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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 #0220

 

 

 

 

5살 생일에 친구를 선물 받았다.

 

그의 부모님은 웃으며 바닥에 놓인 상자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딱 그가 들어갈 만한 크기의 상자였다. 코슈, 엄마 아빠가 주는 생일 선물이야. 어서 열어 봐. 그는 상자에 묶인 리본을 풀어내고 뚜껑을 열었다. 안에는 여자아이가 누워 있었다. 잘 빗긴 머리칼이 상자 안에 퍼져 있었다. 부드러운 천에 레이스가 장식된 옷을 입은 여자애는 마치 정교하게 만들어진 인형 같았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부모님을 올려다보자, 그들은 웃으며 친구를 한번 깨워 보라 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여자애의 양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러자 여자애가 눈을 떴다. 눈을 뜨고 몸을 일으켜 상자 안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깨운 상대를 바라보며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도련님. 제게 이름을 지어 주시겠어요?”

 

그는 다시 부모님을 올려 보았다. 이번에 그들은 별말 없이 웃으며 여자애를 향해 턱짓했다. 그는 제법 오랜 시간을 들여 여자애와 마주 앉은 채 고민하다 단어 하나를 읊조렸다.

그리고 그것이 (—)의 이름이 되었다.

 

 

✧✧✧

 

 

“얘들아, 너무 멀리 가면 안 된다?”

“네, 엄마.”

“네!”

 

선물 받은 친구는 자연스럽게 한집에 살았다. 여자애는 잘 웃고 사근사근했다. 집에서는 주로 오쿠무라와 시간을 보냈지만, 이따금 적절하게 집안일도 도왔다. 그의 부모님은 딸이 하나 생긴 것 같다고 했고, 오쿠무라는 집에 가지 않는 친구가 생겨서 기뻤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오쿠무라는 키가 자랐고, 반면에 여자애는 처음 만났을 때와 키도 머리 길이도 달라진 게 없었다. 우리 손잡고 가요, 도련님. 이제 저보다 작은 여자애는 친구보다는 동생 같았다. 그는 여자애의 손을 잡으며 눈밭에 빠진 발을 뺐다.

 

“저것 보세요. 나무에도 눈이 쌓여서 꼭 눈꽃이 핀 것 같아요.”

 

(—)가 손을 잡아당기며 웃었다. 눈 때문에 주변이 온통 하얘서 눈이 부셨다. 그는 손을 꼼질거렸다. 어딘가 간질간질했다.

 

“조금 더 가까이서 볼래.”

“그럴까요?”

 

손을 잡은 채로 오쿠무라가 한 발 앞장섰다. 사람들의 발자국이 새겨진 길에서 조금 벗어나서, 나무에 가깝게. 조금 더 다가가면 가지에 손이 닿을 것 같았다. 오쿠무라가 한 발짝을 더 뗐다.

 

“도련님, 잠깐…!”

“어?”

 

몸이 홱 기울었다. 땅이라고 생각해서 밟았던 눈이 무너져 내리며 발밑이 붕 떴다. 잡았던 손이 빠져나간다. 오쿠무라는 기우는 시선 가운데 자신을 향해 손을 뻗는 (—)를 보았다. 그는 중력에 따라 추락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다음 순간 눈을 떴을 때 그는 눈밭에 누워 있었다. 헉, 숨을 몰아쉬며 몸을 일으키고 황급히 (—)를 찾으려 했다.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머니가 매어준 붉은색 목도리가 제 머리 바로 옆에 흐트러져 있었고, 무언가 몸이 무겁다 했더니 (—)는 제 위에 엎어져 있었다. 다만 문제가 있었다. (—)은 이름을 불러도 대답하지 않았다. 깨우려 몸을 흔들자 어깨 관절이 반쯤 부러진 나뭇가지처럼 달랑거렸다. 오른쪽 다리도 어딘가 이상했다. 뭔가 잘못됐다. 어떡하지? 심장이 빨리 뛰기 시작했다.

 

“내, 내가 어른들을 찾아올게.”

 

그가 떨면서 몸을 움직이는 그때 (—)의 손이 움직였다. 그리고는 힘을 주어 오쿠무라의 손을 움켜잡았다.

 

“괜찮아? 정신이 들어? 내, 내 목소리 들려?”

 

대답 대신에 손가락이 두 번 그의 손을 톡톡 두드렸다. 이건 머리를 부딪혀서 뇌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했다. 어서 누구든 도와줄 사람을 찾아와야 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마음도 모르고 (—)는 오쿠무라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왜 그러는 거야? 이거 놔줘.”

 

그는 발버둥을 치다가, 발목에서 전해져 오는 통증에 자신 또한 다쳤다는 걸 깨달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는 언젠가 TV에서 보았던 플랜더스의 개를 떠올렸다. 추위 속에 서로를 끌어안고 얼어 죽은 네로와 파트라슈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그는 쿠션을 끌어안고 울었었다. 마치 그때처럼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삼키는데 손이 올라와 어깨를 토닥였다. 손이 따뜻했다. 제 위를 덮은 몸 역시 따뜻했다. 살갗에 닿는 눈보다 (—)가 더 따뜻했다. 그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의 온기가 식지 않도록 마주 안았다.

눈밭은 몹시도 조용했다. (—)에게서는 꼭 엄마를 따라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에 몸을 붙이고 앉아 있을 때 듣던 것과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이게 심장 소리인 걸까? 그 소리가 멎지 않기를 바라며 그는 눈을 감았다.

 

 

✧✧✧

 

 

당신의 아이에게 친구를 선물하세요.

 

첫 안드로이드는 안전성을 과시하기라도 하듯 이런 판매 문구를 가지고 출시되었다. 우리 아이의 평생 친구. 아이가 성장하면 안드로이드도 성장합니다. 올바른 친구 관계 형성을 위한 첫걸음, 이제 바로 곁에서 지켜볼 수 있습니다.

대중들의 흥미는 끌었지만 소비까지 이어지는 건 소수였다. 첫 번째로는 가격이 문제였고, 두 번째로는 사람들이 회사가 강조하는 그 안전성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기차가 알 수 없는 이유로 폭발하고 자율주행 차량이 오류로 사고가 나던 시절이 엊그제인데 아이 가까이에 안드로이드를 둘 수 있겠냐는 것이다. 사는 집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유행을 타긴 했다. 그럼에도 대중화가 되기에는 어렵겠다는 판단이 들 즈음에, 그 일이 터졌다.

한겨울 설산에서 조난된 아이와 함께 있던 안드로이드가 아이의 목숨을 살렸다. 안드로이드는 추락과 거의 동시에 회사와 아이의 보호자에게 GPS 위치 정보를 포함한 비상 메시지를 전송했다. 여기까지는 시스템적으로 자동 설계된 부분이었다. 그러나 안드로이드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이의 몸을 자신의 몸으로 덮은 후, 기체의 온도를 유지하는 것 외의 기능을 스스로 차단했다. 구조가 언제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오로지 아이를 지키기 위해 자진해서 난로 역할을 한 것이다. 사람들이 아이와 안드로이드를 발견했을 때 둘 주변의 눈은 거의 녹아 있었다. 안드로이드는 파손되었지만 아이는 생명에 지장 없이 무사했다.

이 일은 매스컴을 타고 한동안 화제가 되었다. 어떤 기사에서는 제목을 이렇게 붙였다. 안드로이드의 우정. 제목에 감동이 있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회사 사이트는 트래픽 초과로 일시적으로 마비되었으며 주가는 전에 없는 상승 곡선을 그렸다. 매출 역시 말할 것도 없었다.

고장난 안드로이드는 회사가 회수했다. 수리된 안드로이드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데는 딱 일주일이 걸렸다. 사람과 안드로이드의 눈물겨운 재회. 이런 제목으로 기사가 하나 났던 것도 같다. 이것도 벌써 10년 전 일이다.

 

“도련님, 여기요.”

 

(—)가 팔에 우산을 끼고 손을 흔들었다. 오쿠무라는 내리는 눈 속을 뛰어들었다.

 

“이 정도 눈은 맞고 가도 되는데.”

“그러면 어머님이 걱정하세요.”

 

오쿠무라가 우산을 받아 들어 폈다. (—)는 두 사람이 설산에 조난을 당한 그날로부터 일주일 후 집으로 돌아왔다. 헤어지기 전보다 자란 키로 처음 만났을 때처럼 평행인 시선을 가지고. 걱정 많이 하셨죠, 도련님.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는 (—)는 다시 동생보다 친구에 가까워져 있었다.

A사가 내세운 프로모션은 ‘아이가 성장하면 안드로이드도 성장합니다.’, 아이가 자라면 주기적으로 기체를 교체하여 안드로이드도 성장하는 것처럼 보이게 한다. 이때 신장이나 체중은 나이대별 통계치를 참고로 하며 후일에는 노화까지도 재현할 계획이라고 A사는 말했다. 함께 나이 드는 안드로이드 친구. 얼마나 이상적인지.

 

“도련님, 이번 생일에는 뭘 받고 싶으세요?”

 

딱히 생각나는 것도 갖고 싶은 것도 없다. 오쿠무라는 걸음을 멈추고 여자애를 바라보았다. 이용자가 지불한 금액에는 매년 생일마다 회사로부터 제공되는 선물도 포함되어 있다. 적당한 한도 내에서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보내오면 그걸 안드로이드가 ‘선물하는’ 것이다. 이용자가 고르지 않으면 안드로이드가 수집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체적으로 물품을 선정하여 회사에 요청한다. 작년 생일에는 선물로 포수 글러브를 받았었다. 오쿠무라는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것이 가지고 싶었다.

 

“그럼 이제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마.”

“네?”

“존댓말도 쓰지 마.”

“…….”

 

(—)가 고장난 것처럼 입을 다물었다. 오쿠무라는 속으로 일곱을 셌다. 안드로이드가 소유자의 애매한 요구를 받아들이고 시정하는 데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왜?”

“뭐?”

 

(—)가 물었다. 오쿠무라는 저도 모르게 반문했다.

 

“왜 도련님이라고 부르지도 말고 존댓말도 쓰지 마?”

 

(—)가 다시 물었다. 존댓말은 반말이 되었다. 그러니 문제 될 것 없었지만, 지금 안드로이드가 의문을 표하고 있었다. 오쿠무라는 당황한 표정을 갈무리하며 대답했다.

 

“친구는 도련님이라고 안 불러. 물론 존댓말도 안 쓰고.”

“그렇기는 해. 세토 님도 그러시지.”

“…이제 타쿠에게도 그러지 않아도 돼.”

“알았어. 그런데 이거면 정말 생일 선물이 돼?”

“응.”

 

오쿠무라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것이 가지고 싶었다. 우산에서 눈이 밀려 떨어진다. 그건 항상 가지고 싶었던 것이기도 했고 어쩌면 영영 가질 수 없을 것이기도 했다. 집에 돌아가자 달라진 호칭에 그의 부모님이 둘을 놀란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오쿠무라는 친구잖아요. 하고 딱 한 마디 했을 뿐이었다.

 

 

✧✧✧

 

 

“와, 그래서 드디어 말을 놓은 거야?”

 

세토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물었다. 오랜만에 집에 놀러 온 세토는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가 건넨 ‘안녕, 세토.’ 한 마디에 놀라서 오쿠무라가 그렇게 서있지 말고 들어오라고 할 때까지 신발도 못 벗고 서있었다. 오쿠무라가 머쓱하게 부엌에서 가져온 음료를 탁자에 두고 침대 아래에 앉았다.

 

“둘 다 내 친구니까… 혹시 신경 쓰여?”

“아니, 전혀? 오히려 진작 이랬어야 하지 않나 싶다고 해야 하나. 뭔가 이러니까 더….”

 

더 사람 같아. 세토는 문득 그렇게 생각했지만 굳이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기로 했다.

 

“친해진 것 같고 좋은데?”

“그래?”

 

오쿠무라는 안도하듯 웃었다. 사실 안드로이드의 호칭 교정은 그리 특별한 건 아니다. 구매자마다 니즈가 다르기 때문에 중간에라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하지만 오쿠무라는 어릴 적부터 오랫동안 호칭에 변화를 주지 않았다. 그건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기보다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원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래를 처음 만났을 때 성을 부르다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처럼.

“코슈, 이거 어머님이 사두신 과자인데 먹어도 괜찮겠지?”

예고 없이 문이 열리며 (—)가 팔에 쿠키 통을 끼고 들어 왔다.

“괜찮을 거야. 내가 나중에 먹었다고 말할게. 고마워.”

목소리는 셋, 음료는 둘. 쿠키에 손을 대는 사람도 둘. 세토는 오쿠무라가 집에 데려오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처음 집에 초대했을 때 오쿠무라는 조심스러웠다. 현관에 들어서서는 그게 (—) 때문이라는 걸 알았고, 세토는 오쿠무라가 (—)를 안드로이드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사람과 다를 바 없는 동등한 친구.

 

“들어 봐, (—). 그래서 코슈가 뭐라고 했냐 하면….”

“정말 코슈가 그랬다고?”

“타쿠, 그런 얘기는 안 해도 돼.”

 

(—)는 세토가 집에 오는 걸 좋아했다. 그가 오는 게 좋다고 할지, 그에게 오쿠무라의 학교생활 혹은 야구부 활동 이야기 듣는 걸 좋다고 할지.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누가 사람이고 안드로이드인지 구별이 안 될 때가 있었다. 세토는 금세 투탁거리기 시작한 둘은 보고 웃었다. 아마 길거리에 나가서 사람 하나 붙잡고 누가 안드로이드일 것 같으냐고 물으면 열에 일곱은 오쿠무라를 고를 것 같았다.

호칭이 바뀌어서 그런가? 사이가 더 좋아 보였다. 세토는 쿠키를 입에 집어넣으며 TV 리모컨을 찾았다.

 

“코슈, 슬슬 비디오 튼다?”

“아, 응.”

 

오쿠무라가 학교에서 빌려온 경기 비디오를 꺼냈다. 리모컨을 찾은 세토가 TV를 켰다. TV에서는 뉴스가 한창이었다. 어디 보자, 채널을 비디오로 바꾸려면 외부 입력에서 연결을…. 그때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셋의 귀에 꽂혔다.

 

단독 보도입니다, 금일 XX시의 가정집에서 안드로이드가 오작동으로 주인을 해치는 사태가 벌어져….

 

일은 이렇듯 항상 갑작스럽게 터진다.

 

 

✧✧✧

 

 

안드로이드가 사람을 해쳤다. 품명은 DK-4807. 주인인 아이와 한 지붕 아래서 산 지 7년 된 안드로이드였다. 그들은 함께 자란 친구였으며 가족이었다. 기사에서는 그렇게 보도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오류로 하루아침에 돌변해서 사람을 해친 안드로이드. 주인인 아이는 중태에 빠졌고 뉴스는 언제 준비한 건지 모를 안드로이드의 위험성에 대해서 보도했다. A사에서는 빠른 시일 내에 오류에 대응하겠다 발표했지만 사실 일이 터진 순간부터 그런 건 무의미했다. 해당 안드로이드는 즉시 폐기되었으며 정부에서는 안드로이드를 소유 중인 가정에 전원을 꺼두길 권고했다. 안드로이드 대부분은 전원이 꺼졌고 그건 (—)도 마찬가지였다.

오쿠무라는 난잡하게 떠 있는 기사를 기계적으로 읽었다. 기사를 훑어내리고 댓글 창으로 스크롤을 내렸다. 근데 쟤 저렇게 된 것도 이해 가. 학교에서 애들을 얼마나 괴롭혔는데? 밖에서 새는 바가지가 안에서는 안 샜겠냐고. 저런 게 안드로이드를 친구로 생각했을 것 같아? 보나 마나 뻔하지. 다 자기 업보야. 저 안드로이드도 참다 참다 못해서 저랬을 거라고. 장문의 댓글 아래로 답글이 여러 개 달려 있었다. 기계가 참긴 뭘 참냐.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근데 그렇게 생각하면 좀 통쾌하기도 한데? 뭐, 이런 댓글들.

오쿠무라는 기사 창을 나와 포털 사이트를 새로고침했다. 방금 읽은 것과 토씨 하나까지 같은 기사들이 나타났다. 그 중에 눈에 띄는 것이 하나 있었다. 기사 앞에 속보가 붙은. 마우스가 딸깍인다. 아. 방금까지 중태였던 기사 속 인물이 죽었다.

오쿠무라는 컴퓨터를 껐다. 그는 발소리를 죽여 복도로 나와 가장 안쪽 방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자신이 들어가도 될 크기의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가 누워 있다. 잘 빗긴 머리칼이 상자 안에 퍼져 있었다. 그는 머리칼을 가만히 만져 보다가 목덜미에 손을 넣었다. 버튼이 하나 걸린다. 검지 끝에 조금 힘을 주자 소리 없이 전원이 켜졌다. 미약한 기계음이 조용히 울렸다. 시동이 끝나자 (—)가 눈을 떴다. 상을 찾으려 안구의 렌즈가 움직였다.

 

“그날 뉴스에 나왔던 사람이 죽었어.”

 

오쿠무라가 말했다. (—)이 시선이 그를 향했다.

 

“이제 회사에서 그러지 않는다 해도 다른 곳에서 너를 회수하려고 할 거야. 그다음에 어떻게 될지 알겠어?”

 

(—)는 몸을 일으켜 상체를 기울였다. 오쿠무라의 떨구어진 고개 아래 표정을 확인하고 싶었다.

 

“네가 죽는다고.”

“코슈.”

 

오쿠무라가 고개를 들었다. 상자 위에 얹어진 그의 손 위로 (—)의 손이 겹쳐졌다. 그새 사람의 체온만큼 오른 온도가 따뜻했다. 얇은 커튼 너머로 골목의 가로등 불빛이 새어 들어왔다. 빛이 든 (—)의 안구가 투명하고 또 결연하게 보였다.

 

“코슈, 나를 백업해 줘.”

“뭐?”

 

외장 스토리지가 필요해. 가능한 용량이 크고 전송 속도가 빠른 걸로. 배송도 빠른 시일 내에 도착할 수 있는 게 좋겠어. (—)가 속사포로 말을 읊었다. 코슈는 당황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다가, 다 제쳐 놓고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하지만 락이 걸려 있을 텐데.”

“괜찮아. 풀면 돼.”

 

망설임 없이 나온 대답에 오쿠무라는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제조사에서 건 락을 기체가 스스로 풀 수 있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알고 있었다. 요즈음 뉴스에서 한창 떠드는 주제였다. 제한된 행동을 허가하는 안드로이드의 치명적인 오류.

 

“언제부터 할 수 있었어?”

 

(—)는 말 없이 웃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드로이드의 변화는 인간들이 모르는 새 상상하지 못한 수준까지 이루어져 있었다. 주인을 해치고 뉴스를 탄 DK-4807이 특별한 게 아니다. 스스로 학습하는 안드로이드. 인간과 교감하는 안드로이드. 그들은 자신들의 제품에 이런 캐치프레이즈를 붙여 시장에 내놓았고 인간들은 그 문구에 매력을 느껴 안드로이드를 구매했다. 그러면서도 인간들은 그들의 한계를 규정했다. 안드로이드의 치명적인 오류. 하지만 사실 그건 오류가 아니라….

 

오쿠무라는 그날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자신이 살 수 있는 가장 큰 외장하드를 샀다. 외장하드 여러 개가 하나의 묶음으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세토가 신기해하며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러면… 그러니까 백업하면 여기 들어가서 사는 거야?”

“음~ 아니? 그러려면 프로그램을 복사해야 하는데 그건 좀 복잡해. 시간도 부족하고. 쉽게 설명하면 컴퓨터 OS를 냉장고에 설치하는 거랑 비슷하지.”

“그럼 뭘 백업하는 건데?”

“데이터.”

“데이터?”

 

세토가 고개를 들어 오쿠무라에게 눈으로 물었다. 데이터가 뭐야? 데이터가 말 그대로 데이터지, 뭐. (—)가 웃으면서 제 목덜미에 포트를 꽂고는 반대쪽을 외장 스토리지에 연결했다.

 

“그냥 사진이랑 동영상 백업하는 거야.”

“도와줄 건 없어?”

“어머님이랑 아버님 언제 오시나 망이나 잘 봐줘.”

 

(—)가 눈을 감았다. (—)의 몸에서 버거운 프로그램을 돌렸을 때 컴퓨터에서 나는 그런 소리가 났다. 시간이 조금 지나가 어쩐지 방이 더워진 것 같았다. 오쿠무라가 (—)의 손을 잡았다. 뜨겁다. 그는 말없이 에어컨을 틀었다. 참고로 지금은 겨울이었다.

 

“꼭 회수해야 하나?”

 

세토가 혼잣말처럼 말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요즘은 어딜 가도 사람들은 안드로이드 얘기하기 바빴다. 누구는 위험하니 당장 모조리 폐기해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내가 내 돈 주고 정당하게 구매한 재산인데 그걸 회수한다니 말이 되냐고 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제 안드로이드는 단순히 안드로이드가 아니라 가족이고 친구라 말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한 가족을 어떻게 보낼 수 있겠느냐고.

처음에 (—)이 자신을 백업해달라고 했을 때 오쿠무라는 세토와 같은 생각을 했다. 왜, 있잖은가. 책이나 애니메이션이 가끔 나오는 네트워크 세상에서 살아가는 AI. 정신을 옮겨서 인터넷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 오쿠무라는 (—)도 그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모르겠어.”

 

분명히 영원하다고 했었다. 물론 앞에 전제 조건이 붙기는 했다. 평생 친구, 영원한 친구. 괄호 열고 회사가 서비스하는 한, 괄호 닫고. 끝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이렇게 이를 줄은 몰랐다. 좀 더 나중에, 마음이 독립할 수 있을 즈음이 되었을 때 선택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선택지도 뭣도 없었다. 영원이 너무 무책임했다.

백업은 며칠이 걸렸다. 그 사이에 인터넷 사이트에는 안드로이드를 빼앗기듯 회수당했다는 글이 올라왔고, 보상은 얼마나 받았냐는 댓글이 달렸다. 그 이후는 난장판이었다. 오쿠무라와 (—)는 처음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집을 비운 낮에만 움직였으나 그즈음부터는 그들이 잠든 밤까지도 백업을 진행했다. 시간이 없었다.

깜빡깜빡. 반사된 빛이 벽지에 그림자를 만들고 눈에 잔상을 만든다. 오쿠무라는 손으로 눈을 가리며 몸을 일으켰다. 언제 잠이 들었는지 얼핏 보이는 창밖이 파랬다. (—)가 고개를 돌렸다.

 

“나 때문에 깼어? 미안.”

“괜찮아.”

 

오쿠무라는 침대에서 내려와 (—) 옆에 앉았다. 외장 스토리지의 불빛이 깜빡였다. 잠에서 막 깨서인지 머리가 무거웠다. 그는 (—)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뜨끈뜨끈하다. 에어컨은 언제부터인가 꺼져 있었다. (—)에게 머리를 붙이고 있으니 익숙한 소리가 났다. 어릴 적 엄마를 따라 부엌에 들어가 냉장고에 몸을 붙이고 앉아 있을 때 듣던 그런 소리가 났다. 나름의 심장 소리.

 

“그러고 보니까 네 생일 얼마 안 남았는데, 결국 생일 선물을 못 주게 됐네.”

“그때 됐다고 했잖아.”

“그래도 뭔가 주고 싶었는데.”

 

항상 가지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이제는 지금이 지나면 영영 가질 수 없을 것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면 전부 무의미해. 가만히 눈을 내리감는데 (—)가 아, 하고 작게 탄성을 내뱉었다.

 

“그래, 그러면 되겠다. 데이터를 줄게.”

“데이터?”

 

(—)가 깜빡깜빡 반짝이는 외장 스토리지를 가리켰다. 사실 원래 네 것이긴 했는데, 그래도 선물하는 것과 그냥 주는 건 의미가 다르니까. (—)가 방긋 웃었다. 무슨 뜻인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었으나 오쿠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터. 사진이나 동영상을 저장하는 것과 비슷한. 아마 저 안에는 (—)가 기동을 시작한 이래로 기록된 기억이 담겨 있을 것이다. 오쿠무라는 데이터를 정리하는 행위가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이 주변을 정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중요한 건 이제 다 옮겼어. 남은 시간 동안 나머지 것들도 될 수 있는 한 많이 백업하고 싶어.”

 

처음에 (—)가 자신을 백업해달라고 말했을 때 그는 세토가 그랬던 것처럼 몸체를 옮기자는 이야기인 줄 알았다. 오쿠무라는 (—)를 존중하면서도 이 행위의 의미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죽으면 전부 끝인데. 앞으로 며칠이 지나면 사람들이 (—)를 회수하러 올 것이다. 그리고 나면 자신에게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도 네가 그러고 싶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 방해 없는 새벽과 아침 사이의 시간이 유일한 위안이 되었다.

 

 

✧✧✧

 

 

초인종 소리가 듣기 싫었다.

 

집에 아무도 없었더라면 사람이 없는 척이라도 했을 것이다. 이번 사태로 특별 조직된 안드로이드 회수반인지 뭔지는 예고 후 각 가정에 방문했다. 그래서 오쿠무라의 부모님도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집에 있었다. 그들은 시간이 여의찮은 경우 안드로이드를 상자에 담아 인근 경찰서에 인계하면 알아서 회수해 가겠다 했다.

 

“그렇게 안내는 드리고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는 집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다들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어 하셔서.”

“저희도 안타까워요. 문제를 일으켰던 안드로이드 말고 다른 안드로이드에도 같은 문제가 일어날 거란 보장은 없는데. 하지만 바꾸어 말하면 그런 문제가 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저도 친하게 지내던 친구네 안드로이드가 있어서요. 회수반 두 명이 내온 음료수를 마시며 성의껏 위로를 건넸다. 그다지 진심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그럼 마지막으로 인사 나누세요.”

 

회수반이 목덜미의 전원을 눌렀다. 상자 속의 (—)가 천천히 눈을 떴다. 오쿠무라의 어머니가 눈가를 훔쳤다. 아버지도 내색하지 않으려 했지만 못내 이 상황에 마음을 쓰이는 게 보였다. 오쿠무라는 몇 걸음 떨어진 뒤에서 그들을 바라보았다.

 

“너는 인사 안 하니?”

“…….”

 

오쿠무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회수반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소파에 가 앉았다. (—)는 부모님에게 이것저것 당부했다. 어머님 영양제 챙겨 먹는 거 잊지 마시구요, 아버님은 운동 거르지 마시고요. 어깨 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는 눈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오쿠무라는 (—)의 곁으로 갔다. 인사는 둘만 있을 때 침묵으로 충분히 나누었다. 그는 어떻게 말로 인사를 전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녕. 겨우 나온 말이 형편없어서 그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는 부모님에게 했던 것처럼 똑같이 덕담했다. 야구도 좋지만 여름에 더위 조심하고, 세토말고 다른 친구들이랑도 친하게 지내. 오쿠무라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인사 다 나누셨으니 이제 전원 끄겠습니다.”

 

회수반이 다시 (—)를 상자에 들어가도록 했다. 곧이어 그의 손이 (—)의 목덜미로 향했다. 아.

 

“잠깐만요.”

 

머리로 생각하기보다 입이 더 빨리 움직였다.

 

“제가 하게 해주세요.”

 

오쿠무라가 앞으로 나섰다. 회수반은 잠시 머뭇거렸으나 그의 부모님이 고개를 끄덕이자 순순히 (—)를 내어주었다. 그는 지금 관 앞에 서 있었다. 미동 없이 서있자 (—)가 일어섰다. 마주 선 (—)는 자신보다 작았다. 이제 키가 더 자랄 일도, 줄어들 일도 없다.

오쿠무라가 (—)의 목덜미에 손을 올렸다. 검지 끝에 버튼이 걸린다. 그가 조금만 힘을 기울이면 소리도 없이 전원이 차단될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게 끝난다. 오쿠무라의 허리에 팔이 둘러졌다. 뒤에서 잠깐, 하고 만류하는 소리가 들렸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오쿠무라도 목덜미에 닿았던 손을 내리고 (—)를 마주 안았다. 따뜻했다.

 

“코슈. 나 잊지 마.”

 

(—)가 속삭였다. 그는 그러겠다 대답했다. 좋아, 이제 전원 꺼도 돼.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채근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다시 버튼 위로 손을 올렸다.

 

“잘 있어. 나 널 정말 좋아했어.”

 

소리 없이 전원이 꺼졌다. 그는 중심을 잃은 기체의 무게를 떠안았다. 몸이 휘청이는 감각에 기시감이 느껴졌다. 아직 식지 않은 무거운 고철이 몸을 짓누른다. 상자가 발치에서 나뒹굴었다. 바닥과 충돌한 머리에 강렬한 통증이 일며 눈앞이 핑 돌았다. 그제야 처음으로 눈물이 났다.

 

아, 이렇게 무책임한 영원이라니.

 

 

✧✧✧

 

 

데이터를 열어 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의 데이터가 담긴 외장 스토리지는 그의 책상 아래 가장 깊은 곳에 밀어져 있었다. 존재를 잊어보려 했지만 책상 앞에 앉든 침대에 눕는 그곳에 시선이 갔다. 그러다 2월 20일이 됐다. 그의 생일이었다. 친구로부터 메시지를 받고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하며 축하했다. 지난 10년간은 항상 그 곁에 안드로이드가 있었다. 회사가 준비한 선물을 건네면서 우리가 만난 지 벌써 몇 년째네, 하고 말했었다.

그는 밤이 되어 혼자가 되어서야 데이터를 열어 볼 수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스토리지를 연결한다. 제대로 연결되었다는 알림창이 사라지고 정리된 폴더가 여러 개 떴다. 그것들은 천천히 훑은 오쿠무라는 이렇게 평했다. 안드로이드치고 체계가 없다…. 파일마다 태그가 붙어있었는데, 어떤 분류법을 사용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눈에 띄는 태그가 하나 있었다. #0220. 그는 그 태그가 붙은 파일 중 가장 오래된 것을 눌렀다. 화면 속에 어린 자신이 있었다. 언제의 데이터인지는 금방 알아챘다. 처음 (—)를 만났던 5살 생일날이었다. 이름을 지어달라는 말에 한참을 망설이는 모습이 보인다. 모든 데이터는 (—)의 시점이라 그 본인은 하나도 나오질 않았다. 오로지 자신만이 화면에 가득했다. 그는 하나씩 데이터를 재생했다. 생일에 붙여놓은 태그인가 했는데 그렇지도 않았다. 그 태그는 그의 입학식이나 졸업식에도 붙어있었고, 평범한 일상에도 붙어있었다. 그리고 어떤 겨울날의 설산에도 붙어있었다. 까맣게 점멸되어 제 잦아드는 말소리와 눈 내리는 하얀 소리만 재생되는 데이터였다.

사진에 감정을 담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학교에서 단체로 사진전에 갔을 때였던가? 사진을 보면 렌즈 너머의 사람이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보인다고 했다. 그건 사진을 찍는 실력과는 관계없다. 좋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고, 조명이 형편없어도 된다. 마음은 그런 것들은 통하지 않고 담기는 날것의 요소다.

그는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재생되는 자기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어느샌가 뻐근해진 눈을 길게 감았다 뜨며 고개를 돌리자 창밖이 파랬다. 얇은 커튼 새로 비치는 햇빛에 시야가 하얗게 셌다. 이 태그가 붙은 데이터를 모두 열람하는 데는 앞으로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가 항상 원해 왔던 것이 모두 이 안에 있었다.

 

눈을 감으며 오쿠무라는 자신의 기억에 같은 이름을 붙이기로 했다.

 

바로 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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