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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에서 멀지 않은 곳에 꾸며둔 아담한 정원에 산호초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야생에 아무렇게나 듬성듬성 자라나 있던 어린 것들을, 우리가 정성껏 돌보아 온 지 오래되었다. 그 보람이 있었던지, 바다의 꽃밭은 어느새 난만하여 아름답다. 비록, 어두운 심해에서 볕을 못 본 송이들은, 햇살이 드리우는 바다의 알록달록한 것들과는 달리 빛바랜 색을 띠고 있기는 하였지만. 정원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본다. 문득, 잡념이 엉뚱한 곳으로 퍼져 나간다. 저들도 우리같이 삶을 원망할까. 색 없는 앙상한 가지들은 우리를 너무나 닮아 있었으므로, 그런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산호 무더기 속에 손을 들이밀자, 촉수의 촉감이 손가락 사이사이를 부드럽고도 거칠게 훑는다. 하지만, 그리 믿고 싶지는 않다. 비통함도, 원망도, 증오도, 이 서글픈 꽃들은 영영 알지 못하길 빈다. 캄캄한 심해에 기생하며 가쁘고 힘겨운 숨을 삼키고 토해내는 건, 우리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사소한 낭보를 안고, 우리의 서식지인 깊은 심해의 작은 굴로 돌아온다. 우리의 노력이 빛을 보아 어여쁜 산호들이 한가득 피었더라는 이 기쁜 소식에, 네가 작게나마 미소짓는 상상을 하며 나지막이 네 이름을 부른다. 그러나,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싸늘하고 텁텁한 냉기가 숨통을 콱 조인다. 이제는, 보지 않아도 먼저 알아채고 만다. 오늘도 분명 무언가 수틀렸을 터. 한숨을 내쉬며, 꼬리를 박차고 동굴 깊이 들어간다.


…… 하이네.


다시 한번, 떨리는 음성으로 그 애달픈 이름을 외친다. 어둠에 검게 된 물을 헤치면, 저 아득히 깊은 곳에, 웅크려 잘게 떨고 있는 비쩍 마른 어깨와 등판이 보인다. 고개 숙인 네 얼굴 아래로, 허옇고 불투명한 돌조각 같은 것들이 아른거리며 떨어진다. 인어의 눈물은, 굳으면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고 했던가. 그래서 뭍의 탐욕스러운 인간들이 눈독을 들인다고. 하지만, 검은 머리와 녹색 눈동자를 가진 우리의 울음은 그렇지 않다. 고운 모양을 갖고 있지도 않고 빛을 발하지도 못한다. 추악한 괴물들은 고통과 슬픔조차 팔 수 없는 것이다.


굴 바닥은 우리가 살아오며 만들어낸 눈물 조각들로 가득해 발 디딜 틈이 없다. 우리는 자주 아무 까닭 없이 울어댄다. 아니, 까닭은 넘치도록 많다. 이 심해 밑바닥이 너무 춥고 어두컴컴해서. 까만 머리카락과 녹조빛 눈과 색바랜 비늘이 추해서. 세상에서 쫓겨난 신세가 비참해서. 인간들이 흘려 내려보낸 폐기물과 독극물에 숨이 막혀서—빛도 들지 않는 이곳까지 그런 것들이 밀려올 리는 없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끔 그런 감각을 느낀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를 태어나게 했다는 게 원망스러워서. 무엇보다, 같은 처지의 서로를 바라보고 사랑하는 일이 너무나 괴로워서. 웃을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다면, 울어야만 하는 일은 수백 수천수만 가지. 흉한 것들이 흉한 산호초 한 무더기 키워냈다는, 그따위 사실이 행복할 리 없단 걸 잔인하게 깨닫고 만다.


네게 가까이 다가가, 그 어깨를 힘껏 끌어안는다. 작은 품에 너의, 아니, 우리의, 모든 설움과 통증을 담으려 발버둥친다. 울지 말라고, 괜찮다고, 그런 입에 발린 말이라도 좋으니, 네 귓가에 속삭이고 싶다. 그러나, 달콤한 거짓말보다 쓰디쓴 탄식이 먼저 토해져 나온다. 부글부글, 입가에 물거품이 인다. 내 뺨과 네 등을 눈물이 따갑게 적신다. 떨려오는 나의 손을 네가 겹쳐 붙든다. 그럴 리가 없는데도 한없이 따스해서, 그 감촉은 한스럽기만 해서, 또 목놓아 울고 만다. 조각이 방울방울, 굳어져 허공에 흩어진다. 밤, 날이 샐 때까지 우리는 부둥켜안고 흐느낀다. 우리를 암흑 속에 남겨두고, 아침이 올 때까지.

 


커다란 선박이 가라앉았다고 했다. 바다는 검고 탁한 기름으로 물들었다고 했다. 물에서 숨쉬는 수많은 생명이 죽어갔다고 들었다. 새카만 재난이 그리 물러가고, 살아남은 것들은 계속해서 악착같이 살아갔다. 가족과 친구들의 안타까운 잃은 목숨을 바다 밑에다, 가슴속에다 묻어두고. 잊지는 못해도, 그것으로 되었을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재앙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후, 열에 한 명 꼴로 검은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했다. 금빛도, 선명한 붉은빛도 아닌, 그 침몰한 유조선의 기름을 절로 떠오르도록 하는 까만 머리. 생기 없이 탁하고 가라앉은 녹색 눈. 다른 인어들과 외견이 다르며, 눈물이 보석처럼 굳어지지 않았다. 단지, 그뿐이었다. 그런데도, 사회는 그들을 새로운 재앙처럼 취급했다. 마치 그 아이들이 바다에 퍼진 독이라도 되는 양. 그것은 명백히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인간의 탓이었으나, 감히 뭍의 강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일. 모든 원망과 분노의 화살은 억울하게도, 나약한 그들에게 꽂히었다. 한동안, 그 애들은 태어나자마자 칼에 찔려 죽거나, 험준하고 인적 드문 바다에 버려져 굶어 죽거나 잡아먹혀 죽거나 했었다. 아무도 그들을 동정하지 않았을 테다. 까만 머리와 녹빛 눈의 인어. 나도 그렇게 버려진 아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나는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혹은, 그저 운이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 홀로 힘겹게 버티고, 가쁜 숨을 쉬고, 눈물 흘려가며, 살아서, 자라서, 무리로 돌아왔다. 인간이 만들어내고 인어들이 버린 폐기물이 되돌아왔다. 인어들은 나를 두고 독한 년이라고 했다. 외딴 곳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며 잠들며 그토록 그리워한 나의 부모형제는 끝끝내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날 하나같이 경멸어린 혐오스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으므로. 지나가다 날아온 날카로운 돌에 이마와 꼬리비늘이 찢겨 피가 나는 건 예삿일도 아니었다. 나를 향한 증오와 죽음의 소리를 공기처럼 들이키며 지냈다. 그사이 시간은 흘러 검은 기름의 저주는 완전히 용해되었던지 더 이상 까만 인어는 태어나지 않았고, 모두가 안도하였지만, 결국 나는 영영 혼자가 되었다. 숨을 쉬고 심장이 뛰어도 죽어 있었다. 이웃에 살던 동갑내기의 인어에게 옆구리가 칼로 꿰뚫렸을 때, 나는 마침내 이 바다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채 아물지 않은 상처를 부여잡고, 어두운 밑바닥으로, 탁하고 차디찬 심해로 가라앉았다.


이대로 숨이 막혀 죽어버린다면 좋겠어. 이제는 그만 쉬고 싶어. 헤엄도 치지 않고 힘없이 해류에 떠밀려가며 중얼거렸다. 버려지고 미움받은 나의 생을 가장 증오하는 이는, 바로 나 자신이었다. 심장 고동도, 들숨도 날숨도 견딜 수 없이 괴로웠다. 웅크려 아가미를 틀어막았다. 숨이 막힌 폐부로 전해지는, 타들어 가고 조여오는 고통. 몸에 힘이 풀려 손이 맥없이 떨어졌다. 죽음을 갈망하는 내겐 하등 쓸모없는 생존본능이 야속했다. 괴로운 산소는 다시 계속해서 몸으로 들어왔다가 나가고, 나는 다시 가라앉아갔다. 아래로, 아래로, 더 깊은 곳으로…….

 


칼에 찔렸던 상흔이 벌어져 피가 흘렀다. 비릿한 향이 심해에 서서히 퍼져나가고 있었다. 상어나 아귀 따위의 눈에 띄어 물려 죽지 않으려면 어디로든 숨어야 했다. 차라리, 누군가의 양분이 되어서 삶을 마감하면 참으로 만족스럽겠다는 생각도 일순 들었지만, 그보다는 죽음의 공포가 앞섰다. 마음과는 정반대로 악착같이 살아왔고 살고 또 살려 하는 망할 몸뚱아리를 저주하며, 마침 눈에 띄는 굴 안으로 숨어들었다. 이만큼 깊이 들어왔으니 들키지 않겠지, 하는 안도감이 찾아온 동시에, 위화감이 뇌리를 파고들었다. 처음에는 야생의 굴이라 생각했으나, 공간에는 은은하고 따스한 인위적인 조명이 감돌고 있었다. 인어들이 전구로 흔히 쓰는 발광석의 색상이었다. 이 깊고 험한 심해에…… 인어가? 의구심을 다 갈무리하기도 전에, 안쪽에서 검은 인영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녹빛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서로를 와락 끌어안았다. 떨리는 손으로 새카만 빛의 더벅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등을 쓸어내려 보았다. 깡마른 몸이 온갖 거친 상처로 물들어 있었다. 굳이 말로 듣지 않더라도 당신의 험난한 생을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분명, 그것은 나와 닮은 형태. 혼자가 아니었어. 나는, 혼자가 아니야……. 당신의 품 안에 낯을 묻었다. 나 자신도 한평생 들어보지 못한 음성으로 울었다. 순간, 어깨에 무게가 실리는 감촉이 들었다. 살이 젖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울음을 꾹꾹 삼키려 애쓰며, 떨려오는 당신의 몸을 꽉 붙들었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그가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우리는 함께 살기로 했다. 깊고 깊은 고요한 심해에는 더는 괴롭힘도, 증오도 없었고, 무엇보다 이제는 고독도 없을 것이었다. 연민과 동질감은 곧, 사랑이 되었다. 달콤한 말을 속삭이며 서로의 입술을 탐하고 몸을 안았다. 우리는 행복의 생김새를, 감촉을, 맛과 향을, 난생처음으로 깨달아갔다.


그러나, 행복은 오래지 못했다. 함께라는 사실에 안도하고 익숙해지자, 우리의 저주받은 실존을 다시금 깨닫고 만다. 불행에 불운을 겹쳐보았자, 비극일 뿐이다. 탄생부터 미움받고 내쫓긴 우리에게, 이 심해도 그저 비극의 무대였다. 슬픔에 통곡하는 이가, 우울함에 흐느끼는 이를 달래줄 수 없는 노릇. 우리는 자주 울었고, 화를 냈고, 아파했으며, 안타깝게도 그 감정들은 자주 죄 없는 서로를 향했다. 날아오는 돌을 맞지 않게 된 대신, 서로를 할퀴게 되고 말았다. 흐느끼는 너를 두고 돌아누워 애써 울음을 참으며 우스운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인연이 아니라고. 늙은 인어들이 종종 하던 소리를 빌리자면, 궁합이 안 맞는 것이라고. 그렇지 않고서야, 사랑이 이토록 엉망진창이고 추잡스러울 리 없지 않은가. 우리를 이어준 끈이라고는, 고작 태생의 비극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운명이 아니라면 무엇이 운명이고 인연이란 말인가? 네가, 그리고 내가 밉고 원망스러울 때마다, 처음 만난 날을 떠올린다. 검은색과 녹색이 저주의 오염된 색이 아니라, 이 바다에서 가장 아름답고 반짝이는 빛깔로 느껴지던 순간을. 돌아누운 나의 등 뒤로, 다가온 네 등이 조심스레 닿았다. 나는 밀어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애정하고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 증오는 애증으로, 애증은 사랑으로, 사랑은 다시……. 뼈아프고도 애틋한 순환을 우리는 반복해나간다.


오래도록 지내며, 몇 번이고 서로를 탐하고 끌어안았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다. 실망스러웠지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너와 나를 닮은 아이는 분명, 우리를 원망할 테다. 대신, 우리는 심해 밑 바위틈에 자란 어린 산호들을 모아다 돌보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고 여리고 색이 바랬는데… 키워봤자 금방 시드는 것 아닐까.


그리 말하는 네 손을 잡고, 고개를 저으며, 차분히 답했다.


아니야. 우리도, 지금까지 잘 살아있잖아.

 


아이들을 보러 갈까. 산호초 말이야.


아침. 우리는 지난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러나 붉게 부어오른 눈을 비비며 깨어난다. 나는 어제 못한 말을 오늘에서야 전한다. 잠이 덜 깨어 멍하니 나를 바라보던 너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는 간만에 함께 손을 잡고서 굴 밖을 나선다. 첫눈이라도 내린 듯 새하얀 꽃밭이 우리를 반긴다.


처음엔 엄청 작았잖아. 자기들끼리 부대껴서 이렇게 많이 자랐네.


녹색 구슬을 동그랗게 뜨고 깜빡이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앞의 풍경을 둘러보는 네게, 나는 웃음기 서린 목소리로 말한다.


  …… 그러네. 정말 예뻐. 정말로. 네 말이 맞았어.


너는 산호를 가느다란 손끝으로 조심스레 쓰다듬고, 양손을 모야 꽃 무더기를 한가득 안는다. 희고 순수한 빛깔의 산호초와 너는, 정말이지 한 폭의 그림처럼 잘 어울린다. 너는 옅고 은은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새하얀 낯에 작은 웃음이 선명히도 새겨진다. 정말이지 오랜만에 마주하는 너의 웃음이다. 울어야만 하는 일이 수백 수천수만 가지일지언정, 웃을 수 있는 일 딱 한 가지는 언제나 있다.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고, 나도 웃는다. 너를 바라보며 환히 웃는다. 우리는 따스한 포옹과 입맞춤을 나눈다.


클로비.


네가 내 이름을 부른다. 그래, 내가 여기 있어. 온 세상이 버렸지만, 네가 사랑하는 내가. 온 세상이 버린 너를 사랑하는 내가.


우리는 하얀 꽃에 둘러싸여, 심해 바닥에 서로의 팔을 베고 가만히 누웠다. 작은 심해어 떼들이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간다. 모두 요상한 모양과 탁한 색을 가진 와중, 그 누구도 헐뜯지 않고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간다. 검푸른 물결이 종종 위쪽 바다의 소식을 몰고 오곤 한다. 인간들이 외딴섬 근처로 마실 나온 인어들을 잡아갔다는 이야기, 이쪽 바다와 저쪽 바다의 인어들끼리 서로 피 흘리며 다툰다는 이야기, 목소리까지 바쳐가며 인간 나라의 왕자를 찾아간 인어가 결국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어버렸다는 이야기.


심해 밑바닥은 오늘도 평온하다.


영영 초록빛 새카만 불운과 절망이 우리를 지탱할 테니, 우리의 행복은 물거품이 되지 않은 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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