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죄자와 손을 잡는 101가지 방법
"거지 같네……."
몇 겹이고 널린 문서 위로 노란 서류철이 떨어졌다. 투박한 철제 데스크의 사이드로 높게 쌓인 종이 뭉치가 휘청거렸다. 어, 씨. 서류의 탑이 넘어지기 직전, 반쯤 의자에 누웠던 선오의 몸이 급하게 섰다. 앉아 있던 의자는 쏜살같이 멀어지고, 손은 가까스로 서류 탑의 옆면을 지탱했다. 잡았다, 잡긴, … 잡았는데. 졸지에 일어설 수도, 앉을 수도 없는 어정쩡한 처지의 몸에 서서히 부하가 온다. 탑을 포기하는 순간 데스크는 서류로 엉망이 될 테고, 그렇다고 탑을 계속 잡고 있자니 애매하게 굽힌 다리에 쥐가 날 것 같았다. 조금이라도 몸을 세우는 순간 탑의 예민한 몸뚱어리는 미련 없이 허물어질 테다.
자발적 야근을 끝내주게 즐기던 중이었기에 부서 내부는 몇 시간 전부터 텅 비어 있었다. 놓을까, 그냥 철야하는 김에 책상 정리나 할까. 정신과 육체가 서로의 양보를 바라며 줄다리기를 하는 순간에도 허벅지는 비명을 지른다. 쥐 때문에 혼자 서의 바닥을 구르는 것보다는, 책상 정리가 낫다. 굳은 결심과 동시에 손을 떼어내고 일어서려던 찰나, 누군가의 손이 탑의 꼭대기를 내리눌렀다.
"……뭐하냐?"
"선배!"
위에서 서류를 잡고 있으니 선오의 손이 떨어져도 탑은 무너지지 않는다. 잠깐만, 계속 그러고 계세요. 선오가 이리저리 어긋난 서류를 한 덩어리로 정리한다. 까만 눈이 어처구니없다는 시선으로 자신을 노려보아도, 참지 못하고 헛웃음을 뱉어도 지금 중요한 건 탑의 재건이다. 얼추 넘어지지만 않게 탑을 다듬는 손길이 퍽 세심하다. 선오의 손이 조심스럽게 탑의 옆면을 두른다. 이제 천천히 손 치워봐요.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선배는 경고가 무색하게 서류 위에서 냅다 손을 치운다. 손이 모두 떨어져도 넘어지지 않는 탑을 확인한 뒤에야 선오는 뒤로 도망간 의자를 제자리로 끌어와 앉았다. 무심한 시선이 제 행위를 우습게 보고 있다는 건 진작에 자각한 뒤였다.
"……아, 죽을 뻔했다."
"하는 꼬라지를 보니 그냥 둘 걸 그랬다."
"무슨 그런 서운한 말씀을. 근데 들어갔던 거 아니었어요? 아무도 없었는데."
"지갑이 없는 걸 이제 알아서. 너는 안 들어가고…… 왜 여기서 이 꼬라지야?"
연신 나오는 꼬라지, 가 유독 귀에 박히는 건 기분 탓이겠지. 아직도 허벅지가 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 같아 선오는 두 손으로 제 허벅지를 연신 주무른다. 대답 이전에 한숨부터 쉬게 되는 건 완벽한 무의식이었다. 데스크 위로 널린 서류철을 한 번, 선배를 한 번, 번갈아 눈길을 주던 선오가 가볍게 턱짓했다.
"쟤 때문에요."
"……실종 사건?"
"넵, 이주 전에 서장님이 직접 오셔서 제발, 최선을 다해서, 잘 좀 부탁한다고 했던 그거."
선배의 손이 자연스럽게 서류철을 집는다. 내려놓을 때 조심해 주세요. 선오의 첨언을 가볍게 무시하고 내부의 서류를 팔락거린다. 겉으로 보면 그리 복잡하지도 않은데, 사람을 귀찮게 만드는 부류의 사건이다. 몇 장의 서류를 넘기던 선배의 손이 멈춘다. 담당하는 사건이 따로 있으니 관심도 없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한 장 한 장, 보는 시간이 길었다. 이 타이밍에 말을 건다고 한들, 돌아오는 대답은 없을 게 뻔하다. 선오는 그사이 쌓아둔 탑을 반으로 나누고, 그나마 덜 무너지도록 위로 무거운 책을 몇 권 올려두었다.
고심할 게 없는데. 마침내 서류철을 접은 선배의 첫 마디였다. 서류철을 한 팔에 끼고 삐딱하게 선 모양새가 얼핏 보면 뒷골목 건달이다. 아니지, 건달이라고 하기에는 그렇게 안 생겼으니 사기꾼이라고 하자.
"참고인 조사만 잘 해도 반은 먹고 들어가겠는데, 특히 신고자."
"……그건 저도 알죠."
"근데 왜. 슬슬 일이 하기가 싫어? 책상머리에 앉아 있으면 실종자가 제 발로 걸어들어와서 수고가 많으십니다, 했으면 좋겠어?"
"물론 그래 주면 땡큐지만. 아무튼, 그 참고인 조사가 안 된다고요. 불출석 사유서를 굉장히 잘 쓰던데, 하마터면 나도 가르쳐달라고 할 뻔했어요. 사유가 정당하니 강제 수사도 어렵고, 피의자 전환을 할 수도 없고."
"신고자 때문이던가, 서장이 각별하게 신경 써달라고 한 이유가."
뻔하죠. 느린 탄식과 함께 선오의 몸이 뒤로 넘어간다. 의자 등받이에 누운 듯 기댄 채 죄 없는 서류철만 노려본다.
"어디였더라…… 아무튼, 신재현이라고. 무슨 기업 아들내미래요. 그 분야에서 입김이 제법 세다는데, 입김은 둘째치고 거기 회장이랑 서장님 장모가 아는 사이라고."
"그럴 거면 직접 수사본부라도 꾸리지, 왜."
"제 말이요. 게다가 실종자가 거의 신고자 불알친구거든요? 어릴 때부터 뭐 되게 친했다, 사이 좋았다. 꼭 좀 찾아달라, 그랬다는데. 그럼 왜 참고인 조사를 안 오냐고요……."
"부모한테 배운 걸 써먹어 보고 싶었나 보지."
"배운 거?"
"사유서, 회장들이 그런 거 잘 하잖아. 입원하고, 휠체어 타고."
"에이, 그럴 사람은 아니에요."
"…… 아는 사이야?"
"아니, 얼굴, 얼굴을 보니까, 그럴 사람은 아닌 것? 같아서? 무심코?"
허. 짧은 헛웃음과 함께 서류철이 돌아온다. 곱게 손에 안착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종착지는 선오의 정수리였다. 서류철의 모서리가 선오의 머리를 아프지 않게 두드렸다. 굳이 두 손으로 서류철의 면을 잡아 받아낸 선오가 다시금 책상에 서류철을 던져놓았다. 어우, 꼴도 보기 싫어. 중얼거리는 말에 선배는 얕게 혀만 찬다.
"너 그거 고쳐라. 얼굴에 약한 거."
"왜요, 이거 아니었으면 선배도 나랑 이렇게 정답게 못 지냈어요. 내가 선배 성격을 어떻게 받아주고 있는데, 그게 다 선배 낯짝에,"
"다물고."
넵. 여기서 한 발자국만 더 선을 넘었다가는 필히 귀찮은 일이 생기겠지. 냉큼 입을 다문 채 침묵을 고수한다. 사람을 쳐다본 채로 대놓고 쉬는 한숨이 길다. 입을 다물며 습관처럼 아래로 내리깔았던 눈을 슬그머니 위로 굴린다. 마땅찮다는 표정을 바라보며 선오는 히, 바보처럼 웃었다. 뭐 좋다고 웃어. 퉁명스러운 말이 무색하게 따라붙은 말이 퍽 자상했다.
"너 잘하는 거 해."
"제가 뭘 잘하는데요?"
"욕먹는 거."
"……아, 그냥 뒤지게 욕 처먹고 옷 벗어라?"
"말고 새끼야. 가서 그냥 들이받고, 그다음에 신고자한테 욕을 먹든, 서장한테 욕을 먹든 하라고. 가서 잠 좀 자고. 난 판다는 후배로 둘 생각 없다."
가로등 불빛이 환하게 떨어진다. 깜빡거리거나, 미약한 것 없이 일정한 밝기를 유지하는 가로등. 꺼지지 않고 균일하게 포장된 도로나 곳곳에 붙은 안심 순찰 구역 따위가 동네의 부를 자명하게 보여준다. 세금도 제대로 안 내면서 뭐 이렇게 받아먹는 게 많냐. 도로 양옆으로 드문드문 널려있는 단독 주택. 사이의 까마득한 오르막길을 오르던 선오가 문득 걸음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돈 많은 새끼들은 여길 걸어서 다니는 일이 드물겠지……. 본인 명의의 차량이 없는 게 오늘만큼 서러울 수가 없다. 암행순찰차는 애초에 제 권한이 아니고, 참고인 조사도 피하는 사람이 경찰차라고는 안 피할 이유가 없어서 서의 차량을 끌고 올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늦여름은 해가 완벽하게 죽은 뒤에도 낮의 열기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슬슬 턱을 적시는 땀이 거슬려 손등으로 닦아낸다.
신재현의 집은 앞으로 두 블럭은 더 걸어야 했다. 들이받으라는 말이 이게 맞는지, 확신할 수는 없으나 제 이해가 맞았든 틀렸든지 간에 모든 책임은 제게 있었다. 더위에 늘어진 다리를 억지로 움직인다. 내려가면 …… 중고차라도 알아본다. 습한 공기를 가르며 다시 한 발자국 움직인다.
덥다는 소리를 수십 번, 죽어도 이 자리를 고집하는 신재현의 욕을 세 번 정도 읊조리니 오르막 끄트머리에 단정한 주택 하나가 보였다. 다른 주택도 그리 가깝게 붙어있지는 않지만 유독 동떨어진 위치다.
'이 주위 땅을 전부 매입했다고 그랬던가…….'
도시의 중심부인 주제에, 고요하고 아늑하다는 이유 하나로 땅값이 천정부지로 오른 동네다. 뇌리에 남기고 싶지 않아도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을 잊을 수가 없어서, 선오는 이 집을 방문할 때마다 소리 없이 질겁하던 자신을 떠올렸다. 제 위에 머리 세 개는 붙여두어도 닿지 않을 것 같은 대문 앞에서 선오는 입을 다물고 초인종을 꼬라봤다.
평소라면 대문 앞에 서는 일도 없었을 테다. 누군가의 차를 빌려 타고, 조수석에 앉은 채 언제 나올지 모르는 대상을 마냥 기다리고 있었겠지. 그러나 오늘만큼은 상황이 다르다. 대문 옆 기둥에는 명패 하나 없이 인터폰과 초인종이 전부다. 진짜…… 누르기 싫다. 허나 고심을 거듭한다고 한들, 다른 대책이 나오는 건 아니었기에 선오의 손가락은 기어코 초인종을 눌렀다. 교회 첨탑에 매달린 종처럼 묵직하고 엄숙한 벨 소리. 초인종과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꾸준한 생각을 거듭하니 굳게 닫혔던 대문이 조용히 열렸다. 이름 하나 묻지 않고 문부터 여는 걸 보니, 맞은 편의 상대도 자신을 꽤나 기다린 게 분명했다.
봄이라고 딱히 어울리는 건 아니지만, 신재현의 집과 가장 동떨어진 계절을 고르라면 늦여름이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밑창 아래에서 다듬어진 자갈이 절걱거렸다. 이 정도의 규모라면 정원을 꾸밀 만도 한데, 나무는커녕 마땅한 풀떼기 하나도 장식용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허전해 보이지 않기 위함인지, 마당에는 조경용 수석 몇 점만이 무덤처럼 땅에 고여있다. 그나마 주인 없는 개집만이 삭막한 마당에서 아기자기함을 뽐내고 있다.
마당에서 몸을 우측으로 틀면 그제야 주택의 현관문이 보인다. 덥지도 않은지, 문 앞에는 재현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사람을 반기는지, 기피하는지 가늠할 수 없는 미미한 웃음을 낯에 건 채로 너다섯 개의 계단 위에서 사람을 내려다봤다.
"……혼자 왔어요."
"알아요."
"근데 왜 그런 표정이지, 사람을 죽어라 개고생 시켜놓고?"
하하, 그 반응이 보고 싶어서. 말간 낯짝으로 단정한 웃음을 터트린다. 만족할 만큼 웃었는지, 재현은 사람 기분을 미묘하게 만드는 웃음 대신에 평온한 낯으로 계단을 내려온다. 얼굴이 빨갛네, 걸어왔어요? 그럼 뭐, 경찰차라도 타고 올 걸 그랬나요. 문전박대당하고 싶었다면 그것도 괜찮네요. 이럴 거면서 뭔……. 헛소리를 주고받는 것도 잠깐이다. 선오가 땀에 젖은 앞머리를 위로 쓸어올렸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 명이나 죽였어요? 재현이 느슨하게 고개를 기울였다. 의문보다는 본인이 한 일을 셈하는 사람처럼.
"신재현 씨, 혹시 헤어질 결심 봤어요?"
"갑자기?"
"꼭 서래 같아서. 서래는 증언이라도 잘 해줬지."
"참고인 조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었나 봐요?"
재현이 키득거리며 대꾸했다. 당사자가 하는 농은 도무지 웃기가 힘들다. 선오가 비스듬히 한쪽 입매를 당기며 이죽거린다. 예, 그냥 다 때려칠까 했어요.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이는 꼴을 보고도 화가 나지 않는 게 병이라면 병이다. 그만둘 때 꼭 말해줘요. 형사님을 대체할 사람을 또 찾아야 하니까. 이 정신 나간 짓거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을까요……. 경찰 시험을 대체 몇 번이나 봤는지 기억도 안 나는데. 선오는 줄줄 토해내는 말들이 전부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온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손가락이 모자랄 만큼은 봤을 거다. 기어코 턱에 맺혔다가 떨어지는 땀을 보며 재현은 몸을 옆으로 틀었다. 그 사람들은 모든 게 처음이니까 괜찮겠죠. 안으로 들어가자는 듯, 문 쪽으로 눈짓을 하더니 먼저 등을 돌린다.
세계를 먹어버릴 사업을 성공하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다. 멀쩡하게 생긴 얼굴로 그 허황된 소리를 처음으로 들었던 게 몇 년 전이더라, 아니지. 몇십 년 전인가? 선오는 걸음을 옮기지 않은 채 곧은 등만 바라본다. 처음에는 서 내부에서 취조를 받던 신재현이 미친 줄 알았는데. 함께 죽었다가 깨어나고, 다시 죽었다가 깨어나니, 죽고 싶다는 욕망이 윤리의식을 이겼다. 인생이 송두리째 몇 번이고 타의적으로 리셋되는 기분은 그 누구도 느끼지 못할 것이다.
등 뒤에서 자갈 밟히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재현은 그 자리에서 선오의 몸뚱어리가 멈춘 걸 보고 작위적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뭘 해야 하는데요. 취조실에 들어서자마자 뱉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수없이 많은 사람에게 씨앗을 뿌린 끝에, 기어코 싹을 틔운 새싹을 보는 희열이란. 그때의 표정이 지금이랑 퍽 비슷했을 것이다. 막연하게, 끝도 없이 지친 사람의 낯에 동질감을 느끼는 건 언제쯤 끝이 날지. 재현이 작은 웃음과 함께 나직하게 말한다.
"그래도 이번 삶은 정말로 나태하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말해요. 한 번 정도는 지원해 줄 테니."
"와, 진짜 솔깃하다."
"대신 감옥도 나랑 같이 가는 거예요. 형사님이 나태하면 내가 도망칠 방법이 없으니까."
"……하, 언제 세계 먹어요? 나 진짜 보던 드라마 결말이 궁금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