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비 종교에 대한 묘사가 살짝 있습니다.
현장 삼장 일행은 오늘도 어김없이 길을 떠났다. 애석하게도 그들이 지나치고 있던 곳은 아무것도 없는 광활한 사막이었다. 지면에서 올라오는 고열 때문에 오공은 산옥에게 기대 있었고 오정 역시 맨정신이라 보기 어려웠다.
“옆에 있는 놈들 괜찮냐?”
삼장의 물음에 산옥이 대답했다.
“아뇨, 법사님. 아무래도 곧 영혼이 나갈 것 같아요. 오아시스라도 있으면 좋겠는데.”
“오아시스도 오아시스지만, 머물 곳이 없어서 큰일이군요.”
운전하던 팔계가 그렇게 말하자 산옥은 말을 이었다.
“어째 보이는 게 죄다 사막뿐이네요. 모래, 모래. 모래.”
“산옥, 모래 얘기 그만 하면 안 돼? 말만 들어도 더워 죽을 것 같아…….”
“야, 야! 저기 봐!”
넋이 나가 있던 오정이 눈을 빛냈다. 그러자 모두가 그가 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마을이었다.
“살았다!”
“이야, 오정. 정말 오랜만에 꼭 필요한 도움을 주는군요.”
“너 그거 무슨 뜻이냐? 앙?”
투닥투닥하는 소리를 들으며 삼장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 그러자 다들 내려서 주변을 살폈다. 사막에 있는 마을은 경우에 따라서 이주할 가능성이 높았고, 그렇게 되면 당분간 야생 생활이었다. 한참 그렇게 둘러보는 와중,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뉘슈?”
깡마르고 파리한 인상의 노인이었다. 노인은 삼장 일행 면면을 살피고 무언가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이방인의 등장이 어쩌고, 까지는 그들도 대충 들었으나 나머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들고 있던 지팡이를 바닥에 던졌다. 휘어진 부분이 문 안으로 향하자 그가 말했다.
“들어오십시오, 낯선 분들이시여.”
순식간에 정중해진 어투에 모두가 영문을 알 수 없는 오싹함에 어깨를 문질렀다. 집에 들어서자 더욱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안에 있는 이들 중 살집이 있는 이들이 없었다. 다들 깡말라 있었고, 심지어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상한 기류를 느끼고 산옥이 먼저 발을 떼려 했다. 그러자 집에 있던 이들 중 하나가 그를 막고 말했다.
“우리는 아무도 당신을 해치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죄송하지만 저는 신용할 수 없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께서 당신들을 데려오도록 허락하였기에 여기에 있게끔 하는 것입니다. 신의 뜻에 따를 뿐이에요.”
신이라. 어떤 신이 자신의 추종자들에게 피골상접하게 두는지 알 수 없었기에 따지려던 산옥을 삼장이 앉혔다. 일단, 조용히 상황을 보자는 태도에 그는 팔계 옆으로 슬금슬금 자리를 옮겨 앉았다. 그러자 팔계가 산옥의 손을 꼭 잡았다. 찾아온 이방인을 위한 의식이라도 하려는지 노인을 필두로 하여 대접에 담긴 물을 손가락으로 훔쳐 툭툭 삼장 일행 머리카락에 뿌렸다.
“우리한테 뭘 뿌리는 거야?”
“일단 목소리 좀 낮춰, 바보 원숭이! 이놈들 꿍꿍이가 뭔지 알려면 일단 응해줘야 할 것 아냐.”
목소리를 높이려던 오공을 오정이 막았다. 삼장과 팔계는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고, 산옥은 연신 주변만 돌아보고 있었다. 작은 호롱불 하나에 의지해 밤을 보내는지 큰 램프같은 걸 찾기 어려웠다. 물방울 다음에는 쌀알이었다. 쌀알을 맞으며 모두가 인상을 찌푸렸지만 팔계만이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무어라고 주문을 읊던 노인이 의식을 마치고 삼장에게 다가갔다.
“그러고 보니, 당신은 현장 삼장이시군요.”
“나를 아나?”
“당신의 명성을 모르는 이들은 없겠지요.”
노인은 일행들 면면을 살피고는 천천히 그들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 달라고 말했다. 여전히 오공과 산옥은 불안했으나, 나머지 셋이 큰 동요 없이 있었기에 조용히 식사 자리까지 이어졌다. 아무도 선뜻 식사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다던 오공조차 젓가락을 들기 겁나는 눈치였다. 그런 와중에 산옥이 먼저 음식을 한 입 먹었다. 그의 행동에 모두가 시선을 모았다.
“오늘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내일 죽을 위기에 처하거나 똑같은 거 아니에요?”
“넌 애가 겁도 없냐.”
“안 드실 거면 저 주세요. 먹게.”
산옥이 아무렇지 않게 먹자 팔계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하는 마음이었다. 팔계는 식사하는 대신 산옥을 지켜보기로 마음먹었다. 오공도 그를 따라 먹었고 먹지 않은 건 나머지 셋이었다. 둘을 보던 팔계가 오정과 삼장에게 말했다.
“무슨 일 있을 수 있으니 오공을 잘 살펴 줘요.”
“너는 쟤 살펴라. 대체 무슨 생각이었냐, 쟤는.”
시간이 지나 오공은 별 문제가 없는 듯했으나 산옥은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아무래도 그가 먹은 것에 문제가 있던 게 틀림없었다.
“산옥!”
쓰러진 그를 다시 침대에 옮긴 팔계가 다급하게 움직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이 머무르던 방문이 열렸다. 오정이었다.
“괜찮냐, 산옥은?”
“아니오. 상태가 안 좋네요. 쓰러졌어요. 오공도 그런가요?”
“걘 좀 나아. 아까 얘보다 덜 먹었잖아. 토하기는 했는데 안에 들어있던 독극물에 반응이 별로 없었나봐.”
“삼장은요?”
“바보 원숭이 상태 보고 바로 할머니한테 갔어.”
협상이라도 하려는 건가. 팔계는 생각에 잠기더니 오정에게 말했다.
“산옥 좀 보고 있어 줘요.”
“어디 가?”
“금방 올게요.”
음식에 독극물이 들어 있었는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었다. 그는 최대한 샅샅이 뒤졌다. 부엌과 찬장, 창고 같은 곳을 뒤적이고 있노라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뭘 하시는 거죠?”
하지만 팔계는 둘러댈 여유가 없었다. 그는 가벼운 손놀림으로 제게 다가온 이를 제압했다. 그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아아, 안 돼요. 지금은 놀아드릴 시간이 없답니다.”
제압당한 상대를 보던 팔계가 삼장에게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팔계가 삼장에게 갔다. 그도 어느 정도 무력 제압이 필요하다 여겼는지 삼장 주변에는 쓰러져 있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노인을 본 삼장이 말했다.
“할망구. 난 길게 말 안 해. 해독제를 가져올래, 아니면 저승으로 보내줄까.”
“신이 주신 음식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그러한 문제가 생긴 것을 어찌합니까.”
“내가 말 길게 안 한다고 했다. 해독제 가져올래, 저승으로 보내줄까.”
“삼장.”
“왜.”
“찾았어요.”
그 사이에 팔계는 온갖 곳을 다 뒤지고 주변에 있던 이들도 다 제압한 뒤 뭔가를 찾아낸 모양이었다. 그가 든 약초를 본 노인이 팔계에게 달려들었지만 삼장이 빨랐다. 그는 총을 들어 노인의 옷자락을 관통했다.
“경고하는데, 이 이상 손대지 마. 저승 가고 싶지 않으면.”
팔계는 재빨리 달려가 약초를 억세게 꾹 쥐어 즙을 낸 후, 산옥과 오공의 입에 들어가게끔 했다. 오공은 금방 기운을 차렸지만 아무래도 많은 음식을 먹은 산옥은 정신을 쉬이 차리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기운이 났는지 팔계를 보고 말했다.
“정신이 들어요, 산옥?”
“네. 죄송해요.”
“아니에요, 정신이 들었으면 됐어요. 여기서 더 머무르지 말고 다들 나가는 것으로 하죠.”
팔계의 말에 오공, 오정, 산옥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 상태를 회복한 오공과 달리 산옥은 걷는 게 시원치 않았다. 망설임 없이 팔계가 그를 들어 안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삼장이 말했다.
“망할 새끼들. 출구를 아예 봉쇄해 버렸어.”
“어쩔 수 없이 전부 밀어버려야 하는 걸까요.”
“도대체가 요괴도 아닌데 다들 정신줄이 나가서는 뭐 하는 짓인지.”
“일단 나가자! 계속 있으면 쟤네 또 달려들 거 아니야.”
오공이 한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출구를 향해 달렸다. 각자의 무기로 제압을 해 가며 나아가는 동안 산옥은 석연치 않은 기분이 느껴졌다. 그는 팔계에게 말했다.
“아냐, 이상해요.”
“뭐가요?”
“저들, 완전한 인간이 아닐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 우리같은 요력을 알기 어려운데.”
“잠시만 기다려 봐요.”
산옥은 팔계의 목을 한 손으로 껴안고 다른 손으로 작은 불길을 일으켰다. 뒤쫓아 오던 이들을 향해 불길을 날리자 그것에 맞은 이가 순식간에 재가 되었다. 모두가 놀랐다.
“산옥, 어떻게 알았어?”
“그냥, 아까 이마에 물을 떨어뜨릴 때부터 서역 쪽과 관계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긴 말 필요 없이 어서 가죠!”
서역에 다다를 즈음부터 서역 관련 서적을 줄기차게 읽어대더니 서역 요괴들 서적까지 본 건가 싶어진 팔계가 저도 모르게 경탄했다. 그는 산옥을 안고 계속 달렸고, 산옥은 팔계에게 매달려 불길을 일으켰다. 다른 이들도 각자 나서서 무기를 사용해서 그들을 쓰러뜨렸다. 문제가 있다면 금방 사면초가가 되기 직전이었다는 점이었다. 그 때 팔계가 고개를 돌렸다.
“여러분, 저 쪽에 탑이 있는데 일단 저 쪽까지 한 번 몰아보죠.”
“알았어!”
몰아치는 서역 요괴들을 빠르게 해치우는 동안 그들은 탑으로 부지런히 올라갔다. 그러나 무슨 조화인지 쓰러트려도 계속해서 수가 늘었다. 산옥은 팔계에게 매달려 가면서 눈으로 주변을 훑었다. 그가 눈을 빛냈다. 수가 늘어난다는 건 누군가가 조종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것은 아무래도 노인이 저지를 가능성이 높았다. 산옥이 노인을 찾아낼 즈음, 그들은 탑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을 찾은 산옥이 외쳤다.
“저 할머니한테 제대로 매운 맛을 보여줘요! 어차피 할머니 빼고는 쓰러뜨려도 다 무용지물일 것 같으니까.”
“접수완료!”
모두가 발에 차이는 요괴들을 뒤로 하고 곧장 노인에게 달려들었다. 오공과 오정이 제압하고 삼장이 마천경문을 읊자 노인과 요괴들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그러자 산옥이 팔계에게 말했다.
“자기.”
“네.”
“나 눈 감고 있을 테니까 뛰어내려요.”
“네?”
“아예 여기를 불질러야 할 것 같아. 밑이 어차피 바다니까 그냥 뛰어내려요. 눈 감고 있을게.”
“괜찮겠어요, 산옥?”
“안 그러면 뒤질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뛰어요.”
둘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 모두가 잠시 눈을 마주쳤다. 산옥이 눈을 감고 손 끝에 힘을 주었다. 커다란 불길이 일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하는 소리와 함께 다들 밑으로 떨어졌고, 산옥이 일으킨 화마는 순식간에 탑을 불태워 가루로 만들었다. 물에 빠진 삼장 일행이 고개를 들었다. 그들은 사라진 탑을 보고 있다가 혀를 내둘렀다.
“산옥이 아니었으면 진짜 너무 시간을 소요했을지도 모르겠는데.”
“뭔 여행길에 책을 그렇게 보나 했더니만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만, 히야.”
“까불지 마라.”
“아무튼 얼른 빠져나가자. 다른 곳에서 묵어야 할 거 아니야.”
“하아, 쫄딱 젖었으니 빨래부터 해야겠네요.”
“그 와중에 빨래 생각이 나냐?”
“얼른 가요. 더 늦어지면 어디 잘 곳도 없겠다.”
산옥이 말하자 모두가 물에서 빠져나왔다. 무거워진 몸 때문에 혀를 찼으나 그들은 금방 익숙하게 걸었다. 팔계가 물었다.
“신옥, 몸은 좀 괜찮아요?”
“아무래도 제대로 치료를 받긴 해야 할 것 같아요. 약간 마비 온 것 같은데. 감각이 아예 없네.”
“어떻게 너는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하냐.”
“살기 위해서 도박하는 거지 내가 죽으려고 도박하냐?”
그가 씩 웃으며 하는 말에 모두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결국 삼장을 제외한 모두가 웃을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산옥은 형형한 눈으로 여전히 그들 옆에 있을 이였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