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오디.png

※ 5차 아처의 진명 스포가 있습니다.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인어가 세이렌이라고도 불렸던 시절도 있었으나, 이제 그들의 목소리를 인간은 점점 잊어가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인간의 저열함으로 바닷속 인어들은 다른 주파수 속에서밖에 살지 못했다. 사람은 인어의 이름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에미야는 인어의 이름을 알고 있다.

 

언.

 

물보라가 일듯 그에게 밀려오는 말간 하얀 미소. 바다 향기. 오로라처럼 빛나는 비늘. 첨벙이는 꼬리에 마루는 물 자국이 남았다. 돌에 걸터앉으면 자연스럽게 무릎을 적시는 언의 머리칼. 마주하면 등꽃처럼 화사하게 피어나는 눈웃음. 파도처럼 부서지는 웃음소리는 높아지고, 높아지다 들리지 않을 때까지 올라갔다. 언의 옅은 체온이 어느새 미지근해져 따스했다.

 

건강해야 해 응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그렇게 다음에 또 보면 되는 거야

아프고 힘들면 바다로 와. 나를 불러. 그럼 내가 언제라도 너한테 갈게. 그러니까,

또 만나자

 

그날 새벽. 대교 앞, 에미야는 언이 주고픈 것을 받았다. 직감했다. 그는 이제 더는 결코 생을 놓을 수 없었다. 던질 수 없었다. 버릴 수 없었다. 이제 그의 끝은 환희가 될 수 없었다.

 

*

 

인어에게 인간이란, 또 인간에게 인어란 낯선 설화가 아니었다. 이제는 멸종한, 불로불사를 갖은 인어의 고기를 먹고 영원을 살 것 같은 진시황이 유방에게 10일 동안 태워져서 죽은 역사의 기록, 어부들이 인어 새끼들로 잔치를 한 후 다음 날 바다로 나가 사람으로 변한 인어를 배에 태우자 인어 떼가 몰려 들어와 죽임을 당하고 인어고기 금지령이 내려진 고대 문헌부터, 현대로 가보면 인어의 등 지느러미부터 시작해 애완 인어 브리더 문제, 인어권 논쟁 등등. 마술사의 세계로 가면 인어의 처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오만의 죄업은 깊었고 인어의 증오는 합당했다. 위할 이유는 없었다.

 

위가 철장으로 막힌 답답하고 비좁은 수조. 작은 몸집으로 남은 인어 한 명. 몸에 잔 생채기와 화상자국. 바닥에 깔린 진주 덩어리. 공허한 눈. 윤기를 잃은 비늘. 헤엄을 잊은 물 밑의 생명. 증오는 당연했다.

 

 

*

 

상공에서 불꽃과 굉음이 터지며 전투기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자 인어 떼가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폭죽 소리에 불꽃놀이를 구경나온 인파처럼 인어들의 얼굴들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불안과 흥분, 염려와 흥미 어린 시선들이 빼곡히 매워졌다. 원양어선이나 군함의 초음파나 전투기와 여객기의 엔진소리는 인어들에게 익숙한 공해였으나, 이번에는 무언가 다름을 직감했다. 창공을 가르던 고철이 태양보다 작렬하며 몸을 터뜨리자 육중한 쇠들이 수면으로 날아와 박히며 겁먹은 인간의 비명 화음이 퍼져 나왔다. 파편이 박힐 때마다 물보라가 위로 솟구쳐 세찬 물결은 파도가 되어 인어들이 모인 곳까지 몰아쳤다. 작은 인어들은 그 파장에 떠밀릴 정도였다. 인간의 비극이 더해질수록 인어들은 흉통을 울리며 50,000HZ의 소리를 내었다. 인간이 듣지 못할 웃음이었다.

 

파도에 자꾸만 떠밀리는 바람에 작은 진주인어 하나는 그 유희 속에서 제외되었다. 그는 귓가에 맴도는 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조한 얼굴로 비행기를 살펴보다, 가장 먼저 비행기 맨 앞에 밀려드는 마력을 알아챘다. 경악에 점점 물들기 시작한 작은 인어는 그물에 말린 물개마냥 옴짝달싹조차 못하고 심장 가를 꽉 쥔 채 다시 한번 마력을 깊게 들이마셨다. 착각할 수 없었다.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 속에서 진주인어는 홀로 거뭇히 질린 얼굴로 상공에 손을 뻗다가 떨어지는 비행기로 뻣뻣하게 굳은 지느러미를 움직이며 물살을 날렵하게 가르기 시작했다. 자살이라 할 정도로 무모한 행동에 모르는 인어들조차 진주인어를 붙잡아 세우려 했으나 하늘 위에 밀도 있게 응집되는 마력에 일제히 고개를 들어 고철로 시선이 하나둘 모였다. 앞 코에 투명한 분홍색이 겹겹이 일곱을 쌓아 보호하듯 비행기를 감쌌는데 그 모습은 마치 하늘거리며 유영하는 해파리 같아 아름다웠다. 한 겹. 두 겹. 사라지는 모습은 흩날리는 육지의 꽃을 닮았으나 인어들은 금세 정체를 파악했다.

 

저건 인간의 무구다. 인간 마술사가 만들어낸 무구다.

 

갑작스러운 높은 마력의 응집. 짙은 마력이 빠르게 콧속에 닿자 인어들의 꼬리지느러미가 파르르 떨렸다. 마술을 모르는 인간의 세계는 점점 격변해 저들끼리 권리니, 보호니 떠들며 눈치라도 본다지만 마술사들의 세계는 도통 변화가 없었다. 마력이 강력한 인어를 죽이고 통에 담아 데려가는 건 차라리 온건한 처사였다. 종을 멸종시키는 건 예삿일로 아직도 신비를 유지한 채 인간 세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가고 있는 인어는 마술사에게 매우 흥미로운 실험 소재인 게 지당했다.

 

분노와 무력감. 두려움과 증오의 틈바구니에서 저주를 품고 이를 악물고 몸을 돌릴 때, 곧 무너질 것 같은 얼굴로 나아가는 인형이 하나 있었다.

 

문득 울음이 나올 것 같은 그리운 마력

 

해변보다 더 곱고 매마른 마력은 햇살을 품은 듯 따스하게 와닿았다.

 

바스러진 향 열을 품은 마른 모래

팔 안에 안으면 부드럽게 퍼지는

상냥한 목소리

 

 

에미야

 

에미야

나의 인간

 

너다

 

짙은 제비꽃색의 젖은 눈동자는 정처 없이 흔들렸다. 꽃잎은 떨어졌고 고철은 바다에서도 불타 매캐한 철의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라앉는 철 덩어리는 내었던 굉음보다 멀쩡해 보였으나 윗부분이 타들어 가 속을 보이고 있었고, 온갖 구역질 나는 냄새가 뒤엉켰다. 그 속에 혈 향이 있었다. 저 속에서 살아있을 리 없었다.

 

도무지 살아있지 않을 것 같았다.

 

눈가에서 잔뜩 구겨져 제멋대로 생긴 진주가 맺혔다. 우그러지고, 길고, 들쑥날쑥한 모양의 진주가 기름이 수면 아래로 자꾸만 가라앉았다. 맺히는 진주에 고갤 털어내면서도 헤엄치는 걸 멈추지 않았다.

 

“에, 미야,”

“에--,- !”

“ ---. -, --, ---!!”

 

다시 만나자고 했으면서. 다치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가까워질수록 더해지는 울먹임은 비명이 되어 결국 인간의 청력으론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그녀가 인간의 청력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파도에 둥둥 뜬 기름은 자꾸만 머리칼에 묻어났고 가까이 갈수록 올라가는 바다의 수온은 자꾸만 올라갔다. 혈향은 짙어지다 못해 바다에 그 색이 퍼져나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비행기는 시시각각 가라앉고 있었다. 저 안에서 살아있다고 해도 인간은 물 안에서 오래 있을 수 없었다. 에미야가 제아무리 마술사라고 해도 죽지 않는다 장담할 수는 없었다. 저 덩치가 침수되면은 그 물결에 휩쓸릴 수 있었다. 완전히 침수되기 전에 그를 빼 와야 했다. 아직 숨이 붙어있을까. 누가 제발 좀 도와줘. 비행기의 날개에 손을 얹자 삐걱대며 문이 열리고 기다란 노란색 튜브가 내려왔고, 등 뒤에는 냉정한 시선들이 따라붙었다.

 

*

 

기장의 호통에도 아랑곳없이 에미야는 조종간에서 손을 놓고 앞으로 손을 뻗었다. 마력을 담은 팔찌의 진주들이 스파큘라처럼 터져나갔다. 피어나는 7장의 꽃잎. 그의 무구, 로 아이아스. 죽음의 문턱에서도 무심코 경탄하던 기장은 이내 날카로운 눈빛으로 한 날개밖에 없는 항공기의 궤도를 수정했다. 에미야는 할 수 없는 기적적인 묘기였다.

 

*

 

몸의 둔탁한 감각과 쪼개지는 두통 이후에는 이명이 날카롭게 이어졌다. 중력에조차 짓눌리는 감각에서 에미야는 몸을 끌어올리려고 했으나 아래로 고꾸라진 고개만이 삐걱댔을 뿐이었다.

 

뒤는, 전부 탈출했나? … … 기장은, 살아있나?

 

충격인지, 가스 냄새인지, 언이 준 진주 전부를 썼음에도 마력이 소진된 탓인지 눈을 깜박일 때마다 실낱같은 이성이 새어 나와 순간에서조차 끊겨갔다. 잡히지 않는 시야 안에 보이는 것은 흑백의 사물.

이어지는 이명 속에서 목 아래 흔들리는 물체를 감겨가는 눈동자로 보다가 깨달았다. 설사 색이 보이지 않더라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는 루비. 목소리조차 알지 못하는 은인의 유실물이자, 소중한 물건. 그는 메마르게 웃었다. 기장은, 기절한 것 같았으나 외상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구할 수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끌어올렸다. 이제 터져나간 진주대신 체인만 남아있는 팔목을 움직여 자신의 벨트를 풀고 흔들려 어지러운 시야에서도 기절한 기장의 벨트를 풀어낸 후 아득바득 마력을 전신에 흘려보내 몸을 강화했다. 몸의 긴장을 조금이라도 풀면 쓰러질 것 같았으나 흑백이던 시야는 금세 제 색을 되찾고 디딘 발은 균형을 잡았다. 에미야는 기장을 어깨에 짊어지고 위의 해치를 열기 위해 팔을 뻗었으나 아무리 몸에 강화마술을 중첩한다고 해도 이미 체력은 한계선을 넘어 의자로 내동댕이치듯 넘어졌다. 시야가 거무죽죽했다. 아직, 몸이 움직였다. 적어도, 손에 닿는 이 사람만큼은.

 

‘에미야군, 너 그러다 곧 죽게 될 거야.’ 생각나는 것은 한껏 냉철한 얼굴로 무른 말을 하는 늠름한 마술사의 시선.

그 염려가 소중하지 않은 적은 단 한 순간도 없었으나, 제 죽음에 가치를 두지 않던 시절이었다. 자신의 안위는 너무나 하찮았고 오로지 두려운 건 구하지 못한 사람의 수가 늘어나가는 것뿐이었다.

 

‘상관없어.’

‘그래? … 그렇단 말이지? .. 그렇다면 여기서 끝이네. 안녕, 에미야군.’

 

자신의 것이 아닌 정의의 길. 파멸적인 속죄. 몇 번이고 망설임 없이 그는 자신을 내던졌다. 타들어 가는 몸. 응답하지 않아 부서지는 마음들. 키리츠쿠, 키리츠쿠는 어떻게 했던 거야? 정의의 길을 걸으려 할수록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이들의 마음을 배반해버리고 마는데, 어떻게 하면 제대로 정의의 사자가 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모두를 구할 수 있어?

 

‘시로, 돌아올 거지?’ ‘안녕히 다녀오세요, 선배.’

‘… … 아아, 그래.’

 

저 말들에 대답하지 못하는 언젠가는 분명 에미야 시로의 기일이다. 그을려 타버린 손을 움켜쥐고 에미야는 그들과 비슷한 얼굴로 웃었다.

 

‘… … 아아, 그래.’

 

의문에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그가 본 빛을 향해, 타들어 가기 위해 나아갔다.

그 끝에 녹아 스러질지언정, 그 몸은 칼이 될 수 있다 믿었다.

 

에미야는 기장을 한쪽 팔로 그를 힘주어 붙들었다. 마지막으로 봤던 창문에는 물이 차오르지 않았으니 아슬아슬하게 괜찮을지도 몰랐다. 목에 튜브가 있으니까, 바다에 던진다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을지도 몰랐다.

 

투영하는 건 부부검의 하나. 간장막야. 앞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매끄러운 유리의 표면이 느껴지는 곳에 손잡이를 역수로 잡아 창문을 친다. 이명에 파찰음이 묻히지만 유리 조각이 밖으로 흩어지는 기척이 느껴졌다.

 

됐다.

 

지금까지 강화가 남아있는 팔을 마지막으로 휘둘러 기장을 밖으로 내던지고 에미야는 진주와 유릿가루가 뒤섞인 바닥에 쓰러져 누웠다.

 

키리츠쿠의 꿈에 조금쯤은 가까워졌을까.

 

바다에 가라앉을 뿐이라니, 그의 최후로서 가당치 않게도 온유했다. 한 명의 생명이라도 살리고 죽는다. 에미야가 원하는 형태로써 최상의 죽음이었다. 이보다 만족스러운 죽음은 없었다. 그런데도 에미야는 차오르는 해수에 몸을 맡기지 않고 바닥을 긁었다.

 

키리츠쿠와 함께 맞은 달빛은 유리 조각처럼 날카롭고 투명했다. 그날의 기억은 바래지 않고, 훼손되지 않는 기억이었다. 이어받은 갈망이 매듭지어졌던 순간. 어떤 악의보다도 짙은 깨끗한 저주. 잊을 수 없었다. 그가 에미야인 순간부터 떼어낼 수 없는 일부였다. 그런데도, 이따금 그보다 앞서 그를 잡아끄는 조각이 있다.

 

‘이 집은 시로의 집이니까. 길 잃지 말고 제대로 돌아와야 한다?’

기다릴게요, 선배.’

‘이 바보- 멍청이! 뭐가, ‘그런가’ 야 ‘그런가!’ 내가 가기도 전에 먼저 가려고 하다니, 너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날 붙잡으란 말이야!’

 

버려야 했다.

저 말들에 붙들린다면 에미야는 나아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구해주러 갈게.’

 

옭아매고 옭아매어, 언젠가 에미야는 무엇보다도 그 자신의 목숨을 우선시할지도 몰랐다.

멈춰 서게 될지도 몰랐다.

 

‘살아있으면 대게 어떻게든 되는 법이야. 그러니까, 바다로 와.‘

‘내가 구할 수 있게.’

 

대교의 새벽이 지나갔다. 그날의 추위는 낚시꾼조차도 돌아갈 정도로 매서웠다. 그날, 언의 미소는 얼마나 간절하고 찬란했었나. 이미 그는 알고 있었다. 이미 순간은 지났다. 오래전에 그는 대답하였고, 그는 살아있어야 했다.

 

에미야는 바다에 와있다. 언이 있는 바다에. 그는 마력이 느껴지는 바닥을 더듬다 손에 걸리는 구슬을 손에 쥐었다. 익숙한 마력. 언의 진주였다. 한 번이면 되었다. 단 한 번이라도 움직여 뚫어 둔 창으로 나갈 수 있다면, 그는 꽉 진주를 움켜잡았다. 이미 끝났다는 듯 비명을 지르는 회로에 몸이 으스러질 것 같았다.

 

 

물이 순식간에 들이찼다. 늦었나, 그런가. 그는 통감하면서도 팔을 내뻗었다.

죽을 수 없었다.

 

“---!”

아.

그런가 이 부름은.

 

‘언. 정말 너이군.’

 

수면 밖으로 나오자 언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대로 안아, 헤엄쳐서 육지로 갈 테니까,”

“… 사람들은…?”

“다른 애들이 도와줘서, 살아있는 사람들은 구했어.”

“…그런가, 다행이야.”

“그래, 바보야.”

 

그는 손을 단단히 붙들었다. 인어의 피부는 미끈거리고, 그 향기는 여전히 바다와 같다. 그는 비틀거리는 몸을 온전히 언에게 맡겼다. 안은 몸에는 북이 울렸다. 살아있는 것들의 특권이었다. 그는 더는 일어나려 애쓰지 않고 몸을 늘어트리고 느슨히 풀어지게 두었다. 햇살은 일본과는 다르게 마르고 날카롭고 염도도 높았으나 시원했고, 물기로 달라붙은 머리칼이 그를 감쌌다. 귓가에 익숙하고 그리운 목소리가 흘러들어온다.

 

*

 

“에미야.”

 

에미야가 갓 서른을 넘겼을 때 일이었다. 생일 전에는 돌아온다는 후지무라와의 약속과는 다르게 봄이 가고 7월을 한참 넘겨 아스팔트에서도 아지랑이가 피어오를 때 그는 트럭을 몰고 왔다. 군데군데 본래의 색이 남아있던 얼굴을 말끔하게 태운 그의 뒤에는 집에 작은 방 크기가 될 법한 커다란 수조와 그보단 작고 물이 차있는 수조가 있었다. 안에는 1M를 갓 넘긴 진주인어가 있었다. 기절이라도 한 듯 둥둥 떠 있는 인어의 공허한 눈동자는 허공을 맴돌고 있었다. 인어는 미야마초 어느 횟집의 마스코트였다고 했다. 30M까지 자랄 수 있는 진주 인어가 들어있기에는 터무니없이 작았다.

 

“갑자기 미안해. 사쿠라, 타이가.”

“아니에요 선배.” “시로의 언제나의 ‘그거’ 잖아? 이 누나는 제대로 돌봐주기만 한다면 당연히 OK다!!”

 

“응. 고마워. 모두 괜찮다면 조금 도와줄 수 있을까?.”

 

인어에겐 흡사 관처럼 작은 수조 위는 철장으로 용접해있었고 그 사이로 자랑하듯 주인과 손님들은 꼬치로 인어를 찔렀다. 인어는 그때마다 어떻게든 몸을 움츠렸다. 우그러진 푸른 진주가 눈에 맺혀서 수조 바닥에 천천히 가라앉았다. 미동 없이 서있는 에미야의 모습에 횟집 안에 있는 이들은 걸걸하게 웃었다. 정겨운 모양새로 에미야의 등을 때리며 낮게 쌓여있는 진주들 위로 떨어진 진주를 품평했다. 고개를 수조 밖으로 내밀지 않게 하니 더 둥근 모양이 된다던가, 자신이 찌른 곳에서 더 체도가 낮은 진주가 나온다느니 하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나왔다. 색을 잃은 비늘. 마른 몸에 잔 생채기와 멍, 화상자국. 자네, 인어의 목소리를 들어봤는가? 이 녀석은 제법 영특한 편이지. 에미야는 철장을 뜯어냈다. 놀라지 않도록 요령 있게 해야 했는데, 그 정도의 후회였다.

 

수조를 집안으로 옮기고 주변 인어 가게에서 급하게 사 온 바닷물을 채워놓고 조심스럽게 인어의 수조를 들었다. 점점

“시로. 물론 나도 도와준다고 했지만, 저 애의 보호자는 너야. 저 애가 너를 어려워한다고 해도 전부 사쿠라에게 맡겨서는 안 돼. ”

“걱정 마, 후지누나. 상처가 회복되고 재활이 될 때까지는 여기 있을 생각이야. 바다로 갈 때까지 제대로 옆에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후지무라는 한층 더 키가 커버린 남동생의 눈을 진중하게 응시하다 약속을 받아낸 듯 빙긋 웃었다.

 

“응. 안심이야. 그렇다면 오랜만에 시로의 연어구이인가~”

“방금 심각한 얼굴을 하고선 연어를 먹는 거냐고….”

“인어도 생선을 먹는걸? 오히려 메뉴가 같다고 볼 수 있지요? 자자, 렛츠 고-! 시로! 저 애를 위해서라도 맛있~는 연어를 사수해오는 거야!”

 

인어는 큰 소리를 싫어하고, 닫힌 방에 홀로 있는 것을 무서워했으나, 예상외로 에미야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인어는 가끔 혼나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떨어지기 싫은 아이처럼 그를 움츠러든 채 말없이 올려보았다.

 

사흘째가 되는 날, 인어는 옆에서 밥을 먹던 후지무라와 사쿠라 사이에서 에미야가 준 음식을 먹다 문득 눈물을 흘렸다. 그보다도 먼저 후지무라가 인어를 다독였다.

 

이튿날 인어는 조금씩 말하기 시작했다. 횟집에서 배웠다고 했다.

인어는 횟집에서 준 이름 대신 새 이름을 지었다.

 

 

뜻은 없고 발음이 좋다며 조금 웃었다.

꼬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계절이 바뀌었다.

 

인어의 회복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인간처럼 더뎠다.

에미야 가의 공방 옆에 연못이 생겼다.

 

나돌아다니지 않고 계속 있을 거냐는 신지의 말에 그는 열게 웃었다.

하체의 근육이 굳어있어 언은 치료를 받을 때마다 아파했다.

토오사카는 바쁜 와중에도 언을 보러왔다. 번번이 사쿠라와 엇갈려 아쉬워했다.

 

계절이 바뀌었다.

 

바다에서 아무리 헤엄 연습을 해도 언은 꼬리로 헤엄칠 줄 몰랐다.

 

“… 화났어?”

“아니다.”

 

문득 먼 곳을 응시하는 그의 시선에 언은 바다 끝을 바라보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언은 에미야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은 너무나 멀어, 보는 것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언은 말대신 그의 양손을 꽉 잡았다. 그는 영문을 모르는 표정으로 웃었다. 언도 웃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언에게 벨트를 선물했다. 허리춤에 찬 칼집이 사랑스럽다는 듯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계절이 바뀌었다.

 

언은 스스로 헤엄칠 수 있게 되었다.

위험하다 해도 낚싯바늘을 피해 곧잘 물고기를 갖고 왔다.

안심이었다.

 

*

 

언의 주무대는 후유키 대교 밑이었다. 낚시꾼이 종종 있어 위험하다며 다른 인어들을 따라 더 넓은 곳으로 가라는 말에도 언은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에미야가 자주 다니는 길목이었다. 언은 그가 있는 풍경을 사랑했다.

 

“… 언.”

“에미야.”

“아직도 동면하지 않은건가.”

 

추궁하는 내용과는 다르게 염려하는 목소리였다. 언은 알아보기 쉽게 눈을 굴렸다.

 

“… …에미야는? 잘 시간이잖아. 지금은 추우니까 날이 밝을 때 오지. 내가 잘 수도 있었는데.”

“내 말이 그 말이다.”

 

계절이 바뀌는 시기의 새벽 추위는 매서웠다.

 

“…자지 않을 것이라면,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어떤가. 점박이과 인어가 돌아올 시기지. 네 종이 흔하기는 하다만 진주인어는 너나 할 것 없이 노리는 종이야. 또 감금되고 싶지 않겠지, 너도.”

“… 바보. 못되게 말하지 마.”

“이런, 내가 심기를 어지럽혔나? 떠난다고 약조만 한다면 대응 방침을 바꿀 의향도 있다만.”

 

에미야는 어깨를 으쓱이다가 냉소어린 입꼬리를 내렸다. 그의 인어는 대개 그랬다. 가장 화를 내야할 순간에 화를 내기보다는 의기소침해지거나 서글프게 눈썹을 축 내리렸다. 듣는 자신보다 말하는 그가 더 상처 입었을 거란 듯이 그의 안색을 살폈다.

 

“… … 이곳은 좋지 않아. 너는 다소 유명세를 얻고 말아서 언제 노려질지도 모른다. 네게 토오사카가 추적 마술을 걸어두었으니 이 근방의 소동이라면 내가 어떻게든 할 수 있겠으나 토오사카는 후유키에 머무는 기간이 짧고, 이제 나 또한 그렇다.”

 

“…멀리 가?”

 

“그래, 멀리. 몇 개월. 몇 년이 걸리는지 알 수 없어. 어쩌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

 

파도 소리가 매서웠다. 한결 부드러워진 어조의 얼굴은 조금 굳어있었다.

 

“… …그래…? 언제부터?”

“-아주 오래전부터 정해두었다. 네가 오기 전부터 정한 일이야.”

 

에미야는 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물기가 묻었으나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미안한 듯 부드러운 미소를 걸었다.

 

“…너라면 어디라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너는, 강한 녀석이니까 말이지.”

“할 수 있는 건 진주 흘리기 뿐인데도?”

“뿐인데도 말이지.”

 

한쪽 눈을 감은 채 언을 보고 농담하듯 굴었다.

 

“…언제 가는 거야?”

“오늘 아침.”

 

언은 한동안 침묵하다 물거품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 …치사해, 내가 여기 없으면 그냥 말없이 가려고 했지?”

“아니야. 네게 제대로 인사할 생각이었다.”

“그럼 오늘 나 못 찾았으면 안 갔을 거야?”

“… ….”

 

미안하다고 말하려는 하려는 찰나, 언은 그에게 팔을 벌렸다.

 

“올려줘.”

 

언은 그의 어깨를 안았다. 에미야는 그녀를 품에 안고 그녀의 어깨너머 바다를 바라봤다. 에미야는 멀리서 이는 물거품의 방울을 새다가 언의 단단한 목소리에 눈을 감았다.

 

“그렇구나, 그럼 가야겠다.”

“그런가.”

 

“응.”

 

언은 물기 묻은 손으로 그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멋대로의 행동에도 그는 조용히 그녀의 행동을 뒤따랐다.

 

“지도 보여줘. 넌 어디로 가?”

“여기, 이곳에.”

“여기에만 있을 거야?”

“… 아니, 주변 인접 국가를 순회하게 될 거다.”

“… 그렇구나. 그럼 돌아올 때는 어디로 가?”

“여기, 이 공항에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예정이야.”

“얼마나 걸려?”

“… … 1년 반은 걸릴 거다.”

 

“살아있다면?”

“그래, 살아있다면.”

 

어쩌면 언은 모르리라 생각했으나, 4년. 그 길고 짧은 시간 속에서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그렇구나. 그럼 내가 먼저 가 있을게.”

“… … … 뭣?”

“먼저 그 공항에 가 있을게. 출발은 몰라도 네가 돌아갈 때쯤에는 도착하고도 남으니까.”

 

에미야의 당황한 목소리에 언은 찡그리며 웃었다.

 

“그러면 잔뜩 이야기하자. 그다음에 어디로 갈건지 이야기해줘. 그러면 내가 또 배웅하러 갈게.”

 

언은 몸을 틀어 그의 어깨를 안고 속삭였다. 다음 날 아침을 약속하듯 여상스러운 목소리였다.

 

“…너는 대체-, 뭐라는 건가. 그럴 수 없다. 얼마나 그 작은 몸을 혹사할 셈이지? 그래선 안 돼. 내게 너를 할애할 필요가 없어.”

 

에미야는 언을 밀어내려 했으나 간절하게 꿋꿋하게 웃으며 떨어트리는 진주알들에 그는 못 박힌 듯 그녀의 얼굴을 응시했다. 언은 부드럽게 그의 머리칼을 넘겼다.

 

“그러면 근처 바닷가에 가서 나를 불러. 괜찮아, 내가 들을게. 만일 엇갈린다면 아무 인어나 붙잡고 말해줘. 응 그럼 괜찮아.”

 

“그렇게, 또 보자. 건강하게. 그러면, 그러면 되는 거야. 그렇게 다음에 또 보면 되는 거야.”

“… ….”

“후유키에 오래 있을 때는 그때는 다 같이, 다 함께 놀자.”

 

절박한 미소였다.

 

“내가 또, 배웅하러. 계속 배웅하러 갈 테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보자.”

 

언은 말없이 그의 머리끝을 넘겨보았다. 보드랍다.

 

“왜. …왜, 내게 그렇게까지 하려는 거지.”

 

언은 대답 대신 그의 귓바퀴를 만져본다. 맥이 뛰는 목을, 그을린 뺨을. 그 이상한 촉감이 사랑스러워 기뻤다.

 

“… … 있지, 진주를 줄게. 잃어버려도 괜찮아. 만날 때마다. 오랜만에 만나니까 기뻐져서 분명 울고 말 거야. 그렇게 하다 보면 또 모일 테니까, 또다시 모아주면 돼. 100살까지, …1000살까지.”

 

흔들리는 눈동자는 또렷하게 언을 응시했다.

 

“…그래.”

 

“아프고 힘들면 바다로 와. 나를 불러. 그럼 내가 언제라도 너한테 갈게. 그러니까,

또 만나자.”

 

“…살아있으면 대게 어떻게든 되는 법이야. 그러니까, 바다로 와줘. 내가 구할 수 있게.”

 

 

“건강해야 해. 응? 아프지 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고.”

“…어디의 할머니인가 너는.”

 

“그것도 좋겠다.”

 

짓궂은 미소는 이내 부드럽게 변한다. 맞잡은 체온에 에미야는 깨달았다.

그렇군, 너는 내게. 이걸 주고 싶었던 건가.

이걸 주고팠었나,

너는

 

‘에미야.’

“에미야!”

 

“언.”

 

생은 끈질기게도 그를 붙잡았다. 잔뜩 새빨개져 진주가 더덕더덕 붙은 꼴사나운 얼굴이었다. 얼굴을 마주했다. 얼굴을 쓸어내리는 손바닥에는 진주가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서럽도록 기쁜 울음이었다. 앞으로도 그는 죽음에서 생으로 밀려오게 될 것이다.

 

승리를 취하는 검의 언덕에서,

인어의 눈물로 가득 찬 해변으로.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