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생겼다는 거지?"
"생겨버렸네요…"
"지나가다 휘말린 거구나."
"휘말렸습니다…"
"…현자님, 왜 말을 따라하는 거야? 그런 죄 지은 표정까지 짓고."
"윽, 그야 카인을 괜한 일에 휘말리게 했으니까요…"
"괜한 일이라니, 전혀 그렇지 않잖아. 제법 어울린다고 생각하지만, 그 모습으로 지낼 수 없으니까."
그 말에 유카리는 제 귀에, 아니, 본래 제 귀는 아니었으나 지금은 제 귀가 된 고양이 귀에 손을 뻗었다. 이번 의뢰는 남쪽과 동쪽 마법사들이 섞여 사람이 갑자기 사라진 마을에 대해 조사하는 일이었다. 마법사들과 함께 간 곳에는 정말로 사람이 산 흔적은 있지만,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이상한 점이 있다면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동물은 많이 보인다는 부분이었다. 빈 마을에 동물들이 모여 사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들을 습격한 존재가 있었다. 마법을 전혀 쓸 줄 모르는 현자, 유카리를 다른 마법사들이 막아주긴 했으나 오히려 막아줬던 게 문제였다. 그 결과로 현자에게는 없던 귀와 꼬리가 생기고, 같이 간 마법사들도 동물이 되거나 귀와 꼬리가 생긴 모습으로 돌아와야 했으니까. 되도록 완전히 동물이 되지 않은 마법사들과 일을 해결하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단순히 모습만 달라진 건 아니었다. 그들의 본능이 각자 변한 동물에 가까워지고만 것이었다. 현자와 마법사들을 습격한 사람을 찾고 싶어도, 이탈하는 사람이 생기기 일쑤라서, 결국 -그나마 멀쩡하다고 할 수 있는- 고민하던 이들은 돌아가서 다른 마법사들을 데려오자는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그렇게 돌아간 숙소에는 아쉽게도 대부분의 마법사들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제 모습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마법사들이 모습을 되돌려야 하는 건 필수적이었기에 현자는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같이 가줄 마법사들을 찾아 다녔다. 그 결과, 찾아낸 마법사는 기껏 해야 카인 하나였다. 그마저도 현자가 찾아냈다기보다 저도 모르게 나비를 쫓던 현자를 카인이 발견한 꼴에 가까웠다. 유카리는 다시 떠오르는 부끄러운 상황에 제 얼굴을 붉혔다. 잊어주면 좋을텐데…
"그나저나, 고양이라니. 유카리는 조금 더 작은 동물의 이미지라고 생각했어."
"네? 그건 무슨 의미인가요?"
"아, 놀릴 생각은 아니야. 뭐라고 하면 좋을까? 햄스터도 잘 어울릴 것 같아."
"저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만요…"
"하하, 그거야 그렇겠지만."
유카리와 카인은 그나마 멀쩡한 모습을 유지한, 파우스트와 합류했다. 파우스트는 카인을 보며 고민하는 모습이더니 어쩔 수 없나, 하는 말과 함께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결국 직접 마법을 건 사람에게 풀게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였다. 동물로 변한 마법사들도 전부 데려가서 해결을 해야 한다는 말도. 작게 한숨을 내뱉은 파우스트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봤자 얼마 없는 인력이니 제대로 해결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만…"
"카인이라면 믿을만하다고 생각해요."
"다들 날 믿어주다니 기뻐."
"난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이, 여기 고양이 하나가 돌아다니는데. 냅둬도 되는 거야?"
"네로, 잘됐군. 너도 합류하는 게 좋겠어. 그리고 그 고양이는 시노다."
"뭐? 잠깐, 잠깐.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는데."
"도와주세요, 네로!"
"아니, 일단 상황설명부터 해줘."
셋이 모여 대화하던 와중, 네로가 푸른색의 고양이를 품에 안고 데려오자 세 사람은 밝아진 얼굴로 네로를 바라봤다. 설명해달라는 말에 파우스트는 현자를 바라봤고, 현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지금까지 있던 일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야기를 전부 들은 네로는 제 머리를 긁적였다.
"갈 사람이 없다면 합류하겠는데…"
"고마워요, 네로."
"정말이지, 오늘 식사가 늦어져도 어쩔 수 없어."
"그 정도는 괜찮아. 식사를 돕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울게."
카인이 제 가슴에 손을 얹고 당당하게 말하자 네로는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갈까."
그리고 그들은 고양이, 강아지 등 동물을 품에 안고 또다시 마을로 향했다.
*
"난 강아지가 정말 좋아."
"저, 저도 고양이가 정말 좋아요."
그들의 계획은 꽤 단순했다. 사람을 동물로 만드는 일에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며 마법사를 꾀어내기 위한 작전이 필요하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러니 우호적으로 다가가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 마법부터 쓰지 않게 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은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큰 목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고양이가 되다니… 정말 좋아…!"
현자는 양손을 꼭 쥐고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그 마법사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니 최대한 돌아다니며 말하는 게 전부였다. 한참을 돌아다니던 현자와 마법사들은 지친 목소리를 내었다.
"이렇게 말해도 나타나지 않네요…"
"어쩔 수 없어. 사이가 나빠졌다가 되돌려주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이제보니 선생에게도 귀가 있었구만?"
"…놀리지 마라, 네로."
"귀엽지 않아요?"
"…날 놀리지 마, 현자."
"내 생각에도 잘 어울리는걸."
또다시 들려온 말에 파우스트는 제 머리를 짚었다. 곤란할 일에 휘말릴 때마다 놀려오는 이들과 함께라니…
"그러니까…"
"저…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나도."
"나도 물론이야. 파우스트에게도 고양이 귀가 어울린다고 생각은 했지만…"
"카인… 그럼 누가 말한 거지?"
"내가 말했어."
불만을 내세우기 위해 입을 떼자 새롭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그들은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또다시 들려오는 목소리는 적어도 그들이 알고 있던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너희도 동물을 좋아해?"
들려온 목소리를 향해 시선을 돌리자 그들 앞에 나타난 건 몸집이 작은 이였다.
*
"저 고양이라면 정말, 정말 좋아해요."
"응, 나도 유카리에게 고양이 귀가 잘 어울린다고 계속 생각했어."
"그래, 그래. 선생에게 귀여운 동물 귀가 생기니 좀 더 다가가기 쉬운 느낌… 이랄까."
"너희는 좋은 사람이구나."
눈앞에 나타난 작은 마법사는 바로 그들이 찾던 마법사였다. 이곳에 살던 마을 사람들은 어디에서 흘러들어왔는지 모를 동물을 싫어해서, 동물을 내쫓는 사람들이라 그들의 악행을 참을 수 없었다고 마법사는 말하였다. 마을 사람들도 똑같이 동물이 되면 분명 내쫓긴 동물들의 기분을 알 수 있을 거라고. 그탓에 사람은 없지만, 동물들이 잔뜩 사는 마을로 소문이 퍼졌고, 소문이 퍼지자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도 역시 동물을 학대하는 사람이 존재했고, 이를 본 마법사는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마저 동물로 만들어버렸다고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러니 난 잘못이 없어."
"분명 마을 사람들도, 여행객도 잘못한 건 맞아. 하지만 우리는 아냐."
"마을 사람들을 도와주러 왔다고 했잖아. 나쁜 사람들을 돕게 냅둘 수는 없었어."
"네 마음은 잘 알지만 말야."
현자는 돌아다니는 동물들과 제 품에 안긴 고양이를 따스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작은 마법사를 보았다. 그에게 악의가 있어 마을 사람들을 변하게 한 건 아니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이 일을 의뢰한 건 자신의 오빠가 여행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다는 한 여동생의 부탁이었다. 작은 마법사에게 악의는 없지만, 오해와 피해를 입은 사람은 분명 있었다. 현자는 작은 마법사에게 다가갔다. 그가 또 어떤 마법을 쓸지 몰라 두려움은 있었지만, 제가 믿는 현자의 마법사들이 해결해줄 거란 믿음이 있었다. 유카리는 그의 앞에 앉아 의뢰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처럼 동물이 된 이들도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그러니 다들 되돌려주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안 될까요?"
그 말과 함께 작은 마법사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여전히 그는 망설이는 모습이었다. 이 정도로는 안 되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현자와 작은 마법사들 사이로 끼어든 건 카인이었다. 카인이 앞으로 나서더니 무릎을 꿇고 작은 마법사를 향해 당당히 말하였다.
"마을 사람들에게 우리가 잘 말해둘게."
카인의 당당함은 언제나 사람의 눈길을 이끌게 했다. 작은 마법사는 현자와 카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이 하는 말이 진심인지 알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리고 작은 마법사는 현자의 뒤에 달린 꼬리를 바라보았다. 사람의 말이나 행동보다 더 솔직한 게 있다는 걸 작은 마법사는 알고 있었다.
"정말…?"
"응, 정말이야."
카인은 작은 마법사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에게서 볼 수 있는 모습이란 눈 밖에 없었으나 카인은 작은 마법사와 제대로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현자와 마법사들은 분명 알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카인이 내뱉는 말이라면 분명한 믿음이 있다. 그 모습을 가장 가까이 바라본 건 바로 유카리였다. 카인은 언제나 자신이 한 말은 지키는 사람이었고, 그를 신뢰하는 일에 후회란 없었다. 가끔 카인이 내뱉는 칭찬과 기분 좋은 말들도 유카리는 하나하나 기억하고 있었다. 그게 비록 저만을 향한 말이 아니라 모두를 평등하고 다정하게 챙기는 성격에서 하는 말이라고 해도, 제가 느낀 기쁨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저만을 위한 말이길 몇 번이고 바란 적도 있지만 그런 마음을 카인이 알 리가 없었다. 현자는 확신했다. 분명 작은 마법사도 카인의 말에 넘어와줄 것이다. 그리고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알았어. 너희가 좋은 사람이란 건 나도 느껴지니까…"
잠시 망설이던 마법사는 그의 아티팩트를 들고 마법사들을 향해 주문을 외웠다. 그리고 몇 번이고 마을 사람들이 더이상 동물을 괴롭히거나 내쫓지 않고 사이좋게 지낼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후에야 마을 사람들마저 되돌리고, 모습을 감추었다. 반성하지 않고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다시 찾아올 거란 말도 잊지 않았다. 현자와 마법사들은 원래대로 돌아온 마을 사람들과 여행객들을 챙기며 그들이 겪은 일들에 대해 설명했다.
한참 많은 이들과 대화를 나눈 이후에야 현자는 제 머리에 손을 얹었다. 잠깐 사이에 있던 게 없어지는 기분이 든 탓이었다. 물론, 어느 쪽이 좋냐고 한다면 돌아온 쪽이 훨씬 더 좋았지만.
"정말 사라졌네요.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다행이야, 현자님! 왠지 조금 아쉽기도 하지만."
"그런 말은 치사하네요…"
"응? 그치만 진심인걸."
정말 귀여웠어, 하고 덧붙이는 카인의 말에 유카리는 붉어진 고개를 돌렸다. 저 사람은 정말이지, 자각없이 하는 말이 많았다.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 실망이 크지만.
"…다음에는 카인이 변하는 것도 좋겠어요."
"어? 나?"
"그때는 제가 카인을 귀여워해줄 테니까요."
심술부리듯 말하던 유카리는 그에게서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카인은 강아지 귀가 어울리려나요, 하며 농담하며 말하자 따라가던 카인도 같이 웃음소리를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