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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거대한 해파리였다. 솔직하게 말해 그랬다. 다른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삼색 빛으로 발광하는 거대한 해파리. 사람 셋은 거뜬히 들어가는 욕조를 혼자 채우고 있다.

“왜 그렇게 봐요?”

그리고 그 해파리가 말도 한다. 대체 어디서 목소리가 나오는 거지. 반투명한 해파리 어디에도 입은 보이지 않는데.

“인어라면서.”

“인어잖아요.”

세상에 이렇게 뻔뻔한 해파리가 또 있을까. 인어면 적어도 반은 인간이어야 할 거 아냐. 넌 전부 해파리잖아. 하지만 그런 소릴 하면 이젠 목소리가 나오니까 인어라고 할 게 분명하다. 잭점퍼가 픽 실소를 흘렸다. 그걸 보고, 해파리가 촉수를 넓게 펼치면서 뭐가 문제냔 듯 항의하는 느릿느릿한 동작을 하기 시작하는 데 이상하다. 정말로. 이상하다. 표정이 보이지 않는데 웃고 있는 것 같다. 왜지. 분명 해파리인데 뒤로 현서우의 그 맹한 표정이 보이는 것만 같다.

“무슨 인어가 이렇게 생겼어?”

“저주받아서 그렇지, 원래는 더 예쁘거든요!”

전화로 들었을 때도 뭔 헛소리냐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제대로 미친 소리였다.

어째서 욕실에 의자가 있는지 모르지만, 마침 잘되었다. 잭점퍼는 의자를 욕조 가까이 끌어가 앉고, 앞에서 마치 화났다는 듯 팔락거리는 촉수 끝을 꽉 잡았다. 물컹거린 게 썩 마음에 드는 느낌은 아닌데, 이상하게 편안해진다. 검은 장갑 위로 끈적이는 점액이 남았다.

“해파리가 예뻐 봤자 해파리지. 그래서 인간으론 못 돌아와?”

“네!”

“뭘 해맑게 답하는 거야.”

세상에 이런 이상한 광경도 없을 거다. 다른 개미놈이 봤다면 드디어 잭점퍼가 미쳤다고 하면서 기어오를 틈을 노리기 시작하겠지. 평소라면 그도 이런 장난에 어울려주지 않지만, 오늘은 쓸데없는 얼굴들을 너무 많이 봐 피곤했다. 괴상한 놈이 하는 괴상한 짓에 마음이 놓일 줄이야. 촉수를 잡고 있는 손이 놓을 생각을 안 했다. 분명 별로인데, 묘하게 좋은 게 있었다.

“…사실 방법이 있긴 한데요.”

잠깐 눈치를 보는가 싶던 현서우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뭔데.”

“키스요!”

“…….”

“그렇게 쳐다보면 진짜 좀 무섭거든요.”

“무서워하든가.”

꼴에 귀여운 짓도 한다는 듯 보던 표정이 순식간에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변했다. 이 멍청이가 그럼 그렇지. 한심하기 짝이 없는 소리다. 네가 무슨 동화 속 개구리라도 되냐.

“어느 미친놈이 해파리랑 키스해?”

“당신 지금 내 첫사랑 모욕했어.”

“첫사랑?”

“네! 첫사랑!”

저도 모르게 촉수를 잡고 있던 손에 힘을 줬다. 알아채지 못했는지, 현서우는 성나서 잡혀 있던 촉수까지 잡아 빼서 욕조 물을 쳤다. 그래봤자 느리고 느린,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도 않은 동작이라 물이 튀게 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열 받은 아쉬운 소리를 짧게 낸 현서우가 곧장 날 선 목소리로 쫑알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내가 공짜로 다리 얻었을 거 같아요? 내 사랑이 키스해줘서 얻었거든요. 어디에 있는 어떤 독극물만 잔뜩 품은 개미랑은 다르게 다정하고 사랑스럽던 사람이 키스해줬거든요!”

마음에 드는 거라곤 한 개도 없는 말이다. 뭔 놈의 키스를 저렇게 강조해. 그 첫사랑 만나게 되면 입술부터 도려내 달란 뜻도 아니고. 해파리라 어디 입을 잡아 조용히 시킬 수도 없다.

“그럼 그 사랑한테 다시 해달라고 하든가. 바쁜 사람 불러다가 말도 안 되는 장난 그만치고.”

“장난 아니라고요.”

“세상에 저주니 인어니 그딴 게 가능할 리가. 네가 쓸모 있으니 들어주는 헛소리도 정도가 있어.”

쓸데없이 만들긴 잘 만들어서. 기계는 어디다 설치한 거야. 물에서 멀쩡한 걸 보면 방수인데 안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걸 보면 뭐로 한 거지. 이걸 만든다고 돈을 얼마를 또 당겼을까. 은화우놈이 갑자기 차용증을 들고 나타나도 놀라지 않을 자신이 있다.

“당신 진짜 너무해…”

 

 

잭점퍼는 아무래도 자신이 과로로 인해 쓰러졌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그쪽이 이해하기엔 편했다. 이건 한참 힘들게 일한 부작용이다. 쓰러지기 직전에 현서우가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그 쓸데없는 소리가 구현된 멍청한 꿈을 꾸고 있는 거라고.

“우웨엑…”

“쯧, 묻을 뻔 했잖아.”

꿈인 건 꿈이고 싫은 건 싫은 거다. 온몸에 묻었던 점액들을 이제 막 닦아냈는데 또다시 닿고 싶진 않다.

“당신은… 지금 내가 토하는데… 옷이 더… 우엑…”

상반신은 인간의 모습이 된 현서우가 그 행동에 뭐라 따지려 했지만 입 밖으로 밀려나오는 해파리에 막혔다.

될지 안 될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그저 잭점퍼가 안 믿으니까, 그게 마음에 안 들어서 가까이 다가온 그의 얼굴에 들이박았다가 성공해버렸다. 왜 된 거지? 인간의 상반신이 생기자마자 속에서 해파리 건더기들이 올라와 게워내느라 정신이 혼미한데도 현서우는 이유를 생각하려 애썼다. 잭점퍼에겐 말 안 했지만, 그냥 키스로는 안 된다. 짧게 입술만 닿는 거라도 사랑이 있어야만 한다. 그런데 왜. 대체 왜 효과가 있는 거냐고. 저 남자는 사랑은커녕 우정조차 모르는 인간인데. 지금 토하고 있으니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진작 칼을 들고 와서 자신을 회쳤을 거다. 분명하다. 그러면 이건 내가 저 인간을 사랑한단 건데… 그럴 리가. 그건 아니다. 망할 마녀가 이번엔 저주를 좀 잘못 걸었나보지.

위액인지 뭔지 모를 노란 게 섞인 것까지 뱉어내고 현서우는 욕조에 몸을 기댔다. 새로 물을 채우는 중이라 샤워호스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물에 겨우 진정되는 기분이다. 욕조 끝에 걸터앉아 쳐다보는 잭점퍼의 시선만 빼면 좋았다.

“왜 아래는 아직도 해파리인거지?”

“그야 이게 본모습이니까! 난 원래 해파리인어거든요!”

“그럼 인간으로는 어떻게 돌아올 건데. 이대로 일할 순 없잖아.”

“그놈의 일.”

이 상황에서 일 얘기를 한다는 게 참 대단했다. 언제부터 그렇게 일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고 지금 일 얘기를 꺼내.

“그치만 지금이 더 예쁘지 않아요?”

“어디 가서 잡아먹히진 않겠네.”

배꼽 아래로 달려있는 촉수를 펼치며 현서우가 자랑스럽단 목소리로 말했다가, 돌아온 대답에 입이 댓 발 나왔다. 뭐가 그리도 자랑스러운지 잭점퍼는 이해 못했고, 할 생각도 없었지만. 솔직히 말해 기괴한 느낌이었다. 보면 안 되는 걸 보는 느낌. 인간과 해파리를 결합하려 시도한 끝에 성공은 한 작품 같은. 동화 속 인어처럼 생선이 아니라 해파리라 그렇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지, 그것보단 색이 문제인 것 같다. 실험엔 성공했지만 과학자가 색감 보는 눈은 없던 모양이다. 자연에 있는 거였다면 분명 독 있는 해파리였을 거란 확신을 들게 하는 시퍼런 색에 저놈의 발광. 눈이 아플 정도다. 현서우의 회색 머리카락이나 분홍색 눈과는 닮은 곳이 전혀 없다.

“정말, 내가 뭘 기대해. 슬슬 다리로 돌아갈래요.”

“돌아오든가.”

“조금 더 가까이 와 봐요.”

“왜?”

가까이 오라니까 오히려 잭점퍼는 뒤로 물러섰다. 현서우가 어이없단 표정 짓는 거에 잭점퍼는 이유 먼저 말하라고 몰았다.

“아까 말했잖아요. 키스해줘야 돌아갈 수 있다니까?”

“…설마”

“키스해야죠.”

“미쳤냐.”

진심으로 경멸하는 반응이었다. 사람들이 남의 반응에 상처 입는다는 말을 잘 이해 못 했는데, 지금 제대로 알 것 같았다. 원산이 키스하자고 해도 저런 눈으로 보진 않겠다!

“뭐야! 왜 그렇게 격하게 싫어하는데요!”

“그럼 내가 여기서 너한테 ‘그래 키스하자’ 이러겠냐? 미친 거지. 너랑 왜 해?”

“왜 못하는데! 내가 머리끝까지 다 해파리일 때는 잘만 하더니!”

“그건 그냥 해파리에 입술 부딪힌 거지. 그리고 너랑 하느니 해파리랑 하겠다.”

“미친! 당신 그런 성벽 있었어?”

“그딴 이해력으로 대학을 잘도 붙었다. 역시 원들이 돈 먹인 게 맞네.”

으르렁거려봤자 소용없다. 더 대화할 필요도 없단 듯 잭점퍼는 욕실 밖으로 나갔다. 뒤로 물을 튀기든 말든 신경도 안 쓴다. 저게 더 싫다. 차라리 아까처럼 극혐하는 눈으로 봐주든가. 키스해야 변하는 걸 똑똑히 봤으면서도 그거 한 번을 더 못 해주냐고. 그냥 닿기만 해도 되는 건데. 넓긴 하지만 그래도 바다보단 좁은 욕조에 갇혀 이러고 있는 게 얼마나 불편한지도 모르고. 어떻게 할 지 고민하다가 현서우는 닫힌 문 쪽으로 잭점퍼를 몇 번이나 소리쳤다.

“시끄러워.”

“됐고, 아무나 다른 사람 불러와요. 나도 당신이랑은 하기 싫어졌어.”

“그래, 노는 놈이야 많으니…”

“얼굴 보고 고를래요!”

“그러든가.”

귀찮게도 한다고 생각했지만 잭점퍼는 일단 내키는 대로 하라며 다시 욕조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얼굴이 나온 게 있나… 폰을 뒤적거리지만, 보고할 때나 쓰던 거라 죽은 얼굴만 몇 보였다. 애초에 개미는 개인의 특징을 말살하는 조직이니, 잭점퍼도 따로 찍어둘 필요를 못 느꼈다. 순식간에 대체될 텐데 굳이.

“그냥 번호로 골라라. 사진은 없는데…, 왜 그렇게 봐?”

옆에서 같이 본다며, 잭점퍼 바로 옆으로 최대한 올라와 바짝 붙어있던 현서우의 분홍색 눈이 휘었다. 잭점퍼가 움직이는 것보다 현서우가 목을 잡아당기는 속도가 빨랐다.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풍덩! 물로 돌아가는 소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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