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민상담] 얘들아 니네는 썸남 직업이 수상하면 어칼 거야?
익명8873 | 01.14 | Am 11:33
근데 얼굴도 성격도 니 취향임.
키도 커.
애가 착한 것 같은데
낮에 연락이 잘 안대고 뒤늦게 연락오면 이제 일어났대
근데 딱히 집은 아닌 것 같음
근데 얼굴도 성격도 니 취향임.
- 덧글 (131) -
익명9492
⎿ 난 김치찌개
익명7301
⎿ 쓰니야 제발 익게에 글 올리게 하는 남자 만나지마
익명8873 (글쓴이)
⎿ @익명7301 근데얼굴도성격도니취향임.
익명6084
⎿ 쓰니야 제발 익게에 글 올리게 하는 남자 만나지마222222
익명8873 (글쓴이)
⎿ @익명6084 근데얼굴도성격도니취향임.
익명1034
⎿ @익명9492 계란말이도사주떼요
익명5798
⎿ 키워드흥미유구매의사잇음~~~~!! 영업계속ㄱㄱ
익명1842
⎿ 얼마나 잘생겼는데
객관적이고 정확한 묘사 부탁드립니다
익명8873 (글쓴이)
⎿ @익명1842 일단 키가 큼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잰 게 187cm였다는데
구라 아닌 것 같음 (사유: 내가 173이라 옆에 서 보면 대충 견적 나옴)
키 크면 얼굴도 같이 크는 사람 많은데 그런 거 없고 걍 뭔 … 잘생김
근데 그 얼굴에 이목구비가 조목조목 다 들어가있음 무쌍인데 답답한 느낌 없이 잘생겼고
특히 웃을 때 잘생겼는데 니네 쾌남 웃음 … 뭔지 알아?
보고만 있어도 체한 거 내려가고 3일 묵은 숙취가 사라지고
여기가 서울인지 동해안 앞바다인지 대한민국 알프스인지 모를 정도로 입매가 시원하게 트이는데
와중에 눈밑에 애교살 슬쩍 접히는게 진짜 잘생김
익명4502
⎿ 얘 객관이랑 정확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아
익명5720
⎿ >>근데 딱히 집은 아닌 것 같음<<
내가 보기에는 썸남이 쓰니를 수상하게 여겨야 할 것 같은데
익명9492
⎿ @익명1034 익명아 계란말이가 먹고 싶어? 근데 니 후라이팬은 왜 그렇게 깨끗해? 계란말이 먹고 싶은 사람들은 손에 기름이 수십번 튀고 계란 껍질이 이리저리 달라붙어 사람인지 계란수인인지 모르겠던데 니 오천원짜리 다이소 후라이팬은 왜 평생 기름한번 안 둘러본 후라이팬처럼 깨끗해? 너 요리 안 하지? 썩 그렇게 계란말이가 먹고 싶은 것도 아니지? 배고프지도 않은 거지?
익명3329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위에존나갈구네
익명1034
⎿ @ 익명9492 아ㅅㅂ 집밥이면 진작 말을 하시죠
익명 8873 (글쓴이)
⎿ @익명5720 ㅋㅋ아니라고 걍 우리 건물 방음이 겁나 안대는데
자는 게 아니라 뭔 죽은 것 같은 수준으로 생활소음이 없어서 그럼
썸남 바로 옆집 살거든
익명1842
⎿ 옆집산다고?
익명9492
⎿ 옆집산다고?
익명5720
⎿ 옆집산다고?
익명2050
⎿ 본인만 보고 감 안 올 때는 친구들 만나봐
끼리끼리는 사이언스야 ㅋㅋ
익명6105
⎿ 쓰니야 직업이 수상하다는 게 정확히 먼 말이야?
걍 무슨 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
아님 다른 뜻?
.
.
.
까똑.
[누나]
까똑. 까똑.
[혹시 베이킹소다나 매니큐어 지우는 거……]
[있으면 나 한번만 쓸 수 있을까? ㅠㅠ]
까똑.
(여우가 바닥에 누워서 우는 이모티콘)
까딱하면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바꾼 지 얼마 되지 않은 핸드폰은 제법 묵직하여 사람 코 하나 정도는 충분히 깨트리고도 남았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얘가 범띠였던가. 자축인묘진사오미……. 어쩌다가 외우게 되었는지 생각나지 않는 12간지를 중얼거리며 내 나이에서 역산한다. 신, 신이 뭐였더라. 쥐, 소, 호랑이, 토끼 …… 아무튼 범띠가 아니고, 그렇다면 딱히 본인 얘기를 했다고 온 게 아니라는 합리화를 끝냈으니 됐다. 핸드폰의 알림창을 내려 주렁주렁 달린 카톡 중 하나를 누른다. [502호]가 보낸 여우는 여전히 바닥에 누워 울고 있었다. 근데 얘는 뭘 이런 걸 빌려달라지, 대청소라도 하려나.
[주방세제로 쓰는 베이킹소다 있어]
[지금 가져다줄까?]
[ㅏㅇㅏ니]
[아니]
[나지금집이아니라]
[누나 오늘 계속 집에 있어?
이따가 내가 갈게]
옆집에서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화장실에서 세숫대야를 떨어트리거나 엎으면 나는 소리랑 비슷했다. 동시에 으악, 하는 짧은 비명이 들렸다.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된 신도시 초입의 준향맨션, 그중 복도 가장 끝방에 있는 501호는 내 집이었다. 위치가 위치인지라 저 정도의 가벼운 생활 소음이 들릴 정도로 바짝 붙은 집은 502호가 전부였고, 방금 카톡을 보낸 502호의 남자, 지금은 집에 없으니 나중에 찾아오겠다고 카톡을 보낸 박병찬은 끝내주는 타이밍으로 …… 화장실에서 세숫대야나, 그 비슷한 것을 밟고 미끄러진 듯했다. 병찬아, 아무래도 니네 집에 도둑이 든 것 같다. 전송 창에 완성해 둔 문장을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백스페이스를 눌렀다가 점을 찍고, 다시 눌렀다가 공백을 지운다.
[사실]
[방금 급하게 들어와서 ㅎㅎ;]
메시지 두 개가 화면 위로 올라온다. 아무래도 날 바보로 보는 것 같은 이 기막힌 녀석이…… 내 수상한 썸남이었다.
준향맨션 502호의 남자
준향맨션이 완공된 건 약 7년 전, 신도시 개발 계획이 시민들 사이에서 서서히 돌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계획만 있는)지하철역 인근, (막히지 않는다면)고속도로 초입까지 단 10분, (역시 막히지 않는다면)서울까지 채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다는 지리적 조건은 신도시 개발 계획과 맞물려 준향맨션의 집값을 천정부지로 뛰게 했고, 거품이 빠지는 데에는 5년이면 충분했다. 3년 안에 개발이 시작된다던 말과 다르게 지자체는 5년이 지나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와중에 지하철역 공사만은 계획대로 진행이 되어 가뜩이나 좁은 차선을 반토막 냈다. 반토막 난 차선에 맨션 인근은 언제나 명절 고속도로처럼 붐볐고, 준향맨션이 소위 '날림 공사'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여름이면 옆집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에 잠을 못 자겠다, 는 과장이 조금 섞인 제보가 지역 신문사의 귀에 들어간 탓이었다. 준향맨션은 '신축'이라는 메리트가 서서히 희미해지며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할 5년 차에 연이어 폭탄을 맞았다.
빠져나가는 세입자를 잡을 수 없던 집주인은 울며 겨자 먹기로 월세를 낮추었고 마침 나는 인근에 집이 필요하던 차였다. 방 하나, 거실 하나, 주방 별도에 화장실도 하나, 그리고 풀옵션. 비슷비슷한 조건 중에서도 준향맨션은 보증금과 월세가 압도적으로 낮았다. 교통체증? 안 나가면 되는 거지. 층간소음? 귀마개 끼고 살면 되는 거지. 일말의 이성이 태생적으로 소음에 취약한 몸뚱어리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냐고 속삭였으나, 돈 앞에서 나는 뵈는 게 없었다. 그나마 가장 꼭대기 층의 가장 끝방을 고른 게 이성과 타협한 선택지였다. 걱정이 무색하게 준향맨션은 입주자가 드물었고, 나는 옆에도, 아래에도 사람이 없는 생활을 1년 정도 지속했다.
박병찬을 처음 본 건 내가 준향맨션에서 얼추 1년을 채웠을 여름이었다. 1년을 살면서 느낀 준향맨션의 가장 큰 단점은 '엘리베이터의 부재'였다. 승강기를 필수적으로 설치해야 하는 법적 층수는 '6층'이었고, 그 범위에 들지 못하는 건물의 경우 집주인의 자율이다. 방음 공사도 날림으로 한 양반이 승강기 설치를 할 리가 없었다. 1층에서는 사람이었는데 5층에서는 주검이 되어있는 일이 늘상이었다. 그 때문인지 5층의 입주자는 나 혼자였으며 하나뿐인 동생은 그 사실이 퍽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가뜩이나 혼자 사는데, 옆집에 사람도 없으면 더 위험하지 않나. 본가의 반찬과 함께 본인의 신발을 한 켤레 가져다 놓으며 꿍얼거렸다. 나는 당시 준오의 말에 큰 감흥이 없었고, 그렇기에 옆집 사람이 꼭 멀쩡하리란 보장이 있나, 따위의 대꾸를 했다.
그해의 여름은 유독 벌레가 기승을 부렸다. 드물게나마 입주자가 늘며 음식물 쓰레기가 늘어난 탓이었다. 구더기는 나만 잘한다면 집까지 기어들어 오지 않는 존재였고, 날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하수구를 타고 곳곳에서 들어오는 바퀴벌레만큼은 참을 수 없었다. 집주인은 몇 차례고 건물 소독을 하겠다, 얘기했지만 방역 업체의 머리카락도 보지 못했다. 밤이면 복도를 지나며 센서등이 켜질 때마다 바퀴벌레가 빛에 놀라 사방으로 퍼졌다. 삼 주 정도를 버티니 그 광경을 보고도 소리를 삼킬 수 있었다. 그날 밤도 어김없이 복도에서 바퀴벌레가 기어다녔고, 나는 월세만 아니었다면 진작에 이 맨션을 떠났을 것이라 생각하며 문 앞에 섰다. 1년을 살아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계단에 몸이 노곤했고, 밤에도 더위가 가시지 않아 목덜미는 땀으로 축축했다. 도어록의 커버를 밀고 비밀번호만 누른다면 안락하고 시원한 집이었는데, 나는 차마 도어록에 손을 대지 못했다. 엄지만 한 바퀴벌레가 도어록 중앙에서 더듬이를 꿈틀거렸다. 빛에도, 사람의 기척에도 놀라지 않고 우두커니 버티고 있었다.
누가 세스코 좀 불러줘…….
내 몸뚱어리의 절반도, 반의반도, 몇 번을 더 쪼개어도 그것보다 작을 존재에 집을 강탈당한 기분이 서러웠다. 나는 바퀴벌레의 주위에서 손을 휘적거리고, 그림자로 놀래켜도 보았다. 움직이지 않는 바퀴벌레에게 이토록 강렬한 패배감을 느낄 사람이 있을까. 센서등이 꺼지고 켜지기를 몇 번, 나는 최후의 수단으로 보다 물리적인 방법을 사용하기로 했다. 숨을 가득 들이켠 뒤, 길고 세게 바퀴벌레의 위로 불었다. 그제야 바퀴벌레가 의미 있는 움직임을 보였다. 바퀴벌레는 더듬이를 격렬하게 움직이다가 이윽고 날개를 파들거리더니 날아올랐다. 내 얼굴을 향해. 으, 아, 아악! 뒤로 주저앉는 몸이 삼 주 만에 소리를 질렀다. 동시에 502호의 문이 벌컥 열렸다. 뭐, 뭐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황당한 낯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도어록을 떠나 자유롭게 비상하던 바퀴벌레는 내 손 위로 안착했고, 나는 비명을 참을 수 없었다.
"……."
"……."
"……그, 죄송합니다. 야밤에……."
"아뇨, 아뇨! 그럴 수도 있죠. 여기 벌레가 좀 많긴 하더라고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고요, 옆집 …… 501호 사는 임선오라고 합니다."
"아, 안 그래도 인사 한번 드리려고 했는데 시간이 계속 안 맞아서요. 박병찬입니다, 한 달 전에 들어왔어요."
병찬의 앞에서 도무지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손을 털어내고 제발 저것 좀 잡아달라며 병찬의 바짓가랑이를 쥐었던 감각이 선명했다. 병찬은 말을 이어가는 내내 웃음을 참느라 힘들어 보였다.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던 건 아니고 그냥 말이 자꾸 끊겨서였다. 아, 진짜 존나 싫어. 세스코 불러달라고, 건물 소독 좀 하라고……. 바닥에 주저앉은 채 마음만큼은 오열하는 나를 일으켜 본인의 집으로 데려온 게 병찬이었다. 준오가 들었다면 제정신이냐며 뒷목을 잡고 넘어갈 일이었으나, 아무렇지 않게 바퀴벌레를 잡아 변깃물에 흘려보내는 모습을 본 순간, 이 옆이 벌레로부터 가장 안전한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물론 이성을 되찾기 전의 일이다. 이성을 찾고 보니 나는 밤 10시에 맨션 복도에서 바퀴벌레 때문에 소리를 지른 것도 모자라, 초면인 사람의 바짓가랑이를 쥐며 바퀴벌레 좀 잡아달라며 애원한 인간이 되어있었다. 통성명 이후에 할 말을 찾지 못해 공기가 적막했다. 아무래도 이제 떠나야 할 시간인 것 같다, 이대로 더 여기에 머물렀다가는 사회적으로 숨이 막혀서 죽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몇 번이고 무릎 위로 손바닥을 문지르다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저, 그. 병찬의 눈가에 웃음기가 짙었다. 상대도 나처럼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나 했더니,…… 입 벌리면 터질 것 같아서 그랬나?
"바퀴벌레 많이 싫어하시나 봐요."
"아니, 진짜 소리를 지를 정도로 싫어하는 건 아니거든요. 근데 걔가 얼굴에,"
얼굴에, 얼굴이, …… 기깔나시네요? 복도의 희미한 불빛에 의존한 채 올려보았던 얼굴과는 사뭇 다르다. 쌍꺼풀 없는 긴 눈이 반쯤 접힌 채로 나를 바라본다. 눈이 접히며 도톰하게 튀어나온 애굣살이 인상을 부드럽게 보이도록 만든다. 매끄러운 피부며 직선으로 다듬어진 콧대, 얇지만 가로로 길어 답답하지 않은 입술과 짙은 눈썹 등의 하나하나의 요소도 흠잡을 곳 없으나 무엇보다 파츠의 조화가 완벽했다. 와, 현실에서 이런 얼굴 진짜 간만에 보네. 바퀴벌레로 놀란 눈을 달래고 있으려니 병찬의 웃음기가 차츰 사그라든다. 미간이 살풋 좁아지며 아랫입술이 미미하게 튀어나온다. 이내 고개를 옆으로 까딱 기울인다. 그제야 내가 하던 말을 멈췄다는 걸 깨달았다.
"아, 얼굴로 날아올라서…… 아무튼, 다음에는 이런 일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진짜 죄송해요."
"사과받으려고 한 말이 아닌데."
"……? 그럼,"
병찬이 바지 주머니를 뒤적인다. 찾는 게 없는지 제 허리춤을 두드리다 이윽고 정장 재킷의 안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나저나 이 날씨에 정장이라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라도 퍽 깐깐한 일이겠거니 싶다. 병찬은 핸드폰의 잠금을 풀고 키패드를 열었다. 테이블에 내려두더니 내 쪽으로 민다.
"번호 교환하자구요."
"……왜요?"
"집주인이 건물 소독 안 해줄 것 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음에 또 바퀴벌레 나오면 부르세요."
"진짜 왜요?"
병찬의 눈이 빠르게 깜빡거렸다. 이런 미인이 친하게 지내자고 하면 달가운 건 제 쪽이었지만, 이유 없는 친절은 대가를 요구하기 마련이었다. 나는 핸드폰을 병찬의 쪽으로 밀었고, 병찬은 핸드폰을 내 쪽으로 다시 밀었다. 옆집이잖아요, 이웃사촌. 드문드문 얼굴 볼 사람이랑 어색하게 지내는 취미가 없어서 그래요. 여기 친구도 별로 없구요. 나랑 친해지기 싫어요? 퍽 애처로운 얼굴을 한다. 이웃사촌이니 뭐니, 이제는 사어나 마찬가지인 단어가 아니었던가. 그렇지만 저런 얼굴을 하는 데도 거절할 정도로 비싼 번호도 아니라 나는 결국 병찬의 핸드폰에 숫자를 찍었다. 사실 이웃도 이웃인데, 저 여기서 오래 살아야 할 것 같거든요. 기왕 사는 거 친한 사람이랑 가까이 살면 좋잖아요. 찍어준 번호에 전화를 걸며 병찬이 말했다. 나는 전화를 받으며 대꾸했다. 저는 여기 월세 오르면 나갈 건데요?
.
.
.
그날 이후로 이웃사촌의 얼굴을 하루걸러 하루 보았다. 바퀴벌레가 이틀 간격으로 꼬박꼬박 도어록 위에 앉아 있던 건 아니고, 이웃사촌의 연락이 대충 그 정도의 간격인 탓이었다. 커피 선물을 받았는데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 치약이 떨어져서, 장을 보러 가려던 찰나에 생각이 나서, 하다못해 저녁 메뉴를 고르지 못해서 연락을 하는 날도 있었다. 자주 얼굴을 본다고 하여 무조건 친해지는 건 아니지만, 우연찮게도 병찬과 나는 맞는 부분이 제법 있었다. 나는 커피를 좋아했고 단 음료를 쉽게 질려했으며, 병찬은 단 음료를 좋아하고 커피를 많이 마시지 않았다. 장을 보러 가서 대충 일주일 정도 먹을 양의 식재료를 사는 건 비슷했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가 명확하지 않아 메뉴를 고르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것도, 그러다가 대신 골라줄 이를 찾는 부분도 그랬다. 그렇게 반년 정도 지내니 우리는 처치 곤란한 기프티콘을 자주 교환하는 사이가 됐고, 요일을 정해놓고 장을 보기 시작했고, 가끔은 카톡으로 저녁 메뉴를 주고받다가 함께 밖으로 나가기도 했다. 서로의 나이를 알고 말을 놓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나 연락의 텀은 전과 비슷했는데, 그것도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짧아지기 시작했다. 주로 한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던 일이 양방향으로 바뀌면서였다.
이웃사촌 간의 정인지, 남녀 사이의 썸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옆집에 산다는 사실로 충분했다. 이러다 사귀면 개이득인 거고, 아니면 마는 거지, 하는 안일한 생각은 정신건강에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허나 신경에 거슬리는 부분은 의외의 곳에서 튀어나왔다.
"야, 나 뭐 하나 물어봐도 돼?"
"응?"
드물게도 둘 다 동시에 먹고 싶은 메뉴가 있었으며, 그 메뉴가 겹치는 날이었다. 근처에 마땅한 가게가 없어 배달 어플로 음식을 시키고 기다리는 중이었다. 병찬은 당연하게 501호로 건너왔다. 수치스러운 기억의 최고점을 갱신한 그날 이후로 나는 502호에 가본 적이 없다. 그저 집이 더러우려니 짐작했으나, 생각해 보면 의뭉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병찬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 이상, 낮에 보내는 연락이 낮에 돌아오는 일은 드물었다. 반년 동안 낮 시간에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 집이 더러운 사람치고는 장을 볼 때마다 이런저런 세척용품의 비중이 컸으며, 식재료의 비중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바깥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날은 정장 차림새였고, 친구가 없다는 말을 한 사람치고는 아는 사람이 많아 보였다. 병찬이 이사 온 후 복도에서 모르는 사람을 마주치는 날도 늘었다. 가끔은 병찬이 '어디 계시는지' 묻기도 했다, 내가 당연하게도 병찬을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처럼. 늘 손이 건조했고 자잘한 흉터가 많았다. 담배 태우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가까이 붙으면 내 것도 아닌 담배 냄새가 났다. 병찬은 소파에 옆으로 누운 채 반쯤 졸다가 고개를 들었다.
"너 무슨 일 해?"
"……갑자기?"
병찬이 두 손으로 제 낯을 문대며 상체를 일으켰다. 잠을 날리려는 행동이었다. 그렇게 피곤하면 그냥 가서 자지, 먹고 바로 자면 속 부대껴. 병찬이 고개를 젓는다. 굶으면 아침에 속 쓰려서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가 서서히 뜬다. 내가 앉아 있는 식탁과 가까운 쪽의 팔걸이에 턱을 괸다.
"맨날 궁금하긴 했는데, 일 얘기만 나오면 묘하게 말을 돌려서 처음엔 그냥 취준생인가 했지. 맨날 정장 입는 것도 그렇고."
"아, 면접 보러 다니느라?"
"어."
상상만 해도 괴롭네. 병찬이 장난스레 키득거리다 묻는다. 어떤 부서가 제일 어울리는 것 같아? 마케팅? 아니면 회계나 인사? 말이 자연스레 이어지는 것 같지만 결국은 최초의 물음에서 벗어나는 답이다. 대답하지 않으니 병찬의 눈썹이 아래로 미미하게 처졌다. 끝내 소파에서 일어나 식탁 맞은편에 앉는다. 옆으로 누워있던 탓에 눌린 머리를 가볍게 매만져준다.
"왜 갑자기 궁금해졌을까."
"말했잖아, 맨날 궁금했다니까."
"평소에는 안 물어봤잖아."
"마땅히 타이밍을 못 잡았던 거지. 또……."
"또?"
"지난주에 누가 우리 집에 왔었거든?"
"……응, 계속 말해봐."
502호 앞에 머무르는 대신, 501호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찾아올 사람도, 택배가 올 것도 없어 현관문의 외시경으로 밖을 보았다. 검은 정장을 입은 사내의 몸이 절묘하게 잘려있었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상태였다. 누구세요. 도어록을 믿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만일을 대비하여 현관의 체인을 건다. 말 좀 물을게요. 아래로 몸을 낮춘 채 올려다보아도 턱 끄트머리 정도가 한계다. 알 수 있는 건 피부가 희다는 정도인데, 이것도 복도의 불이 밝지 않아 확신하지는 못했다.
"여기 5층인데요."
"예, 알아요."
"뭐 때문에 그러시는데요?"
남자가 침묵하더니 상체를 숙이고 외시경에 눈을 가까이 댔었다. 덕택에 남자의 낯이 또렷하게 보였던 게 기억이 난다. 병찬 형, 지금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피부가 희고 사납게 생긴 남자는 그렇게 묻고는 몸을 세웠다. 이야기를 듣는 병찬의 낯이 천천히 굳었다. 아무튼, 우리 집에서 널 찾더라고. 박병찬 씨는 502호에 산다고 하니까, 알고 있다던데. 그럼 집을 착각한 것도 아닐 거 아냐. 앞으로 느슨하게 기울였던 상체를 바로 세운다. 동시에 누군가 집 문을 두드렸다. 거칠게 문을 내리치는 소리에 몸이 소스라쳤다. 배달이요, 앞에 두고 갑니다. 배달원의 목소리에 헛웃음을 뱉었다. 아씨, 깜짝이야……. 갑작스레 움츠러든 어깨가 뻐근하게 아렸다. 누나, 문 두드리는 소리에 원래 이렇게 놀랐던가? 어깨를 매만지니 병찬이 내 손을 밀어내고 욱신거리는 부위를 부드럽게 누른다. 아니, 얘기에 집중하다가, 아, 거기 진짜 아파. 누르는 손에 평소보다 힘이 들어갔는지, 아니면 뭉친 부위를 누른 건지, 손길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병찬은 눈이 마주치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웃었다. 엄살쟁이. 툭 뱉고는 자리에서 선다. 내가 가져올 테니까 앞접시만 놔주라. 어야. 등을 돌리고 싱크대에서 적당한 크기의 접시 두 개를 꺼낸다. 병찬이 현관 체인을 푸는 소리가 들렸다.
"미안, 누나."
해물뼈찜을 3분의 1정도 비운 상태였다. 배가 불러 수저를 놓기 직전이었고, 입안에서 매운 감각이 가시지 않아 찬물을 물고 있었다. 머금고 있던 걸 삼키며 쓰읍, 작게 숨을 들이켰다.
"내가 2단계 시키자고 했는데?"
"그거 말고, 누나 찾아온 사람. 내가 아는 동생이야."
아끼는 동생이라 무심코 내 얘기를 했다는 말이었다. 그날 만나기로 한 걸 깜빡한 채 다른 일정을 잡았고, 시끄러운 곳에 있느라 연락이 온 것도 몰랐다고 했다. 병찬은 젓가락으로 애꿎은 콩나물 대가리를 괴롭히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누나 연락은 되도록…… 바로바로 답장하려고 하는 걸 아니까, 그래서 찾아왔었나 봐. 혹시 아는 게 있나 싶어서. 내가 생각이 짧았어, 진짜 미안해."
"……진짜 아는 사람이야?"
"응, 거짓말 아니고 진짜."
끼리끼리는 사이언스라고 누가 그랬었는데. 그 말이 마냥 틀린 말은 아닌지 찾아온 이도 퍽 잘생겼던 것 같긴 하다. 먹는 내내 어째 조용하다 싶더니, 사과할 생각만 하고 있었나 보다. 다시 젓가락을 들고 뼈찜을 뒤적이다 고기가 붙은 것을 찾아 병찬의 앞접시에 내려놓았다. 음식으로 이러는 거 좀 …… 웃긴가. 알 게 뭐람, 둘밖에 없는데. 병찬이 앞접시 위 뼈를 보다가 젓가락으로 콕콕 찌른다. 음식으로 장난치는 거 아냐, 인마. 퉁명스레 뱉은 말에 병찬의 입매가 느슨해졌다.
"그런 거면 됐고, 나 솔직히 니가 …… 사채라도 쓴 줄 알았어."
"……뭐?"
"아니, 그렇잖아. 낮에 연락 안 되는 것도 그렇고, 무서운 사람들이 가끔 집 앞에서 기다리는 것도 그렇고. 이제는 나까지 찾아오는데. 나 그런 빨간 딱지에 트라우마 있어서 쫄았단 말이야. 아무튼, 청소용품도 엄청 사고, 손에 흉터도 늘어나고 그러길래 돈 갚으려고 온갖 일 다 하면서 그렇게 사나 했지. 근데 요새는 그런 추심도 영업시간 내에 해야 한다며. 너랑 얘기해 보다가 정 안 되면 신고하고 변호사 수임해서 개인회생 절차 밟아보자고……."
말을 끝내기도 전에 병찬이 웃음을 터트린다. 누나, 생각보다 나를 엄청 뜯어보고 있었구나? 야, 난 진짜 심각했거든? 웃어대는 꼴이 마땅치는 않았으나 밉지는 않았다. 아학, 하, 아 진짜, 응, 알지 알지. 근데 걱정 마, 나 아는 변호사 많아. …… 웃었더니 배고프다. 마저 먹어야지. 병찬은 앞접시 위 뼈에 젓가락을 댄다. 고기를 발라내려던 순간, 나는 내 젓가락으로 병찬의 젓가락을 쥐었다. 병찬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가느스름하게 접힌다. 누나, 먹을 걸로 이러는 거 진짜 치사한 거다. ……쫌 그렇긴 하지? 응, 완전. 단호한 대꾸에 할 말이 없다. 그래, 다른 것도 아니고 먹을 걸 줬다 뺏는 건 양심이 없지. 젓가락을 놓아주니 병찬이 고기를 마저 발라내 내 앞접시에 둔다.
"……너 먹어, 장난친 거잖아."
"머리 쓰느라 힘들었을 테니까 그거 하나만 더 먹어."
"참나, 끝까지……. 아, 근데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 나 체할 것 같으니까 밥 다 먹고 물어보면 안 될까?"
"별거 아냐. 니가 그랬잖아, 아끼는 동생이라 내 얘기 했다고."
"엉."
"뭐라고 했는데?"
어……. 병찬이 길게 말을 늘인다. 눈이 이리저리 굴러가다 문득 멈춘다.
"누나, 아직도 월세 오르면 여기서 나간다는 생각이야?"
"어? 어, 안 그래도 슬슬 오를 것 같더라. 여기도 이제 개발 시작했으니까 사람 몰리겠지."
"그럼 안 알려줄래."
"……월세 대신 내줄 것도 아니면서 치사하게."
"치사한 건 아까 누나고."
.
.
.
"형, 헛짓거리하지 마세요."
"형아가 지금 좀 바빠서 준수 말이 안 들리네."
유리 테이블 위 병찬의 발끝이 까딱거렸다. 갑이며, 을이며 자질구레한 말들로 빽빽하게 찬 부동산건물매매계약서를 뜯어 보려니 여간 골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아니다. 준공 이후로 본격적인 재개발의 시작까지 거진 7년이 걸렸으니, 그동안의 적자며 추후의 이익 따위를 고려하면 건물을 넘기고 싶지 않은 건 당연하다. 집중하기 좋은 환경에서 읽어도 모자랄 판에, 앞에서는 끊임없이 헐떡이며 우는 소리가 들린다. 건조한 눈을 손으로 비비다 병찬은 계약서를 테이블 위에 내팽개친다.
"하긴, 인장도 없는 계약서를 읽어봤자 무슨 소용이겠어."
"나, 나 어디 빚진 거 없어, 다 내 돈으로 세운 건물이고, 내가 관리하는 건데 왜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야!"
"요새 건물 관리 참 쉽다. 세워놓고 그냥 방치만 해두면 관리라네, 벌레가 들끓어도, 수상한 새끼가 건물에서 기웃거려도, 무너지지 않게 세워만 두면 끝인가."
"사람이, 거긴 사람이 없잖아……. 많아 봤자 열인데,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끄응, 병찬이 작은 신음과 함께 뻐근한 몸을 길게 늘인다. 다리를 내리려니 테이블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병찬은 고민 없이 유리 테이블을 걷어찬다. 거칠게 벽으로 밀린 테이블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 난다. 뻣뻣하게 고개를 들고 있던 이가 몸을 옹송그리며 바닥에 붙었다. 거기 수상한 새끼들 다 우리 애들이었던 건 기억하죠? 알지, 근데 그건 내 사정이고. 조각난 유리가 사방으로 튀어 병찬은 발끝으로 대충 길을 튼다. 유리 하나 밟았다고 구멍이 날 밑창도 아니었으나, 선물은 소중히 여겨야 했으니.
"건물 관리랑은 다른 말이지. 맞잖아."
"예, 참 존나게 맞는 말만 하십니다."
"엉, 고마워. ……아, 그래. 그 얘기 들으니까 생각났다. 준수야, 너 누나 보고 왔어?"
"며칠 전에요. 찾아가서 형 대학 후배라고 하니까 안심하던데요."
"누나가 뭐라고 안 해?"
"불법적인 일 하지 말라고."
준수야, 불법의 기준이 뭘까. 병찬은 발로 수그린 등을 누르려다 허공에서 까딱거린다. 이내 바닥에 발을 두고는 얌전히 쪼그려 앉는다. 형이 지금 하는 거요. 생소한 단어를 듣는 것처럼 병찬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머리를 감싸 쥔 채 벌벌 떨던 사람이 조심스레 고개를 든다. 차, 차라리 돈을 줄게, 맨션은 안 돼, 그것, 그것 때문에 다른 건물에서 까먹은 게 얼만데. 그건 안 돼. 본전 찾을 때까지 그건 모, 못 팔아……. 덜덜거리는 게 안쓰럽다기보다는 괴기하다. 돈에 대한 집착이 징그러울 정도로 크다. 아직도 본전이란 말이 입에서 나오네. 병찬은 턱을 괸 채 상대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하긴 내가 할 말은 아닌가. 병찬이 허공에 팔을 뻗고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사장님, 그럼 우리 이렇게 할까? 문가 근처에서 내내 구경만 하던 준수가 심드렁하게 계약서 뭉치를 줍는다. 테이블이 산산조각 난 탓에 함께 날아간 것들이다. 몇 장을 바닥에 내버리고 한 장만을 병찬에게 건넨다. 병찬은 바닥에 붙은 이의 시야에서도 잘 보일 수 있게, 계약서를 땅에 내려둔다.
"501호. 이거 하나만 팔자."
근데, 월세는 사장님 계좌로 계속 들어가야 하거든? 일 년에 한 번씩 모아서 송금해 주는 걸로 하고. 대신 시세는 재개발 고려해서 지금의 두 배로 쳐주고. 그럼 다른 건물도, 사장님도 안 건드릴게. 병찬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재촉한다. 손끝으로 계약서를 치는 간격이 점차 짧아지다, 상대가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멈췄다.
"그 사람 진짜 형이 뭐 하는지 모르는 거 맞아요?"
"에이, 그 사람이 뭐냐. 형수님이지."
"거기도 똑같이 생각해요?"
병찬이 작게 흥얼거리며 매매 계약서를 챙긴다. 당연, …… 아마 곧? 애매한 대답에 준수가 코웃음을 쳤다. 차이고 질질 짜지 마세요, 가오 빠지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