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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현_나가.png

*다나편과 같은 상황 다른 시점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진짜... 눈앞에서 알짱거리지 말라고요!”

“왜 갑자기 시비야?”

“아, 아니. 서장님께 한 말은 아닌데요...”

“그럼 너 자신한테 한 말은 아닐 테고.”

“그...”

 

안 그래도 불편한 사람이었다. 어떤 때는 동생 같다며 챙겨주면서 또 어떤 때는 놀리는데 재미가 붙어 상대를 괴롭히는데 앞장서는, 마이페이스인 이 사람을 아니, 이 유령을 어찌하면 좋을까. 귀찮게 구는 건 여전했다.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니. 오히려. 지금이 더 불편했다.

그 사람이 죽은 날, 장례식장에서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찾아오는 것을 보던 나가의 눈에 보이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인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바로 옆에 헤이즈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라면 자신이 제정신이 아닌 게 틀림없다고 믿을 정도로 평소와 같은 행동을 하며 저를 떠나보낸 충격에 우는 오수의 옆에 앉아 말을 걸고 있었다. 네 탓이 아니야라고. 그러나 제 말이 통하지 않아 답답했는지 벌떡 일어나 걸어, 아니 날아오던 그는 자신이 보이는 헤이즈에게 다가가 빨리 오수를 달래라며 화를 내고 있었다. 그러다 그런 그와 눈이 마주치게 되면서 일주일째 그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요즘 왜 그래?”

“죄송합니다.”

“사과를 하라는 게 아니라 말을 하라고.”

“그게... 헉.”

 

어느새 다나의 어깨 위로 팔을 둘러 안은 그가 자신을 빤히 쳐다보자 나가는 그러지 말라며 팔을 휘졌다 다나와의 눈이 마주치자 아차 싶어 다시 고개를 돌려버린다. 다나의 화난 얼굴이 다가오자 그가 웃으면서 제게 삿대질하고 그런 모습에 화가 났지만, 말은 하지 않은 체 여전히 고개만 돌리고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라니까?”

 

다나의 말에 나가는 차라리 말해버리면 편하지 않을까 싶어 고개를 들어 입을 열려 했다. 그 순간 웃고 있던 얼굴이 처음으로 이 사람은 정말 죽었구나 하고 새삼 깨닫게 만드는 표정과 함께 제 입 앞에 검지를 갖다 대는 제스처에 저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았다. 차가웠다. 웃을 땐 반짝이며 화낼 땐 서장님만큼 불같았으며 슬플 땐 옆에 있어 주고 싶은 마음에 들게 하던 그였다. 이렇게 아무 생각도 안 드는 무표정에 그가 아니라는 부정의 생각이 들 만큼 낯설었다.

 

“괜...찮아요. 피곤해서 그런가 봐요.”

“그럼 잠깐 쉬고 와. 나중에 부를 테니까.”

“... 네.”

 

나가는 다나에게 인사를 한 뒤 걸어갔다. 그러자 다나 곁에 있던 그 유령은 다나에게 한마디 하더니 바로 자신에게로 다가왔다. 파리 쫓듯 손을 저자 그가 바로 옆에 섰다.

 

화났어?

“아뇨.”

아님 무서웠구나? 미안.

“왜 서장님께 말하면”

“나가군?”

“아. 귀능씨.”

 

들었을까. 나가는 고개를 숙였다 들며 인사를 했다. 미묘한 표정의 귀능은 곧이어 웃음으로 바뀌어 나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저쪽 방 비었으니까 쉬어요.”

“네. 저...”

“할 말 있어요?”

“감사합니다.”

 

하고 싶은 말. 많다. 옆에서 저를 괴롭히는 유령 때문에 말을 못 할 뿐이지. 나가는 헤이즈를 부를까 했지만 피곤함에 귀능이 가리킨 방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보이는 낡은 침대에 그대로 누워 눈을 감았다. 그런 저를 보며 웃는 목소리에 대꾸할 힘도 없어서 그냥 쉬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나가. 있잖아. 나가랑 다나를 동시에 부르는 말이 있는데 뭔지 알아? 다나가!

“.......”

재미없어? 다나가!

“뭐 하나만 물어볼게요.”

그러던가.

“왜 서장님께 얘기하면 안 돼요?”

 

나가는 감았던 눈을 떴다. 죽기 전 그가 다나를 좋아한다는 건 두 사람을 알고 있다면 다 아는 사실이다. 대놓고 티를 냈는데 그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말하지 말라는 걸까. 헤이즈에게 제 돈을 주면서까지 입막음을 했다. 보기만 해도 좋다고 붙어있으면서도 다나나 가족처럼 생각하던 셋도 아닌 왜 자신에게 붙어서 이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평소 성격을 생각한다면 대답은 물론 재미 때문이겠지만.

 

재미없잖아.

“역시...”

그리고 기회가 있으니까 그때 말할 거야.

“기회요?”

응. 때가 있으니까. 그때까지만 비밀로 해줘. 응? 나가. 금방 오니까.

“귀찮은데.”

역시 나가야. 고마워.

 

그의 웃음소리가 들리니 나가는 그대로 눈을 감았다.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무척이나 제멋대로라 웃음이 나는 걸 겨우 참으면서 몸을 반대쪽으로 돌려버렸다.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리니 긴장되었던 몸도 함께 풀려버려 피로가 밀려들어와 정신을 어디론가 이끌었다. 흥얼거리던 노랫소리가 멎자 출입구 쪽에서 문이 열린 것 같은데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점점 다가오는 발소리는 나가에겐 점점 멀어져만 갔다.

 

 

 

잠깐 잔 것 같은데 눈을 뜨니 제법 밝아진 바깥을 보며 나가는 몸을 일으켰다. 최근 일주일 동안 눈뜨면 보이는 얼굴 때문에 소릴 지르거나 너무 놀라 소리도 못 지르는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어째서인지 조용했다. 보여야 할게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면 나가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방 밖으로 나왔다. 마침 헤이즈가 복도에서 걸어오고 있는 걸 보자 그 유령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혹시나 싶어서.

 

“아. 갔나 보네요.”

“갔다고요? 저한텐 기회가 있으니 그때까지만 있겠다고 그랬어요.”

“그거 알아요? 예전엔 10월 마지막 날은 핼러윈이라는 행사가 있었어요. 이날은 죽은 영혼들이 되살아나서 유령이나 귀신 분장을 한다더라고요.”

“그게 왜... 어. 10월 마지막이면 어제 아닌가요?”

“맞아요.”

 

나가는 어제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금방 오니까. 그렇다는 건. 나가는 어느새 바닥을 보고 있던 얼굴을 들어 다시 헤이즈 쪽을 보았다.

 

“얘기했을까요?”

“지금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다는 건... 잘 되었다.겠죠.”

“일주일 동안 너무 힘들었는데 이젠 푹 잘 수 있겠네요. 그렇다고 생각하니 피곤해...”

“오늘 저녁에 쉬지도 못할 텐데 좀 더 쉬어요.”

 

고개를 끄덕이던 나가는 나왔던 방으로 다시 돌아간다. 헤이즈는 피로에 절여있던 나가를 보다 천장 쪽으로 시선을 돌린 뒤 두어 번 고개를 끄덕인다. 그 후 제 폰이 울리자 확인하니 들어온 금액이 입금되었다는 문자를 보고선 다시 한번 천장 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든다. 헤이즈 눈에만 보인 무언가 사라지자 헤이즈는 숨을 짧게 내쉬고선 왔던 길로 되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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