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작은 떠들썩한 소음이다. 과학 단신 몇 개를 전한다며 가운을 걸쳐 입은 두 진행자의 모습은 돌팔이와 흡사하다. 오른쪽 진행자가 큐카드를 넘긴다. 한때 지상파부터 케이블, 유튜브까지. 카메라 앞을 주름잡았던 코미디언이다. 음주 운전으로 손님을 기다리고 있던 택시를 들이받고 면허취소에 징역 3년, 집행유예 1년. 당시 위자료는 물론이고, 사과의 의미로 개인적 보상을 하며 피해자에게 싹싹 빌었다는 당연한 소리가 미담으로 나도나 싶더니, 몇 달 전부터 소위 '짜치는' 프로그램부터 얼굴을 비추며 방송가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진행자가 큐카드를 다듬고 부자연스럽게 눈을 동그랗게 뜬다. 두 진행자 뒤쪽의 DLP가 다음 화면으로 넘어간다. '세계를 속였다… 신을 넘으려던 과학자의 대규모 사기극', 코미디언이 단신의 헤드라인을 읽으면 왼쪽 진행자가 크게 탄식한다. 가정폭력으로 이혼한 경력이 있는 아나운서다.
"사실, 이걸 제일 먼저 전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작가님, 이거 대본 순서가 이상하네? 이리 좀 와 봐."
허공에 뻗는 위협적인 손짓. 화면이 두어 명의 제작진 쪽으로 돌아간다. 종이로 얼굴을 가린 제작진이 손사래를 치면 우스꽝스러운 자막이 뜬다. '전 와이프가 아닌데요.' 화면 위로 작위적인 웃음소리를 입혔다. 이번 한 주, 과학계를 가장 떠들썩하게 한 소식 아니겠습니까. 코미디언이 서두를 연다. 아나운서가 손을 내리고 대본을 쥔다.
"인간이 달에 발자국 하나 찍고, 깃발 하나 꽂았던 게 세계의 경사였던 시절이 있었죠. 그러나 지금, 우주는 너무나도 친근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에 여행을 가는 것보다 우주선을 타고 가까운 행성을 방문하는 게 더 빠를 정도인데요. 이렇게 영영 미지의 존재로 남으리라 예상했었던 우주마저 정복한 인간. 하지만 여전히 시간만큼은 우리의 편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은 여전히 나이를 먹고, 나이를 먹는 만큼 늙어가고, 노화를 견디지 못하면 생을 마감했는데요."
"그런데! 몇 년 전, 이러한 노화를 막을 수 있다며 혜성같이 등장한 과학자 하나가 있었습니다. DNA의 단계에서 세포의 노화를 유발하는 단백질의 분자 구조를 재배열하여 노화를 막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 발표. 실제로 쥐는 물론이고, 인간과 흡사한 보노보의 신체적 노화 방지도 성공하며 말 그대로 세계를 뒤흔들었습니다. 분자생물학자 신재현 교수의 이야기인데요."
"맞아, 나 이거 듣고 엄청 고민했잖아. 며칠 뒤에 아는 동생 결혼식 주례 보러 가야 하는데,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백년해로하라는 말 빼야 하나, 하고."
"형님이 백년해로를 못 했는데 그 말을 왜 해요, 빼야지.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말 듣고 설레셨던 분들, 죄송하지만 그 설렘 나중으로 미뤄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 화요일, 학계에서는 해당 연구 결과의 조작을 의심했고, 학계의 조사가 시작되자 신재현 교수는 의혹을 부인하는 대신 조작이 맞다고 실토했다고 합니다. 이 연구로 세계 각국에서 받은 지원금만 약 3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천억 정도라고 하는데……. 이거 이상하네, 원래 바로 이렇게 자수를 하는 게 맞나?"
"자기 생각보다 스케일이 너무 커진 거 아냐? 교수잖아, 세상 물정을 뭘 알겠어. 사람들이 안티에이징에 이렇게까지 미친 걸 몰랐던 거지."
"근데 이걸 왜 했을까, 그냥 소소하게 몇억 땡기려고 그랬나."
"사기꾼 맘을 어떻, ……아, 근데 내가 이 사람 연구실 사진을 봤거든? 얼굴이, 어후. 그 얼굴이면 나도 늙기 싫겠더라. 피디님, 우리 자료화면 있나? 그거 찾아서 좀,"
사석인지 방송인지 모를 잡다한 얘기들이 오디오를 채우던 도중, 불현듯 소리가 끊긴다. 선오가 연구실 한가운데에 서서 TV 리모컨을 들고 있다. 한 손에는 길쭉한 나무 상자, 따분한 표정. 나는 반쯤 누운 채 앉아 있던 몸을 바르게 다잡는다. 가끔 귀에 물이 찬 것처럼 목소리가 불명확하다 뚜렷해진다. 한가해요? 할 거 없으면 지문인식이나 해제해 주지. 벨 눌러도 안 나와서 집에 간다는 소리를 못 하잖아요. 손에 있던 리모컨도, 본인도 소파에 볼품없이 내던져진다. 팔걸이에 걸터앉은 몸이 핸드폰을 느리게 넘긴다. '노화 꼼짝 마… 죽음을 정복하려던 과학자의 최후.' '그 사기는 왜 시작되었나.' '지원금만 4천억… 처벌은 어떻게?' 외신도 난리가 났는데, 내 발음을 마음에 안 들어 할 것 같아서 안 읽을게요. 축하해요, 세계적인 사기꾼이 됐네요. 내용과는 다르게 개구지게 웃는 낯이 보인다. 오래도록 시선이 머무른다. 완벽한 결과물로 학계에서 매장당한 기분이 어때요. 글쎄요, 생각보다 그렇게 충격적이지는 않네. 벙긋거리는 입술, 유난히 뭉개지는 목소리 사이로 시야에 들이밀어지는 나무 상자만 또렷하다. 벌꿀 향이 난다는 샴페인이다.
"그리고, 이건 진짜 같이 따고 싶어서 가져온 거. 축하합니다, 신재현 씨. 늙지 않고 영영 그 얼굴로 살아가게 된 거."
고마워요, 그리고 ……내가 그를 뭐라고 불렀더라.
0.00000…(중략)1.
"아침이에요. 모성의 시간은 2395년 11월 27일, 금요일로 평일이 마무리되는 시간입니다. 재현 씨 생일이고요. 축하해요. 이후 30시간, 태양풍의 영향으로 주위 자기장이 불안해져 외출은 권장하지 않고 있는데, 만날 사람이 있나요?"
높지도, 낮지도 않은 평이한 목소리가 잠을 깨운다. 인공조명의 조도가 눈에 띄게 떨어져 있다. 한 인간이 태어났다, 죽고, 다시 살아나도 남는 시간 이전의 일을 비교적 뚜렷하게 꿈으로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은 이후의 삶이 평탄했던 탓이다. 결막 사이로 식염수가 원활하게 흐르고 있는지 촉촉한 눈동자가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신재현 씨, 내 말 듣고 있나요. 기계음이 나지 않게 성대의 떨림을 조절하고, 과하게 정확한, 그러나 어눌하지 않은 자연스러운 발음을 만들기 위해 구강 내부 구조를 몇 번이나 손 봤던 기억이 난다. 그는 어느 글자의 발음은 지나치게 정확하면서, 어느 발음은 뭉개듯 흘리는 버릇이 있었다. 혀의 위치를 조절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재현 씨, 입술을 벌리며 눈꺼풀을 깜빡인다. 상체를 숙이더니 두 손을 맞부딪힌다. 마찰음이 단단하지 않고 찰박였다.
"죽었어요?"
"……아쉽게도 자연사는 안 되는 몸이라. 생일마다 만날 사람이 있냐는 말은 왜 하는지 모르겠네요,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이제 산 사람이 있나?"
"뭐, 혹시 모르니까?"
선오가 숙였던 상체를 든다. 느슨하게 어깨를 으쓱이고 등을 돌린다. 산 사람 사이에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건 인공생명의 유구한 버릇이다. 관절부를 움직일 때 유의미한 소음은 들리지 않으나, 피부 사이에 액체가 차 있는 듯한 마찰음이 거슬린다. 종종 내부에서 관절을 돌리는 윤활유가 혈관을 찢고 피부에 고이던 일을 떠올린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테두리에 걸터앉은 채 그를 불렀다. 선오 씨, 오늘은 점검을 좀 할까요. 서재로 향하던 걸음이 멎는다. 고개를 꺾고 싸느랗게 올라간 눈매를 접는다.
가끔 재현 씨가 제 전담의 같아요. 손바닥과 가장 밀접한 관절부의 실리콘을 가른다. 통증을 느낄 수 있도록 설계했으나, 종종 오작동하는 신호가 번거로워 끄고 지낸 지 오래다. 한쪽의 피부 면이 고인 윤활유로 부풀었다. 윤활유에 점성이 생겨 관절의 움직임이 불편했을 텐데, 원본의 성격이 고스란히 부여된 탓에 작은 불편은 함구한다. 그렇게 틀리지만은 않네요. 고인 윤활유를 제거하고 혈관의 상태를 확인한다. 자잘한 오류가 돌이킬 수 없는 고장이 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기름이 까맣게 눌어붙은 부위를 억센 천으로 닦아낸다. 사고 회로를 수정해야 한다.
"재현 씨."
"네."
"무슨 꿈이라도 꿨어요? 고맙다고 하길래."
"그냥, 당신이랑 예전에 있던 일."
원본은 몇백 년 전에 불에 타 사라졌다. 기억에도 남지 않을 만큼, 사소한 일에서 벌어진 사고였다. 타인과의 교류가 적지 않은 사람이었으나, 인간관계의 폭이 그리 깊지 않은 탓에 유해를 수습해 줄 사람은 없었다. 십몇 년 만에 모성의 땅을 밟고 뼛가루를 가져왔다. 복제품의 근원이 되었던 건 당시 뼛가루의 유전정보와 내 기억에 남은 말, 그리고 행동들. 뇌리에 남아있는 많은 사람 중에 복제품의 형태로 그가 내 옆에 남은 것은, 단순히 타이밍 좋게 들어온 다량의 유전정보의 몫이 컸다고 생각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원본은 시간의 순리대로 살아가길 원했다는 점이다.
원한다면, 나랑 같이 이렇게 사는 건 어때요. 샴페인은 향에 비해 떫었던 기억이 난다. 선오의 표정도 비슷했다. 샴페인치고는 도수가 높았다. 잔에 들어있던 술을 단숨에 비우고, 요깃거리로 내어두었던 큐브 치즈를 두어 개 씹었다. 진도가 너무 빠른데, 우리가 무슨 대단한 사이라고…. 특별한 사이죠, 세계를 뒤흔들 비밀을 함께 간직하는 사이. 치즈로 텁텁한 입안을 달래고, 다시 한번 잔을 채우기까지 그의 표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뭐. 버릇처럼 입에 붙은 단어로 말문을 열고, 머리를 긁적이고, 애매하게 입꼬리를 당겼다. 그 딴에는 어색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입술이 비대칭으로 기울어졌었다.
"나는 지금도 이 삶이 너무너무 길어서요, 미인으로 해소되지 않는 갈증이 있다고 할까……."
"미인을 밝히는 중국 황제 같은 말을 하네요?"
"아니, 유쾌하게 풀자면 그렇다는 거죠. 난 자살할 깜냥이 안 되는데, 그러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몸으로 영원히 돈을 벌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는 걸 지켜봐야 하는 거잖아요. 제정신으로 어떻게 그러지."
"나는 제정신이 아니다?"
"오늘 말에 회전이 없네, 취했어요?"
"별로, 평소보다 도리어 술이 늦게 도는 기분이에요. 간의 해독 작용에도 영향을 주나. 그렇다면 두 가지를 해결하면 의향이 있단 소리네요."
"뭐, 어떻게 해결하려고요."
"돈은 나한테 빌어먹고 살면 되는 거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어느새 주위에는 나밖에 안 남겠지. 똑같이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몸으로 사는……."
질색하던 낯, 입에다 던져줬던 큐브 치즈, 술이나 마시라면서 비지도 않은 잔을 채우고, 연신 들리던 초인종 소리는 귀에도 담지 않고, 여전히 비뚤어진 입꼬리로.
"일찍 죽고 싶어지니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였던가.
"네?"
"……아뇨, 잠깐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엄지손가락 부근에 기름이 고여있었네요. 움직이는 게 불편했을 텐데."
"조금 더디다는 생각만 했어요. 돌아가는 것도 문제는 없었고."
"다음에는 무언가 이상하면 바로바로 말해줘요, 오래 고여있었다면 부품이 산화됐을 거예요."
"이건 수정 사항인가요, 아니면 고려 사항인가요?"
"수정이에요. 이걸로 몇 번째였죠?"
"141번째예요. 가장 처음 수정사항은 과하게 존중하는 말투, 두 번째는 타인에 대한 관심도였고, 세 번째는 손톱 옆의 굳은살을 물어뜯는 습관, 네 번째는 방수 한계 시간까지 물에 들어가 있는 점이었고,"
"거기까지. 수정 전 행동 패턴은 모두 유전정보와 원본의 기록, 그리고 내 경험에서 비롯된 부분이라고 했죠. 생각보다 모르는 부분이 많았네."
"함께 한 시간의 분량이 현저히 적으니까요. 5%, 아니지. 3%도 감지덕지네요."
3%. 그가 이르게 곁을 떠났다고 해도 길지 않은 기간이다. 복제품의 수정 사항은 단순히 그의 성향과 기호에 맞춘 부분도 있으나, 24시간 함께 생활하게 되며 내 기호에 맞춘 부분 역시 포함되어 있다. 기본 바탕이 원본의 유전정보라고 한들, 포함된 1차 집단과 사회화 과정에서 많은 부분이 변화되었을 것이다. 3% 역시 내 주관에 따라 의도치 않게 해석된 부분이 있겠지. 입맛에 맞춰 수정하고, 환경에 적응하고, 평소와 다른 관계도에 놓이게 된 이 복제품은 원본과 몇 퍼센트나 닮아있을까. 선오는 엄지손가락을 까딱거린다. 관절부를 확인하는 움직임이다. 이전에도, 내가 이렇게 그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이 있었던가. 이제 그만 가봐도 될까요? 할 게 좀 남아서. 그가 내 허락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었던가?
"선오 씨."
"아직 점검이 남았나요?"
"나랑 같이, 이렇게 사는 거 어때요?"
비대칭으로 기울어지지도, 떫지도 않은 표정으로 입매가 부드럽게 올라간다. 건조한 낯이 저항 없이 허물어진다. 미미하게 차오르는 눈 밑의 살, 얕게 벌어진 입술 틈으로 속삭이듯 멋쩍은 소리가 흐른다. 좋네요, 재현 씨랑 오래오래 함께 있을 수 있는 거. 익숙한 듯 낯선 호의다. 문득 그 뒤의 말을 떠올린다. 근데 왜 나예요, 더 좋은 사람 많지 않나. 성격이 좋다든지, 돈이 더 많다든지, 같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는 능력이 있다든지. 한동안 입에 담을 일이 없어 기억에서도 사라졌던 단어가 문득 떠오른다.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님이랑 끈질기게 사는 게.
"작가님."
"……나 부르는 거예요?"
어색하게 되묻는 억양. 식염수가 흐르는 실리콘 위로 떠오르는 감정은 명확하다. 눈으로 관찰이 어려운 미세한 부품들과 섬세하게 엮인 섬유의 조화다. 아뇨, 옛날 생각이 떠올라서. 선오가 자잘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따라 상념이 많네요. 말을 남기고 자리를 뜬다. 기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폭 들어간 가죽의 옆에 기름 묻은 천이 보인다. 3%, 혹은 그 이하의 수치를 100%로 만드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100%가 맞다는 확신을 가져다줄 존재는 어디 있지. 천 옆으로 갈라낸 조직들이 조각조각 붙어있다. 멀리서 기계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