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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을 넘은 도시 외곽지역은 무서울 정도로 조용하다.

신호가 무색할 정도로 차량이 없는 도로를 보고 있자면, 해가 떠 있을 때의 시끌벅적함은 다 환상처럼 느껴졌다. 개미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적막함에 작게 한숨 쉰 세벡은 어느 건물 뒤편에 몰던 차를 세웠다.

 

‘왜 하필 나를 보내신 거지.’

 

본래라면 이 시간엔 내일 일정을 체크 한 후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데. 설마 개인 지시를 받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했다. 제 직무는 말레우스의 경호이지 않나. 조사 같은 일은 다른 이에게 맡겨도 될 텐데, 왜 자신이 선택받은 건지 알 수 없다. 심지어 다른 팀 녀석과 같이 일해야 한다니. 여러모로 달갑지 않다.

하지만 이해할 수 없다고 거부할 수도 없으니. 제가 모시는 이의 명령을 어찌 거부할 수 있겠나.

세벡은 진중한 얼굴로 제게 지시하던 말레우스의 얼굴을 떠올리고 등을 곧게 폈다.

 

‘다 말레우스 님도 뜻이 있어 그리하신 거겠지.’

 

자신은 그저 훌륭히 일을 처리한 후 제 우두머리를 자랑스럽게 해주면 그만인 일.

세벡은 그리 생각하려 노력했지만, 그 결심은 차 유리를 두드리는 소리에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똑똑. 운전석 창문에 들리는 노크 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얄미운 얼굴이 미소 짓고 있다.

아, 이 녀석이랑 일해야 해서 싫었던 건데.

뱃속에서부터 치밀어오르는 탄식을 꾹 눌러 삼킨 그는 이마를 한 번 짚은 후 창문을 내렸다.

밖과 안이 통하게 되자, 차가운 밤공기와 함께 옅은 향수 냄새가 불어닥쳤다.

 

“안녕, 자기야. 오랜만이다. 그렇지?”

 

세벡의 심란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멜로드는 능청스럽게 웃어 보인다.

정말로, 쓸데없이 잘생긴 얼굴이다. 저렇게 생겨 먹은 낯짝이면 자기 형 따라서 빌 셴하이트 밑에서 미디어 활동이나 하지. 뭐하러 그 수전노 밑에서 일하는지 모르겠다.

대꾸하는 것도 잊고 자연스럽게 눈앞의 얼굴에 대한 평가부터 내렸던 그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저었다.

 

“헛소리 그만하고 타라.”

“헛소리라니. 인사는 중요하다고. 자기네 일하는 곳에선 더 그렇지 않나?”

“함부로 남의 일터에 대해 떠들지 마라. 중독자들 돈이나 털어먹는 주제에.”

“응, 그렇게 번 돈으로 너희 형님이 협상하고 사람 포섭하고 하는 거야~ 돈은 땅 판다고 나오지 않아. 석유는 나올 수도 있지만.”

 

하여간, 말 하나는 잘한다. 아마 아줄도 멜로드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 부하로 삼은 게 아닐까. 심지어 툭하면 사람을 꾀려고 드니, 도박에 인생을 거는 멍청이들을 상대하기엔 제격일지도 모른다.

 

‘다른 놈들에게도 자기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필요 이상으로 예의를 차려야 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그는 멜로드의 호칭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지금은 일일이 말싸움을 할 때가 아니었다.

해가 뜨기 전 일을 마무리하고, 말레우스의 곁으로 돌아간다.

오늘 밤 가장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아는 세벡은 시선을 피하고 비어있는 조수석을 가리켰다.

돌아오는 반응이 시시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제게도 본업이 중요했기 때문일까. 멜로드는 군말 없이 옆자리에 앉아 안전띠를 둘렀다.

딸깍. 안전띠 버클이 잠기는 소리를 들은 세벡은 얼른 차량을 출발시켰다. 목적지까지는 본래 1시간이면 가지만, 이렇게나 도로가 휑하다면 좀 더 일찍 도착할 거 같았다.

 

“평소에도 그렇게 인상 쓰고 다녀?”

 

그렇게 5분이나 흘렀을까. 조용히 운전만 하고 있던 세벡과 달리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겠는지 멜로드가 슬쩍 말을 걸어왔다.

그건 적막을 깨는 고작 한 마디였을 뿐이었지만, 세벡은 그것조차도 싫었던 걸까. 안 그래도 미간을 구기고 있던 그가 이를 꾹 깨물었다.

 

“……운전에 방해되니 좀 닥쳐줬으면 한다만.”

“잘생긴 얼굴인데 그렇게 인상 쓰고 다니면 아깝잖아. 비즈니스의 기본은 미소라고.”

 

저건 자신을 놀리는 건가.

분명 칭찬임에도 멜로드가 자신을 우롱한다고 생각한 세벡은 즉시 브레이크를 밟았다.

끼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멈춘 자동차의 앞에는 빨간불이 선명했다.

 

“네 녀석, 지금 우리가 뭘 하러 가는 건지는 아나?”

 

굳이 신호를 받아 멈추었을 때가 되어서야 제대로 대꾸하다니. 참으로 성실하지 않나.

당장이라도 호통칠 거 같은 세벡의 얼굴은 마치 야수와도 같다. 그러나 멜로드는 상대가 무섭지도 않은지 착실히 묻는 말에만 대꾸했다.

 

“비자금 새어 나간 거 조사하러 가잖아. 아닌가?”

“잘 아는군. 알면서도 그딴 식으로 구는 건 이해가 안 가지만.”

“이런, 세벡. 그게 무슨 소리야. 심각한 표정으로 일하면 사건이 빨리 해결되기라도 해? 웃으면서 하자고.”

 

저건 헛소리다. 태도는 곧 성과가 된다.

허세를 부려 사람 주머니를 털어먹는 이들에겐 웃는 게 득일지도 모르겠지만, 상식적으로는 진지하게 집중하는 편이 더 성과가 잘 나오지 않겠나.

이런 기본적인 것까지 말해줘야 한다니. 이럴 거라면 차라리 혼자 일하는 게 낫겠다.

파란불로 바뀐 신호에 다시 자동차를 출발시킨 세벡은 상대하기도 귀찮은지 아예 말을 돌려버렸다.

 

“이름 부르라고 허락한 적 없다만.”

“그럼 뭐라고 불러?”

“지그볼트 씨.”

“오, 우린 딱히 상하관계도 아닌데?”

 

그건 사실이다. 자신들은 일하는 부서가 다르긴 하지만, 직급은 비슷했으니까.

애초에 서로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서도 안면이 있는 이유가 같은 시기에 조직에 들어왔기 때문이지 않던가. 신입 환영회서 처음 만난 동기가, 바로 이 녀석이었지. 그게 벌써 3년 전이라니. 세월이란 얼마나 빠른가.

어떻게든 반박할 거리를 찾기 위해 과거의 일까지 떠올리는 세벡과 달리, 멜로드는 간단명료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우리 그냥 편하게 부르자. 너도 멜로드라고 불러도 돼. 성씨로 부르는 건 너무 딱딱하니까.”

“사양하지.”

“그럼 너도 ‘터빈 씨’라고 하던가? 그래야 공평하잖아.”

 

아, 진짜 시끄럽네.

세벡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말레우스는 물론, 제 부서의 사람들은 차량으로 이동할 때 업무 이야기 외엔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대체 이 자식은 뭐가 문제라서 조잘조잘 떠드는 건가.

 

“너…….”

 

이대로는 안 된다. 이 상태로 목적지까지 가다간 임무도 전에 진이 다 빠질 거 같다.

옆에서 자꾸 말을 거는 동행자 때문에 도무지 운전에 집중할 수가 없는 세벡은 결국 한마디 따끔하게 경고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잠깐!”

“헉!”

 

밝은 빛이 앞 유리에 번쩍이고, 거대한 존재감이 끼어들어 차량 앞을 가렸다.

뭐가 튀어나온 건지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부딪힌다.

세벡은 본능적인 위험을 느끼고 얼른 방향을 바꾸었다.

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원형을 알 수 없는 여러 파편이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비어있는 옆 차선으로 급히 차체를 돌린 그는 얼른 브레이크를 밟아야 했다..

 

“이, 이게 무슨…….”

 

상황을 살피기 위해 고개를 똑바로 든 세벡은 저 멀리 달아가는 대형 트럭을 보고 탄식했다. 뛰어난 반사신경으로 얼른 핸들을 튼 덕분에 차량은 범퍼 부분만 떨어져 나갔을 뿐 큰 사고는 나지 않았지만, 자칫하면 죽을 뻔 하지 않았나.

분명 행인도 거의 없는 조용한 밤거리에, 어디서 저런 커다란 차가 갑자기 튀어나온 걸까.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상황이지 않나.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뭐, 뭐지?!”

 

저 멀리 달아나나 싶던 트럭이 이내 다시 이쪽으로 돌진하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저 멀리 뒤쪽에서부터 보이는 불빛들도, 약속이나 한 듯 두 사람이 탄 차량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후우.’ 과격한 운전 때문에 뻐근해진 목을 매만지며 한숨 쉰 멜로드는 돌연 품에서 권총을 꺼내 들었다.

 

“아~ 조사하러 가는 거 들켰나 보네. 아니길 바랐는데. 하여간 외부 인력을 써야 하는 일이라 여기저기 쥐새끼가 너무 많아.”

“뭐? 잠깐. 설마…….”

 

그 말은, 누군가가 자신들을 일부러 쳐버리려고 한다는 뜻인가.

아까의 장난스러운 말투와는 전혀 다른 짜증 섞인 차가운 목소리가 참으로 낯설다. 여러모로 심각함을 인지한 세벡이 사실 확인을 위해 되묻자, 멜로드는 자연스럽게 낯선 차를 뒤적이며 대꾸해 주었다.

 

“자기야, 운전 잘하지?”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것보다, 그딴 식으로 부르지…….”

“그래, 알겠어. 세벡. 지금부터 도로에서 범퍼카 놀이를 하려는 차들이 몰려들 텐데, 잘 피해야 해. 우리가 죽기엔 아직 많이 젊잖아?”

“허?!”

 

설마 저걸 상황 설명이라고 지껄인 건가.

세벡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지만, 아까처럼 말을 주고받을 시간은 없었다. 멜로드의 말대로 트럭과 세 대의 자가용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으니까.

 

“큿!”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단은 살고 봐야 한다.

평소 운전에는 자신이 있던 세벡은 재빠르게 그 자리에서 도주했다. 목적지를 향하되 자신들에게 들이박으려는 차들을 피하며 운전하는 건 꽤 고된 일이었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초인적인 능력이 발휘되는 법이었다.

 

“오, 찾았다. 럭키.”

 

그 사이. 차량에 숨겨져 있는 권총을 두 자루 더 찾아낸 멜로드는 우선 자신의 권총을 들고 창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탕. 탕. 탕.

연속으로 울린 세 발의 총성과 동시에, 뒤에서 달려오던 차량의 양쪽 앞바퀴가 터졌다.

이제 남은 차량은 총 셋. 멜로드는 곧바로 다음 차량을 향해 총구를 겨누었지만, 상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이 정도 공격은 예상했다는 듯, 쫓아오는 차량에서도 총을 든 손들이 뻗어 나온 것이었다.

 

“윽!”

 

아무리 명사수라도 3대 1로 싸우는 건 힘든 법. 멜로드는 최대한 총알을 소모하지 않고 바퀴를 맞추려고 집중했지만, 몇 발은 빗나가 차량의 몸체에 맞고 말았다.

게다가 그 또한 총을 맞고 말았으니. 머리를 스쳐 지나간 총알에 신음을 삼킨 멜로드는 상처에서 나는 피를 닦지도 못한 채 방아쇠를 당겨야 했다.

탕. 탕. 펑.

또 하나의 추격 차량이 고꾸라지는 걸 백미러로 확인한 세벡은, 다친 몸으로도 계속 성과를 내는 멜로드의 상태를 살폈다.

 

“이봐, 괜찮나?”

“응. 난 괜찮으니까, 운전해.”

“이마에 피가 난다만?!”

“안 죽었으니 됐지. 이제 두 대 남았으니까 집중하자.”

 

참 이상한 일이다. 평소 멜로드의 성격을 생각하면 호들갑을 떨며 아프다고 할 줄 알았는데. 이마의 피가 턱까지 흘러내려 뚝뚝 떨어지는데도 군말 하나 없다니.

생각보다 근성 있는 상대 모습에 묘한 안도감을 느낀 세벡은 더욱 속도를 높여 멀리 달아나려 했다. 달아나는 차가 빨라지자 절로 자신들도 속력을 높이게 된 추격자들은, 더는 총알이 없는지 무리해서 들이박는 일에만 집중할 뿐이었다.

 

“이크.”

 

속도가 빨라지자 더욱 조준이 힘들어진다. 멜로드는 작게 탄식했지만, 포기하지는 않았다. 이 상황을 마냥 악재라고 볼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라면, 양쪽이 아니라 한쪽 바퀴만 터져도 엎어질 터.

상황 판단 능력이 좋은 그는 가까이 다가온 자동차의 왼쪽 앞바퀴에 총알 두 발을 먹여주었다.

쾅!

아니나 다를까. 최대 속도로 달려오던 차량은 균형을 잃고 가드레일에 부딪혀 멈추었다.

이제 남은 것은 맨 처음 들이박았던 트럭뿐이다. 멜로드는 바짝 쫓아 온 트럭에 타고 있는 이들을 확인하고 헛웃음 지었다. 교통사고에 대비한 건지, 그들은 주변에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보호장치를 설치해 두었었다.

 

“남을 죽이려고 들 땐 자기도 죽을 각오를 해야지, 정신머리가 글러 먹었네.”

 

소리 없는 비웃음을 흘린 그는 총구를 조금 위로 올렸다.

원래는 바퀴만 터뜨리려고 했는데, 마음이 바뀌었다.

그는 일부러 앞 유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방탄 처리를 한 건지 트럭의 앞 유리는 깨지지 않았지만, 그들에겐 앞이 보이지 않게 된 것만으로도 큰 불편이었던 걸까.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던 트럭은 결국 꺾어지는 도로에서 제대로 돌지 못하고 콘크리트 벽에 부딪혀 멈춰졌다.

드디어, 모든 추격자가 사라졌다.

세벡은 조용해진 도로에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멜로드는 다 쓴 총을 버리고 새로운 총을 쥘 뿐, 긴장을 놓지 않았다.

 

“세벡, 유턴해.”

“뭐?”

“트럭으로 가.”

 

굳이 따돌려놓고 다시 돌아가자니?

하지만 저 진지한 꼴을 보니, 상대에게도 무슨 생각이 있어 보인다. 아까 전 추격자들을 처리하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덕일까. 멜로드를 향한 신뢰감이 조금은 상승한 세벡은 순순히 트럭 근처로 돌아가 차를 세웠다.

‘후우.’ 달리는 차가 멈추자 곧바로 밖으로 나선 멜로드는 피에 젖은 앞머리를 대충 쓸어넘겼다.

지혈도 하지 않고 나서는 상대가 내심 걱정이 된 걸까. 세벡 또한 운전석을 나와 멜로드의 뒤를 따랐다.

 

“어이, 터빈! 어디 가나?!”

“쥐새끼 잡으러. 중무장 한 덕분에 크게 안 다쳐서 도망치려면 도망칠 수 있을 테니, 얼른 처리해야지.”

“중무장했다고?”

“어. 들이박을 각오로 세팅한 건지, 안전장치를 한가득 해두었던데?”

 

원래 제일 중요한 건 뒤처리다. 독한 상사와 선배들에게 부려 먹히며 마무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된 그는 쥐 죽은 듯 조용한 트럭에 다가가 탑승자를 밖으로 끌어냈다.

 

“어라?”

 

운전석에 타고 있는 이를 아스팔트 바닥에 냅다 집어 던진 그는 조수석에 있는 녀석도 끌어내려다가 멈칫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일 뿐. 자신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떠는 상대를 가차 없이 차 밖으로 내던진 멜로드는 권총을 장전하고 습격자들 앞에 섰다.

 

“너, 너는…….”

 

그런데, 세벡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먼저 내던져진 이를 보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그는 말을 잇지 못하다가, 식은땀으로 젖은 손으로 얼굴을 몇 번이고 쓸었다.

 

“왜 그래, 세벡. 아는 녀석이야?”

“……이 녀석, 우리 팀 말단이다.”

“그래? 그럼 이 두 녀석이 짜고 쳐서 한탕 했나 보네.”

 

아마 아줄과 말레우스도 어디서 구멍이 났는지 예상했기에, 자신들 밑에서 한 명씩 보내 사건을 해결하려고 한 거겠지.

멜로드는 상사들의 계획에 마음속으로 손뼉을 치고 나중에 끌어내린 이에게 총구를 겨누었다.

‘히익’ 몸을 움츠리며 비명을 흘린 목표물은 멜로드를 올려다보며 울먹이고 있었다. 마치 자비를 바라는 듯한 그 시선에 위화감을 느낀 걸까. 세벡이 귓속말로 물었다.

 

“혹시 저 녀석이랑 아는 사이인가?”

“우리 카지노 본점 딜러. 들어온 지는 좀 되었는데, 신입 때부터 일을 너무 잘해서 수상하다 생각했거든. 역시 필요 이상으로 유능한 놈들은 뭐가 있다니까.”

 

정이라곤 한 톨도 없는 설명이었다. 같은 팀에서 배신자가 나온 것에 충격을 받은 세벡과 달리, 썩은 부분은 잘라내면 그만이라는 듯한 그 태도란.

차가운 태도에 위기감을 느낀 딜러는, 갑자기 운전한 이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터, 터빈 씨. 저는 그냥 이놈에게 이용당한 것뿐이에요! 주범은 이 새끼입니다!”

“뭐?! 너, 네가 먼저 빼돌릴 만한 돈이 있다고…….”

“시끄러워! 날 그 카지노에 넣어준 게 누군데! 네가 손을 쓴 거잖아!”

 

이런. 내분인가.

어느새 싸우기 시작한 배신자들 때문에, 세벡도 멜로드도 할 말을 잃었다.

이런 진흙탕 싸움이라면 몇 시간이고 구경할 수 있지만, 안타깝게도 자신들은 바쁘다. 멜로드는 맹렬히 상대방을 비난하는 딜러를 물끄러미 보다가 몸을 숙여 눈높이를 맞췄다.

 

“그래서, 너는 그냥 장기말이다?”

“그럼요, 네!”

“아하, 그렇구나.”

 

빙긋 웃는 얼굴은 피가 흐르고 있음에도 참으로 아름답다. 그 호의적인 표정에 안도한 딜러는 저 또한 웃어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완전히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럼 이 녀석만 추궁해도 되겠네.”

 

탕!

망설임 없이 검지를 움직이자, 딜러가 그대로 쓰러진다.

왼쪽 가슴에 총알이 박힌 채 쓰러진 몸뚱이는 움직이지 않았다. 거침없는 처단에 잔뜩 긴장한 또 다른 배신자는 저 또한 죽지 않을까 싶어 눈치를 살폈지만, 멜로드는 세벡 쪽으로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세벡, 차 멀쩡하지?”

“어? 아. 그래.”

“다행이네, 험하게 운전해서 어디 고장나진 않았나 싶었는데. 이 녀석 싣고 가자. 빼돌린 돈은 아마 거기 있을 거니까. 내부 안내라도 시켜야지.”

“……음, 그러지.”

 

참으로 냉정한 결단이다. 자신은 믿을만하다 판단했던 부하가 배신자라는 게 속이 쓰린데, 멜로드는 얼마나 오래 알아왔든 배신자와는 상종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래. 조직을 위해선 저게 맞겠지.

하지만 뒷좌석에 묶어놓은 저 배신자와 말레우스를 향한 충성을 맹세했던 나날을 떠올리면, 역시 자신은 자세한 걸 캐묻기 전까진 총은 쏘지 못할 것 같은데.

 

“세벡은 역시 정이 많네.”

 

손수건으로 상처를 수습한 멜로드는 다시 안전띠를 매더니, 아까 전 만났을 때와 비슷한 능청스러운 태도로 말을 이었다.

 

“그러다가 뒤통수 맞아. 살아남기 위해선 매정해질 줄도 알아야 해.”

“……네 녀석에게 조언 듣고 싶지 않다만.”

“조언이 아냐. 걱정이지. 어디 가서 죽지 마.”

 

그러니까, 네가 왜 그런 걱정을 하냔 말이다.

자신을 바라보는 그윽한 눈빛과 얇은 입술이 그려내는 호선에 속이 간지러워진 세벡은, 고개를 휙 돌리고 가속 페달을 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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