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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보름달_Esoruen.png

* 캐해석, 설정 날조 주의
* 급전개 급마무리주의

 

   “난 동백꽃이 좋아. 그 겨울에 피는 붉은 색꽃 말이야.”

   처음 만났을 때, 어색함을 해결하려 꺼낸 말이다. 그 말에 가만히 있길래 무시하고 넘어간 줄 알았다.
   매서운 바람이 부는 밤, 그날따라 밤하늘에 가장 밝게 뜬 달이 보고 싶었다. 늘 달을 보러 가는 장소가 있었다. 혼자서도 혹은 누군가와 함께 가던 그곳. 옷을 챙겨 입었음에도 추워 덜덜 떨렸지만 가는 길은 가깝고 무엇보다 조금이라도 달을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숨을 길게 내쉬자 낮에 봤던 구름 같은 입김에 뭉게뭉게 피었다.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던 그는 계속 날리는 머리카락을 포기하고 그만뒀다. 앞에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장소에 도착하자 큰 보름달과 함께 맞이한 사람이 있었다. 보름달 아래에 그 빛을 받은 탓에 얼굴이 어둡게 보인다. 그 때문인지 평소와 같은 표정임에도 기분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착각이라는 걸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늦은 시간, 조용한 곳에서 대결이라도 하자는 걸까. 아니 그전에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걸까. 춥진 않을까. 그가 몇 발짝 다가가 부르려 할 때 먼저 제 이름을 부른다. 이름으로 불린 건 오랜만인 것 같았다.

   “언제부터 있었어?”
   “자.”

   대답도 않고 나타가 내민 건 그때를 떠올리게 했다. 어디에 떨어진 것을 가져온 것 같은, 조금은 시든 동백꽃 한 송이었다. 생각도 못 한 선물에 웃음이 났다. 이렇게 큰 동백꽃도 있었나? 손 위에 올려진 동백꽃이 유난히 커 보인다. 조심스레 개울가에 올챙이를 잡듯 조심스럽게 양손으로 동백꽃을 들자 가득 찼다. 동백꽃을 좀 더 들어 향을 맡았다. 은은하게 느껴졌지만 그래도 좋았다. 

   “너한테 선물을 받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는데... 고마워. 온 김에 같이 달볼래?”

   나타가 순순히 옆으로 다가오는 걸 보고선 그는 다시 한번 동백꽃의 향을 맡았다.
   달빛 아래 동백꽃향을 맡던 그의 모습에서 나타는 제 어머니를 떠올렸다. 어느 겨울, 함께 산책을 하던 중 자신이 발견한, 땅에 떨어진 활짝 핀 동백꽃을 주워줬을 때. 그 동백꽃을 보고 기뻐하던 어머니. 그와 같이 양손으로 받아들여 향을 맡아 고맙다고 했던 그때 그 얼굴을. 조금은 그의 얼굴을 보며 떠올린다.

   “내 얼굴에 뭐 묻었어?”
   “아니.”
   “그런데 나타 너 엄청 기뻐 보여.”

   그의 말에 대답 않고 나타는 보름달을 바라본다. 왜 대답을 않냐며 투덜이던 그는 함께 보름달을 바라본다. 큰 보름달이 아까보다 더 다가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동백꽃향은 코끝에 남아 은은하게 분위기를 한층 더 밝게 했다. 자기를 위해서 준비해줘서 준비해준 동백꽃에 계속 시선이 갔다. 분명 달이 보고 싶어서 밖으로 나온 건데. 갑자기 뒤에서 바람이 불어오자 묶은 머리 타래는 앞으로 넘어오고 몸이 움츠러든다. 옆에 있던 나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만히 서서 달만을 바라본다.
   동백꽃을 놓칠까 꼭 양손으로 보호했다. 꽃잎이 구겨지긴 했지만, 다행히 크게 망가지진 않았다. 다행이다. 움츠렸던 몸을 바로 세우며 머리 타래도 고개를 획 들며 다시 뒤로 넘겼다. 옆에서 들리는 찰싹 소리에 놀라 고개를 획 돌리다 느껴지는 고통에 눈을 찡그렸다. 머리카락에 얼굴을 맞았는지 나타는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고 있었다.

   “미안한데. 아프거든? 그리고 내 잘못 아니잖아.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걸리적거리는데 자르면 안 되나.”

   화를 나려던 차에 다시 바람이 불었다. 이번엔 그가 하고 있던 목도리가 나타쪽으로 날아가 시야를 가린다. 동백꽃이 망가질까 봐 양손을 못 쓴 상태였고 상황이 웃기기도 해서 그는 큰 소리로 웃었다. 목도리를 치우기 위해 제 머리카락을 놓자 그는 가만히 몸을 돌려 나타를 지켜본다. 목도리를 잡아 들어 바닥으로 던지려는 행동에 그만두라며 소리친다.
   타이밍도 좋게 소리를 치자마자 바람이 멈춘다. 휘날리던 것들도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잠잠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곳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뜨겁게 바라보다가 그가 숨을 길게 내쉰다.

   “마침 잘됐네. 꽃 좀 들어봐. 목도리는 나한테 주고.”

   서로 들고 있던 것을 교환했다. 자신이 줬던 동백꽃을 다시 받은 나타는 달빛을 받아 푸른 빛이 도는 동백꽃을 바라본다. 계속 양손으로 쥐고 있던 탓에 조금 구겨지고 따듯해진 동백꽃을. 그러자 동백꽃 위로 어둠이, 목에 차가운 부드러움이 다가왔다. 시선을 위로 옮기자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주고 있었다. 이런 건 필요 없는데 괜한 행동이다.

   “저번에 사형이 나 쓰라고 준 건데 나보다 네가 더 추워 보여서.”
   “필요 없어.”
   “홀딱 벗고 있는 널 보니 더 추운 것 같단 말야. 가만히 있어! 사형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이렇게 추운데 왜 상의를 벗고 있는 거야 도대체.”

   입은 투덜이며 손으론 목도리를 정성스럽게 매준다. 제 어머니도 그랬지. 안 그래도 되는데 항상 자신을 먼저 챙겼다. 나타는 손위에 있던 동백꽃을 들어 목도리 매는데 집중하는 그의 눈 옆에 가져다 댄다. 다시 달빛을 받은 동백꽃이 이번엔 반짝거리는 것 같았다. 목도리를 다 매고 만족하던 그가 나타의 행동에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

   “뭐 하는 거야.”
   “아무것도.”
   “동백꽃이랑 나랑 누가 더 이뻐?”
   “받기나 해.”

   내가 이쁘다고 하면 될 것을. 투덜거리던 그나 동백꽃을 다시 소중히 받아들었다. 그러다 다시 동백꽃을 보고는 마음에 드는지 나타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아까도 말했지만 정말 고마워. 소중히 간직할게.”
   “그러던가.”

   그가 소리 내 웃었다. 나타는 그런 그를 빤히 보았다. 서로 몇 마디 주고받다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동시에 보름달을 바라본다. 그는 동백꽃을 소중히 쥐었고 나타는 목에 두른 목도리 쪽으로 손을 뻗어 쥐었다. 금방 매듭이 풀렸지만,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대충 목에 두른다.

   “오늘 달 보러 오길 잘한 것 같아.”

   그 말에 나타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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