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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ve live star all look."

"예?"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고."

 

선배는 노트북의 헤드를 매만지며 허술한 숨을 뱉었다. 권희민, 선배의 이름 세 자가 적힌 A4용지 박스가 너덜거렸다. 머그컵 하나, 여행용 양치도구, 휴대용 선풍기와 담요, 바람막이까지. 계절을 가리지 않고 쌓아둔 짐이 작은 박스 하나에 모두 들어갔다. 제작비가 초과되어서 작가진부터 정리하기로 했어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사무실에 붙어있기를 일 년 반, 사무실을 떠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은 고작 일 분 삼십초였다.

여기 동선은 줄이고, 여기는 빼고, 선배는 제작비를 위해 수십 번 갈아엎은 타임테이블을 모니터에 띄워놓은 채였다. 여즉 닫히지 못하는 선배의 노트북 헤드를 대신 아래로 내렸다.

 

"웃어야 해요?"

"엉."

"죄송해요, 이런 게 처음이라 웃음이 안 나오네요."

 

노트북 헤드가 닫히니 선배는 그제야 충전기 케이블을 뺀다. 마지막까지 전기라도 뽑아먹으려고. 느리게 나오는 변명에 대신 충전기 콘센트를 뽑는다.

 

"선오야, 세상에는 가끔 한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야 할 때가 있는 거야, 그게 한국인의 가오다."

"선배."

"감동이야?"

"아뇨, 가오는 일본어라구요."

"……방송쟁이들이 이렇지 뭐."

 

짐을 모두 챙기고 뭘 했더라, 박스의 반도 못 채운 내 짐을 선배의 자동차 뒷좌석에 싣고 술을 마시러 갔던 것 같다. 술이 술인지, 물인지 모를 정도로 비우다가 통장에 들어온 급료를 확인하고, 새끼들 진짜 40%를 떼어갔네, 중얼거리고. 정말 별꼴이 다 있다며 휘청거리는 몸을 일으켜 담배를 태우러 가게 밖으로 나섰던 것 같다.

그것도 벌써 두 달이나 지났네. 돌바닥을 더듬거리며 몇 번이고 눈을 의심한다. 손톱을 세워 바닥을 긁어도 미미한 흙먼지만 묻어난다. 눈이 시릴 정도로 늘어선 촛불. 명절도 아닌데 자다 일어나니 주변에 드글거리는 사람들. 기억에 묻어두어도 충분했을 선배의 말이 갑작스레 떠오른 건 문득, 선배에게 물어보고 싶은 게 생겨서였다.

 

'자고 일어나니 모르는 돌바닥 위에서 뒹굴고 있을 때는 한국인의 가오를 챙겨야 하나요, 정신머리를 챙겨야 하나요?' 같은 질문을.

 

 

 

 

Live live star all look

 

 

 

 

돌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눈알을 위로 굴렸다. 마법진인지, 뭔지. 바닥에 흩뿌려진 검은 물에 손가락을 찍으니 주변을 둘러싸던 사람들은 일제히 탄성을 내질렀다. 발목까지 오는 긴 천을 펄럭이며 주저앉은 몸을 일으키고, 까마득한 계단 앞에 나를 세웠다. 뭐, 뭐야, 어쩌라고. 단조로운 억양과 단단한 발음,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 사이에서 다 늘어진 츄리닝을 입고 서 있으려니 수치심이 끝내줬다. 계단 양옆으로 호위병처럼 서 있는 두 사람이 나란히 엄지손가락으로 계단 위를 가리켰다. 주춤거리는 발걸음이 느렸다.

한 걸음 계단에 올라서자 다시 한번 사방에서 온갖 문장들이(아마) 쏟아져 나왔다. 수족관 돌고래가 된 기분으로 한 걸음씩 계단을 밟다가 내가 맨발이라는 걸 깨달았다. 머리띠라도 안 해서 다행인가. 다행과 불행의 경계가 서서히 희미해지고, 열 개 남짓한 계단의 끄트머리에 다다를 무렵, 늘어진 대나무발 너머로 희미한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 대나무발 아래로 보이는 건 젖으면 일주일은 말려야 할 것 같은 검은 신발이 전부다. 규칙적으로 까딱거리는 게 더럽게 재수가 없었다. 내지르는 소리, 촬영장에 처음으로 혼자 던져진 새끼 작가처럼 얼을 타고 있으려니, 누군가 뒷덜미를 채어 바닥으로 눌렀다. 대나무발 너머의 사람이 나직하게 속삭였다.

 

“무릎.”

 

단어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던 사이에서 선명한 한국어가 들렸다. 어정쩡하게 바닥에 닿으려던 무릎 대신 고개를 번쩍 들었다. 굵은 손가락이 한 번 더 목덜미를 눌렀다. 단단한 돌바닥에 생으로 짓눌려지는 이마가 두통을 호소했다. 귀를 괴롭게 했던 발음보다 조금 더 부드러운, 그리고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는 말이 두어 마디 던져지니 뒷덜미를 쥐던 손가락이 멀어졌다. 머리 위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고요해진 좌중의 사이로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졌다. 현명하게 행동하네요. 한국어에 대한 반가움보다 익숙한 목소리에 입술만 기울어진다.

 

“고개 들어요.”

 

꽉 물린 이에서 드득, 얕은 소리가 난다. 천천히 고개를 드니,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사람의 형상이 각막에 서린다. 위에서 쏟아지는 빛은 눈이 멀 정도로 강렬하다. 그러나 검은 융은 내색도 않고 본인의 매끄러움만 자랑한다. 끝단에 보이지도 않을 작은 자수가 세세하다. 사소한 곳조차 허술하게 마감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게 담긴 의상의 중간부는 탁한 흰색의 천이 말기대처럼 둘러졌다. 천에 매달린 몇 개의 매듭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는데, 끄트머리 보석 장식이 더럽게 비싼 건 알겠다. 시대도, 문화도 알 수 없는 옷을 입은 자는 훤칠하여 그 낯짝을 보려면 필연적으로 상체를 들 수밖에 없었다. 현대 사회에는 여론이라는 게 있으니, 적어도 살면서 연예인 앞에 이렇게 무릎 꿇을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또 보네요, 작가님.”

 

두 번째, 아니 세 번째다. 멀끔하다 못해 살다가 제발 손 한 번만 잡아줬으면 하는 얼굴이 낯선 복식을 기가 막히게 소화하고 있다. 지나가다 방송국 복도에서 마주친 것처럼 여유로운 낯으로 청려가 나를 내려다보고, 미친, …… 잘생겼어.

 

“상황 설명 좀 해주실래요?”

“음……, 미안하지만 나도 아직 파악이 안 됐어요.”

 

한 번도 죽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짧게 덧붙인 청려의 말이 진심인 것 같아 서글펐다. 그러나 저려오는 종아리의 감각을 잊을 서러움은 아니었기에, 내가 할 말은 단순했다. 다리 저려서 죽을 것 같은데요. 뭐가 웃긴지, 청려는 상체가 뒤집어질 정도로 웃었다.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은 게 전부인데 주변에 늘어섰던 사람들이 젖은 수건과 나무 스툴을 들고 왔다. 여기서도 스툴은 아니겠지만, 아무튼.

젖은 수건으로 흙과 검은 물이 묻은 무릎을 닦고 있는 동안 청려는 입을 한 번 열고, 손짓을 몇 번 했다. 사람들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촛불이 꺼지는 매캐한 냄새가 가시지 않아 코가 아팠다. 대나무발은 걷힌 지 오래였고, 나는 나무 스툴을 발 너머의 의자 근처로 옮겼다. 청려의 너풀거리는 옷이 계속해서 눈에 걸렸다. 젖은 수건을 바닥에 내려두고 그제야 앉을 수 있는 무언가에 제대로 앉았다.

 

“질문이요.”

“네.”

“신재현 씨도 평상복 입고 뚝 떨어졌어요?”

“아뇨, 눈 떠보니 흰 상복 같은 걸 입고 있었어요. 침대 위에서 일어난 걸 보니 아마도 잠옷이었던 것 같은데…….”

“왜 나는 내 옷이죠?”

“아, 이런 거 입고 싶어요?”

 

아뇨, 딱히 입고 싶지는 않네요. 고개를 적당히 젓고 걸릴 것 없는 목을 돌린다. 계단 위에서 보니 내가 뚝 떨어진 풍경이 정확하게 보였다. 촛불이 꺼진 돌바닥은 드문드문 서 있는 조명을 제외하면 삭막할 정도로 비어 있다. 중앙에는 검은 물이 지워지지 않은 채 둥그런 원을 그렸고, 그 안에는 그보다 더 작은 크기의 원이, 작은 원의 주위에는 알 수 없는 문자가 널려 있었다. 저 가운데에서 내가 뚝 떨어졌다는 거지. 새삼스레 현실감을 찾아보려다가 이내 포기한다. 현실감을 찾을 건덕지도 없는데, 뭘 찾아보겠다는 건지. 청려는 내가 탐색을 마칠 때까지 입을 다문 채 기다리다 고개가 본인의 쪽으로 돌아오자 입을 열었다.

 

“상황 파악은 됐어요?”

“죄송하지만 죽어도 파악이 안 될 것 같아요.”

“곤란하네요, 작가님만 믿고 있었는데.”

“여기서 말도 안 통하는 사람인데……”

 

청려의 눈썹이 얕게 까딱거린다. 그러고 보니, 사람들에게 자신의 의사를 제법 전달하던 게 떠오른다. 배웠나? 월드투어용 외국어 중 하나? 몸을 청려의 쪽으로 완전히 돌리고, 습관처럼 주머니를 뒤져 펜을 찾다가 담배 한 개비 없을 츄리닝이라는 걸 다시 자각한다.

 

“어디 말이에요? 중국어? 독일어?”

“아마…….”

“아마?”

“한국어?”

 

반응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혹시나가 빌어먹을 역시나다. 갑자기 이세계에 뚝 떨어져서 말도 안 통하는 곤욕을 치를 외부인 배려는 오로지 청려용인지. 낮게 앓는 소리를 내며 무릎에 머리를 박았다. 상태창, 스킬창, 시스템, 능력치, 호감도, 있는 단어 없는 단어를 모조리 긁어모아 중얼거렸으나 반응하는 건 머리 위 한 사람뿐이다. 그래도 바디랭귀지는 통하니 됐나, 바디랭귀지로 나는 사실 한국 사람이니 돌려보내 주세요, 를 할 수는 없잖아. 한국이 어디 붙어있는지나 알까. 아니, 한국이라는 나라가 있기는 한가? 머리를 땅에 처박을 것처럼 몸을 접다 못해 몇 번이고 얼굴을 벅벅 문지르다 피부 각질이 떨어질 무렵 고개를 들었다. 날이 어두워져 바깥 조명이라도 켠 건지, 고개를 드니 주변이 묘하게 밝았다. 그냥 내 앞날이 어두워서 그런가.

 

“번역이 안 돼요.”

“아, 역시.”

“이쯤 되면 나한테도 무언가 혜택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연금복권 1, 2등 동시 당첨 같은 행운이 짠, 하고 인생에 들어와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게 맞지 않아요?”

“나랑 이렇게 세트 취급 받잖아요, 연예계에서 나랑 한 번 엮여 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사람이 몇인데…, 이 정도면 행운 아닌가?”

“신재현 씨랑 엮여서 하는 일이 옥상에서 떨어지고 눈밭에서 구르는 건데, 그 사람들이 이런 세트 취급을 바랄까요?”

“이런 컨셉의 예능이었으면 환영받았겠죠, 나중에 한번 기획해 보던가.”

“넷X릭스나 미스터 X스트가 제작비를 지원해 준다면요.”

 

신재현이 이런 착장으로, 이런 역할로 나온다면 팬덤도 좋아하겠지. 잠깐 현실을 잊고 잘생겼다는 생각만 했으니까. 그래, 아무도 못 본 유니크한 착장을 나 혼자 본 거다. 북부대공에 이어서 최애의 고전 복장이면 이런 위험을 감수할 만 … 한가. 무릎에 팔꿈치를 괸 채 현실을 잊게 해주는 낯을 마냥 바라본다. 얼마를 줘야 예능에 나오더라. 청려에 비빌만한 연예인이면 거기도 출연료가 만만치 않겠지. 테스타…….

 

“그래서, 이번에는 탈출하려면 뭘 해야 할 것 같아요?”

 

현실을 잊게 해주는 것도 현실로 떨어트리는 역할도 청려의 몫이다. 상념을 끊는 목소리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다. 출연료 걱정은 나가서 해야 한다. 실컷 김칫국을 마시다 본격적으로 머리를 굴린다. 어딘지도 모르는 국가에, 이게 황권인지 왕권인지도 모르겠고. 여전히 시대가 모호한 청려의 복장에 눈을 둔다. 복식에 융을 사용하고, 조명도 있어. 그렇지만 조명이 무조건 전기라는 법은 없지. 마법……. 펜이 없는 게 이토록 아쉬울 줄이야. 손만 까딱거리며 움직이고 있으려니, 청려가 붓이라도 줄까요? 속삭였다.

묘하게 시대상에 빠삭한 어투다. 도착한 지 얼마나 됐을까. 손을 내젓고 다시 머리를 굴리는 대신 눈앞의 사람한테 단서 찾기를 선택한다.

 

“황제예요?”

“비슷하네요, 하지만 호칭은 주군이에요. 군대로 따지면 괄호 달린 진이네요.”

“살다 살다 6개월 복무한 사람한테 군대 드립을 다 듣네, 곧…… 이면 지금, 그러니까. 진 안 달린 진짜는요?”

“죽었어요. 노화인 것 같던데.”

“전쟁 같은 건 없어요?”

“정벌은 있는데, 전쟁의 기준은?”

“됐어요. 그 위치에 있는데 모르면 심각한 건 없는 거지.”

 

주변에서 덤빌 놈 없고, 전 근무자가 노화로 죽을 정도로 내부도 단단하고. 사랑은 한 번 했으니 같은 주제로 두 번 떨어트릴 놈은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아닐 거다. 입을 닫고 침묵하니 청려는 손가락 두 개를 흔들었다. 즉위식까지 이틀 남았어요. 힌트를 주는 마스터처럼 속삭이는 꼴이 보기 얄밉다. 과하게 순탄한 청려의 앞날에 애꿎은 두피만 긁어댄다.

 

“너무 순탄한데.”

“내 생각도 비슷해요.”

 

이틀, 몇 번이고 청려가 준 힌트를 중얼거리다 문득 과하게 조용한 주변이 거슬렸다.

 

“즉위식까지 이틀 남았는데, 이렇게 아무런 호위 없이 둔다고요? 여기서 신재현 씨가 죽기라도 하면.”

 

바깥에서 찢어지는 비명 소리가 들린다. 본능처럼 고개가 뒤로 돈다. 내 앞날이 어두워서 바깥이 밝아 보이던 게 아니다. 멀었던 귀가 트인 것처럼 미세한 소란스러움이 그제야 고막에 닿았다. 계단 아래의 문이 느리게 열린다. 사이로 들어오는 건 손이 아닌 정체 모를 사람의 머리다. 시체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입을 벌린 문이 상체를 툭 뱉었다. 계단 아래에서 위를 가리켰던 호위병이 시체를 피하지 못하고 바닥으로 구른다. 호위병의 목에 두꺼운 창이 박히며 부글거리는 피거품이 튀어 올랐다. 생리적인 거부감이 목구멍을 기어올라 급하게 허리를 굽혔다. 손이 급하게 바닥을 더듬어 젖은 수건을 찾았다. 질퍽한 본능이 바닥을 더럽히기 전에 수건으로 입을 틀어막는다. 고함인지, 언어인지 모를 음성이 사방에 즐비하다. 청려는 여전히 문 사이에 눈을 고정한 채였다.

다른 세계의 호위병이에요. 입을 열면 그의 비싼 옷감 위로 게워 낼 것 같아 눈으로만 의문을 표한다. 바닥에 그려진 저거, 그런 이름의 무언가를 불러오는 진이라던데요. 청려의 말 사이사이로 출처를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섞인다. 그런 중요한 걸 이제야 말해주는 이 작자를 대체 어디에 쓰지? 하, 아이돌이지. 침을 억지로 삼켜 울렁거림을 가라앉힌다. 두어 번의 심호흡, 주변을 둘러보다 앉아있던 스툴을 손에 들었다. 상태창도 안 나오고, 스킬도 없는 이세계 호위병이라니, 현실보다 더 쓰레기 같은 현실이다.

 

“아무래도 성공적인 즉위, 같네요.”

“아까 봤죠, 저 지금 번역도 못하고 번듯한 능력도 없어요. 호위가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나 한 몸 살아남는 게 어렵다니까요? 진검은커녕 목도도 쥐어본 적이 없는데…!”

 

식칼도 못 써서 요리도, 쏟아내는 말이 둔탁한 소리와 함께 끊겼다. 화살의 장력을 이기지 못하고 반토막 난 스툴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온몸의 피가 아래로 빠져나가는 기분, 코앞까지 다가온 죽음의 예감도 세 번째다. 기어코 문 앞을 지키던 호위병이 모두 쓰러졌는지, 문틈 사이로 널브러진 시체를 짓밟으며 한 무더기의 복면인이 쏟아져 들어왔다. 스스로의 죽음 앞에 역겨움은 먼지처럼 부스러졌다. 조졌네, 이거. 유언으로 남기기도 아까울 가벼운 생각이 머리를 채운다. 명색이 호위병이니 대신 화살이라도 맞을게, 현실로 돌아가면 안 될까. 비척비척, 느린 걸음이 청려의 앞을 막아서면 까만 무리 속에서 반짝이는 화살촉이 보였다.

여기서 죽으면 다시 시작인가? 이번 생 마지막 궁금증을 해소하려 고개를 뒤로 돌리니 청려의 손이 턱을 잡았다. 앞에 봐요. 떨림 하나 없는 목소리가 사람을 이상하게 안정시킨다.

 

“작가님이 알아듣지 못하는 거면, 저 사람들도 딱히 작가님의 말을 해석하지는 못하겠네요?”

“뭐, 그렇겠죠? 근데 내 궁금증도 하나만,”

“아무 말이나 해봐요.”

“예?”

“죽기 싫죠? 빨리요.”

 

뭐, 뭐, 진짜 어쩌라고. 하얗게 빈 머리의 옆으로 서늘한 감각이 번쩍이다 사라졌다. 귀가 찢어지듯, 아니, 정말로 찢어지며 묵직한 통증이 신경을 씹어댔다. 빨리. 뜨끈하게 턱을 타고 흐르는 피가 청려의 손을 적셨다. 주문을 외듯, 빠르게 속삭이는 목소리에 혀가 본능적으로 단어를 만들었다.

 

“이, 이 좌석은 선택된 좌석입니다!”

 

작게 손가락이 마찰하는 소리. 동시에 허공에서 피어오른 불꽃이 두어 명의 가슴을 꿰뚫었다. ……이거 강X의 연금술사? 저작권 괜찮나? 소란의 출처가 바깥인지, 복잡한 머릿속인지 가늠하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청려는 다시 머리를 앞으로 돌렸다. 밀리미터 단위로 쪼개서 탄식하기에 바쁜 기다란 손가락이 단단히 고개를 쥔다.

 

“내가 한 건 아니죠?”

“혹시 몰라서. 완벽하게 무능한 바지사장 취급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본래 이 몸에는 마땅한 능력이 없겠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있었어요. 그나저나 최근에 티켓팅을 거하게 실패했나 봐요?”

 

그게.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퍽 일상적인 토픽의 틈새로 숱한 화살이 날아든다. 화살로는 성에 차지 않는지, 단도를 들고 달려들기 시작하는 복면인의 무리에 청려는 볼을 두어 번 건드린다.

 

“계속 외쳐요. 이번에는 다른 문장.”

“다른 문장이어야 해요?!”

“최대한 다양한 레퍼토리로 해요.”

 

생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스스로 재미있으라 요구하는 건 아닌지, 하는 희끄무레한 의심이 피어오른다. 그러나 외치지 않으면 칼 맞아 죽을 타이밍에 쪽팔림을 열거할 정도로 강심장은 아니다. 대상을 보고, 외쳐요. 이 소란에도 귀에 정확하게 꽂히는 목소리가 달다. 계단 위, 코앞까지 달려온 복면인의 벌건 눈알과 시선이 맞는 순간, 입이 정확하게 문장을 뱉는다.

 

“대실패!”

 

복면인의 깨진 머리에서 피가 튀었다. 얼굴을 흠뻑 적신 타인의 형체에 젖은 수건이 절실해졌다. 잠 깨는 번쩍껌, 저는 아이스 아메리카노요, 시럽은 빼고 부탁드립니다. 한마디 말마다 복면인이 낙엽처럼 쓰러진다. 이렇게 사람을 죽이는 게 맞는 건가, 그냥 내가 죽고, 죽으면 끝이 아니구나. 어디까지 본능을 털어야 하는 거지. 니지산지, 버츄얼 라이버 ……. 입에서 말이 굴러 나오기 전에 복면인의 뒤쪽에서 한 무더기의 사람이 마찰한다. 자동응답기처럼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내던 입이 저절로 다물린다. 온갖 병기로 무장한 채 청려에게 다가오는 무더기의 사람을 보고도, 청려는 말을 재촉하지 않는다. 대신 떨어진 수건을 주워 찢어진 귀를 누른다.

아, 아악. 뒤늦게 몰려오는 고통에 인상을 구겨도 다가오는 사람 중 나 따위에 신경을 쓸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오히려 청려와 점점, …… 점점 멀어진다?

 

“대단한 호위병, 전방에 서주기를 원하네요.”

“하, 그냥 죽이세요.”

“삼초 셀게요.”

 

쉽사리 접근하지 못하는 복면인의 가장 가까운 위치. 복면 아래로 입술의 움직임이 훤히 보이는 거리에 덩그러니 버려진 채, 나는 젖은 수건을 바닥에 내버렸다. 분명, 삼초를 세고도 남을 사람이었다. 마음속으로 얼추 셋을 센 뒤 주춤거리는 복면인들 사이로 낮게 중얼거렸다.

 

“살다 살다 별꼴을 다 본다, 젠장할.”

 

불꽃놀이도 아니고, 사람이 화려하게 터져나간다. 장군의 독려 멘트도 아닌데, 터지는 불꽃에 나란히 서 있던 호위가 맹렬하게 달려 나간다. 뒤에서 청려의 웃음소리가 환청처럼 들린다. 즉위식까지 이틀, 하루 더 이 짓거리를 할 생각을 하니 머리가 지끈거린다. 하지만 죽는다면 다시 이틀이다. 하나, 둘, 다시 삼초를 마음속으로 센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대충 소매로 닦아내며 소리를 내질렀다.

 

“롱 리브 더 킹!”

 

군주시여, 제발 어서 즉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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