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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현_다나.png

*나가편과 같은 상황 다른 시점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진짜...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라고요!”

“왜 갑자기 시비야?”

“아, 아니. 서장님께 한 말은 아닌데요...”

“그럼 너 자신한테 한 말은 아닐 테고.”

“그...”

 

대답을 마저 못하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해버리는 나가의 행동이 얼마 전부터 몇몇 사람으로 걱정된다며 신경 쓰이게 한지 일주일이 흘렀다. 이렇게 된 건 아무래도 그 사건 때문이라는 건 다나 본인 역시 알아차리고 싶지 않았다.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고 나가는 그가 불편하다고 얘기를 해왔다. 그럼에도 그가 나가를 동생처럼 챙겨주고 그만큼 장난도 치고 하면서 지냈기에 일방적인 사이네 정도로 넘겼다. 누구나 둘을 봤다면 그렇게 생각했을거다. 하긴 친하진 않아도 알고 있는 사람의 사망소식은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긴 하겠지. 다나는 들고 있던 서류를 잠깐 내려놓았다.

 

“요즘 왜 그래?”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라는 게 아니라 말을 하라고.”

“그게... 헉.”

 

갑자기 말을 하다 말자 다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무것도 없어 다시 고개를 돌리니 나가의 휘젓는 팔이 제쪽으로 다가왔다. 눈이 마주치니 얼굴이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물어도 대답도 안 하고 사사나 혜나에게 물어봐도 별일 없다고만 했다 하고. 가끔 헤이즈와 대화를 주고받았다는데 헤이즈도 전혀 모르겠다는 반응이었다. 답답해 나가를 불러 팔짱을 끼며 쳐다보자 더 겁먹은 탓인지 고개를 돌린 채로 유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뭔갈 잘못했나 싶어 숨을 내쉬곤 팔짱을 풀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니까?”

 

제 말에 나가는 무언가 결심한 듯 말하려 했지만 나가의 얼굴이 파랗게 질려 추운지 한 손으로 제 팔을 문지르더니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장난 하자는 것도 아니고 슬슬 참았던 감정이 올라올 것 같아 주먹에 힘이 들어간 순간이었다.

 

“괜...찮아요.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피곤. 아마 원인은 일주일 전 그 일 때문일 거다. 다나는 손에 힘을 풀고선 놓았던 서류를 다시 잡아들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쉬게 해줘야 할 것 같았다. 일하다 사고라도 나면 안 되니까.

 

“그럼 잠깐 쉬고 와. 나중에 부를 테니까.”

“... 네.”

 

나가가 제게 인사를 한 뒤 걸어갔다. 걸어가면서도 벌레가 있는지 파리 쫓듯 손을 젓던 그가 갑자기 걸음을 멈춰 선다. 많이 피곤한 걸까. 다나는 오늘뿐만 아니라 당분간은 쉬게 해야 하나 생각을 하면서 보았다.

 

“...뇨. 왜 서장... 말...면”

 

잠깐 나가가 저를 부른듯해 고개를 드니 귀능과 얘기 중인 것을 보며 다시 서류에 집중했다. 귀능이 다가오자 다나는 서류에 대해 말하려 서류를 살짝 내리고선 입을 열었다. 그사이 먼저 귀능이 나가 쪽을 가리키며 물었다.

 

“서장님 나가군하고 무슨 얘기 했어요?”

“별 얘긴 안 했는데.”

“나가군이 누군가랑 대화하듯 혼잣말을 하더니 저와 마주치자 놀라더라고요.”

“혼잣말?”

“네. 저한테도 무슨 할 말이 있었던 거 같은데 서장님이 근처에 있어서 못한 게 아닐까 해서요.”

“때가 되면 먼저 말하겠지.”

 

귀능이 계속해서 나가 쪽을 보다 어깨를 으쓱이더니 일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신경은 쓰였지만 일단은 다나 역시 귀능과 대화를 이었다. 조금 길어질 것 같아 자리를 옮기는데 갑자기 귀능의 폰이 울린다. 전화를 받더니 일이 생겼다며 따르게 나간다. 아무래도 금방 돌아오진 않을 것 같아 가던 길을 마저 가려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난 쪽은 나가가 들어간 곳이었다. 살짝 열린 틈으로 피곤하다고 했던 나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기 전에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 걸까 조용히 지나가려 했다.

 

“왜 서장님께 얘기하면 안 돼요?”

 

누구랑 뭘 얘기하길래 저한테 감추는 걸까.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듣는 건 실례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뒤로 들리는 대화는 별다른 내용은 없었지만 곧이어 웃음을 참는 소리가 이어지다 그마저도 조용해지자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낡은 침대 위에 잠든 나가를 보며 문을 닫아야지 싶었다. 휴대전화에서 알림음이 들리자 휴대전화를 꺼내 보고는 다시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10월 31일 오후 10시. 잠든 나가를 깨우지 않게 문을 닫으려는데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왔다. 분명 창문은 닫혀있었다. 다시 문을 여니 나가 옆에 누군가 서있었다. 나가를 내려다보는 사람은 아니 사람이 아니었다. 확신할 수 있었다. 저를 보며 활짝 웃는 얼굴은 처음 만났을 때와 변함이 없었기에 다나는 어이가 없어 숨을 뱉어냈다.

 

“나야말로 피곤했던 건가. 헛것이 보이고.”

놀랐어?

“그래, 아주 놀랐다.”

하하하! 성공했네. 다나 놀란 얼굴도 너무 좋아~

 

너무 평소와 같아서 그때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그날과 같은 옷을 입고 있음에도 달려와 안기거나 장난을 치면서 시비를 걸 것 같았다. 어쩌면 그러길 바랐을지도 다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죽음은 경험을 했다. 죽고 난 뒤에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처음이라 당황했을 뿐. 다나는 안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잠이 든 나가가 뒤척이지만 그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뭐 때문에 보이는 걸까. 이유가 뭘까. 보통 이런 경우엔.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거냐?”

응. 맞아.

“해봐. 다 들어줄 테니까.”

그럼 우리가 처음 만난 날

 

다 들어준다고 했으니 근처에 있던 의자를 가져와 앉았다. 처음 만난 날이라면 최근까진 한참이 걸릴 테니까. 그렇게 신이 나서 말하는 그의 얼굴을 보니 다나 역시 그의 말에 따라 시간 여행이라도 한 듯 당시의 그를 떠올렸다.

 

그렇게 점점 시간이 흐르고 대화의 흐름이 최근과 가까워지면서 다나는 다가올 끝을 깨닫게 된다. 정작 제일 하고 싶어 하는 말을 미루면서 답답하기도 했지만 도중에 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한말도 있고 이런 상황이 또 오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기에. 피곤해 살짝 졸려다 눈이 부셔 고개를 드니 그가 저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려는데 그가 손 위로 제 손을 얹었다. 물론 그대로 통과해 버리긴 했지만. 다나는 그자 제 손을 들어 확인을 하는 걸 보고 다나는 손째로 주머니에 넣었다.

 

“계속해. 듣고 있으니까.”

계속할 얘긴 없는데 한마디만 남았거든.

“한마디?”

응. 해도 될까?

“그러던가.”

 

다나의 말에 그는 웃었다. 평소와 같았다. 너무 똑같아서 일주일 전 일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째서인지 그의 행동이 느려진 것 같았다. 주변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도 점점 느리게 문밖으로 들려오는 걷는 소리마저.

 

사랑해, 다나야.

 

손에 쥐고 있던 폰에서 알람이 울리고 문밖에서 걷는 소리가 빠르게 느껴졌다. 다나는 저도 모르게 폰을 꺼내 들어 시간을 먼저 확인했다. 11월 1일 오전 12시. 그리고 뒤에서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귀능의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장님 여기서 뭐 하세요?”

“나가가 잘 자나 확인한다고.”

“뭘 그런 걸 확인까지... 연락 왔으니까 나가야 해요.”

 

귀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의자를 제자리에 둔 뒤 조용히 밖으로 나가다 뒤를 돌아본다. 낡은 침대와 그 위에서 자고 있는 나가 그리고 점전에 자신이 사용한 의자 그뿐이었다. 재촉하는 귀능에게 알겠다며 방문을 닫았다. 조용한 방안, 순간 누군가의 웃음소리 같은 울림이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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