창 밖을 바라본다. 어두운 하늘처럼 깜깜한 나날도 있을테고, 반짝거리는 불빛처럼 아름다운 나날이 있을 테지만. 지금처럼 함께 있기만 한다면, 전부 괜찮을 거란 믿음이 두 사람에게 자리 잡는다. 이렇게 따져보면 놀이공원 데이트는, 제법 성공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