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델리코.”
“하… 결국 여기서 만나네.”
유리는 저를 올려다보는 시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의 손짓에 따라 뭐가 반가운지 뒤편에 놓인 꼬리가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기가 차 웃음도 안 나올 지경이나 델리코는 작게 한숨만 쉬었을 뿐 무어라 더 말을 얹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게 상대와 저 중에 어느 쪽이 우위에 있냐고 한다면 당연히 상대일 게 뻔했다. 제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냥꾼이라고 하더라도 그게 자신이 직접 상대해야 하는 늑대 인간을 이길 실력은 아니었다. 그게 가능했으면 모든 사냥꾼이 2인 1조로 다니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델리코는 자신과 같이 자란 양과 같이 다니는 사냥꾼이었다. 사냥꾼이라고 해도 늑대만 잡는 게 아니라 의뢰받아 사냥하거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축을 잡는 사냥꾼이었다. 이 세계에는 마법을 쓰거나 신체가 유독 뛰어난 자들이 있다지만, 아쉽게도 델리코는 그쪽에 속하지 않았다. 물론, 양에 비해 힘이 센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뛰어나게 사냥을 잘하는 건 아니었기에 항상 누군가와 함께 다녔다. 어릴 적에는 양 뿐만 아니라 저와 똑 닮은 여동생과 함께였으나 이제 지나간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눈앞에 있는 적에 집중해야만 했다. 그가 정말 적인지에 대한 건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였지만. 살기 위해 살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게 사냥꾼이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이었다. 그러니 그는 유리를 처음 만났을 때 살기를 숨기지 않았다. 웃기게도 돌아온 건 애정이었다. 유리는 지금처럼 저를 보며 웃는 낯으로 말했다.
‘난 널 해칠 생각 없어.’
그 말에 델리코는 어떤 답을 해야 했는지 지금도 알 수 없었다. 그가 내뱉은 말 뒤로 이어진 문장은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이었다.
‘그야 너도 늑대인간이잖아.’
그 말에 대해 사실이란 근거가 없었다. 제가 남들보다 조금 더 힘이 세다고 그런 말을 할 수 있는가? 만난 적 없는 사람이다. 유리보다 더 오랜 만난 이, 즉, 저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수장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없었다. 늑대인간이면 왜 저를 데리고 있는 것이고, 왜 저를 인간처럼 키웠고, 지금까지 살려두는지 의문만이 가득하였다. 먼로 패밀리는 다니엘 먼로 밑으로 모인 사냥꾼들이었다. 그들 중에 늑대인간이나 마법과 엮인 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배척당하지 않도록 평범한 인간이라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모았다는 게 먼로 패밀리의 수장인 다니엘 먼로가 한 말이었다. 그러한 모습의 주인을 존경한다. 만약 일부러 숨긴 거라면 그에게도 이유가 있었겠지. 단순히 그런 생각으로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게 쉽지 않았다. 늑대인간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할 자신도 없었고, 유리를 밀어낼 자신도 없었다.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으므로. 그게 델리코가 또다시 유리를 마주한 이유였다. 유리는 그때 말 한마디를 더 남겼었다. 궁금하면 나를 찾아 와, 라는 말. 정작 유리를 찾으려고 했어도 그의 흔적을 찾기란 쉽지 않았는데, 지금 서 있는 곳은 델리코가 지내던 저택 근처 숲이었다. 죽고 싶지 않은 이상 늑대인간을 포함해서 사냥꾼 저택 근처로 내려오는 존재는 없는 게 마땅했다. 그렇지 않다는 건…
“왜 그래? 혹시 날 걱정하는 거야? 나 혼자서도 여기 있는 사람들 전부 죽일 수 있어.”
자신감이 넘친다는 뜻이겠지. 델리코는 입을 열었다가 닫고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하고 말하다 보면 말리는 기분이었다. 전부 죽일 수 있다는 말에 단호히 그럴 수 없다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유리가 지금까지 봐온 늑대인간들과 다르다는 건 누구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비록 다른 이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정보지만, 급을 나눈다면 그는 S급에 속하는 이종족이다. 단순히 판매 가치로만 나뉘는 게 아니었다. 그의 심리를 잘못 건들면 말살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델리코는 가족이 위험에 빠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정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감정이었다. 유리가 볼 일이 있는 건 저였으니 제 쪽에서 잘 넘기면 그만이란 판단이 결코 잘못된 판단이 아니길 빌었다. 델리코는 유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이곳에 있으면 위험해. 내가 너와 수작을 부린다는 얘기도 듣고 싶지 않아. 너뿐만 아니라 난 내 가족도 걱정하고 있어.”
“그거 되게 질투 난다. 가족이라고 하면 널 데려다가 인간처럼 키운 그 사람이 아니라 내 쪽이어야 할 텐데.”
“아직도 그 얘기라면 관두는 게 좋아. 우리가 만약 진짜 가족이라고 해도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은 너보다 더 오래 지낸 사이를 믿을 수밖에 없어.”
“그들 사이에 있으면서 의심해 본 적 없는 거야?”
“…그렇다고 해도 날 받아줬어. 그들을 배신하고 싶지 않아.”
“늑대는 원래 무리를 배신하지 않아. 꼭, 너처럼.”
꼭, 너처럼. 인간 델리코의 성정이 아니라 늑대인간 델리코의 성정이라 말하는 단어가 귓가에 꽂힌다. 유리가 내민 손을 잡았을 때, 떨림을 느꼈다고 한다면 제정신이 아니라고 하겠지.
*
“결국 데려가 버렸군.”
“저대로 내버려 둬도 되는 겁니까?”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이었어.”
“그럼 델리코는 정말로…”
“그래, 우리가 유일하게 끌인 늑대인간이지.”
서로 손을 맞잡고 나아가는 이들을 바라보던 먼로는 제 턱을 매만졌다. 델리코의 충성심을 알고 있으니, 그가 자신을 배신할 거란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본래 성정에도 착한 녀석이 늑대인간의 습성마저 가지고 있어 제 곁을 떠나기 어렵겠지. 문제는 델리코를 꾀어내는 유리라는 늑대인간이었다. 무리에 대한 정이 강한 늑대인간이 자신과 같은 종족을 찾아내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언제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그가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로 델리코를 만난 일인지 알 필요가 있었다. 흘러 나가면 안 될 정보를 갖고 있는 거라면…
“처리할 필요가 있겠지.”
*
“어때, 델리코? 그런 집에서 갇힌 삶보다 여기서 지내는 게 좀 더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아?”
“착각하지 마. 난 그곳에서 갇혀 지냈다고 생각한 적 없어.”
“그렇지만 너한테 명령하는 사람이 있잖아. 너는 그보다 강해. 그런 사람쯤 언제든 죽이고 나올 수 있어.”
델리코는 들려온 단어에 생각하기보다 먼저 손을 뻗었다. 아무리 늑대인간이라고 해도 저보다 작은 덩치에 제가 이끄는 한 손을 따라 움직인 유리를 바라보며 얼굴을 찌푸렸다. 상대가 누구라고 해도 그와 죽음이란 단어를 같은 선상에 올리는 건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웃는 얼굴이었다. 그의 죽음이 가벼운 일이라는 듯이, 그를 죽여야 한다는 듯이. 저를 꾀어내려는 말투를 그저 넘길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려 주고 싶었다. 네가 뭘 알아? 그분이 나한테 어떤 존재인지 네가 아냐고.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 수장님은… 나의 은인이야. 나는 이미 가족을 잃었고, 더 이상…”
“그 가족 말야. 여동생이지?”
“뭐?”
“내가 어떻게 아는지 궁금해? 아니면 여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쪽이야?”
“너…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말했잖아. 우린 가족이라고. 너한테 가족이 있었으면 그 사람 또한 나한테 가족이지 않을까?”
“… …”
“델리코. 수장인지 뭔지 그 사람을 얼마나 믿어?”
무슨 말 하는 거야. 난… 수장을 의심하지 않는다. 제가 지금껏 본 그는 다정한 사람이었고, 무리를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에리카를 잃었을 때 가장 안타까워 한 사람도 수장이었다. 그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럴 수 없다. 충성을 바친 이는 평생 가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유리를 거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가 하는 말에 단호히 믿는다고 답할 수 없는 이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무시했으면 그만이다. 유리를 데리고 자리를 옮길 필요도 없었고, 순순히 그를 따라야 하는 이유가 제게 없다. 그가 하는 말이 전부 흥미로워서? 제가 모르던 일에 대해 알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그게 아니다.
그런 게 아냐.
“따라 와, 너한테 보여줄 게 있어.”
그 말을 들을 때까지 델리코는 유리의 손을 놓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말았다.
*
델리코는 어두운 동굴 속에서 시선을 굴렸다. 보이는 게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도 무언가 움직이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이게 바로 감이라는 거겠지. 이곳까지 오면서 유리는 늑대인간에 대해 말을 늘어놓았다. 그들은 대체로 무리를 지어 생활하지만, 여러 무리로 나뉘어져 있고, 그들만의 생활방식이 있다고 했다. 그들은 때때로 주인을 섬기기도 해 주인을 둔 늑대인간의 삶이 좀 더 쾌적할 때도 있다고 한다. 다만, 늑대인간은 위험한 탓에 가장 큰 사냥감이 될 뿐 반기는 인간은 없다는 이야기까지. 늑대인간을 숲 하나에 몰아넣은 것도 결국 인간이라고. 전혀 다른 세계 속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에 델리코는 고개만 끄덕였다. 그중에서 유리는 어떠한 무리 속에 속하지 않고, 주인 하나를 뒀으나 그에게 충성을 바치지 않았다고 했다. 늑대인간이라면 의리가 강하고 충성심이 뛰어나지 않냐고 되묻자, 유리는 웃을 뿐이었다. 내가 충성을 바친 건 어렸을 때부터 단 하나였어, 라는 말이 무얼 의미하는지. 사냥꾼이라는 무리가 생긴 건 마을이 존재했을 때부터였지만, 그들의 단결력이 강해진 건 그 사건, 먼로 패밀리에서 세운 고아원이 어떤 무리에 습격당한 날이라고 한다. 그 무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델리코는 들은 바가 없었고, 그들이 에리카를 데려갔다는 사실만 남은 참이었다. 에리카를 찾아야겠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이미 죽었을 거라는 말로 저를 위로하는 게 고작이었다. 늑대인간이 고아원을 습격한 건, 다니엘 먼로가 꾸민 짓을 알고 있으며, 가족인 델리코와 에리카를 데려가기 위해서였으나 실패한 채로 끝나 결국 에리카를 잃을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이야기였다. 혹은 믿고 싶지 않은 이야기거나. 그런데도 결국 믿게 된 건 제 앞에 있는 이가 에리카라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커다란 늑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 연한 베이지색 털로 뒤덮인 늑대가 저를 덮쳤을 때, 델리코는 처음 보는 늑대인데도 불구하고 그가 에리카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긴 손톱을 제 목에 둔 에리카를 막은 건 유리였다.
“안녕, 델리코. 현실을 마주한 기분, 어때?”
“나한테 이딴 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이게 꼭 너만을 위한 일은 아닌걸. 동족이자 내 가족이 엮인 이야기야. 너도 동족이라면 모르고 살 수 없지 않아?”
차라리 모르고 살았던 때가 행복한 순간일까? 아니면 지금이라도 저와 제 가족에 대해 알게 된 순간을 감사히 여겨야 할까. 델리코는 몇 번이고 에리카의 이름을 불렀지만, 마치 그에게 닿지 않는 듯했다. 어째서, 라는 의문이 들자, 이를 기다린 사람처럼 유리가 입을 열었다.
“에리카에게 네 목소리는 닿지 않을 거야. 저렇게 만든 게 바로 먼로라는 자식이고.”
“저렇게… 라는 건…”
“말했지? 우린 늑대인간이야. 언제든 늑대가 될 수 있고, 인간도 될 수 있어. 하지만 에리카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않아. 그럴 정신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야.”
“되돌릴 방법은 없는 거야?”
“나도 모르겠어. 먼로 자식이 한 짓이 뭔지 모르겠거든.”
“조심해, 유리…!”
제 쪽으로 에리카를 끌어당긴 유리를 향해 그가 또다시 휘두르자, 델리코는 자연스럽게 유리를 제 품으로 당겼다. 유리가 다른 늑대인간들보다 뛰어나다는 건 알고 있어도 위험에 빠졌을 때 손을 뻗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유리는 에리카가 자신에게 달려들 때마다 망설이고 있었다. 가족을 해치고 싶지 않은 건 유리도, 저도 마찬가지다.
“고마워, 델리코. 에리카는 너도, 나도 못 알아봐. 같은 종족이란 것도 모르는 중이지.”
“유리, 에리카를 데려온 건 너야?”
“아니, 사실 에리카는 꽤 뜬금없이 나타나긴 했지. 다짜고짜 나타나서 하는 일이 동족 죽이기라서 우리가 꽤 곤란한 참이야.”
피로 이어진 가족이 이름을 외치면 정신이 돌아온다는 건 결국 꿈과 같은 이야기구나. 유리는 아쉽다는 목소리를 내었다. 그제야 델리코는 유리가 가진 간절함을 마주할 수 있었다. 저를 데려온 이유는 단순히 동족이라며 저를 꾀어내는 게 아니라 에리카를 되돌리고 싶었고, 가족을 되찾고 싶었고… 그렇지만 지금에서는 늦고 말았다. 에리카에게 제 목소리는 닿지 않는다.
“그 말은 에리카가 늑대인간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이야?”
“정답! 본인도 늑대인간인 줄 모른 채로…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좋은 걸까.”
“그건…”
알 수 없었다. 자신도 자신의 정체를 알았을 때 좋았는지 나빴는지 알 수 없던 참이니까. 그렇지만 해야 할 일은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유리에게도, 동족들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 되겠지만. 가족이라면 책임져야 하는 선도 알고 있다.
“에리카를 내가 막을게.”
“뭘 하려고?”
“정신 차리게 하거나 그럴 수 없다면…”
“이런, 그건 곤란하군. 델리코.”
들려온 목소리에 델리코는 고개를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주변은 여전히 어두웠고,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할 리가 없었다. 제게 다가오는 건 저의 수장이다. 그리고 그를 향해 달려드는 건…
“유리!!!”
*
쉽게 이길 거라 예상했다면 오만이고 착각이었을까.
혹은 이기기 바란 희망이었을까.
그가 어디서 그런 힘을 가졌는지 델리코는 예상할 수 없었다. 처음부터 평범한 인간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유리가 에리카에 대해 알고 있었을 때, 먼로가 늑대인간에 대해 알고 있었을 때까지도 델리코는 아무것도 모른 채 있었다. 한심하고, 멍청하게도. 제 품에는 겨우 숨만 내쉬는 유리만이 남아있다. 늑대인간이란 종족이 다친 몸도 천천히 낫는다는 점에서 그나마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유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제 품에 안겨 있는 게 행복하다는 듯이. 저는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데.
“델리코, 이제 너에게 명령할 사람은 없어. 자유롭게 느껴지지 않아?”
“나는… 잘 모르겠어. 수장하고 항상 함께였어. 양 하고도, 또 다른 가족들하고도.”
“분명 괜찮을 때가 올 거야. 나 또한 너의 가족이잖아.”
아직 끝난 건 없다. 그들을 상대로 제대로 싸우지도 못한 상황으로 끝낼 수 없는 일이다. 데려간 에리카를 되찾고, 가족의 무리로 돌아가야 한다.
“그거 알아? 내가 충성을 바쳤다는 사람.”
“응.”
“넌 기억 못 하는 것 같아서 말해주는데. 내 평생을 바치고자 한 사람은 오직 너뿐이었어.”
“… …”
“그러니… 같이 가자, 델리코.”
제 품에 안겨서 손을 이끌어 잡는 유리를 보며, 델리코는 제가 해야 하는 답에 대해 생각했다. 갈래, 갈게. 너하고, 우리 가족을 위해서. 이곳에 멈춰 있는다고 해결되지 않을 테니까. 이제 그를 보며 느껴지는 떨림을 숨기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