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신매매, 노예제도 묘사 있습니다.
* 드림캐간의 폭행 묘사 있습니다.
내가 그 여자와 처음으로 만나게 된 건, 노예시장에 있는 경매장 뒤편에서였다.
그날 열리는 경매의 메인 상품들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그 여자는, 딱 보아도 좋아 보이는 옷을 입고 사용인까지 대동하고 있어 신분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모자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지만 목소리에서부터 앳됨이 느껴지는 그 여자는 여러 상품들을 둘러보다가 내 앞에 섰다.
“이 애로 할게요.”
그 선택에 노예상도 다른 상품들도 모두 놀랐었지. 당연한 일이었다. 남녀노소를 넘어 온갖 종족의 상품이 모여있는 이곳에서도, 내 상품 가치는 형편없었으니까.
고대부터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뱀 수인. 머리가 좋고 독에 내성이 있어 부려 먹기 좋지만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인격체로 대하지도 않고 흑마술의 제물로나 활용되는 종족.
그런 뱀 수인을 고작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쯤 되어 보이는 아가씨가 사가겠다 하니, 누가 놀라지 않겠나. 유일하게 놀라지 않은 건 그 여자의 옆에 서 있는 키가 큰 사용인뿐이었다.
“이름이 뭐예요?”
나를 데리고 저택으로 온 여자는 손발의 구속구를 직접 풀어주며 물었다.
조심성이라곤 없는 행동에 아주 잠깐 이대로 상대를 공격하고 도망갈까 했던 나는 충동을 감추고 답했다. 만약 이 저택에서 도망가는 데 성공한다 해도, 매매된 노예가 도망친다면 보통은 도로 잡혀 와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쟈밀 바이퍼.”
“그럼 쟈밀이라고 부를게요.”
날 친근하게 부른 여자는 깔끔한 옷가지를 내밀었다. 그건 하인이 입는 거라고 하기엔 꽤 고급스러워 보여, 처음엔 내가 입으라고 주는 옷이라곤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건?”
“입으세요. 그 옷은 불편해 보이니까요.”
“뭐?”
인간들 대부분은 이종족 노예를 가지게 되면 장난감으로 삼거나 심하다 싶을 정도로 부려 먹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건 혹시 날 가지고 인형 놀이라도 하려는 걸까.
도무지 상대의 뜻을 이해할 수 없던 나는 어차피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 생각해 대담하게 물었다.
“날 어쩔 생각이지, 아가씨?”
내 말을 들은 여자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악의라곤 없는 미소를 지었다.
“그건 당신이 뭘 원하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요?”
“뭐?”
그건 얼핏 보면 협박하는 말처럼 들릴지도 몰랐으나, 표정과 목소리는 진짜 답을 말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다른 종족을 두고 굳이 나를 구매한 이 별난 주인은, 정말로 내가 뭘 하고 싶은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래요? 아니면 새로 자립하고 싶어요?”
*
나의 주인, 아이렌 아가씨는 주변에서도 소문이 자자한 별종이었다.
저택에서 몸을 추스르며 지내던 나는 그곳에서 일하는 어느 여우 수인에게 아가씨와 이 집안에 대한 자초지종을 듣게 되었다.
“우리 아가씨가 좀 별나긴 해. 아니, 주인님과 마님부터 별나다고 할까. 물론 우리 같은 수인에겐 참으로 고마우신 분이지만.”
진보적인 정치인 부모 아래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만물 평등에 관심이 많았던 아가씨는 옛날부터 노예시장에 가, 불법적인 경로로 노획된 수인들을 사들여 자유의 몸으로 만들어주곤 했다고 한다.
자유의 몸이 된 수인들은 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수인에 대한 차별이 덜한 지역으로 가 새로운 삶을 산다고 하던가. 심지어 또다시 곤란한 일을 겪지 않게, 자유를 줄 때 가문과 연줄이 있음을 증명해 줄 소소한 증표를 넘겨주어 타인이 쉽게 괴롭히지 못하도록 해주기까지 한다고 했다.
“쟈밀, 몸은 좀 어때요?”
한 달 정도 저택에 머무르며 살펴본 결과, 확실히 나의 아가씨는 좋은 사람이었다. 상대가 누구라도 친절한 태도를 보였고, 무례한 자에게는 가차 없었으며, 늘 내 상태를 보러 와주었지.
노예상들에게 사로잡힐 때 팔을 다쳤던 나는 밤낮으로 상처가 욱신거리긴 했지만, 잘 먹고 잘 쉬었던 덕에 건강 상태는 나쁘지 않았었다.
세심하게 날 신경 써 주는 이에게 모나게 굴고 싶지 않았던 나는, 최대한 정중하게 아가씨에게 답했다.
“나쁘지 않습니다.”
“다행이에요, 얼른 나아서 자립해야죠!”
동족들의 무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나는 이미 아가씨에게 자립할 거라는 말을 전해 뒀었다. 어차피 돌아가도 기다리는 이가 없는 고향보다는, 어디로든 떠나 자유롭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뭔가 하고 싶은 건 정했나요? 쟈밀은 손재주가 좋으니 기술을 배워도 좋을 것 같은데. 아니면 장사는 어떨까요.”
조잘조잘 떠들며 비늘로 덮인 손을 만지는 아가씨에게선 조심성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그게 날 믿기에 이토록 방심하는 건지, 아니면 원래 허점이 많아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네. 아, 그리고 존댓말은 안 해도 된다니까요?”
“이게 편합니다.”
아무리 미래에 자유가 약속된 몸이라 해도 아직 까지는 날 돈 주고 산 주인이지 않나. 방심하면 죽음뿐이라는 걸 잘 아는 나는 이 집을 떠날 때까지 이 여자를 내가 모셔야 할 아가씨로 대할 생각이었다. 그편이 안전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물렁물렁한 상대에게라면 굳이 이를 세울 필요가 없었으니까.
“아이렌 아가씨, 슬슬 외출 시간입니다.”
아가씨가 찾아온 지 몇 분 되지도 않았는데, 저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부름이 누구의 것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제이드 리치. 늘 아가씨의 옆에서 이런저런 편의를 봐주는─참고로 날 구매하러 왔을 때 아가씨 옆에 있던 것도 저 녀석이다─ 이 집안의 사용인이었다.
‘벌써 그렇게 되었나.’ 아쉬운 듯 중얼거린 아가씨는 아쉽다는 듯 천천히 내 손을 놓고 물러났다.
“그럼 다녀올게요, 나중에 봐요.”
할 일이 많은 나의 아가씨는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바쁜 걸음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던 나는 아가씨를 기다리는 제이드와 눈을 마주쳤고, 반사적으로 인상을 찌푸렸다. 저 멀리서 나를 지켜보는 상대의 눈빛에서 확실한 적의를 읽었기 때문이었다.
‘늘 저런 식이란 말이지.’
대체 내가 뭘 했다고 저렇게 노려보는지 모르겠다. 아마 저 녀석도 내가 뱀 수인이라 기분 나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지.
하지만 알 게 뭔가. 정작 아가씨는 나에게 호의적인데. 나와 동등한 이보다는 권력자의 마음을 사는 게 효과적인 걸 아는 나는 그를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어디 세상이 제 뜻대로만 흘러가던가.
날이 지날수록 제이드의 적의는 노골적으로 변했고, 나중에는 다른 사용인들이 ‘혹시 제이드 군과 싸운 거냐’라는 오해까지 해오기 시작했다. 방에서 몸을 회복하고 책을 읽거나 가끔 밖에 나가도 간단한 잡일을 할 뿐 그와 마주칠 일 자체가 적은 나로서는, 그건 참 억울한 질문이었다.
제이드는 그냥 멀리 떨어져서 나를 노려보거나 혀를 찰 뿐이었는데, 대체 무슨 소릴 하고 다니기에 다들 저렇게 물을까.
그 답을 알게 된 건 언젠가 아가씨와 단둘이서 외출하게 된 날이었다.
“정말 저랑 같이 나와도 되는 겁니까? 저는 그다지 재미있는 녀석이 아닙니다만.”
“네. 제가 쟈밀이랑 외출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보고 싶은 공연이 있다며 날 데리고 나온 아가씨는 특별히 좋은 옷을 골라 입혀주고, 오직 나만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아가씨는 어딜 가도 제이드만큼은 데리고 다녔기에, 나는 의문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늘은 없군요.”
“네?”
“늘 옆에 붙어 다니는 그 녀석 말입니다.”
“아하.”
어색하게 웃은 아가씨는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제이드는 오늘 바빠서요.”
그 말이 거짓말이라는 걸 아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 녀석이라면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이 있더라도 아가씨를 따라올 거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녀석이 아가씨를 두고 오려면, 아가씨가 ‘따라오지 마라’고 명령하는 경우밖에 없을 터. 그 사실을 알고 나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래도 아가씨도 나와 그 녀석 간에 도는 소문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아가씨와 꽤 친해 보이더군요.”
지금이야말로 그놈이 품은 적대심의 정체를 알아낼 기회이지 않을까.
나는 모처럼 아가씨와 단둘이 남은 지금, 최대한 조심스럽게 자초지종을 파헤쳐보기로 했다.
“으음, 그런 편이죠? 집사 중에서는 가장 친하다고 할까. 어릴 때부터 같이 지냈거든요.”
“그렇습니까?”
“네. 그래서 그런지 약간 질투 같은 것도 한다고 해야 하나. 제가 쟈밀 이야기를 하면…….”
거기까지 말한 아가씨는 제가 말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는지, 급히 말을 끊고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 다 왔네요. 얼른 가요, 쟈밀. 늦으면 들여 보내주지 않는다고요.”
아가씨는 상황을 잘 모면했다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미 눈치채고 말았다. 제이드가 어째서 내게 그토록 적대적인지, 그 이유를 말이다.
그 녀석은 아가씨가 자꾸 내 이야기를 해서 날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거였다. 아마 아가씨를 좋아하기라도 하나 본데, 나로서는 어이가 없는 이유라 할 수 있었다. 그렇게나 죽일 듯 노려보는 게 고작 질투 때문이었다니.
하지만 어째서일까. 나는 황당함보다는 묘한 경쟁심을 느꼈다. 고작 내 이야기만으로도 그렇게 날 질투하면, 내가 계속 아가씨 옆에 있다면 어떻게 할까?
‘계속, 이라.’
아가씨는 좋은 사람이지. 그러니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 모른다. 괜히 밖으로 나가 자립하는 것보다는 월급과 안전이 보장되는 이 저택에 머무르는 게 훨씬 나을 것이다.
작은 손에 이끌려 극장으로 향하는 내 마음속에서는, 조용한 격변이 일어나고 있었다.
*
“하고 싶은 일이 생겼습니다.”
내가 저택에 오게 된 지 세 달째. 팔의 상처도 다 치료되었고 아가씨와의 생활에도 익숙해졌을 즈음. 나는 아가씨를 찾아가 내 뜻을 전했다.
“정말요? 어떤 일인가요?”
“이 집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네?”
대답을 들은 아가씨는 당황했지만,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혹여나 거절당한다 해도 잘 설득해 이곳에 눌러앉으리라 작정하고 온 만큼, 이런 것에 동요할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이라도 좋습니다. 잡일이라도 좋으니, 이 집에 있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하지만 쟈밀은 여행을 가고 싶어 했잖아요. 멀리 떠나서 새로운 삶을…….”
“여행은 휴가를 주면 가겠습니다. 아니면 아가씨의 여행에 짐꾼으로 같이 가도 상관없습니다.”
내 의지가 얼마나 굳은지 느낀 건지, 아가씨는 더는 부정적인 소릴 하지 않았다. 다만 여전히 곤란하긴 한 건지, 고민에 잠긴 얼굴로 침묵할 뿐이었다.
짧진 않은 고민 끝. 아가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에게 말해보고 올게요. 쟈밀은 손재주가 좋으니까, 뭐라도 시켜 주실 것 같지만…….”
“예, 다녀오십시오.”
아마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올 테다. 아가씨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나는 그리 확신했다. 나는 불길하다고 여겨지는 뱀 수인이니, 밖에 나갔다간 어떤 의미로든 핍박받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보호하기 위해서라도 날 거둬줄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나는 아가씨 말대로 손재주도 좋았으니, 뭘 시켜도 괜찮다고 생각할 터. 그러니 마음을 놓고 아가씨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달칵.’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내가 본 것은 기쁜 소식을 들고 온 아가씨가 아니었다.
“아가씨? 오셨습……. 큭!”
돌아보기 무섭게 머리에 강력한 충격이 가해진다. 나는 정신이 아찔해졌지만 의식을 유지하기 위해 이를 꽉 깨물었다.
내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건, 쇠로 된 부지깽이를 든 제이드 리치였다.
“정말이지, 아가씨는 너무 마음이 약해서 문제입니다.”
한숨을 푹 내쉬는 그 녀석은 내 피가 묻은 부지깽이로 바닥을 톡톡 쳤다. 강한 타격에 시야가 흔들림에도 상대가 비뚜름하게 웃고 있는 건 확실히 알 수 있는 난 비틀거리는 몸을 일으켜 놈을 바라보았다.
“너, 이게 무슨…….”
“곤란하단 말입니다. 계속 아가씨 곁에 있으려고 하면. 목숨을 건졌으면 알아서 살길 찾아 떠날 것이지, 왜 내 것 주변에 머물려고 발버둥 칩니까?”
‘내 것’이라니. 대체 누가 사용인이고 누가 주인인지 모를 발언이다. 아이렌, 아니, 아가씨가 저 말을 들으면 뭐라고 생각할지 궁금할 지경이다.
나는 이대로 맞고만 있어 줄 생각이 없었기에, 근처 화병을 낚아챘다.
“네 놈에게…….”
병의 목 부분을 거꾸로 잡아 든 나는 최소한의 저항이라도 하고자 냅다 상대의 팔을 내려쳤다.
“그런 말 들을 이유 없다만!”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이 아무리 민첩해 봐야 얼마나 빠를 수 있겠나. 내 공격은 유효타를 먹이지 못했다. 제이드는 내가 팔을 휘두르기 무섭게 부지깽이로 꽃병을 깨버렸고, 덕분에 팔이 젖는 것 외엔 어떠한 피해도 없었다.
하지만 뜻밖에도, 이 공격은 의미 없는 저항이 아니었다.
손과 팔꿈치 위가 흠뻑 젖은 제이드는 재빨리 팔을 털었지만, 물기는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이런.”
그때. 물이 뚝뚝 흐르는 그 녀석의 손이 조금씩 푸르게 물들더니 손가락 사이마다 물갈퀴가 생겨났다.
누가 보아도 인간의 것이 아닌 손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펴더니, 부지깽이를 옮겨 쥐었다.
“소매가 엉망이 됐군요. 아가씨에게 받은 소중한 옷에 무슨 짓입니까?”
“너, 정체가…….”
“이런. 인어는 처음 봅니까? 하긴, 저는 ‘귀한 상품’이었지요. 그래서 어린 나이에 잡혀서 팔려나간 거고.”
인어라니, 이 녀석이?
그러고 보니 인어는 동물과 인간의 특징이 섞인 다른 수인들과는 달리 인간 모습과 인어의 모습이 따로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다고 해도 설마 이 녀석이 인어일 줄이야. 예상치 못한 사실에 얼어있는 날 본 제이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우습다는 듯 피식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아직도 생생합니다. 경매가가 너무 올라서 그 누구도 쉽게 손을 들지 못하는 와중, 아직 어린아이였던 아가씨가 주인님을 대신하여 최고가를 불러버린 그 순간을. 그때까지만 해도 터무니없는 곳에 팔려 가는 줄 알았는데, 설마 구해주는 걸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옛이야기를 하는 제이드의 얼굴엔 기쁨이 가득했다. 부지깽이를 가볍게 흔들며 말을 이어가는 그 녀석은 아가씨가 곧바로 돌아오지 않을 걸 아는지 여유롭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비싼 돈을 주고 사놓고 자유롭게 풀어주려 하다니. 우리 아가씨는 참 바보입니다. 뭐, 그런 점이 좋아서 여기 있겠다고 고집을 피운 거지만. 바다로 돌아가는 것보단 그 사람 곁을 지키는 게 훨씬 재미있거든요.”
피를 많이 흘려서일까. 의식이 점점 흐려진다.
불안하게 휘청이는 날 보던 제이드는 웃음을 싹 거두고 성큼 다가왔다.
“……그러니까.”
부지깽이를 든 손을 높이 올린 제이드는, 그 어느 때 보다 싸늘한 눈으로 선언했다.
“여긴 내 자리입니다. 다른 놈이 비집고 들어올 틈은 없습니다.”
웃기고 있네. 누구 맘대로.
그런 생각이 든 나는 반격을 위해 테이블 위로 손을 뻗어, 뭐라도 집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