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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없는 밤에는 망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만개한 달은 마력을 품고 있다는 구전이 있다. 밝은 달 아래 사람은 미친다는 것이다. 그런 속설을 들으며, 나는 언제나 밝은 달을 올려다보았다.
차라리 미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뺨을 빛내는 별조차 없는 밤. 새까맣게 맑은 하늘이 머리 위를 가렸다. 나의 흰 소매는 검은 시야 사이 떠돌며, 바람을 맞아 닻처럼 부풀어 올랐다.
차가운 공기가 목덜미를 스쳐 지나가, 언뜻 소름이 돋는다.
내 이름은 르네, L이 아니라 R 자로 쓰는 르네.
검은 하늘 아래서 나를 잊지 않으려면 그런 글자라도 중얼거려야 한다.
안개처럼 만개한 작은 꽃봉오리들이 치맛자락에서 넘쳐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눈송이처럼 흘러내리는 꽃의 죽음을 바라보며, 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꼭 눈물 같구나, 그런 것을.
우는 법을 잊어버렸다는 뻔한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다만 어딘가ㅡ지쳤다. 마음 속이 검게 썩어들어가 무딘 통증만이 가슴을 두드린다. 공기는 달콤하고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지만 달은 뜨지 않는다, 그 무엇도 비추어 주지 않는 흰 성채의 발코니 위에서, 나는 홀로 새까맣게 빛난다.
모든 것이 잠들어도 나는 잠들지 않는다. 산 개미의 등 위에 흙이 쌓이지 않는 것처럼, 나는 어딘가에 파묻히지 않는다. 차갑게 언 피부와 둥근 손톱이 달린 손끝에, 부드러운 바람이 스친다. 삶을 실감하며, 나는 허공 위로 안개꽃을 뿌렸다.
아름다운 광경이다. 누군가 묻는다면 함박눈이 보고 싶어서라고 변명할 참이었다. 부드럽게 바스락거리는 꽃잎이 손가락을 간지럽히며 흘러내려, 한 줌 의미도 없이 바람에 휩쓸려 갔다.
나는 그저 그것으로 끝나지만, 이 꽃잎은 어디로 갈까.
바람을 타고 땅에 떨어져 구르다, 짓밟혀 뭉개진 채로 서서히 썩어가지 않을까.
혹은 어딘가의 풀잎에 걸려, 햇빛을 받은 채 바싹 말라 가벼워져 바람에 산산이 조각나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개미의 턱에 뉘여, 어두운 굴 안으로 내려가 한 끼 식사가 되지 않을까......
허공에 노출된 다리가 차가운 바람을 두드린다. 살얼음이 낀 듯 시린 발끝의 여운을 느끼며 나는 고개를 젖혔다.
내 사랑, 나는 왜 사랑을 한 걸까요.

장미 꽃다발 사이에 안개꽃을 끼워 넣는 이유는 그 붉고 탐스러운 꽃봉오리의 이름이 아름답기 때문이다. 불타는 사랑은 죽음을 끼워 넣어도 결코 퇴색되지 않기 때문이다.
죽음의 이름을 가진 작은 꽃은 대개 그런 용도였다. 얇은 줄기 위에 앙상하게 달린 조그마한 꽃봉오리들은 어딘가 병든 종양처럼도 보였다.
살아 있는 것에 죽음의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얼마나 낭만적이고 또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삶이라는 것이 죽음과 동의어라는 이야기를 나는 결코 긍정하지 않는다. 그것이 죽음에 가까워 보이는 것은 단지 죽을 수 있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마른 꽃은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검은 하늘 아래 자취를 감춘 달은 마치 죽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다가, 조금 슬퍼졌다.

나의 이름을 불러 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아름다운 사람으로,ㅡ그 자신이 동의하지 않을지라도ㅡ몹시나 별을 닮았다.
타인에 대한 나의 부끄러운 선입견을 고백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나는 그의 눈동자가 새싹 같고 그의 입술이 태양 같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 귓바퀴에 밝은 조명이 비칠 때 얼마나 투명한 노을이 보이는지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시큰둥한 눈가에 짧게 드리운 검은 속눈썹이 또렷한 선을 그리는 것을 나 혼자만의 이야깃거리에 묻었다.
하기사 그런 것을 이야기하더라도 그는 항성인지 행성인지에 대하여는 관심조차도 없고, 다만 내 입 속에서 나온 것들을 실없는 이야기로 치부할 따름이다. 나는 그의 그런 점들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그런 점에 분명히 상심하면서도 변덕스럽게 아름답다고 여기고 마는 것이다.
나는 그를 사랑하므로, 나를 상처 입힐 법한 발톱마저도 몹시 감탄스럽게 지켜보고야 만다. 그는 그 날카로운 부분으로 말미암아 스스로를 지켜 온 사람이므로, 가시에 찔리지 않고 사랑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통증을 사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픈 것은 순간 나 자신을 생각하게 한다. 그 바늘 끝의 예리함을 아름답게 여기는 것과 그것에 관통당해 피를 흘리는 것은 별개의 이야기이다. 나는 그래도 그것이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달은 피고 지듯이 얼굴을 바꾸고 한 번도 나에게 다정한 적이 없듯이, 나는 밤하늘에 의탁하여 마음을 달래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고......
완벽히 사랑만을 할 수 있는 생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내 자신이 완전하여 어리석은 허기를 느끼지 않고 무한히 베풀 수만 있는 생물이라면.
그리하여 산 뒤에도 마른 꽃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의 이름 여섯 글자를 사랑하고, 숨을 쉬는 입술과 혀끝을 사랑하고, 날카로운 흰 이를 사랑하고, 밝은 빛 사이에서 고양이처럼 좁아지는 노란 눈동자를 사랑하고, 천처럼 짜내어 얼굴 위에 걸치는 거짓말을 사랑하고, 서투르게 성나 잔뜩 찌푸린 눈매를 사랑하고, 단단하게 굳은 거친 손끝을 사랑하고, 그의 붉은 맥박을 사랑하고......
그 모든 것이 살아 움직여,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그것을 심장에 품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축복받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욕망이 없는 짐승이 인격이라 불릴 수 있겠는가. 나는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무엇도 이 가슴에 집어 삼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 그리하여, 달이 없는 밤에는, 나는 나 스스로를 생각하고 마는 것이다......

나는 르네, 당신의...... 이것으로 선행하는 모든 문장을 제외하여, 나는 르네.
달을 뜻하는 네 글자에서 한 글자를 바꿔, 달이 뜬 날에는 가려지고 달이 진 날에야 비로소 이름을 되찾는 것.
사랑하는 모든 것이 잠든 밤, 나 자신을 구성하고 있다 여긴 붉은 심장들이 낱낱이 벗겨져 드러나는 밤.
남아 있는 나는 가지를 앙상히 드러낸 안개 사이로, 스스로가 보잘것없는 흰 죽음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달이 없는 밤에는 당신이 없는 나를 떠올리게 된다.

나는 떠오를 달에 위안을 갖지 않으므로, 가시에 찔려 피투성이가 된 스스로를 다만 들여다본다.

그리하여 고통스럽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말라비틀어진 산 죽음만이 땅에 떨어진 채로 남는다.

 

나는 없는 달빛을 더듬듯이, 밤하늘을 스친 바람에 손끝을 얽는다.
차가운 바람이 얇은 천을 부풀려, 그것이 꼭 흰 잎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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