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Esoruen_빌.png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VDC를 위해 고물 기숙사에서 다 함께 합숙하며 지내길 며칠째.

빌은 생각지도 못한 사태에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저도 플로이드가 이런 짓을 저지를 거라곤 생각지 못했던 터라.”

“그걸 지금 변명이라고 하는 건가?”

 

반사적으로 대답한 목소리가 칼처럼 날카롭다. 빌은 제 일갈을 듣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 제이드를 보고 이마를 짚었다.

 

“……하아, 됐어. 네게 사과받을 일도 아니니까.”

 

이 모든 일의 원흉은 눈앞에 선 이 남자의 형제 때문이지, 이 남자가 나쁜 건 아니었다.

엉뚱한 곳에 분풀이하는 건 득이 될 게 없음을 아는 빌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커다란 수조로 시선을 돌렸다.

이곳은 옥타비넬 기숙사 안, 모스트로 라운지.

평소라면 물고기와 해양 포유류들만 헤엄치고 있을 수조 안에는,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생명체가 헤엄치고 있었다.

 

“뭐가 신난다고 저러고 있는지.”

“아이렌 씨의 최고의 장점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 절망하지 않고, 위기를 즐길 줄 안다는 거죠.”

 

아니, 이 경우에는 즐기기 이전에 고민이라도 좀 해주었으면 한다.

빌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제게 손을 흔드는 아이린을 올려보았다.

평소와 달리 두 다리 대신 하나의 꼬리로 헤엄치는 그는 누가 봐도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전에 독약을 먹었을 때도 그렇지만, 저 녀석은 안전불감증인게 아닐까?’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아이렌이 인어가 된 건, 오늘 점심때 그가 플로이드에게 수상한 마법약을 받아마셨기 때문이었다.

그게 무슨 약인지, 어떤 위험이 있는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순순히 마법약을 마셨는가.

놀랍게도 그 이유는 ‘플로이드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인어가 되는 약 같은 건 왜 건네준 거지?”

“플로이드에게 물어봤습니다만, ‘아기새우가 요즘 VDC 때문에 나랑 전혀 놀아주지 않으니까 기숙사로 못 돌아가게 만들려고 했는데?’ 라더군요.”

“하, 어이가 없어서.”

“하지만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게 재미있지요. 애초에 플로이드도 아이렌 씨가 순순히 마실 걸 알기에 실행한 거겠지만 말입니다.”

 

제이드의 말이 맞았다. 아이렌은 언제나 플로이드에겐 심각하게 관대했기에, 제 목숨이 위험한 일도 들어주려 하곤 했으니까.

몇 번이나 생각해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여자다. 빌은 한숨만 푹 내쉬었지만 제이드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아줄이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는 약을 만들고 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새까만 비늘을 자랑하듯 이리저리 헤엄치는 아이렌을 황홀함 가득한 눈으로 보던 제이드는, 그 한 마디만 남기고 돌아갔다.

혼자 남은 빌은 어디에 앉거나 기대지도 않고, 꼿꼿이 서서 수조 앞을 지켰다.

 

‘아이렌은 꼭 사람 같지 않다니까.’

 

재즈가 흐르는 공간. 그 차분한 분위기에서, 누군가가 떠들어 댄 말들이 머릿속에 피어오른다.

빌은 다른 학생들이 아이렌에 관해서 이야기하던 말들을 가만히 곱씹어 보았다.

 

‘옥타비넬 애들이랑 친하잖아. 그래서 그런가? 가끔 인어같이 느껴질 때도 있지.’

‘확실히, 그 애라면 요정보다는 인어가 더 어울리긴 해.’

‘그 애가 그러더라, 자기는 졸업한 뒤에 산호의 바다로 갈 거라고.’

 

다들 왜 그렇게 아이렌에게 관심이 많은지, 정말이지 기가 찬다. 자신은 같은 동아리에서 지내다 보니 그와 꽤 친해졌음에도 사생활은 알려 들지 않았는데, 홍일점에 눈이 멀어 존중이란 걸 잊어버린 걸까.

게다가 뭐? 나중엔 산호의 바다로 가?

 

“웃기고 있네.”

 

무엇이 웃기는지, 누가 웃기는지 저 자신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빌은 정말로 기가 차서 웃어버렸다.

 

“여기 있었군요.”

 

아이렌의 소식을 들은 걸까. 함께 VDC에 나가기로 한 쟈밀이 모스트로 라운지로 찾아왔다.

빌의 바로 옆에 선 그는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아이렌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기숙사나 연습은 어떻게 하죠?”

“곧 돌아올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

“아줄이 마법약을 만들기로 한 모양이군요.”

 

잠깐 대화가 끊긴 사이,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아이렌의 꼬리로 향한다.

이리저리 헤엄치는 새까만 꼬리. 평생 달고 다녔던 두 다리보다 훨씬 어울리는 그 꼬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두 남자 중, 쟈밀이 먼저 입을 열었다.

 

“플로이드가 이런 짓을 한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말하다 말고 중간에 마른침을 삼킨 그는, 형용하기 힘든 미소를 지으며 제가 하던 말을 이었다.

 

“잘 어울리긴 하네요.”

“그 입 좀 다물어주겠어?”

“예, 예.”

 

빌의 심기를 거슬러봐야 좋을 게 없다.

현명한 쟈밀은 조용히 자리를 비켰지만, 빌은 그 이후로도 한참이나 수조 앞을 떠나질 못했다.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