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안에 거대한 늑대가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퍼진 것은 지난 보름부터였다.
장안은 스스로 땅을 일구어 먹기보다는 주변의 땅에서 곡물을 사들이는 도시였고 때문에 장안의 수확제는 농촌 지역에서 흔히 열리는 수확제처럼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추수를 축하하는 것보다는 정말로 즐기기 위한 축제와 같은 성격을 띄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것을 다시 풀어말하자면, 수확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농부들보다는 도시를 화려하게 꾸미고 손님을 기다리는 장사꾼과 도매상에게 물건을 넘기고 나면 관광객으로 변해 지갑을 푸는 이들이 장안을 가득 채운다는 이야기였다. 한 해의 마지막 대목인 만큼 수도 장안은 사람과 물건으로 흥청거리는 거대하고 아름다운 시장통으로 바뀌었고, 장안에서 가장 유서깊고 명망높은 절인 금산사 역시도 그 영향을 받아 1년에 몇 번 없이 법회를 개방하는 등 시끄러워지고는 했다.
그러나 이번 수확제에는 기이한 이변이 들뜬 도시를 짓눌렀다. 현장 삼장은 금산사에서부터 상점 거리로 이어지는 길 위로 걸음을 옮기며 무심한 눈길로 주변을 훑었다. 경사를 축하하는 붉은 천을 중심으로 화려하게 장식한 장신구가 거리의 상점과 상점 사이를 바느질하듯 수놓고 있었다. 그러나 본래 흰 새벽이 밝을 때까지 술과 취객, 관광객과 상인, 몰래 밤늦게까지 거리를 구경하러 나온 어린아이들로 붐벼야 할 거리는 기이하게도 한 풀이 꺾여 심지어는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모로 보나 몇 년간 보아온 수확제와는 확연하게 다른 분위기에 삼장은 구깃구깃 우그러드는 미간을 힘주어 짚었다. 이런 상태를 확인한 이상 헛소문이라고 취급하며 냅다 내팽겨칠 수도 없게 된 셈이었다.
끓어오르다 못해 넘치기 직전이었던 수확제의 열기에 찬물을 부어버린 것은 거대한 늑대가 장안의 거리를 돌아다닌다는, 거대한 도시에서 들리기에는 지나치게 낯선 소문이었다. 물론 그 소문이 처음부터 힘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성벽이 둘러진 도시 안에서 늑대가 나타났다는 소문을 믿기에는 장안의 토박이들은 그리 호락호락하게 순진하지 않았다. 산간지방에서 막 내려와 늑대의 공포를 아는 관광객들이 주변을 둘러보며 돌아갈 길을 찾을 때면, 그들은 도리어 두려워하는 손님들을 붙들어놓고 늑대조차도 수확제에 홀렸는가보다고 화려하게 말을 꾸미며 이것저것 상품들에게로 정신이 빠지게 만들었다. 그래도 걱정 붙들어 매시오, 치안 경비 서는 이들이 얼마인데 늑대 하나를 못 잡겠소! 그런 호쾌한 장담은 덤이었다.
그러나 장담이 무색하게도 늑대를 보았다는 이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증언은 대부분 일치했고 아주 미세한 것들이 달랐다. 거대한 늑대, 산간벽지에서도 볼 수 없었을 정도로 거대한 늑대가 화톳불 같은 눈을 이글거리며 골목과 골목 사이를 누볐다는 것이다. 그들은 모두 그 정도의 덩치가 숨어있을 수 없는 곳에서 늑대가 몸을 일으켰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천막과 천막이 드리워진 그림자 속에서 불쑥 일어나더구만요, 하고 우는 소리를 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분명 아이 한 명이 서면 그만일 좁은 골목에서 덩치 큰 사내 두엇만한 짐승이 뛰쳐나와 내달렸다고 기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늑대의 눈이 하나였는지 둘이었는지에 대한 증언만이 미묘하게 엇갈렸다.
대체 어디에서 들어왔는지도 알 수 없고 어떻게 그런 자리에서 나타날 수 있는지도 모를 거대한 늑대에 대한 이야기에 치안 경비대가 시달리다 못해 머리가 빠지기 시작할 때 쯤, 결국 누군가가 그 늑대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지며 들끓었던 축제의 열기는 찬물 맞은 쇳덩이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습격당한 남자는 장안 주변 지역에서 과일을 싣고 왔다가 며칠 숙박하기로 했다는 관광객이었다. 술을 마시고 돌아가는 와중에 집채만한 검은 늑대가 저를 덮쳤다며 겁을 잔뜩 집어먹은 남자는 벌벌 떨리는 몸으로 울부짖었다. 짐승, 그냥 짐승이 아니었어. 살아있는 짐승이 아니라 귀신이었다니까. 나를 덥썩 무는데 온기 한 점 안 느껴지는, 그야말로 요괴였다구!
그 마지막 부르짖음이 현장 삼장의 운명을 귀찮게도 결정지었다. 자신들이 쫓던 대상이 인간의 힘으로 쫓아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영험하고 신적인 영역에 속해있을 것이라는 꼬리를 잡은 치안 경비대는 그 모든 일들을 있는대로 싸들고 와 수도의 가장 명망 높은 사찰에 넙죽 바쳤다. 저희들이 할 일이 아니니 같은 도시에서 살고 같이 축제 덕을 보는 김에 스님들도 참여 좀 하시라는, 그야말로 나만 죽을 수는 없으니 너희도 죽자는 꼴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명망 높은 사찰이라고 해도 아무나 괴이한 것을 퇴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돌려보내자니 수도 제일의 사찰으로서의 평판이 구겨진다. 세간의 일에는 일절 관심을 갖지 않는 괴팍한 젊은 주지승 대신에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승려들에게 완벽한 해결책-그러나 현장 삼장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어떻게든 죽여버리고 싶은-을 내놓은 것은 때때로 손을 돕기 위해 드나들던 근처의 붉은 머리 난봉꾼이었다. 여기 땡중, 아니 주지스님이 퇴마 비슷한 거 몇 번 해봤다고 하던데?
“이 바퀴벌레 자식, 반드시 죽여버릴 테다......”
덕분에 팔자에도 없이 한밤중의 상점 거리를 걷게 된 젊은 주지승은 누가 보아도 감탄하고 말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야차처럼 구긴 채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승복의 넓은 소매 자락의 끝까지 차오른 분노가 속 모르고 떠오른 보름달의 빛무리를 산산조각으로 박살냈다. 애초에 삼장에게는 무엇이든 관계없는 일이었다. 수확제의 열기가 식든 말든 대체 그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속세에 내놓아도 큰일이라는 소리를 듣는 성질머리를 가지고 있긴 했으나 현장 삼장은 불제자였다. 귀찮은 일은 법회를 개방하니 마니 하는 정도에서 그쳐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수도인 장안에서 기이한 존재가 발견되었다는 것은 조금 까다로워질 문제가 맞기는 했다. 누군가 울고불고 매달린다고 귀찮은 일을 떠맡는 성격이 아닌 삼장이 굳이 거리로 나선 것은 하필 ‘장안에서 요괴로 의심되는 것이 발견되었’ 기 때문이었다. 국가의 중심지인만큼 장안에는 부정한 존재들로 인한 사건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일찌감치 걸러내기 위한 장치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어지간히 삿된 것들이라면 성문을 넘어오기는 커녕 넓은 반경으로 접근하기조차 어려우리라. 그런 곳에 인간을 해치는 요괴가 스며들었다면.
그렇다면. 삼장은 지금은 끝자락이 조금씩 낡아가는 어떤 비오는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습한 공기, 기묘하게 달구어졌던 대웅전의 그림자, 들척지근하게 무릎을 적시던 기묘한 온기와...... 그 곳까지 다다른 사고가 뇌리를 쑤시듯 치밀어올라 그는 신물처럼 차오른 무언가를 목구멍 안으로 내리눌렀다.
도로에 깔린 포석을 밟으면 신발의 바닥과 돌이 마찰하는 소리가 밤공기를 예민하게 뒤흔들었다. 마른 입 안으로 헛되이 숨을 삼킨 삼장이 시선을 들어올려 달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가늠했다. 자정은 이미 훌쩍 지나 새벽의 끝물을 향해 달리고 있는 시간이었다. 처음으로 늑대에게 습격당한 이는 자정 즈음의 거리를 해매고 있었다고 했다. 만약 그것이 자정을 기점으로 행동한다면 슬슬 활동을 접거나 일찌감치 돌아갔을 가능성도 높았다.
코가 예민한 개과 짐승-그것이 설령 요괴더라도-을 상대하게 된 탓에 부러 피우지 않았던 담배를 입에 물며 삼장은 낮은 소리로 혀를 찼다. 늦은 밤 담배없이 거리를 걷는 것보다는 내일 또다시 밤이슬을 밟아야한다는 점이 가장 화가 치밀었다. 요괴든 무엇이든 걸리면 그대로 머리통을 뚫어주지. 그 빌어먹을 바퀴벌레 녀석은 저승길 동무로 삼을 수 있도록 덤으로 얹어주마. 애꿎은 필터를 잇새 사이로 짓이기며 이를 갈던 삼장이 문득 불 붙은 성냥을 흔들어 꺼뜨리던 손길을 멈췄다.
방랑하던 시절, 홀로 어두운 산길에서 밤을 지새야 했을 때 간간이 느꼈던 감각이 살갗을 내달렸다. 목뼈가 맞물리는 소리라도 날 것처럼 느릿하게 돌아간 고개가 멈춰선 발의 바로 옆, 길고 좁게 난 골목길을 조용하게 응시했다. 새벽의 검푸른빛마저 모두 잡아먹힌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우웅, 짐승이 목을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흘러가던 달그림자마저 멈춘 듯한 순간이 지나고 성냥을 떨어뜨린 빈 손이 승복의 넓은 소매 안으로 재빨리 스며들었다.
그림자 속에서 거대한 몸뚱이가 튀어나온 것은 삼장이 소매 속에 숨겨둔 리볼버를 꺼내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어지간한 성인 남성의 다리 한 짝보다 거대한 앞발이 순식간에 삼장의 어깨를 짓누르고 바닥으로 쓰러뜨렸다. 훅 끼쳐오는 숨에서는 숨을 죽이느라 오래 입을 다물고 있던 짐승들이 으레 그러하듯 들척지근한 단내가 났다. 피냄새가 나지 않는 것을 보니 최근에 인간이든 짐승이든 먹어치운 적은 없는 모양이다. 살아있거나 이미 부정에 있는대로 물든 것이라면 지금쯤 짐승보다는 굶주린 아귀에 더 가까울 테지. 삼장은 늑대에게 상체를 짓눌리느라 튕겨 날아간 리볼버와 손 끝의 거리를 가늠했다.
무릎으로 가격해서 시간을 벌면 다시 잡을 수는 있으리라. 하지만 잡고 나면? 제 몸에 올라탄 짐승은 아무리 육식동물이라고 해도 지나치게 거대했다. 리볼버 정도로 한 번에 목을 꿰뚫을 수 있을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치안 경비대의 야간 경비가 아직 끝나지 않았을 테니 적어도 총소리를 듣고 달려올 정도는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고작해야 짐승에게 순순히 물어뜯겨줄 생각은 아직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간신히 뻗은 손 끝에 리볼버의 방아쇠가 걸렸다. 악을 써 그것을 손아귀로 끌어당긴 순간, 상황과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평온하고 낮은 목소리가 속삭였다. 현장.
"밤눈이 이런데 대체 어떻게 방랑 같은 걸 한거야, 넌."
“......? 류화?”
시선보다 코 끝이 먼저 닿을 정도로 숙인 고개를 따라 흘러내린 검은 머리타래 너머로 왼 얼굴을 일그러뜨린 세 갈래의 거대한 흉터가 시선을 휘어잡았다. 달빛을 등져 그림자를 뒤집어 썼으면서도 주사빛 외눈은 어둠을 살라먹고 타오르는 화염처럼 이글거렸다. 마주한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그 밍숭맹숭한 얼굴과 자의반 타의반으로 자주 마주했던 삼장은 그 묵묵한 얼굴 위에 미묘한 난감함이 덧씌워져 있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치밀어오른 생존본능으로 바짝 날이 선 감각들이 누그러들며 문득 목격자들이 공통으로 증언하던 이야기가 둔하게 의식 위로 떠올랐다. 검은 털을 가진 거대한 늑대. 주사빛으로 타오르는 눈동자. 도저히 물리적으로 나타날 수 없을 장소에서 튀어나오던, 살아있는 짐승이라고 하기엔 온기 한 점 느껴지지 않는......
“설마 네 녀석이었나?”
“갑자기 뭐라는거야? 일어나기나 해.”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네놈의 앞발이나 떼라고. 신령에게 뱉어내기에는 지나치게 불경한 고함이 검푸르게 젖은 새벽의 허공을 찢기 전에 흰 손이 삼장의 팔을 가볍게 쥐어 일으켰다. 제가 일으킨 것이 제법 키가 멀대같은 인간 사내라는 것조차 느껴지지 않는 듯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얼결에 훌쩍 일으켜진 채로 다시 거리에 선 삼장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진실에 지끈거리기 시작한 관자놀이를 짚으며 눈 앞에 선 장신의 여자를 살기등등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새벽 공기 속으로 녹아가는 빛깔의 넓은 목면 소매를 살랑이며 수확제 시기의 장안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검은 늑대의 신령이 그를 향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왜? 신령이고 나발이고 머리통에 총알 구멍이라도 하나 냈으면 속이 풀릴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린 시절 저를 거둬주었던 무리를 잃고 재앙신으로 몰락할 뻔 한 경험을 겪었던 젊은 신령은 제가 찾아야 할 것을 따라 천지사방을 돌아다니다 가끔씩 어린 시절의 기억을 따라 삼장이 있는 장안으로 찾아왔다. 비슷하게 저를 거두어 친아들처럼 길러주었던 스승님이 눈 앞의 늑대신을 거둔 무리의 수장이었던 탓에 얼결에 인연이 닿았을 뿐인 삼장은 뿌리를 내린 영토도 없는 주제에 제 한 몸에 거미줄처럼 얽힌 믿음과 인연으로 신령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하는 이 애물단지같은 젊은 신령과 엮일 때마다 매번 골머리를 앓았다. 도저히 현장 삼장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내쫓기 위한 결계를 쳐놓아도 삼장이 데리고 있는 꼬마 원숭이-오공을 꼬드겨 스며들어오는 이가 대체 왜 장안의 거리를 떠돌아다녔단 말인가?
“내쫓아도 억지로 비집어 열고 들어오는 주제에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사는 게 귀찮아져서 인간이나 집어삼키고 재앙신 소리나 듣고 싶어졌나?”
“말 나온 김에 둘러싼 결계나 손 봐. 인간한테 감겨서 들어온 지네가 한 마리 있었으니까.”
“지네?”
대답을 바라지 않고 비꼰 소리를 따라 날아온 말에 삼장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문 입가를 비틀었다. 오랜만에 인간의 태를 갖추었는지 미묘하게 어색한 몸짓으로 흘러내린 옆머리를 귀 뒤로 넘긴 류화가 손 끝을 마주 부딪쳐 딱, 소리를 냈다. 허공에 튀어오른 불씨가 담배 끝에 바삭거리는 소리를 내며 달라붙었다. 희미한 연기가 시야를 가볍게 흐리다 산산조각으로 흩어졌다.
“뭘 어떻게 해서 인간에게 그 정도로 휘감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곳의 수확제는 인간들이 지나치게 많이 모여. 결계를 지나면 그런 녀석들에게는 먹잇감 천지나 마찬가지였을 테고.”
“네 녀석에게 물려갔다는 인간이 숙주였던 모양이군.”
“물고 간 적 없어. 떼어낸 다음엔 제대로 뱉었고.”
“직접 설명해. 경비대 발치에서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으니까.”
인간이란. 아마도 그렇게 말하고 싶은 듯한 눈동자가 말없이 허공을 굴렀다. 삼장은 보통의 인간들은 집채만한 늑대를 보면 기절하기 마련이라는 이야기를 눈 앞의 신령에게 쏘아붙이기 위해 입술을 달싹였다가 결국 포기했다. 눈 앞의 늑대신은 인간 속으로 자주 섞이면서도 인간에게는 도통 익숙해지지 않아, 인간의 태를 두르고 다니는 어떤 순간에는 한없이 인간 같으면서도 또 어떤 구석에서는 인간과 단 한 번도 섞이지 않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신령처럼 굴고는 했다. 그런 존재와 입씨름을 벌여봤자 올라가는 것은 그의 혈압과 분노 뿐일 것을 삼장은 알고 있었다. 정확히는 경험의 승리였다.
어릴 적 스승님이 태우는 것을 아니꼽게 지켜보던 것과는 달리 담배 연기는 폐 속으로 퍼져나가며 짜증과 황당에 지친 심신을 뭉근하게 달랬다. 새벽 바람과 엉성하게 뒤섞인 연기를 길게 들이켜 삼킨 삼장이 한숨처럼 고개를 까딱였다. 그건 그렇다고 쳐. 허공을 구르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그를 향해 올곧게 틀어박혔다.
“대체 왜 네가 그걸 처리하려고 한 건데?”
어찌되었건 인간의 사념이나 원망을 먹고 몸집을 부풀리는 것은 부정不淨의 덩어리다. 신령들이라면 누구든 본능적으로 더러움을 꺼리는 것을 삼장은 모르지 않았다. 흔히 말하자면 인간이 쥐나 지네를 꺼리는 것과 비슷한 일이었다. 제게 거대한 위협을 끼치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렇다고 가까이 하고 싶지는 않은 것. 가까이 하는 순간 병처럼 옮겨붙을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어느 순간 엎어져 소매를 적시는 먹물과 같은 것들.
물론 영지를 거느리지 않고 온 천지를 돌아다니는 류화는 그보다 더한 부정을 마주할 일이 많고 류화를 지탱하는 믿음과 인연은 마주한 인간을 좀먹었던 부정한 것들을 불살라내는 과정에서 온 것을 삼장 역시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장안에서의 류화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거대한 도시는 그만큼 오래되어 몸집을 불린 사찰이 이곳저곳 뿌리내리고 있었다. 워낙에 일이 커지는 바람에 이름값을 걸고 삼장이 나온 것 뿐, 그 사찰들을 들쑤시다보면 정화든 퇴마든 해낼 수 있는 이들이 열 손가락 밖으로 넘칠 정도는 나타나리라. 그런데도.
멀뚱하게 뜨여진 외눈이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끔벅였다. 저 밋밋한 표정에서 표정의 흐름을 읽어내는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어 빗장뼈 곳곳에 짜증스러운 한숨이 깃든 삼장에게 류화가 턱 끝을 어설프게 기울였다. 때때로-아니, 사실은 볼 때마다 삼장의 열이 치받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바쁘잖아.”
“뭐?”
의문을 해소하려고 말을 던지면 또다른 의문으로 갈라져 되돌아온다. 속이 빈 채 겉만 꾸민 선문답을 주고받더라도 이 정도로 의미없지는 않으리라. 정말로 얼마 배우지 않은 법술이라도 써서 속을 털어내야 하나 미간을 구긴 삼장의 귓바퀴 위로 여전히 고저없이 차분한 목소리가 미끄러졌다. 바쁜 때잖아, 너.
“너희 절, 수확제 때는 법회도 개방하잖아? 이 곳에서 그런 일이 커지면 금산사로 이야기가 들어갈 테고, 거긴 죄 샌님들 뿐일 테니 결국 네가 두 배로 움직여야 할 것 같아서.”
“......이미 네 녀석 때문에 두 배로 움직이게 됐다만.”
“팔다리 멀쩡하게 만들어줬는데도 징징댔다는 그 인간한테 뭐라고 해.”
성의없을 정도로 간결하게 이야기를 끊어내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함이 없었다. 지금보다는 얼굴 표정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부터 제멋대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내던 늑대신은 이제 됐냐는 듯이 삼장을 향해 기울인 턱 끝을 까딱였다. 되긴 뭐가 돼. 대체 무슨 이야기가 끝난 건데. 평소처럼 욱하고 치밀어오른 말들이 삐죽하게 가시를 세웠으나 혀 끝으로는 떨어지지 않았다. 끈끈하게 목소리를 틀어막은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명망 높은 법사가 친아들처럼 기른 동자승과 석류나무 그늘 아래 버려져 일족을 잃고 모인 늑대 신령들의 무리에 거두어진 어린 신령으로 만났던 시절은 이미 무덤에 묻힌 지가 오래였다. 동자승은 스승의 죽음 앞에서 이유도 모르고 얻은 법명만을 짊어진 채 떠돌다 얼떨결에 오래된 사찰의 주지승 자리를 떠맡았고 어린 신령은 요괴들에게 무리를 잃고 원망과 분노로 일그러지다 간신히 되돌아와 찾아내야 하는 것을 찾아 천지사방을 정처없이 떠도는 떠돌이 신이 되었다. 그럼에도 때때로, 어떤 순간에, 서류화는 무덤에 묻히기에는 너무나 사소한 것들을 손에 쥐고 현장 삼장의 앞에 서 있고는 했다. 어쩌면 여전히 희미하게 온기가 서려있을지도 모르는 순간의 기억들을.
그런 순간마다 혀 끝을 지근지근 씹는 말들은 도저히 그가 가리고 골라내 목소리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과거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치를 떨면서도 그 시절의 순간만큼은 어쩔 수 없이 멈추어 선 채로 바라보게 되고 말아 삼장은 차라리 침묵을 선택했다. 일일이 하나하나 이야기를 꺼내 늘어놓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그들은 서로에게서 본 과거의 편린을 습관처럼 침묵으로 흘려보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침묵 속에서 무엇을 읽어냈는지 알 수 없는 젊은 늑대신은 혹여라도 떨어질 수 있는 이야기들에도 미련을 두지 않은 듯 아직은 밝아지기에는 요원한 먼 하늘의 손톱달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새벽녘 밝아오는 하늘을 닮은 자색 눈동자가 흘러나가는 담배 연기를 따라가듯 천천히 굴렀다. 류화. 부르는 목소리는 뒤엉키던 감정이 가라앉아 일렁임 한 점 묻어나지 않았다. 귀 뒤로 넘겨두어도 자꾸 미끄러지듯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손을 떨어뜨리며 류화가 비슷한 온도의 목소리로 대꾸했다. 왜?
“대충 털어내고 나면 꾸물거리지 말고 나가.”
“감사합니다 신령님, 하는 소리는 죽어도 안 나오는 모양이지.”
시끄러워! 오래도록 참아두었던 분을 터뜨리듯 결국 이성에 붙잡히지 않고 튀어나간 소리가 상점 거리에 걸린 장식천의 끝자락을 뒤흔들었다. 말하고 있는 인간의 속도 모르고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졌던 신령이 못마땅한 기색으로 혀를 쯧, 하고 찼다. 네가 말을 하든 말든 어차피 자리를 잡고 묵었을 텐데 괜한 공치사를 한다는 태도였다. 대체 수도 제일의 사찰을 뭐라고 생각하는 건지. 늑대의 태든 인간의 태든 금산사에 들어오는 순간 들뜨는 오공을 포함해 삼장에게 귀찮은 일들을 떠안기는 주제에 뻔뻔스럽기 그지없어 현장 삼장은 정말 진지하게 경내에 저 늑대신을 봉인해버리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렸다. 저 신령이 하고 있는 꼴을 보면 그렇게 큰 법술도 필요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러나 어찌되었든 빚이라면 빚으로 칠 무언가를 짊어지게 된 것은 사실이었다. 삼장은 분노인지 혹은 부스러지는 기억에 대한 반사적인 짜증인지 가늠할 수 없는 감정들을 따라 희미하게 지끈거리기 시작하는 관자놀이를 누르며 먼저 등을 돌렸다. 금산사를 멋대로 드나들기가 오래인 신령이다. 굳이 기다려줄 정도의 사이도 아니었으나 어쩌면 저보다 먼저 금산사에 들어가 오공이 있는 방으로 밀고 들어갈 지도 모르는 일이다. 괜한 짓을 해서 빚을 채워두었으니 어느 정도 부정을 털어낸 듯 하면 당장에 내쫓을 테다. 신령을 대하는 것보다는 식객을 대하는 듯한 생각을 곱씹으며 삼장은 새벽의 상점 거리를 가르며 걸었듯 성큼성큼 발길을 옮겨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저를 두고 걸어나가는 등을 바라보던 류화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눈 앞에 걸리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무조건 목이라도 비틀어버릴 듯 성을 내는 꼴을 보니 또 빚을 지니 마니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고 있겠지. 어린 신령의 눈에는 저보다도 더 신령처럼 아름답고 초연했던 동자승은 인간에게는 오래되고 어린 신령에게는 한순간 꿈 속 같은 시간이 지난 후에는 눈매만이 어린시절 그대로 남았을 뿐 괴팍하고 자존심만 강한 겉포장 불제자가 되어 있었다. 인간을 멀리한 것도 아닌데 그를 볼 때마다 인간이란 알 수 없이 어려운 존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어쩌다가 연이 엮인 인간이 저렇게 자라버렸는지. 훅 하니 불어온 가을 바람에 흩어지는 금발을 바라보며 젊은 늑대신은 피곤한 듯 눈을 깜박였다.
겨울이 다가오는 시기의 바람은 옅게 쇠냄새를 풍겨 류화는 삼장이 담배 연기를 뱉어내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드물게도 제 자리를 한 번 내어주었으니 그렇게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 보통 현장 삼장과 서류화의 관계에서 제가 머무를 자리를 찾아 파고드는 역할은 대부분 류화가 맡고 있었으니까. 서류화는 신령이면서 동시에 맹수였고 노리는 것이 있는 짐승은 그것의 크기를 가리지 않고 잇새 사이로 물어뜯기를 망설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째서 제가 과거의 인연이 있을 뿐 너무나도 멀어져버린 인간의 곁에 파고들고자 하는지는 아직 알지 못하는 늑대의 신령은 이미 제게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곳까지 걸어나간 인간의 등을 좇아 가볍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희게 물들지 않은 새벽의 거리에 발소리만이 뒤섞인 채로, 어설프게 묶인 과거의 연을 따라 서로에게 묶인 인간과 신령은 나란하듯 나란하지 않은 걸음으로 함께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