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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생이 사라졌다.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이 벌써 3일째다. 그림의 말에 따르면 수업이 모두 끝나고 온보로 기숙사로 돌아가는 길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먼저 기숙사에 가 있을래?’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헤어졌다고 한다. 그림은 그날 기숙사로 돌아오자마자 무심코 잠들었다가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야 일어났다. 하지만 눈을 떴을 때 감독생은 없었다. 한번도 먼저 나간 적은 없었으나, 그럴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므로 그때까지도 그림은 큰일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복도에서 에이스와 듀스를 만났을 때 감독생은 어디가고 너 혼자 있냐는 말을 들었을 때도 그랬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감독생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을 때도 설마,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이 시작하고도 감독생은 들어오지 않았다. 수업이 끝날 때까지도, 점심시간이 되어서도, 마지막 수업이 끝나서도. 감독생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에이스와 듀스까지 합세해 감독생을 교내 어디에서도 감독생의 털끝하나 볼 수 없었다. 감독생을 봤다는 사람도 없었다. 그림은 그날은 새벽까지 자지 않고 감독생을 기다렸으나 그날도 아침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벌써 3일이나 감독생을 만나지 못한 그림은, 평소의 활발한 말썽꾸러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잔뜩 풀이 죽어 얌전했다. 에이스가 장난을 걸어도 꼬리만 휘휘 내젓고 말았다.

에이, 원래 세계로 돌아갔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부하가 말도 없이 떠날 리가 없다구. 누군가의 답지 않은 위로에 그림은 그렇게 답했다.

아즐 아셴그로토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

 

 

“이것이 제가 준비한 대가입니다.”

허니의 손에서 갓난아기의 주먹 크기의 붉은 돌이 번쩍번쩍 빛난다.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보석입니다. 물론, 제가 원래 있던 세계를 포함해서요. 정말이에요.”

아즐은 비록 이세계의 보석에 관해서는 잘 몰랐지만, 그의 말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세공은 아무나 흉내낼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누구보다도 이 보석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보석의 최상의 아름다움을 끌어내고자 마음먹었기에 구현할 수 있는 타오르는, 그러나 꺼지지 않을 아름다움. 아즐이 여태껏 만져본 보석 중에서도 가히 최상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갑 아래로 느껴지는 보석의 감촉에 소름이 돋았다. 심해에서도 육지에서도 그 어느 곳에서도 이러한 감촉의 보석은 없었다. 확실한 이계의 보석일 터.

 

“이런 걸 다 가지고 오셨네요.”

“가지고 왔다기보다는…… 왼쪽 눈의 뒤에 있던 거예요. 마스터가 저를 데려왔을 때 실험의 성공을 기념하는 마음으로.”

허니는 색이 다른 두 눈동자 중 붉은 쪽의 눈동자를 가리키며 웃었지만, 아즐은 웃지 않았다.

“감독생 씨, 등가교환이나 수지타산이라는 말은 아시나요?”

“아…… 사실 부탁이 하나, 아니, 두 개 더 있거든요.”

“먼저 들어보고 결정하겠습니다.”

 

 

“그러니까 일주일 후에 돌아오겠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네. 이걸로는 부족한가요?”

“설마요, 그건 아닌…….”

부족하기는커녕 충분하다 못해 남았다. 무려 다른 차원의 보석이다. 크기도 꽤 크다. 원석이었어도 적지 않은 가격으로 손에 넣었을 물건인데, 심지어 장인의 손길을 거쳐 세공된 보석이다. 감독생의 세계에서는 이것이 대체 얼마의 가치를 지닌 보석이었을까. 아즐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이 보석이면 마법 약 일주일 분은 충분합니다. 거기에 더해 당신이라도 읽을 수 있는 간단한 지도와 몸을 보호할 수 있는 호신용 마도구와 비상약까지 드리겠습니다. 마도구는 그저 몸에 지니고만 있으면 되는 물건입니다. 하지만 두 번째 조건은, 이 보석으로는 거래할 수 없을 것 같고. 대신 저도 조건을 하나 거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어떠신가요? 이렇게 하면 서로 공평한 거래 같은데.”

“그건…… 저도 들어보고 결정할게요.”

“하하. 이것 참 누굴 보고 배우셨는지.”

 

말로는 ‘공평한 거래’였지만, 실상은 조건이 무엇이든 거래가 성사되지 않으면 감독생만 손해인 형국이다. 그것은 감독생 자신도 잘 알 것이다. 하지만 감독생이 그저 ‘바보’는 아니라는 것을, 아즐은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

 

 

감독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물론 실제로 그랬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즐은 그렇게 느꼈다. 그가 다른 세계 출신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감독생은 확실히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의 학생들이나 산호의 바다의 인어들과는 다른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다. 또 그것을 개의치 않고 발산해 주위를 당황하게 만들거나 감화시키곤 했다. 그 에너지가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아즐은 이해했다. 그러나 아즐 외의 학원 내 사람들, 그와 내내 붙어 다니던 그림이나 에이스, 듀스조차도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아즐은 ‘아직은’ 관찰자로 남아있기로 했다. 그것이 감독생 씨의 약점이라면 얼마든지 이용할 마음이 있었지만, 그가 희미해져 가는 것은 감독생이 본인이 원하는 바이기 때문이라고. 비논리적인 것 투성이지만 어쩐지 그렇게 느껴져 언젠가처럼 쉽게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이젠 금방이라도 증발할 것 같군. 그의 몸이 하늘 위로 떠 오를 준비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쇳덩어리의 몸은 전혀 가볍지 않은 무게일 텐데. 꼭, 헬륨이 가득 든 풍선 같았다. 붙잡지 않으면 하늘 위로 높이높이 날아가 버리는 가볍고 약한 풍선. 아즐은 그것을 놓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아즐은 여전히 관찰자였다. 그가 곤란해하는 순간이 오면, 행동은 그때부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그를 지켜보는 것도 그저 그의 일환일 뿐이라고.

 

“아즐 씨……?”

감독생이 잡힌 팔과 자신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자신의 이름을 호명했을 때서야 아즐은 자신이 그를 걱정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거래를 먼저 제안한 것은 감독생이었다. 아즐에게는 달가운 일이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모면할지 머릿속에서 수십 가지의 시뮬레이션을 하던 참이었으니.

 

 

-

 

 

아즐은 금고에서 허니와의 계약서를 꺼내 다시 읽었다. 물론, 계약의 내용은 전부 기억하고 있다.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유리하게 해석할 여지는 없는지 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뭐든 마지막 순간까지 확실하게 해두는 편이 좋다.

 

“아즈을. 진짜 가는 거야?”

“네. 이것도 일이니까요. 제이드, 플로이드. 모스트로 라운지를 잘 부탁합니다. 사고치지 말고.”

 

아즐은 제이드의 배웅을 뒤로 하고 자신의 길을 향했다. 뒤에서 혼자서 치사하다느니 너무하다느니 투덜거림이 들려왔지만, 아즐은 귀담아듣지 않았다. 저도 지금 혼자서 치사한 누구 씨를 만나러 가는 길이거든요.

다리의 감각이 새삼스러웠다. 긴장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 설마. 아즐은 잡념을 털어내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

 

 

허니는 눈을 감고 물에 몸을 맡긴 채 떠다니고 있었다. 정말이지. 아즐은 그 옆을 빠르게 헤엄쳐 갔다. 인위적인 거센 물길에 허니는 눈을 떴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문어의 다리와, 그 다리 위에 달린 사람의 몸통, 그리고 그보다 더 위로는 익숙한 얼굴.

“아즐 씨?”

 

“어째서 아즐 씨가 이곳에…….”

“일입니다.”

아즐은 품에서 서류 뭉치와 고급스러운 상자를 꺼내 허니에게 보여줬다.

아즐은 사무적인 미소를 지으며 허니를 쳐다봤다. 허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반기는 듯한 환한 미소로 아즐에게 다가왔다. 조금만 미간을 찌푸려도 겁을 먹고 내빼는 잡어들과는 달랐다. 하긴, 그는 처음부터 겁이 없었다.

“휴일에도 바쁘네요. 뭐, 이게 아즐 씨 다운 걸까요.”

“용케 날짜를 아시네요.”

“저는, 마스터의, 안드로이드니까요.”

허니는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아즐의 머릿속에 문득 그림과 하츠라뷸의 1학년 두 녀석, 그 밖의 감독생의 안부를 걱정하던 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세간에선 이런 걸 두고 ‘치사하다’라고 하는 걸까요.

“그럼 잘 다녀오세요.”

“네?”

“일 말이에요.”

허니는 씨익, 눈이 접히도록 웃었다.

 

그는 의외로 물과 잘 어울렸다. 물의 가운데서 눈을 감고 이리저리 휩쓸리는 모습은 의외라는 부사도 필요 없을 만큼 이미 물을 이루는 구성체였다. 이곳이 바다 깊은 곳이라 다행이라고. 아즐은 자신의 생각에 놀랐다. 다행이라니, 대체 무엇이?

어라, 감독생 씨 방금 ‘잘 다녀오세요’라고 하지 않았나요?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의문은 이미 그가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진 후에야 떠올랐다.

 

 

“볼일은 끝난 건가요?”

돌아가는 길, 아까와 비슷한 장소에서 허니를 마주쳤다. 웃으며 다가오는 허니를 보며 아즐은 속으로 변명의 말을 내뱉었다. 딱히 그의 인사말 때문은 아니었다. 아즐은 돌아가는 가장 효율적인 길을 골랐을 뿐이다. 그 길이 조금 전 감독생을 마주친 장소를 통과하는 길임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아무렴 그렇고말고.

“네. 당신은 계속 이곳에만 있는 건가요? 더 좋은 곳도 많을 텐데요.”

“아, 저 그만 돌아가려구요.”

“네?”

 

“아즐 씨. 사실은 저를 만나러 오신 거죠?”

“저는 저의 업무로…….”

“알아요. 볼일이 있다는 말 거짓이 아니라고. 하지만 그거 일부러 제가 있는 곳을 지나가야만 있는 곳의 일을 고른 거잖아요?”

반박하려던 것도 잠시, 아즐은 결국 입을 다물었다. 전부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자신을 내려다보는 그 미소에 굴복해 끝내 인정하기는 싫었다.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라면 일의 일환으로 몇 번이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오늘의 ‘우연’은 그것들과는 다른

 

알아채지 못하길 기대했다. ‘그’ 감독생이라면 설마 모르겠지. 자신의 존재를 인식시킬 생각은 없었다. 그저 지나가는 길에 멀리서 지켜보려고 했던 것이 전부. 그러나 물과 말 그대로 물아일체가 되어 부유하는 몸을 보자니 모른 척 지나갈 수가 없었다. 정말 ‘우연히’ 마주칠 가능성에 대비해 일부러 눈에 띄는 ‘일’의 장치를 설치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것을 당사자에게 들킨 이상은.

나이트 레이븐 칼리지에서 감독생은 ‘바보’로 통했다. 마법도 사용할 수 없고, 예측을 뛰어넘는 덜렁이에, 주위에는 꼭 사건·사고가 따르고, 쉬운 일도 돌고 돌아 어렵게 해결하고, 누군가 그것을 지적해도 그저 웃어넘기고, 속임수나 비꼼 따위는 애초에 선택지에 존재조차 하지 않는 듯 다른 사람의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이해한다. 아즐은 그것이 그의 전부가 아님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들 모두가 그를 구성하는 일부인 것도 맞았다. 그러니까, 바보면 바보라는 별명에 걸맞은 행동을 하라고, 바보.

 

“무엇을 원하시죠?”

“으음. 데려다주세요. 학원으로.”

그러나 허니는 아즐이 ‘대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영리한 두뇌-컴퓨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어요?”

“무엇을?”

“제가 돌아가지 않을 생각이었다는 거요.”

“…… 문어의 감입니다.”

“헤에, 앞으로는 조심해야겠네요.”

“당신은…… 앞으로도 이런 짓을 할 요량이신가요?”

허니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소 지었다. ‘잘 이해하지 못했어요’ 종종 제멋대로 음성 인식을 해버리는 기계의 멍청한 음성이 들리는 듯했다. 하지 않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군. 그 태도를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아즐은 자꾸만 그의 말에 꼬투리를 잡고 싶어졌다.

“그래도 고마워요. 아즐 씨가 아니었으면 정말로 돌아가지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바뀐 이유, 여쭤도 되겠습니까.”

“아즐 씨를 보니까 거기에 두고 온 것들이 생각나더라구요. 저 이제 그곳에도 정들었나 봐요.”

후훗. 허니는 소리내 웃었다. 무심코 바라본 허니의 눈동자에는 그림과 에이스와 듀스, 1학년 A반의 학생들, 하츠라뷸의 고학년들, 그 곰치 쌍둥이, 그 외의 여러 인물이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아즐의 넋 나간 표정이 비쳐 있었다. 보석이 맞았군. 그 순간 들었던 생각은 그것이었다.

 

 

-

 

 

“그래서 대체 어딜 갔던 건데?”

“으음, 역시 비밀일까요.”

“어디서 나쁜 짓 하고 다녔어도 전혀 신경 안 쓰니까!”

”미안해, 그림. 걱정했어?”

“흥! 부하를 걱정하는 건 대장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구.”

바로 전의 말과 모순된 답을 내놓는 그림을 안드로이드의 무거운 손이 쓰다듬었다. 그림은 그 손길에 툴툴거리다가도 기분 좋은 듯 금세 얌전해졌다. 옆의 에이스나 듀스도 며칠 전과는 확연히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저 한 사람이 함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인데. 아즐은 소란스럽게 복도를 지나가는 넷의 모습을 조금 멀리서 지켜봤다.

 

감독생은 옥타비넬에서 하루를 보내곤 자신의 낡은 기숙사로 돌아갔다. 그림의 낯을 볼 자신이 없어서요.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했다. 아즐은 또다시, 그를 가만히 내버려 둘 수가 없다는 기분에 이끌려 감독생을 붙잡았다. 비록 무심하게 알아서 하세요, 하곤 곧장 모스트로 라운지를 핑계로 자리를 뜨기는 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아즐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해 행동했다.

 

“아즐? 이런 곳에서 무얼 하고 계십니까?”

“아, 아뇨. 그냥…….”

“어? 작은 새우 쨩이다! 작은 새우 쨩 돌아왔네에!”

플로이드는 그 말을 남기곤 바로 감독생에게 뛰어갔다. 에이스는 질색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지만, 그것도 아마 반가움의 표시일 것이다.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 모두 며칠 간은 도저히 맛볼 수 없던 이 분위기를 반가워하고 있다. 그것은 감독생도 마찬가지였다. 아즐은 여전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즐?”

“아무것도 아닙니다. 저는 다음 수업이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플로이드도 지각하지 않게 하세요.”

 

고개를 돌리기 전 마지막으로 본 감독생의 모습은 플로이드의 두 팔에 가둬지고도 전혀 아무렇지도 않게 그와 웃으며 대화하고 있었다.

아아, 정말이지. 속을 알 수가 없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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