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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줄과 물방울

 

 

 

 

 

안도 스바루가 '다시' 도망쳤다. 지난 소동에서 채 반년도 지나지 않은 기간이었다. 이스즈는 당황하지 않는다. 사무소에 연락하여 자신이 확인하지 못한 스케줄이 있는지 체크하고, 자동차 키를 집어 드는 게 전부다. 다음 일정은 이튿날 오후 다섯 시. 비행기표를 예매할 정도로 빠듯한 시간은 아니었으나, 자동차를 선택할 정도로 여유로운 시간도 아니었다. 최선이라고 할 수 없으나 차선의 선택지는 신칸센이었다. 그러나 도쿄로 돌아올 때는 옆자리에 동행인이 있을 것이다. 멀미가 심한 동행인을 고려했을 때 신칸센은 차선이 아니었다. 까다로운 동행인은 전철에서도 내내 창밖을 바라보아야 할 정도로 멀미가 심했다. 스바루가 탈 수 있는 차는 이스즈의 차뿐이었다.

도호쿠 자동차 도로를 타고 도쿄에서 아키타 초입까지는 약 일곱 시간. 중간에 눈이 내리지 않길 바랐으나, 이스즈가 두 번째 파킹 에리어에 들렀을 때 NHK에서는 도호쿠 지방의 강설 소식을 전했다. 겨울철 아키타에 내리는 눈은 대부분 소낙눈으로 끝나지 않는다. 혹여 성근 눈이 내리더라도 입자가 크고 오래도록 내려 도로가 눈밭이 되는 건 순간이었다. 도쿄에서는 폭설이 드물어 굳이 스노우 타이어를 쓸 일이 없었다. 차량 내부 청소를 한 뒤 스노우 체인을 다시 넣어둔 기억이 없다. 이스즈는 운전석에 오르기 전 트렁크를 열었다. 교통사고 수습용으로 챙겨둔 표지판 몇 개가 전부다. 코트 안주머니를 뒤적이다 담배를 물었다. 예상 시간이 두 시간은 늘어난 터였다. 아키타 초입까지만 해도 아홉 시간, 현 초입에서 시내까지 두 시간을 잡는다면 운전대를 잡는 시간만 해도 열한 시간이다. 이스즈는 반쯤 태운 담배를 입에 문 채 앞좌석의 콘솔 박스를 뒤적였다. 몇 년은 쓰지 않았던 차량용 재떨이를 꺼냈다. 재를 털고 담배를 비벼 껐다.

운전대를 다시 잡고 얼마 지나지 않아 라디오에서는 Wham의 Last christmas가 흘렀다. 크리스마스가 이 주 앞이었다. 핸들에 걸친 손가락만 까딱거린다. 열어둔 재떨이에서 구겨진 꽁초의 쓴 내와 누린내가 동시에 올라왔다. My god I thought you were someone to rely on me ……. 이스즈가 가사를 중얼거렸다. 뒤로 노래가 이어져도 한 대목만을 중얼거렸다. 그렇게까지 바란 건 아니지만. 흐린 목소리와 함께 느리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앞에서 사고가 났는지, 차량들이 기적처럼 갈라졌다. 비상등을 켜고 차의 앞머리를 돌렸다.

 

스바루가 오른손을 떨기 시작한 건 사고 이후였다. 자동차과의 대부분은 외향은 사나워도 차에 진심인 사람들이었다. 자동차정비기능사 자격을 미리 따둔 사람 중에는 졸업 전에 일자리가 정해진 이들도 있었으며, 스바루도 그중 하나였다. 졸업식을 두 달가량 남겨두고 눈길에 오토바이가 미끄러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들이받은 가드레일은 단단했고, 뒤로 따라오던 차량도 없었기에 사고는 경미했으나 무의식적으로 바닥을 짚었던 손의 부상이 컸다. 수술 이후에도 스바루의 손은 종종 제 의사와는 무관하게 몸을 떨었다. 그 빈도는 하루에 두어 번 정도였으나 실습 중 몇 차례의 실수를 거듭하기에는 충분했다. 모터에 들어가는 자잘한 부품을 놓치거나, 너트 드라이버로 부품에 잔흠집을 냈다. 결과물의 완벽함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동차에 한해서는 실수를 용납하기 싫은 어린 치기였을지도 모르나, 스바루는 제 진로를 포기했다. 이런 사람이 내 차를 정비하는 건 나도 싫겠다. 홀가분한 말투였다.

졸업 이후 방황의 시간을 겪지 않고, 다음 진로를 손쉽게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우연찮게 들어온 스카우트 덕분이었다. 수학여행으로 갔었던 간사이 지방에서 사진을 요청했던 몇 사람 중에는 모델 사무소의 매니저가 있었다. 도무지 쓸만한 신인이 보이지 않아 고심하던 중, 앨범에 남아있던 스바루의 사진을 다시 보게 됐다는 설명이었다. 교복을 보고 학교 마크를 검색해 기어코 자신을 찾아낸 매니저의 제안에 스바루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승낙했으며, 졸업 후 취업이나 진학 대신 휴식을 선택했던 이스즈는 그 행적에 동조했다. 나도 할까. 뭘요, 모델을? 아니, 나는 메이저에서 먹힐 얼굴은 아니니까 스바루 매니저 같은 걸로. 그게 형 마음대로 될까요. 모르지, 그 사람 메일 주소 알려줄 수 있어?

스바루는 한 달 뒤 도쿄에 투룸을 얻었고, 동시에 요츠하 이스즈라는 동거인이 생겼다. 스바루가 이스즈에게 말을 놓은 건 그즈음이었다.

모델로서 스바루의 위치는 빠르게 궤도에 올랐다. 데뷔 전 땜빵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간 광고 지면 촬영 건이 SNS에서 화제가 된 탓이었다. 이 빨간 머리 애 누구? 라는 간단한 게시글은 스바루의 얼굴을 인터넷상에 빠르게 퍼트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학창 시절 별다른 SNS를 하지도, 데뷔도 하지 않은 스바루의 '미지'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무소로 물밀듯 섭외 요청이 들어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도호쿠의 한적한 현에서 평생을 지냈으나 스바루에게 사람들의 관심과 선망은 결코 낯선 감정이 아니었다. 이스즈는 이 무렵 면허를 땄고, 스바루의 체력이 허락하는 한 도로주행 시 매번 스바루를 태우고 다녔다. 멀미에 취약한 스바루가 창문을 열지 않고도 견딜 수 있는 운전을 익히기 위해서였다.

 

이스즈가 아키타 시내에 도착한 건 막 밤 8시가 넘었을 무렵이었다. 도호쿠 지방에 가까워지기가 무섭게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더니, 아키타현에 진입하면서 눈은 폭설에 가까워졌다. 시내의 주차장은 모두 만차였고, 이스즈는 목적지 근처에서 몇 바퀴 돌다가 익숙한 경로를 선택했다. 제가 다니던 학교의 대문이 닫혀있는 일은 드물었다. 미약한 확률이 이스즈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었다.

스바루와 이스즈가 아직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은 시즈오카에서 대부분의 생을 보낸 이스즈가 폭설의 무서움을 실감한 시절이기도 했다. 중부에서도 온화한 시즈오카의 폭설과 아키타의 폭설은 강설량의 수준이 달랐다. 본격적으로 눈이 내리기 시작하는 계절이 되면 하나둘 한파며 강설 대비를 하는 모양새가 낯설었고, 폭설로 인한 휴교도 처음이었다. 미처 소식을 접하기도 전에 학교에 도착했던 어느 날은 후지와라가 교문 앞에서 겉옷을 꽁꽁 싸맨 채로 손을 내젓기도 했다.

마치 지금처럼. 이스즈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범퍼 앞에 선 후지와라를 본다. 우산이 있고 없음의 차이지, 차림새는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동차과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지만 나이가 어린 탓인지, 이런저런 행사에 동원되었던 걸 떠올리며 이스즈는 가볍게 아는 체를 한다. 후지와라 선생님. 뭐야, 학교에 낯선 차가 들어와서 여기는 주차장이 아니라고 쫓아낼 생각이었는데…… 요츠하였나. 졸업생치고 너무 자주 보인다. 후지와라의 말에 이스즈는 웃는 게 전부다.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바깥 주차장이 다 만차라 차 좀 잠깐 대도 괜찮을까요. 졸업생이면 남도 아니지, …… 근데 또 안도냐? 그냥, 아키타가 그리워서 왔어요. 도쿄는 너무 붐비잖아요, 소란스럽고, 산만하고. 후지와라가 작게 혀를 찬다. 쌓인 눈을 헤치고 성큼성큼 걷는다. 이스즈의 어깨 위로 덮인 눈을 턴다. 그립다고 평일에 대뜸 올 거리는 아니지. 너무 싸고돌지 마라, 너랑 걔랑 몇 살이나 차이가 난다고. 우산은 있냐. ……아뇨, 눈이 올 줄은 몰라서. 후지와라는 이스즈의 손을 쥔다. 제가 들었던 우산의 손잡이를 쥐여주고 손을 휘적였다. 얼른 가, 나도 퇴근해야 돼. 대답을 듣는 대신 몸을 돌리는 것까지 한결같은 사람이다. 이스즈는 미지근한 우산의 손잡이를 몇 번 죔죔거린다. 다음에 오면 반납할게요. 됐으니까 그만 와라, 멀잖아…….

 

궤도에 오른 지 2년, 스바루의 방황 아닌 방황이 시작된 시점이었다. 오로지 다음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서 비행기를 타고, 잠깐의 눈도 못 붙일 정도의 빡빡한 일정에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며 위화감이 시작되었다. 여유는 어떤 사람에게 상념의 시작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게 사라졌어도 자신의 인생이 멀쩡히 돌아갈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에 스물둘의 나이는 못내 어렸다. 다른 흥미를 찾으려고 했으나 도쿄에 널린 게 차였다. 자신이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바꾼다고 한들 눈에 밟히는 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2년 동안 이스즈의 운전은 스바루의 멀미에 적응하였고, 스바루는 창밖을 보는 대신 적당한 잡담이 가능해졌다. 다만 희미한 냄새에도 멀미가 되풀이돼 이스즈는 3년 동안 피우던 연초를 끊었다. 스바루, 우리 가끔 가던 오락실 있잖아. 응. 거기 지하도 있던 거 알아? 그래? 그건 몰랐네……. 너 실습 없어서 학교 빠진 날, 심심해서 들렀었거든. 지하에서는 미니카 레이스를 하더라. 레이스만 하는 게 아니라 돈도 걸고, 돈이 걸렸으니 미니카 개조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학생들은 원래 안 들여보내는데 난 그때는 성인이었으니까……. 스바루는 다다음 날, 아키타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이스즈는 끊었던 연초를 다시 피우기 시작했다. 스바루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8시 반, 대부분의 가게가 폭설로 일찍 영업을 끝낸 거리에서 오락실은 홀로 LED 불빛을 반짝거리고 있었다. 소리마저 덮인 눈밭에서 게임기의 전자음이 드문드문 정적을 찢었다. 이스즈는 오락실 발 매트에 눈이 묻은 신발을 털고 우산을 접었다. 가게 안쪽의 알바생이 이스즈를 보더니 휴대폰을 내려두었다. 반년 사이에 알바생이 바뀐 건지, 밝은 갈색으로 염색한 남자의 귀에 피어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지하 열려있나요. 아, 가게 방침으로 지하 출입은 성인만 허용하고 있는데, 혹시 마이나카드나 운전면허증 있으신가요? 여기……. 내려가도 됩니까? 확인됐습니다,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안에 혹시……. 네? 아니요, 감사합니다. 이스즈는 무심코 스바루의 여부를 확인하려다 입을 다문다. 스바루는 지하에 내려가도 돈은 걸지 않는다고 했다. 다만 곳곳에 얼굴이 팔렸다는 걸 생각하면 위태로운 행동인 건 달라지지 않았다.

깔끔하게 단정되어 있는 위쪽의 시설과는 다르게 아래는 날 것의 느낌이 크다. 눈으로 공기가 습해져 내려가는 문을 열자마자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숨을 들이켜는 점막마다 축축하고 끈덕진 게 눌어붙을 것 같은 공간이었다. 이스즈가 철제 계단을 한 칸 밟을 때마다 발소리가 허공 곳곳으로 울렸다. 곰팡이 냄새보다 퀴퀴한 담배 냄새가 강해질 무렵, 계단과 레이싱장을 잇는 철문이 나온다. 기름칠이 되지 않아 돌아가는 손잡이가 뻑뻑하다. 레이싱장 내부는 고함으로 꽉 차 있었다. 입구를 관리하는 건물주가 이스즈를 알아보았다. 언제 오나 했지, 안도는 4번 레인. 간만이네요, 별일 없었죠. 근황은 됐고, 안도나 빨리 데려가라. 저러다 여기 작업장 차리겠어. 반년 동안 건물주의 수염이 조금 더 희끗해져 있다. 이스즈는 고개를 까딱이고 안으로 걸었다. 비마저 얼어붙는 추위가 무색하게 내부는 도박꾼들의 열기가 후끈하다.

스바루는 4번 레인 상단에서 미니 드라이버를 쥐고 있었다. 손끝에 미니카의 기름을 묻히고 앞사람과 실랑이 중이었다. 아저씨, 그렇게 하면 샤시가 오래 못 버틴다니까? 배터리 내구도도 금방 떨어질 거고. 상관없어, 어차피 이번 한 판이 마지막이니까. 어? 자기 차를 소중하게 여겨야지……. 미니카의 배를 뒤집고 뚜껑을 연다. 지금도 모터가 뜨끈뜨끈하구만. 본래 자신이 다루었어야 할 것보다 한참은 작은 모터를 쥔 채 유심히 살핀다. 이스즈는 스바루가 이 시간을 조금 더 즐기게 두고 싶었으나 안타깝게도 시간상으로 여유가 없었다. 도로가 마비되기 전에 도호쿠 지방을 떠나야 했다. 이스즈는 언 손을 매만지다가 주머니에 손을 욱여넣었다. 4번 레인으로 다가가 스바루의 옆에 섰다. 안도 씨. 모터의 작은 나사를 돌리던 스바루가 고개를 든다. 내뱉으려던 말과 대상이 다른지, 벌어졌던 입술이 다물렸다가 다시 열렸다. 이스즈 형. 이스즈는 감흥 없는 얼굴로 레인과 스바루의 손을 두어 번 힐끔거린다. 안도 씨, 이제 가야 해요. 정리하고 위층으로 올라오세요. 잠깐, 잠깐만, 형! ……아저씨, 미안한데 이것까지는 못 해주겠다. 알아서 코일 감고 해 봐.

생각보다 금방 나오셨네요. 지하의 문이 열리자 알바생이 곧장 말을 건다. 이스즈는 예, 놀러 온 게 아니라서요. 짧게 답하고 입구에 두었던 우산을 챙겼다. 바깥엔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입자가 작아졌으나 눈발은 직전보다 거세게 쏟아졌다. 습관적으로 담배를 물려다 손을 내린다. 이스즈의 말이 소음에 묻힌 게 아니라면 스바루는 곧장 자신을 뒤따라올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희미하게 쇳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오락실의 자동문이 열렸다. 세상이 하얀 덕분인지 스바루의 빨간 머리가 이스즈의 눈에 단숨에 들어온다. ……형, 여기까지 오는 거 안 지쳐? 안도 씨, 눈이 와서 길이 막힐 거예요. 올 때도 평소보다 길이 막혀서 좀 걸렸으니까. 차는 학교에 있고, 눈 많이 오니까 우산 들고. 빨리 가죠, 시간 없는데. 아까부터 뭐야, 그 높임말은. 안도 씨는 또 뭐고. ……스바루, 우리 정말로 시간 없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가면서 얘기해. 이스즈는 접었던 우산을 펴 스바루에게 내민다. 곧장 우산을 받지 않고 시선이 길어진다. 끝내 스바루의 손을 쥐고 사이로 우산 손잡이를 넣는다. 중간에 휴게소 안 들를 거야. 차 오래 타야 하니까 밥은 도착해서 먹자. 오늘은 옆자리 말고 뒤에 타, 피곤하면 눈이라도 붙이게. 이스즈는 스바루의 대꾸를 듣지 않고 걸음을 옮긴다. 스바루는 우산을 위로 내밀었다가, 주저하다가 이윽고 제 머리 위로 들었다.

형, 난 형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스바루가 입을 연 건 자동차도로에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뒷좌석으로 가라는 이스즈의 말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옆자리를 골랐다. 눈길로 인한 감속과 제설차량의 움직임에 아키타현의 초입까지 나오기에도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일이야 적성에 맞는다고 쳐도, 계속 내 담당으로 남아있을 필요는 없잖아. 왜, 난 스바루 담당 좋아. 이렇게 멀리 드라이브도 오고. 매니저 바꾸고 싶어? 스바루는 내가 질렸구나. 스바루는 입을 다문다. 대답 대신 콘솔 박스의 재떨이를 건드렸다. 반쯤 타다 만 꽁초 외에는 든 것이 없다. 꽁초, 원래 여기 안 두잖아. 스바루, 이건 재떨이야. 재떨이가 뭔 줄 알지? 토 쏠리게 안 한다고 차 방향제까지 없애고 내부 청소를 일주일마다 하는 사람이 꽁초를 여기다 둔다고? 화났잖아, 지금. 근데 왜 아무 말도 안 하냐고. 난 형이 이해가 안 돼. 이스즈는 라디오를 튼다. 야밤의 라디오에서는 여전히 기상 정보가 흘러나온다. 도호쿠 지방의 폭설은 새벽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며 가정에서는……. 정적을 메꾸는 라디오 소리에 낮은 한숨 소리가 섞인다. 스바루가 좌석을 뒤로 젖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눈을 감는다.

기상 정보가 끝이 나면 이스즈는 주파수를 돌린다. 이 시간 즈음이면 사람들이 하루를 차분하게 정리할 수 있도록 클래식 방송이 흐르는 곳이 있다. 짐노페디 1번. 눈 오는 풍경과 기묘하게 맞물리지 않는 처연함이 영롱하다. 스바루. 이스즈는 곁눈질로 옆자리를 본다. 스바루는 미동도 없이 같은 자세로 누워있다. 아까 주차장에서 후지와라 만났거든, 후지와라가 그러더라고. 너 너무 싸고돌지 말라고. 나는 그게 선생이라 눈에 보이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구나……. 짧은 연주가 끝나고 라디오에서는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진다. 연주회의 음악을 따온 건지, 갈채가 제법 길게 이어지자 이스즈는 라디오의 볼륨을 줄였다. 그러게,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말 뒤로 이스즈는 입을 다문다. 줄어든 볼륨 속에서 진행자가 다음 곡을 안내했는지, 긴 트럼본 소리가 곡의 시작을 알린다. 웅장하고 높은 소리가 차의 중앙으로 뻗어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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