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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보다 도박보다 경찰

 

2024년 6월 20일 목 오후 7:56

 

어둠이 짙게 깔린 카나가와의 어느 무역항.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를 자장가 삼아 낡은 가로등도 졸린 눈을 깜빡이는 야심한 시각에 두 쌍의 밝은 눈을 자랑하는 여럿의 자동차가 항구를 밝힌다.

항구로 빛과 소란을 몰고 온 이들 중 한쪽은 카나가와현에서 잔뼈가 굵은 야쿠자 조직이었고, 다른 한쪽은 도쿄에서 시작해 점점 몸집을 불리고 있는 신생 폭력단이었다. 이런 위험한 세상의 사람들이 이런 야심한 시간에 이런 조용한 곳에서 얼굴을 마주 보고 할 일이라곤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적다.

 

싸워서 이권을 취하거나, 은밀한 거래를 하거나.

 

다행스럽게도 오늘 이들이 모인 이유는 후자였기 때문에 조용한 무역항이 시뻘건 도축장이 되는 일은 없었다.

 

“물건은 제대로 가져왔겠지, 하룻강아지야.”

“아무렴, 늙은 여우 호주머니 좀 털겠다고 목숨 걸진 않죠.”

“하여간 요즘 것들은 입만 살아서 영-믿음이 안가.”

“그 요즘 것들 아니고서는 이런 거 구하시지도 못하면서.”

“젊은 년이 오냐오냐해주니까 자꾸 기어오르는구나.”

“그 젊은 년한테 거래 한 번 하자고 다짜고짜 사무실로 방문하신 게 누구신데요.”

“쯧, 물건이나 보여봐라.”

“예, 예. 애들아, 고객님이 물건 궁금 하시댄다.”

 

양 측의 대표로 나선 두 사람이 기싸움을 가장한 안부 인사를 끝마치자 신생 폭력단의 조직원 두 명이 차 트렁크를 열었다.

트렁크 안에는 가지런히 정렬된 종이 상자가 여러 개 들어있었고, 조직원은 그중 하나를 열어 자양강장제 로고가 그려진 작은 박스를 하나 꺼내 야쿠자에게 향했다.

 

“이게 요즘 그렇게 잘 나간다는 물건이냐?”

“이게 요즘 그렇게 잘 나간다는 물건입죠. 생긴 것도 박X스, 냄새도 박X스, 맛도 박X스.”

“깐족대지 말고 열어서 물건 보여.”

“하이고-영감님 성질도 급하시네. 여기, 하나 드셔 보슈. 우리 대장이 드리는 선물이요.”

 

까드득-자양강장제 뚜껑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야쿠자의 코밑으로 익숙한 박X스 향이 들어왔다. 야쿠자는 혀를 차며 거칠게 자양강장제를 뺏어들고 제 뒤에 서있는 부하에게 넘겼다. 정말 이 물건이 도쿄의 절반을 집어삼킨 마약이 맞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는 하룻강아지들은 전부 물고기밥으로 주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형님.”

“물건 상태 어떠냐.”

“이거...진짜 박X스인데요.”

“...뭐?”

“이거 약 아닙니다. 이거 진짜 박X스입니다.”

“무려 타우린이 2,000mg! 약국에서 밖에 안 파는 박X스야~!”

 

웃음 섞인 고함 소리에 당황한 야쿠자가 시선을 여자에게 돌린 순간, 철컥-쇠가 잠기는 불길한 소리가 턱 밑에서 들려왔다.

 

“무거운 엉덩이 들고 카나가와에서 카나가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수, 영감님.”

 

다시 한번 철컥-. 이번엔 물건을 가지고 나온 남자의 손목에서 소리가 들렸다. 남자가 제 손목을 들어 야쿠자의 눈앞에 들어보이자 야쿠자의 손목도 함께 올라간다.

 

“타나카 쿠즈오, 너를 마약류 관리법 위반 혐의로 현행 체포한다.”

“이게 무슨...!”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만일 변호사를 선임할 수 없다면 국선 변호인이 선임될 거다. 근데 당신 돈 많잖아. 어디 변호사 데려올거야? 사토 앤 야마모토?”

 

매섭게 생긴 조직원, 아니 도쿄 경시청의 광역폭력단대책 제1계 소속 형사 쿠라모치 요이치가 입꼬리를 씨익 올려보였다.

그제야 제가 처한 상황을 이해한 야쿠자는 고개를 돌려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 새끼들 다 죽여!!!”

 

자신들의 두목에게 닥친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버버 거리던 야쿠자들이 두목의 고함 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리고 품 속에서 하나 둘 연장을 꺼내 쥐었다. 그들이 쿠라모치를 향해 달려들려던 그 순간- 

 

탕! 하는 소리가 항구를 잠잠하게 만들었다.

 

“애들아-나 너네가 무서워서 실수로 하늘에 공포탄 쏴버렸거든? 너네가 한 발자국이라도 더 움직이면 이번엔 너네 형님 다리에다 쏠 것 같아!”

 

신생 폭력단의 대표로 나섰던 여자가, 누가 들어도 실수가 아닌 것 같은 목소리로 그들을 협박하며 쿠라모치를 향해 걸어갔다. 마치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것처럼 지급받은 총을 손가락으로 빙빙 돌리며, 뒤로 제 무리를 이끌고 유유자적 걸어오는 여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였다.

 

“참고로 경찰이 그래도 되냐는 질문에는 미리 대답할게! 그러라고 받은 총이다, 이 등신들아! 하하하!”

“아니, 그러라고 준 총 아니거든.”

“분위기 좀 읽어, 쿠라모치.”

 

두 명의 형사가 그들만의 티키타카를 나누는 사이, 항구를 향해 시끄러운 사이렌 소리와 빨갛고 파란 불빛이 몰려들었다.

끝났음을 직감한 야쿠자들의 손에서 하나 둘 연장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시끄러운 쇠붙이 소리가 멎을 때 즈음 그들은 여러 대의 경찰차에 포위당한 뒤였다.

 

 

 

뒷 수습이 한창인 카나가와의 어느 무역항. 모두가 분주한 현장에서 오늘의 주인공 두 명은 경찰차에 기대서서 소시지 빵과 바나나우유를 먹고 있었다.

 

“어우, 힘들어 힘들어. 역시 폭대(폭력단대책과)는 할 짓이 못 되는 것 같다. 우리 동네 파출소로 발령 신청 내면 보내주나?”

“계장님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일은 없지. 난 휴가나 쓰고 싶다.”

“쓰읍, 역시 청장님 가발을 한 번 벗겨봐야 되나?”

“그랬다간 코미나토 선배가 니 머릿 가죽을 벗길걸.”

“그럼 쿠라모치 머릿 가죽 벗겨서 내가 쓰고 다니지 뭐.”

“난 뭔 죄야.”

“아까 분위기 못 읽은 죄.”

 

영양가라곤 1mg도 함유되지 않은 대화를 나누던 그들에게 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위아래로 정장을 갖춰 입긴 했지만 옷에 구김이 많았고 사람 자체도 멀끔한 상태도 아니었다. 마치 방금까지 야근이라도 하다 온 사람처럼.

 

“어라, 검사님이당.”

“뭐야, 검사님이잖아.”

“그래, 검사님 오셨다.”

 

남자의 이름은 미유키 카즈야. 

이번 도쿄·카나가와 야쿠자 소탕 작전을 계획·지휘한 검사이자 두 사람의 경찰대 동기이기도 했다.

 

“검사님 왜 왔어?”

“바람도 쐴 겸 피의자 구경도 좀 할 겸 해서 잠깐 나왔는데,”

 

자연스럽게 두 사람과 섞인 미유키는 쿠라모치의 바나나 우유와 (-)의 소시지 빵을 한 입씩 훔쳐먹고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문제가 생겼어.”

“어, 나도 방금 문제가 생겼어. 내 소시지 빵이 두 입 정도 없어졌거든. 미란다 원칙 들을 각오는 됐냐?”

“내 바나나 우유 무전취식한 놈이랑 같은 놈인 것 같은데 영장 같이 신청하자.”

“너네가 개고생 해서 잡은 하룻강아지들, 약물 제조범은 아닌 것 같다. 지금 너네 선배들이 조사중이야.”

 

(-)와 쿠라모치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미유키의 입에서 나온 또 다른 존재의 의혹. 그 말인 즉슨 의혹이 해결되기 전까진 발령 신청서도, 휴가 신청서도 제출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절망에 빠진 두 사람을 보며 미유키 검사가 킬킬 웃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그들의 소시지 빵과 바나나 우유를 뺏어 먹으려 손을 뻗었고, 이번에는 두 사람에게 한 대씩 얻어맞았다.

 

 

 

“둘 다 수고했다.”

“그리고 앞으로 또 수고 좀 하자.”

“이것들이 현장에서 뭘 얼마나 굴렀다고 벌써부터 넋이 나갔어?”

 

도쿄의 신생 폭력단을 시작으로 카나가와의 야쿠자까지 검거하느라 너덜너덜해진 그들을 반긴 건 그들의 계장 유우키 테츠야와 2계 계장 코미나토 료스케, 3계 계장 이사시키 쥰이었다.

 

“미유키 검사 말이 사실이에요? 그 망할 너구리가 저희를 골려 먹으려고 뻥친거 아닐까요?”

“안타깝게도 사실이다. 그리고 분주소에서는 최소한 검사님이라고 부르도록.”

“떼잉, 학교 잘 다니다가 급발진해서 사시치고 탈주한 놈이 뭐가 이뻐서...”

“그 검사님 덕에 구속영장 프리패스권 잘 쓰고 있잖아. 앞으로도 검사님한테 잘 보여. 그래야 더 써먹지.”

“전 역시 코미나토 계장님한테만큼은 밉보이고 싶지 않아요.”

“이것들아! 회의실 안 들어오고 뭣들 해!”

 

달콤한 휴식도 잠시, 이사시키 계장의 호통에 (-)와 쿠라모치는 서둘러 회의실을 향했다. 두 사람이 착석할 때 즈음에야 코미나토 계장이 들어왔고, 유우키 계장이 마지막으로 들어오면서 문을 닫았다.

 

“이사시키, 부탁한다.”

 

유우키 계장까지 자리에 도착하자 이사시키 계장이 브리핑을 시작했다.

 

 

- ○○월 ○○일 오전 0시 15분, 신주쿠 가부키초 한복판에서 한 남성이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어 인근 경찰이 출동.

- 마약 사용이 의심되어 피의자의 체모를 국과수에 전달했고 검사 결과 양성임이 판명, 약물총기대책 제 1계로 사건 인계.

- 약총 1계의 조사 결과, 피의자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신생 폭력단의 조직원이었고 사용한 약물은 최근 도쿄를 중점으로 활동하는 야쿠자의 절반 이상을 마약 중독자로 만든 신종 약물. 현장 책임자인 약총 1계장 하라다 마사토시가 광폭과에 공조를 요청.

- 광폭 1계의 쿠라모치 순사 부장과 (-) 순사 부장이 약의 출처를 알아내는 데 성공했고, 두 팀이 협력해 약물 제조 및 유통 혐의로 신생 폭력단을 검거.

- 이후 이들에게서 약을 구매한 다른 조직들을 순차적으로 검거해 나갔고, 쿠라모치 순사 부장과 (-) 순사 부장의 함정수사로 카나가와의 야쿠자 두목 '타나카 쿠즈오'를 체포.

 

“여기까지가 오늘 오전 1시까지 있었던 일이다.”

“저희의 두 달이 고작 다섯 문장으로 정리된다는 게 참으로 애석하네요.”

“거기 지방 방송 꺼라.”

 

이사시키가 PPT의 슬라이드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마음에 걸렸던 건 이거다. 발족한지 고작해야 6개월밖에 안된 코흘리개 놈들이 어떻게 이런 순도 높고 잡스러운 약물을 만들 수 있었는지. 하물며 화학을 전공한 놈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약총과 사람들도 엄청 찜찜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 너네가 카나가와에 내려간 사이, 우리가 좀 더 털어본 결과!”

“결과!”

“.....”

“...결과...?”

“‘일그러진 장인’과 접촉한 사실을 알아냈다.”

 

‘일그러진 장인’이라는 명칭이 나오자마자 (-)와 쿠라모치가 자세를 바꿔 앉았다. 항상 웃는 낯을 유지하던 코미나토의 표정이 굳어졌고, 브리핑 당사자인 이사시키도 분한 듯 이를 갈았다. 유우키 또한 심각한 표정으로 이사시키를 바라보았다.

 

‘일그러진 장인’.

 

이름, 성별, 나이 모든 것이 베일에 감싸져 있고 범행동기조차 알아내지 못한 희대의 마약 테러범. ‘일그러진 장인’이란 별명은 그가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약이 나올 때마다 중독성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가 생산한 약물들은 언제나 폭력단체를 거쳐 유통되었기 때문에 약물총기대책과는 물론 폭력단대책과에서도 예의주시하는 범죄자였다.

 

“이 망할 놈의 하룻강아지들이 잔머리를 굴려서 레시피까지 사들이는 바람에 알아채는데 시간이 좀 걸렸어.”

“용케 그런 약을 만들었다 싶었더만.”

“약총과 눈 뒤집혔겠는데요.”

“카타오카 과장님 말씀으로는, 타하라 과장님께서 토씨 하나 안틀리고 국어만 사용하셨다더군.”

“우-와, 타하라 과장님은 화가 나도 이상한 방향으로 무섭네요.”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

 

쾅! 이사시키 계장이 테이블을 내려치며 이목을 집중 시켰다.

 

“도쿄 하룻강아지 놈이 깔짝이던 조직은 가리지 않고 싹싹 턴다! ‘일그러진 장인’의 ‘일’자만 나와도 일단 연행해!”

“이번 신종 약물 때문에 높으신 분들이 매스컴에서 어지간히 얻어맞았잖아. 왠만해선 다 눈 감아줄걸?”

 

‘일그러진 장인’에게 쌓인 게 많은 광역폭력대책반의 수장들이 입을 모았다. 그놈 때문에 생긴 피해자가 몇이던가.

 

“내일 있을 전체 브리핑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올 거다. 그러니 둘 다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다시 보자.”

 

과열된 분위기를 환기시킨 건 유우키 계장의 해산 선언이었다. ‘일그러진 장인’의 이름을 듣고 흥분한 건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기에 (-)와 쿠라모치는 잠자코 회의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러나 아드레날린이 제 역할을 다 했는지 두 사람의 눈꺼풀이 급격하게 무거워졌다.

 

“나 이러다 졸음운전 사고 내겠는데.”

“대리 불러.”

“에휴, 진짜 경찰도 못 해먹을 짓이야.”

“가끔 보면 미유키가 현명했던 것 같다.”

 

한탄과 푸념이 섞인 자조적인 대화를 나누며 지하주차장에 내린 두 사람은 엘리베이터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발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어, 미유키?”

 

엘리베이터 앞에서 떡하니 마주친 미유키 카즈야 때문이었다.

 

“뭐야, 너네. 퇴근해? 왜?”

“경찰은 집도 없냐? 그러는 검사님은 경찰서에 무슨 일이야?”

“너네 밥이나 먹이려고 왔지. 가뜩이나 못생기고 무서운 얼굴들이 정도를 모르고 안 좋아졌더라.”

 

미유키는 들고 있던 종이가방을 올려 보이며 씨익 웃었다. 종이가방에는 고급 초밥집의 상호가 적혀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마지막에 덧붙인 말에 대한 응징을 안 받은 건 아니었다.

 

 

“어째 너네는 가면 갈수록 손이 매워지는 것 같다?”

“미유키 네가 점점 나약해지는 거야.”

“책상에 앉아서 머리쓰는 놈들이 다 그렇지, 뭐.”

“밀도가 낮은 검찰청 공기를 마시고 살아서 그런 거라고.”

“나 그래도 운동은 꾸준히 하는데 말이지-.”

 

역시 현역들은 당해낼 수가 없네. 미유키가 한숨 섞인 대답을 내뱉으며 핸들을 꺾었다. 이미 퇴근해버린 두 사람을 데리고 다시 분주소로 올라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이들에게 다시 올라갈 생각은 눈곱만치도 없었으므로), 대리 불러서 집에 가려 했다는 두 사람이 순간 가엾어 보여 제 차에 태운 것이 화근이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검찰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이들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살짝 우수에 찬 눈으로 백미러를 바라본 미유키는 뒷자리에 눕듯이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의 모습을 보고는 다시 전방에 집중했다.

 

역시 이놈들을 향한 측은지심이 문제였다.

 

 

“검사님, 혹시 빚 있어? 혼자 사는 미혼의 젊은 남자 검사 집이 이게 뭐야.”

“혼자 사는데 굳이 큰 집이 필요하진 않으니까...?”

“그래도 임마, 아파트가 뭐냐, 아파트가. 형사부 검찰이란 놈이 위기의식도 없어?”

 

미유키는 저 둘을 제집까지 데리고 올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밥은 어디서 먹느냐’며 땡깡(...)을 피운 (-) 때문에 급하게 진행한 가위바위보에서 미유키가 졌기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그냥 각자 가져가서 먹으면 되는 거 아냐?”

“야근하고 꼬질꼬질하게 집 들어가서 밥까지 혼자 먹으면 나 서러워서 진짜 경찰 때려칠 것 같아.”

“그렇댄다. 상 저거 쓰면 되지?”

 

분명 미유키의 집은 처음일 터인 두 사람이건만, 집주인보다 더 집주인처럼 구는 탓에 오히려 미유키가 손님처럼 멀뚱멀뚱 서 있는 시츄에이션이 발생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쿠라모치는 틈새에 잘 수납되어있던 접이식 밥상을 꺼내왔고 (-)는 초밥의 포장을 풀어 먹기 좋게 세팅하기 시작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미유키가 젓가락과 마실 것을 내오자 세상에서 가장 언밸런스한 한 상이 차려졌다.

 

 

“아-, 잘 먹었다.”

“간만에 제대로 된 초밥 먹었네. 고맙다?”

“그래...”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식사를 끝마친 두 사람과는 달리 미유키는 아직 식사 중이었다. 예전에는 먹는 속도도 비슷했던 것 같은데. 미유키의 인생에서 즐거웠던 순간 베스트 10안에 드는 대학 시절을 떠올리며 미유키는 아주 살짝 우울해졌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은 그 아주 살짝의 우울도 용납하지 않았다.

 

“나 한숨 잘 거니까 저녁 전에 깨워라.”

“뭐?”

“나도나도. 밥 먹으니까 졸리다.”

 

그들은 자신들이 먹은 흔적을 깔끔하게 치우고는 깔고 앉았던 방석을 배개 삼아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리고는 이내 코를 골며 꿈나라로 떠나버렸다.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던 미유키가 고개를 떨어뜨렸다. 어이가 없는 것도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도, 직종이 달라져도 변함없는 그들이 웃겼기 때문이었다.

미유키는 남은 초밥을 입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를 치웠다. 밥상도 닦아 다시 제자리에 두었다. 밥상을 치우고 나니 정수리를 마주한 채 잠든 두 사람이 보였다. 미유키는 제 침대에서 배게를 가져와 그들 옆에 누웠다. 함께 학교를 다녔던 그 언젠가, 밖에서 이렇게 누웠다가 셋이 나란히 수업을 빼먹은 적이 있었더랬지. 문뜩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 미유키는 조용히 킬킬 거리다 이내 본인도 눈을 감았다. 두 사람이 새벽까지 현장에서 고생했다면, 미유키는 사무실에서 고독한 싸움을 벌였다. 검사들 중에서는 체력이 좋은 편에 속한다지만, 역시 야근은 못 해먹을 짓이었다.

 

 

다음 날, 경시청 조직폭력대책부의 광역폭력대책반과 약물총기대책반, 거기에 범죄수익대책반까지 대회의실에 모였다. 역대 최대 규모라고도 할 수 있는 인원이었다. 대회의실에서 진행된 브리핑 내용은 당연하게도 ‘일그러진 장인’에 대한 이야기였고, 계장들의 말대로 제법 과격한 수사에 대한 허가가 떨어졌다.

 

“지금껏 ‘일그러진 장인’이 레시피를 팔아넘겼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건 단순히 약을 유통시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야! 기필코!! ‘일그러진 장인’을 체포해서 매스컴 앞에 세운다!! 알겠나?!!”

“예!”

 

브리핑 막바지에, 결국 화를 주체하지 못한 타하라 과장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형사들을 향해 외쳤다. 그 사람 좋은 타하라 과장의 분노에 자리에 모인 형사들은 기합을 바짝 넣고 각자의 분주소로 돌아가 대책 회의를 열기 시작했다. 이는 광역폭력대책반도 마찬가지였다.

 

“저희는 어떻게 움직입니까?”

“이전부터 ‘일그러진 장인’이 접촉한 폭력 단체는 모두 관동에 집중되어 있어. 생각보다 범위가 넓지는 않으니 각자 움직이자는게 계장들의 생각이다.”

“괜찮은 생각이네요.”

“그럼 둘씩 움직이자. 단서는 발견하는 대로 즉시 모두에게 보고하도록.”

 

광폭반이 움직이자 약총반과 범수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광폭반 형사들이 각 지역의 폭력단을 탈탈 터는 사이 약총반은 별의별 루트를 통해 약물에 관한 정보를 수집했고 범수반은 폭력단 조직원들이 개인 계좌부터 가족들의 계좌까지 조사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은 흘러 벌써 일주일이 되었고, 성과는-

 

“이 새끼 뒤진거 아닐까요?”

“닭 쫓던 개 신세는 싫은데.”

“땅으로 꺼졌나, 하늘로 솟았나...”

 

없었다. 이게 된다고? 싶을 만큼 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다. 광폭반 뿐만 아니라 약총반도 마찬가지였다. 구금 중인 피의자들부터 정보원으로 사용하는 약쟁이들까지 털어봤지만 공통된 정보는 하나였다.

 

‘그냥 어느 순간부터 시중에 좋은 물건이 돌기 시작하면 그의 작품이다.’

 

“직접 레시피를 산 놈들은? 걔들이 ‘일그러진 장인’이랑 제일 가깝게 연락한 놈들이잖아.”

“그놈들 말로는 ‘일그러진 장인’이 먼저 접촉해왔대. 레시피를 사지 않겠냐면서.”

“당연히 연락 기록은…”

“날라간지 오래지.”

“복구 가능성은…”

“기대하지 말랜다.”

 

하아-형사들의 입에서 나오는 건 땅이 꺼질 만큼 무거운 한숨뿐이었다.

약의 유통이 어떻게 시작되는지도 모르는데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놈들도 어떻게 자기들에게 ‘일그러진 장인’이 연락을 취해왔는지 모른다. 이전에 연락을 받고 약을 유통했던 놈들은 이미 약쟁이가 되어 제정신이 아니다.

 

“제발 나 경찰로 일하는 동안 이런 시련은 주지 말라고 그렇게 빌었는데…역시 신은 없나 봐.”

“니 헌금이 부족했나 보지.”

“역시 50엔으론 안 되나?”

“500엔부터 성의라고 보지 않겠냐.”

 

지금 제정신이 아닌 건 형사들도 마찬가지였다. 형사들은 신생 폭력단 조직원을 이렇게까지 털어본 적이 없었고(대부분 현행범이었기 때문에 혐의가 단순했다), 조직원들도 이제 겨우 한 두 번 잡혀 본 놈들이 대부분이라 고강도 심문에 눈물이 날 정도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갈 즈음, (-)가 대뜸 의문을 제기했다.

 

“근데 ‘일그러진 장인’은 왜 갑자기 레시피를 판매했을까?”

 

지금 그게 중요하냐며 한 명쯤은 면박을 줄 법도 했지만, 어째서인지 아무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일주일이나 현장을 급습했음에도 아무런 단서가 나오지 않은 탓에 다들 지쳐버린 것도 한몫했다.

 

“지금까진 약만 유통했으면서, 왜 갑자기 레시피를 판매했지? 돈이 궁했나?”

“보통 약물 제조범들이 레시피를 파는 이유는…”

“당장 돈이 급하거나, 아니면 더 좋은 레시피를 개발해냈거나. 근데 ‘일그러진 장인’은 한 번도 레시피를 팔지 않았어. 매번 더 강력한 약을 유통시켰으면서.”

“의외로 돈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가…”

 

쿠라모치가 혼잣말처럼 내뱉은 그 한마디. 그 한마디에 (-)의 눈이 번쩍 뜨였다.

 

“쿠라모치. 지금 아마히사 서에 있나??”

 

머리에 번개가 꽂힌 듯 갑자기 날아다니기 시작한 (-)는 서둘러 약총 2계의 아마히사 경부보를 찾아갔다. 계급은 똑같은 순사 부장이었지만 타하라 과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약물총기관리반의 에이스이기도 했다.

 

“아마히사 뽀-이!! 있어?!”

“우왓, 이게 누구야. 광폭반의 클레버 걸이잖아?”

 

‘아마히사 뽀-이’라는 별칭으로 불린 아마히사 코세이 순사 부장은 갑자기 들이닥친 (-)에도 당황하지 않고 웃으며 그를 맞았다.

 

“나한테 무슨 일이야? 설마 데이트? 근데 이 사건 종결 내기 전까진 토시쨩이 휴가 안 줄 것 같은데 어쩌지?”

“‘일그러진 장인’이 지금까지 유통시킨 약 중에 각성제는 얼마나 있었어?”

“무시하는 것도 귀엽네. ‘일그러진 장인’이 유통시킨 약 중에 각성제는 두 갠가 세 개밖에 없었어.”

“그리고 종류는 암페타민류 일거야. 그치?”

“YABA에도 암페타민류는 들어가 있지만, ‘일그러진 장인’이 유통한건 암페타민류 함량이 훨씬 높은 약물이었어. 근데 그건 왜?”

“수수께끼 풀고 있느라 바빠! 대충 풀리면 연락줄게!”

“뭐? 광폭반 지금 가닥 잡은 거야?? 대답해주고 가!!”

 

그러나 순식간에 약총반 분주소를 나선 (-)에게 아마히사의 목소리는 닿지 않았다. 지금 (-)의 상태는 초-하이였으므로.

 

 

“‘일그러진 장인’의 정체는 의사 아니면 약사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설명해라, (-) 순사 부장.”

“‘일그러진 장인’이 지금까지 유통시킨 약물의 종류를 봤을 때, 그의 정체는 의사 아니면 약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사별했을 가능성도 높고요. 어쩌면 고령자일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보세요, 클레버 (-) 걸.”

 

초-하이 상태의 (-)는 그대로 분주소가 아닌 과장실로 향했다. 벌컥 문을 열고 들어온 (-)의 무례함에 대해서는 꾸짖음이 마땅하지만, 수년간 (-)를 봐온 카타오카 텟신 과장은 지금 (-)가 사건의 실마리를 잡았다는 걸 눈치챘다. 그리고 카타오카 과장과 앞으로의 수사 방향을 논의하기 위해 찾아온 타하라 토시히코 과장은 ‘일그러진 장인’에 대한 새로운 정보를 얘기하는 (-)의 이야기를 우선 들어보기로 했다.

 

“저희는 애초에 생각을 잘못했습니다.”

“어째서지?”

“약을 구매한 놈들도 어떻게 구매했는지를 모르는데 걔네를 턴다고 단서가 나올 리 없습니다. 저희 일주일동안 관동 여행 한 겁니다.”

“그래서 (-) 순사 부장, 본인은 어떻게 생각의 흐름을 바꿨지?”

“어째서 그가 레시피를 팔기로 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 의문의 해답은 찾았나?”

“해답은 모르겠고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습니다. 매번 새로운 약물을 개발했으면서 한 번도 레시피를 판 적은 없었던 인간이 레시피를 판 이유. 쿠라모치 순사 부장과 고민한 결과 ‘돈’ 혹은 ‘더 이상 가치가 없음’으로 결론 났습니다.”

“그리고?”

“의외로 돈이 목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쿠라모치 순사 부장의 말에 지금까지 ‘일그러진 장인’이 유통시킨 약물의 종류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확인하기 위해 약총과의 아마히사 순사 부장을 찾아갔고요.”

“아마히사 뽀-이 아니, 아마히사 순사 부장에게 무슨 질문을 했죠?”

“지금까지 ‘일그러진 장인’이 유통시킨 약물 중 각성제는 얼마나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우리가 수사한 바로는 지금까지 총 세 개였습니다.”

“아마히사 순사 부장도 그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확신했습니다. ‘일그러진 장인’의 목적은 돈이 아니라는 걸요. 돈이 목적이었다면 각성제류의 약물이 더 돌았을 겁니다.”

 

마치 선생님과 학생의 질의응답 같은 방식의 대화. 머리를 너무 돌려 과열된 상태의 (-)는 흥분한 나머지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지도자로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카타오카 과장은 그런 (-)가 스스로의 의견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도록 적당한 질문을 던졌다.

 

“‘일그러진 장인’의 목적이 돈이 아니라면, 그는 무얼 위해 폭력단에 약을 유통한 거지?”

“아마 약을 유통한 건 ‘일그러진 장인’ 본인이 아니라 주변 인물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약총과에서 공유해준 약물의 성분표를 보고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유통된 약물의 대부분이 모르핀을 베이스로 조제됐고, 효과도 강한 진통 억제와 수면입니다. 이건 돈벌이를 위한 약물이라기보단…환자를 위한 진통제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환자에게 사용할 약을 계속해서 개발할 정도로 바쁜 인간이 따로 폭력단과 컨택해 약을 팔 정신은 없으리라 생각도 됩니다.

 

카타오카 과장과 타하라 과장의 눈이 마주쳤다. 사실 (-)의 의견은, 끼워 맞추기에 가까운 추론이었으나 그럼에도 수사해볼 가치는 있었다. 일주일 동안 단서가 한 개도 안 나오는 것보다야 뭐든 시도라도 하는 것이 핑계를 대기에도 좋았다.

 

 

(-)의 의견을 토대로 수사인원이 재구성되었기 때문에 광폭반 형사들은 수사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얼마 뒤, (-)는 ‘일그러진 장인’으로 추정되는 피의자를 체포했다는 소식을 아마히사로부터 전달받았다.

 

 

“엄청난 운빨이네, (-).”

“역시 50엔짜리 헌금이어도 100번쯤 던지니까 성의로 인정해주나 봐.”

“미친거아냐. 난 50엔짜리 하나 던졌다는 줄 알았네!”

 

조직범죄대책부를 괴롭히던 ‘일그러진 장인’이 드디어 체포되었다.

그의 정체는 배우자를 몹시도 사랑했던 고령의 의사로, 불치병 판정을 받아 괴로워하는 배우자를 위해 직접 약을 제조했다고 했다. 그 약을 유통시킨건 그들의 아들로, 약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고자 폭력단과 거래를 했으며, 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해외 서버를 사용하는 등 갖은 방법을 사용했다고 자백했다.

 

“이건 형량이 어떻게 나오려나?”

“뭘 어떻게 나와. 법대로 나오는 거지.”

“검사님, 스포일러 안 해주시나요?”

“안 할 거야. 본방에서 확인해.”

“떼잉, 이래서 검사들은.”

 

어찌됐든 사건은 해결되었다. 조직범죄대책부는 한동안 축제 분위기였고, 덩달아 그들에게 체포된 폭력단 조직원들도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지금 이 자리에서 바쁜 건 세간이 집중하는 사건을 맡게 된 미유키 카즈야 검사뿐이었다.

 

“정말이지, 너네 덕분에 울고 웃고 다 한다.”

“우리도 니 덕분에 웃어. 구속 영장 이렇게 잘 내주는 검사님 귀하거든.”

“하하, 기대한 내가 바보지.”

 

쿠라모치가 접이식 밥상을 가져오고 (-)는 초밥을 먹기 좋게 세팅하는 사이 미유키가 냉장고에서 맥주 세 캔을 꺼내왔다.

시원한 맥주 캔 따는 소리가 그들의 식욕을 자극한다.

 

“자! 나의 개쩌는 추리력에 건배~!”

“(-)의 운빨에 건배~”

“50엔짜리 기도에 건배!”

 

엉망진창인 건배사 뒤에 따라오는 건 호탕한 웃음소리.

 

“내가 이 맛에 경찰 하지!”

“언젠 뭐 그만두신다면서요.”

“하이 리스크-하이 리턴 대박이야. 약이랑 도박을 왜 하냐? 경찰 하면 되는데.”

“얘가 드디어 미쳤구나.”

“푸하하! 건배~~!!”

 

오늘도 즐거운 (-)와 어처구니가 없는 쿠라모치와 역시 검사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미유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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