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방과 후, 아이들은 늘 공원에 모여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중 이야기가 나온 것이 탄생화였다. 츠나요시의 탄생화는 흰색 국화, 하야토의 탄생화는 갓개매취, 타케시의 탄생화는 제라늄, 쿄코의 탄생화는 나무딸기, 하루의 탄생화는 민들레. 그리고 크롬의 탄생화는 앰브로시아. 각자 이런저런 검색을 하며 자와자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 호노카의 낯빛이 좋지 않았다. 그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하루가 말했다. 호노카 씨의 탄생화는 뭐예요? 호노카가 하루의 말에 움찔, 몸을 잘게 떨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 가지."
"…… 하히!"
그 누구도 쉬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하루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호노카의 눈치를 보았고, 쿄코는 머릿속으로 가지꽃을 생각했다. 그 와중에 하야토가 적막을 깨고 말했다. 정말 너 같은 꽃이네! 재미있고, 웃기는 꽃이군. 아니, 애초에 꽃이라고 할 뭔가가 되긴 되는 거냐. 하야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호노카가 지금껏 봐온 표정 중 가장 해맑은 표정이었다. 저 녀석은 언제 봐도 얄밉고, 짜증 난단 말이지. 당장이라도 정강이를 차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말했다.
"내가 정한 것도 아닌데, 뭐. 내가 그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란 말이야."
"하! 그러니까 더 웃긴 거다. 이 바보 여자야."
"고, 고쿠데라 군… 그만해."
보다못한 츠나요시가 하야토를 중재했고, 츠나요시의 한마디에 하야토는 곧장 꼬리를 내렸다. 호노카는 그가 더 얄미웠다. 크롬이 옆에 없었으면 진작 멱살을 잡았을 터이다. 이 와중에도 사랑스러운 제 연인은 안절부절하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휴, 그래. 크롬을 봐서라도 참자. 크롬은 아무것도 한 게 없었지만 말이다. 한참 탄생화 소동이 끝나고, 각자 헤어짐을 고했다. 타케시는 늘 하던 야구 연습을, 하야토는 츠나요시의 집으로, 쿄코와 하루는 오늘 하루의 집에서 놀기로 했단다. 호노카와 크롬도 그녀들과 함께 하고 싶었지만, 오늘은 한달에 딱 두 번, 크롬이 호노카의 집에 놀러오는 날이었다.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서로의 집 앞 대문에서 인사를 나눈 하루와 호노카는 서로의 친구, 애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갔다.
저녁은 호노카의 부모님이 해 두고 가신 된장국과 반찬, 호노카가 만든 계란말이와 고등어 구이. 정말 평범한 가정식. 크롬은 이 순간이 좋았다. 이곳에 오면 본인이 평범한 보통 아이가 된 것만 같아서. 저녁을 먹는 시간에만 느낄 수 있는 감정이었다. 크롬은 그렇다고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았다. 내가 평범하게 살아왔다면 호노카를 만나지 못했겠지. 호노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정말 즐거웠다. 리리는 크롬의 다리에 제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영역 표시를 하고 있었고, 호노카는 밥을 먹으면서도 크롬을 바라보며 웃었다. 크롬의 귀가 붉었다.
"속상해."
"응?"
왜 나는 탄생화가 가지꽃일까? 나는 가지를 좋아하지도 않는걸. 침대에 누운 호노카가 칭얼대며 말했다. 아까 별 말을 하지 않았지만, 속상하긴 속상했구나.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호노카가 싫어하는 유일한 음식이 가지였다. 크롬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호노카가 중얼거리는 걸 들은 크롬이 조심스레 호노카의 옆에 누웠다.
진작 집에 가야 할 시간이었다. 밖은 이미 어두워진 채 그믐달만이 하늘에 떠 있었고, 그믐달을 조명으로 한 채 호노카와 크롬은 서로를 마주보며 누워 있었다. 크롬은 호노카의 집에 들어설 순간부터, 오늘은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호노카는 우울할 때마다 밤에 눈물을 훌쩍이는 습관이 있었다. 실제로 크롬이 마주한 호노카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크롬은 호노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난, 호노카의 탄생화가 가지꽃인 게 좋아."
"왜? 가지는 맛없고, 싫은걸…."
호노카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바보 같은 고쿠데라가 놀린 것도 짜증 나…. 크롬은 제 앞에서만 꼬리를 내리며 훌쩍이는 호노카가 무척 사랑스러웠다. 오직 나만이 담을 수 있는 호노카의 표정. 크롬은 이상하게도 호노카가 제 앞에서 우는 것이 좋았다. 크롬이 조심스레 제 머리를 풀어 쓸어내렸다. 그믐달의 조명에 비친 머리색은 짙은 보라색을 띄었다. 크롬이 말했다.
"가지랑, 나랑 색이 똑같은걸. 그래서 좋아."
"… 그… 렇네?"
크롬의 말에 금새 눈을 반짝이던 호노카가 크롬의 머리카락을 한참 바라본다. 아마 가지꽃을 떠올리고 있을 터. 생각하는 게 훤히 보이는 호노카를 바라보며, 크롬이 풋- 하고 웃었다. 크롬의 웃음에 호노카도 눈을 접으며 웃었다. 호노카가 크롬을 껴안았다. 크롬은 호노카의 앞머리를 정돈하며,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이제부터 호노카는 가지를 볼 때마다 날 떠올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