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법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 기반
*이 글은 영국 학제에 대해 겉핥기로만 알고있는 사람이 썼습니다(...)
*작중 시리우스가 캐서린을 부르는 별명인 물총새의 실제 영어 철자는 ‘kingfisher’로, 시리우스가 철자를 임의로 변형하여 부르고 있다는 설정입니다.
늦가을의 밤바다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추웠다. 수면 위로는 햇빛이 빠져나간 바닷바람이 머리를 헝클어뜨렸고, 수면 아래는 느리게 진 노을이 거짓말인 것처럼 차가웠다. 하지만 캐서린 캠벨은 개의치 않았다. 바다에 닿지 못했던 시간이 추위를 잊을 정도로 길었다. 지금 이 순간이 지나면 또 언제 바다에 올 수 있을지 몰랐다. 졸업반인 자신에게는 곧 찾아올 방학도 제대로 된 방학이 아닐 테니까. 해봐야 본가의 좁은 욕조 정도로 참아야겠지. 그러니까, 지금만이라도.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특징’인 꼬리 지느러미로 느긋하게 물살을 가르며 캐서린은 더 깊은 물 속으로 미끄러지듯 스며들었다.
‘평범한 인간’ 이라면 불가능할 시간이 흐른 후에야 캐서린은 수면 위로 몸을 띄워올렸다. 소금물은 찬바람에 금새 말라버렸는지 피부 위에 끈적대며 들러붙었다. 머리 위에서 비스듬히 쏟아지는 달빛에 의지해 시간을 확인한 그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아직 해가 뜨려면 먼 시간이었고, 자정이 한참 넘어서야 잠든 친구들은 체크아웃 시간이 다 되어서야 일어날 것이 뻔했다. 동이 터올 때 쯤 대충 물기를 닦고 돌아가면 아침 운동을 하고 왔다는 변명으로 넘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모처럼 온 거니까, 즐길 수 있을만큼은 즐겨야지. 여전히 들뜬 마음으로 스스로를 변호한 캐서린이 다시 한 번 수면 아래로 파고들기 위해 고개를 들었을 때였다.
“......어.”
누가 들어도 얼이 빠진 것 같은 소리가 그의 입 밖으로 툭 떨어졌다. 정확히 그가 몸을 담그고 있는 곳과 직선으로 이어진 해안 절벽 위에 누군가 서 있었다. 캐서린은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치듯 수면 아래의 비늘 달린 꼬리를 허우적댔다. 오늘 밤은 계절에 안 맞게 유달리 날이 맑았고 구름 한 점 남아있지 않아 온 사방이 뚫린 것처럼 잘 보이는 날이었다. 더군다나 달까지 수백 개의 샹들리에를 달아놓은 듯 밝아, 해안 절벽과 해변 인근의 바다 사이의 거리라면 상대방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 만족스러움으로 가득 찼던 얼굴이 금새 새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물들기를 반복했다.
망했다. 그 생각만으로 머릿속이 가득찬 캐서린의 떨리는 눈동자가 절벽 위에 서 있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목덜미를 덮도록 길게 기른 머리카락, 달빛 아래에서 희게 빛나는 얼굴, 불량하게 기울어졌지만 누구보다도 꼿꼿한 자세,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찔러넣은 손, 은을 뿌린 쇠구슬처럼 빛나는 은회색 눈동자...
그 눈동자로 상대가 누군지 확신한 캐서린이 소리없는 비명을 지르기 전에, 절벽 위에 서 있던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했다는 듯이 휙 몸을 돌려 절벽의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나오지 못한 비명을 목구멍에 건 채로 캐서린 캠벨은 얼어붙은 입술을 삐걱였다. 망했다. 진짜 망했다. 단순히 모습을 보였기 때문은 아니었다. 요즘 세상은 ‘인어’를 봤다고 하면 그 말을 한 상대가 비웃음을 사는 세상이었으니까. 캐서린도 그 속에 은근슬쩍 끼어서 헛것을 본 게 아니냐는 의견이나 낼 수 있었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절벽 위의 남자는 캐서린과 잘 아는 사이였다. 캐서린이 그를 알아본 것처럼 그도 캐서린을 알아봤으리라. 게다가 그는 캐서린이 아는 한 가장 시끄러운 사고뭉치의 절친이었고, 그 시끄러운 사고뭉치는 학교의 유난스러운 인기인이었으며, 그들은 캐서린과 같은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시끄럽고, 매번 이해할 수 없는 장난을 치는 사고뭉치들이었지 아무도 안 믿어줄 헛소리를 퍼뜨리고 다닐 사람들이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의 입장에서 상황이 심각한 건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골이 울리기 시작해 캐서린은 손바닥 안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비리고 쓴 바닷물 냄새가 코 안을 찔렀다. 마구 흔들리는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퍼덕이던 꼬리 지느러미가 수면 위로 반쯤 튀어올랐다가 풍덩 소리를 내며 다시 가라앉았다. 눈이 따갑도록 질끈 감은 캐서린이 중얼댔다. 이건, 이건 정말로......
“진짜 큰일났다......”
반 쯤 의리로 선택한 것이나 마찬가지인(“젠장, 무니. 내 친구지만 난 널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지리 수업을 마치고 나오던 시리우스 블랙은 복도의 끝에서 자신을 마주보고 서있는 옅은 갈색 머리를 보고 한 쪽 입꼬리를 아무렇게나 들어올렸다.
먼저 가라는 의미로 옆에 선 제임스의 어깨를 툭 치자, 그의 영원한 영혼의 단짝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했다가, 그가 바라보고 있는 상대를 확인하고는 함박 웃음을 지으며 그의 등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두드렸다. 그리고는 그들의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따라오고 있던-정확히는 수업이 너무 어렵다는 피터의 푸념을 리무스가 들어주고 있던-리무스와 피터를 새끼양 몰 듯 몰아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으로 향했다. 잘해보라고, 친구! 대체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모를 응원은 덤이었다. 시리우스는 그들의 등 뒤에 대고 설렁설렁 손을 흔든 후에야 복도의 끝으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복도 끝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의 머리 위로 전등의 불빛이 부서져내렸다. 가을 갈대를 닮은 얇은 머리카락을 어깨 너머로 단정하게 늘어뜨린 모습이 한결 같았다. 완전히 각을 맞춘 것은 아니고 조금 흐트러진 구석이 있는 차림과 왼쪽 입가 아래 자리잡은 작은 점, 옆머리를 가늘게 땋아 뒤로 장식하듯 묶은 머리 모양까지도 여전했다. 유의미하게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와의 키 차이나 듣고 있는 과목 정도일까. 처음 만났을 때보다 조금 더 깊숙이 고개를 숙여 시선을 맞추며 시리우스는 한 쪽 입꼬리를 시원하게 들어올렸다.
“여, 물총새(queenfisher). 여기서 만나다니 별 일인데.”
내가 싫어서 도망다니지 않았어? 짓궂게 덧붙인 말에 캐서린이 험악하게 얼굴을 구겼다. 침울하게 처진 눈꼬리며 소심해보일 정도로 가늘게 기울어진 눈썹에서는 전혀 연상해낼 수 없는 표정이었다. 시리우스는 눈 앞에 선 동갑내기 여자애의 그런 드라마틱한 표정 변화를 만족스럽게 즐겼다. 바로 그것이 시리우스 블랙이 생각하는 캐서린 캠벨의 매력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반응이 재미있는 여자애, 그가 한 번 튕기면 열 번 쯤 튀어올랐다가 그의 얼굴로 돌진해버리는 고무 공 같은 여자애. 오늘도 여과없이 드러나는 반응에 흡족하게 웃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본 캐서린이 양 주먹을 꽉 쥐었다가 긴 한숨과 함께 풀었다. 간신히 차분해진 목소리가 캐서린의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블랙.”
“나를 그렇게 부르면서? 어림도 없지.”
약 올리려는 것이 뻔한 말에 냅다 소리를 지를뻔한 캐서린은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짧게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아무리 목이 아프도록 소리를 질러봐야 시리우스는 여전히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빙글거릴 것이 뻔했다. 원래 저런 녀석이다. 휘말리면 나만 손해다... 눈을 깜박이는 짧은 순간 동안 그 두 문장을 수 백번 쯤 중얼거린 캐서린이 분노와 짜증으로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다듬어가며 다시 말했다.
“그래, 좋아... 잠깐 나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 ‘시리우스’?”
“......오늘따라 왜 이렇게 순순해? 뭐 이상한 거라도 먹은 거야?”
네가 해달랬잖아! 이번에야말로 진짜 소리를 지를 뻔한 캐서린이 다시 한 번 심호흡을 했다. 끓어오르는 짜증으로 목소리가 덜걱거렸다.
“진짜 부탁인데, 제발 그만 좀 하고 따라와줄래? 이러다 내가 널 죽이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게 될 것 같아.”
캐서린은 그제서야 냉큼 고개를 끄덕이는 동급생 남자애를 질린 얼굴로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자식은 좀 이상한 놈이었다. 허우대는 멀쩡한데 대체 왜 속알맹이는 저 꼴인걸까. 시리우스 블랙과 처음 만난 열 네 살 무렵부터 지금까지 도저히 해결되지 않는 의문을 다시금 곱씹던 캐서린은 결국 오늘도 결론을 내리는 것을 포기했다. 지금은 더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한 중등학교에서 졸업반까지 다니다보면 이상할 정도로 문단속이 허술하고 사용하는 수업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교실을 알게되기 마련이다. 제임스와 함께 온 학교를 제 집 안방처럼 뒤지고 다니던 시리우스는 물론이고 학교 생활의 대부분을 모범적으로 보낸 캐서린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캐서린과 시리우스는 마치 서로 미리 짜놓은 것처럼 발을 나란히 맞춰 역사 수업을 하는 교실 근처에 있는, 몇 년을 다녀도 대체 이 교실에서는 무슨 수업을 하는지 알 수 없는 빈 교실로 스며들었다. 시리우스는 교실에 들어선 캐서린이 앞과 뒤의 문에 의자를 밀어놓고 교실의 구석구석을 살피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그가 조금 안도한 표정으로 문을 등지고 섰을 때에야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나한테 하고싶으신 말씀은?”
“...봤지?”
주어조차 없이 뚝 떨어진 말에 시리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뭘? 그렇게 묻는 것 같은 얼굴을 마주보며 캐서린은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깊게 심호흡을 했다. 양껏 들이킨 숨이 갈비뼈 안을 가득하게 채웠다가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아무리 마음을 굳게 먹으려고 해도 목소리는 뻑뻑하고 문장은 어설퍼졌다. 조급한 마음을 이기지 못한 손이 외갓집에서 배운 버릇대로 소란스럽게 움직이며 제스처로 아무도 알아듣지 못할 소리 없는 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캐서린은 어떻게든 말을 더듬지만은 않으려 최선을 다하며 말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난 주에, 릴리랑, 메리랑... 아무튼 우리 기숙사 애들끼리 다같이 갔던 바닷가에서. 너도 거기 있었을지는 몰랐지만.”
“아, 거기. 리무스가 저번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았거든.”
위로해 줄 겸 제임스가 기분전환하자고 자기네 별장으로 데려가줬지. 시리우스는 별 것 아니라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소시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대함이 캐서린을 덮쳤다. 잠깐 정신이 흐트러졌던 캐서린은 간신히 원래의 화제로 정신을 돌렸다.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어설프게 에두른 말들이 그들 사이로 흐느적거리며 떠돌았다.
“내가... 그러니까, 밤에 바다에 있었던 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시리우스가 턱 끝을 신경질적으로 까딱였다. 캐서린은 자꾸 말라가는 입 안을 혀 끝으로 아무렇게나 쓸었다. 그는 이 이야기를 가족이 아닌 누군가의 앞에서 소리내어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조차 없었다. 그러나 이미 일은 벌어졌고, 캐서린은 어떻게든 자신이 벌인, 혹은 자신 때문에 벌어진 일들을 수습해야만 했다. 캐서린은 지나치게 긴장을 한 탓에 도리어 차분해진 얼굴을 한 채 자조적으로 내뱉었다.
“내가 ‘생선 꼬리’를 달고 있었던 거 말이야.”
한 순간 파도가 덮친 것처럼 교실 안이 고요해졌다. 캐서린은 한 손을 들어올려 마른 눈가를 마구잡이로 문질렀다. 미안해요, 엄마. 죄송해요, 조반나 할머니. 그는 자신이 물려받은 ‘가족의 유산’을 그렇게 부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신을 ‘인어’ 라고 칭하기엔 부담스러웠다. 그건 너무 사람들의 환상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단어였으니까. 아름다운 여인의 상반신과 비늘이 달린 하반신, 암초 위에 걸터앉아 그 미모로 선원들을 홀리고, 전승에 따라서 듣는 이들을 황홀경에 빠뜨리는 노래를 부르는...... 설화 속에서 부풀려지고 다듬어진 인어의 이미지를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던 캐서린은 다시 한 번 눈가를 문지르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정말이지 자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눈 앞의 시리우스는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특유의 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 표정 안에 놀라움이나 의아함 같은 것 따위는 한 점도 보이지 않아 캐서린은 절벽 위에 있었던 사람이 시리우스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신했다. 시리우스는 마치 풀칠로 붙인 봉투처럼 입술을 딱 다문 채로 창가 근처의 벽에 등을 기댔다. 무엇을 향하는지 모를 반항적인 태도로 팔짱을 낀 채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턱 끝을 한 쪽으로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캐서린은 입 안을 헛도는 마른 숨을 아무렇게나 삼켰다.
“...생선 꼬리라기엔 지나치게 예쁘지 않아?”
“뭐?”
“보석처럼 반짝거리던걸. 그런데 정작 주인은 그걸 ‘생선 꼬리’ 라고 하다니.”
이번에는 캐서린의 입술이 서로에게 들러붙듯 딱 다물렸다. 껌벅껌벅 더듬대는 눈꺼풀을 바라보며 시리우스는 그 비슷한 얼굴을 마주했었던 어느 날의 밤을 떠올렸다.
크리스마스까지의 날짜를 세는 것이 더 빠를 늦가을에는 어울리지 않도록 맑은 날이었다. 시리우스는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선을 빼앗겼다. 정말로, 그것은 보석처럼 아름다웠다. 땅 위에 남은 모든 빛을 빨아들인 것처럼 환한 달빛 아래에서 유선형의 몸체에 달린 비늘들은 다이아몬드처럼 흰 빛으로 반짝였다. 어두운 밤바다 위로 얇고 날렵한 꼬리 지느러미가 팔락인 자리에는 그 움직임을 따라 은으로 새긴 궤적이 남았다. 그 주인이 수면 아래로 파고드느라 허공에 드러난 지느러미 위로 투과한 달빛은 수면 위에 오색의 그림자를 남겼다.
모든 것들이 바다 아래로 빨려들어가고 난 후에 그는 아는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실제 성격과는 달리 침울해보이는 처진 눈매, 금방이라도 울상으로 변할 것 같은 완만한 기울기의 눈썹, 달빛이 번져 색이 타들어간 회색 눈동자, 젖어서 주름진 셔츠 위로 가닥가닥 붙은, 가을 억새 빛깔로 물든 갈색 머리카락. 얼이 빠진 얼굴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다 소리 모를 말들을 터뜨리던, 시리우스 블랙이 정말로 ‘좋아하는’ 여자애.
그것을 알아차린 순간 시리우스는 또다시 시선의 자유를 빼앗기고 그 자리에 멀거니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방금 전, 은빛과 곡선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빼앗겼을 때와는 무언가 다른 감상이 그를 지배했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친구들이 있는 별장으로 돌아온 후에도 그 모든 광경은 그의 머릿속에 판화처럼 선명하게 남았다.
캐서린의 긴장감으로도, 시리우스의 불만족으로도 기울어지지 않은 애매한 온도의 침묵이 그들 사이를 빙글빙글 감쌌다. 교실의 커튼이 어두운 색인 탓에 안으로 치밀고 들어온 한낮의 햇빛은 그 기세를 잃고 일렁거렸다. 갈대 색의 머리카락은 그 햇빛 속에서 보면 물 속에 빠진 사람의 것처럼 보였다. 시리우스는 무언가 미묘한 얼굴로 바닥을 내려다보는 캐서린의 코 끝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너만 그런거야? 그러니까... 물총새, 너희 가족들도?”
“...외갓집 쪽만. 증조할머니의 어머니가 인어셨대. 랜덤 당첨 같은 거라서 엄마랑 나만 이렇고 내 동생은 안 그래.”
“그럼 무슨 물이든 그냥 들어가면 그렇게 돼?”
“담수 인어는 그냥 물에도 반응한다는데, 나는 해수 인어라서.... 바닷물이나 소금물에서만.”
드물게도 꼬치꼬치 캐묻는 말에 캐서린은 조금 어안이 벙벙해졌다. 이렇게까지 구체적으로 물어볼 거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해봐야 ‘그럼 넌 사람이 아닌거야?’ 같은 원초적인 질문이나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기야 시리우스 블랙이 그런 질문을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 저번에 피시 앤 칩스는 안 먹겠다고 한 것도 그래서였어? 같은 바보같은 질문은 할 수 있겠지만. 하지만 거기에 대고 한 소리를 해줄 만큼 빠릿한 상태는 아니었기 때문에, 캐서린은 그 질문에도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아니, 그건 그 집 피시 앤 칩스가 너무 맛없어 보여서 그랬어. 그 후로도 시리우스는 몇 가지의 사소한 질문을 던지다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나 말고 ‘이걸’ 아는 사람이 더 있어?”
“아직까진 너밖에 없어.”
“장난 아닌데.”
실없이 내뱉은 듯한 감탄사는 낮고 부드러웠다. 쟤는 지금 자기가 무슨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방금 전까지 자기가 한 소리가 다른 사람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알기는 할까. 캐서린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가 알고 있는 시리우스의 성격상 순수한 감탄사일 뿐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렇지만. 자꾸 기묘하게 들썩이려는 속을 덮어내리듯 가슴팍을 문지른 캐서린이 긴 숨을 내뱉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평온을 어색하게 꾸며낸 목소리로 캐서린이 페이지를 넘기듯 중얼댔다. 아무튼, 내가 하려던 말은. 그러자 시리우스가 곧장 한 손을 들어올려 그의 말을 저지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해.”
꺼내려던 말이 틀어막힌 캐서린이 입술을 달싹였다. 시리우스는 딱히 상처를 받거나 실망했다는 기색 없이 평소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한 캐서린이 변명이라도 하듯 다시 더듬대며 말을 꺼냈다.
“널 못 믿겠다는 게 아니라......”
“못 믿었어도 상관 없어. 아니, 못 믿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 내가 뭐라고 날 덥썩 믿어?”
남들 앞에서도 캐서린을 ‘좋아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댔지만, 그리고 그것 때문에 여기저기서 꽤나 알 수 없는 오해를 살 때가 있었지만, 시리우스 블랙은 자신이 캐서린 캠벨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수 밖에 없다는 것도 알았다. 캐서린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열 네 살 때부터 캐서린을 귀찮게 하고, 짜증나게 만들고, 괜한 불을 쑤석여 큰 불로 키우는 녀석일 뿐일 테니까. 그런 놈이 지금껏 오래도록 숨겨왔을 ‘가족의 비밀’을 알게 되었는데, 대체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는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캐서린 캠벨은 현명한 선택을 한 것 뿐이었다. 도리어 정석으로 비밀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하러 왔다는 것이 저 동급생의 무른 구석을 보여준다고 시리우스는 생각했다. 그 자신이었다면 좀 다른 선택을 했을텐데.
그러나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도 캐서린은 어딘가 불편한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속을 들켰다는 낭패감보다는 자신보다 더 ‘사려깊은’ 생각을 한 사람에게 괜한 짓을 하려고 했다는 죄책감이 어린 얼굴이었다. 정말로 별 생각 따위는 없다니까. 한 쪽 눈썹을 들어올린 상태로 그런 캐서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던 시리우스는 무언가를 떠올린 듯이 비죽 웃었다. 시리우스 블랙에게 감상과 기회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는 고작해야 스쳐지나갈 감상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짧은 헛기침으로 운을 떼자 캐서린이 여전히 불편해보이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뭐, 나야 대체 뭐가 미안한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정말 미안하면 부탁 하나만 들어줘.”
“너 방금 못 믿는 게 당연하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건 내 입장이지. 넌 다르잖아?”
캐서린의 가는 눈썹 머리 끝이 주름을 잡으며 비틀렸다. 아무튼 좀 인상 깊어질 기회 같은 건 주지도 않는구나. 그는 항의하듯 허리를 꼿꼿하게 세웠다가, 자신을 바라보며 비죽비죽 웃고 있는 시리우스의 얼굴을 보고 저도 모르게 한발자국 쯤 뒤로 물러섰다.
중등학교를 입학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의는 아니어도 시리우스와 알고 지냈던 경험상, 저런 얼굴을 하고 있는 그는 끔찍할 정도로 귀찮은 일들을 불러왔다. 예를 들자면 1학년 후배를 괴롭히는 상급생을 같이 골탕먹이자든가(하기는 했다. 꽤 끝내주는 복수였다), 동급생들의 필기 노트며 교과서를 훔쳐가는 도둑을 잡으려는 걸 도와달라든가(도와줬었다), 자기 친구들과 함께 하는 동아리에 같이 참여해달라든가(여전히 그곳에 소속되어 있기는 했다. 물론, 이건 전적으로 리무스를 위해서였다), 뭐 그런 것들. 여전히 한 발을 뒤로 뺀 자세를 한 채 캐서린은 방어적으로 대꾸했다.
“들어보고 대답할게. 무슨 부탁인데?”
“나중에 한번만 더 보여줘. 네 그 ‘꼬리’ 말이야.”
뭐?! 비명같은 반문이 교실을 쩌렁쩌렁 울렸다. 시리우스는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얼굴로 입을 딱 벌린 캐서린을 바라보았다. 그 웃는 얼굴을 있는 힘껏 꼬집기라도 하고 싶다는 유치하고 난폭한 충동을 애써 무시하며 캐서린은 온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 얼마나 힘이 들어갔는지 고개를 내저을 때마다 목덜미까지 얼얼했다. 어이가 없어서 뒷목이 뻐근한 것인지 고개를 젓는 힘 때문에 목줄기가 아픈 것인지는 구분이 가지 않았다.
“미쳤니? 싫어!”
“왜? 뭐 보면 닳기라도 해? 너도 ‘그거’ 꺼내놓고 있을 때는 완전히 신나있더만!”
“그거랑 이거는 다르지! 너한테도 들켰는데, 다른 사람한테 안 들킬 거라는 보장도 없고!”
“아, 뭐야. 그런 거 때문이었어?”
가장 필사적이고 본질적인 이유에도 시리우스는 여전히 태연했다. 등을 기대고 있던 벽에서 몸을 뗀 그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느긋한 움직임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럼 내가 널 우리 삼촌의 별장에 초대하면 되겠네. 뭐, 곧 내가 상속받을 예정이라 사실상 내 거지만.”
거긴 앞에 있는 해변까지 사유지라 괜찮아. 시리우스가 상쾌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캐서린 캠벨은 자신이 무엇을 들은 것인지 귀를 의심하며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물론 시리우스 블랙과 그의 단짝인 제임스 포터가 이 학교 안에서 유난스러울 정도로 부유하고 유명한 집안의 자제들이라는 것은 캐서린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블랙 가문은 대대로 부자인 데다 귀족 작위가 있다고 했고, 포터 가문은 전국민이 이름만 대도 아는 제약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속? 별장? 사유지 해변? 이 부르주아지 자식이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는 거야? 기가 차서 말을 잇지 못하는 캐서린을 향해 시리우스가 불량한 자세로 윙크를 날렸다.
“아름다운 걸 여러 번 보고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라고, 물총새. 그건 네가 제일 잘 알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인어는 좀 다른가?”
“아, 그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에서 도망치는 것도 인간의 본능이고 말이지. 인어의 본능이기도 하고. 굳이 나눠주기까지 하다니 정말 고마워서 눈물이 나네.”
예술의 국가라고 불리는, 자신의 외갓집이 있는 국가를 꼬집는 말을 캐서린은 사나운 기색으로 받아쳤다. 안타깝게도 캐서린 캠벨은 시리우스 블랙이 왜 자신을 그렇게나 건드려대는지 아직까지 알지 못했다.
시리우스는 양 볼에 벌겋게 열이 오르도록 기겁을 한 캐서린을 재미있어 죽겠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대충 어떤 결말이 나올지 알고 있어서 만들어지는 여유로움이 그를 더욱 즐겁게 만들었다. 기본적으로 똑 부러진다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 것은 확실히 챙겨가는 편인 캐서린이지만 그와 조금 더 가까운 이들은 그 안에 숨겨진 ‘실속 없는’ 면을 잘 알고 있었다. 정말로 자기 것을 챙겨가야 하는 순간마다 제게 불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 캐서린 캠벨의 가장 큰 특징이자 단점이었다. 아마 이번에도 역시, 조금 전 자기 얼굴을 뒤덮고 있던 죄책감 때문에라도 거절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의 기대에 부응하듯 한참 구겨져있던 캐서린의 미간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시리우스는 크게 웃고 싶다는 욕망을 온 힘을 다해서 억눌러가며 그 얼굴 표정의 변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지켜보았다. 자신 안의 격렬한 내적 갈등과 싸우던 캐서린이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마 그가 그것을 눈치챘더라면 시리우스 블랙은 당장에 문을 가리고 있던 의자를 치우고 교실 바깥으로 도망쳐야 했을지도 몰랐다. 캐서린이 그 의자를 들고 그를 쫓아갔을 테니까.
자신도 모르는 새 시리우스의 수명을 늘려주게 된 캐서린은 수많은 고민-조금 전에 느꼈던 죄책감, 이미 비밀을 들켰다는 데에서 오는 자포자기, 시리우스의 말을 듣고 발생한 신뢰 같은 것들-속에서 허우적대다 결국 눈을 한 번 질끈 감았다 뜨는 것으로 결단을 내렸다. 물에 젖은 개가 몸을 털 듯 고개를 푸르르 소리가 나도록 턴 캐서린이 간신히 표정 관리를 한 시리우스와 시선을 마주했다. 비장한 목소리가 선언했다.
“...딱 한 번만이야.”
“그렇게 나오셔야지.”
“그리고,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겠지만, 초대할 거면 릴리나 메리도 초대해줘. 리무스도.”
너랑 둘이 같이 있다간 내가 진짜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으니까. 예의상 입 밖으로 내지 않은 말까지 알아차렸다는 듯 시리우스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별다른 고민없이 흘러나온 승낙은 호쾌하기까지 했다.
“그러지 뭐. 방이 없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그들은 중등학교 내내 반이 갈린 적이 없었고, 그래서인지 네 친구가 내 친구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곧 본격적인 대학 입시가 시작될 테니, 그 전에 오래 알고 지낸 이들끼리 추억을 쌓자는 핑계를 대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제임스 포터의 존재가 당연히 전제될 테니 릴리의 참여가 미지수이긴 했지만 캐서린은 최선을 다해 그의 룸메이트를 설득하기로 결심했다. 미안해, 릴리. 캐서린이 속으로 심심한 사과를 보내는 사이 시리우스가 장난스레 눈썹을 들썩였다.
“프롱스의 연애 사업도 돕고, ‘인어 공주님’도 다시 보고. 제법 괜찮은 결과인데.”
“인어라고 크게 말하지마. 그리고 내가 봤을 때, 네 친구의 연애사업은 네가 아무리 도와봤자 가망이 없어.”
당장 오늘만 해도 몇 십 번째 쯤 되는 고백을 거절당한 제임스 포터를 떠올리며 캐서린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지낸 탓인지, 정작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도통 감을 잡지 못했다. 아마 자신이 왜 매번 거절 당하고 있는지도 전혀 모르고 있을 테지. 이대로 계속 가다간 평생 릴리 에반스와 외출 한 번 하지 못할 것이라고 캐서린은 장담할 수 있었다. 그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시리우스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내가 투자에 좀 약하기는 해.”
“그러니까. 넌 정말 주식은 손도 대지 말렴.”
툭 쏘아붙인 말의 어디가 그렇게 즐거웠는지 그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어댔다. 캐서린은 몇 살 위 상급생들에게까지 고백을 받았다던 그 잘생긴 얼굴이 웃음으로 엉망이 되는 꼴을 바라보다 따라서 픽 웃고 말았다. 진짜 취향을 알 수가 없다니까.
모두가 만족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한 사람만큼은 확실히 만족한 협상을 마친 그들은 문 앞을 막아두었던 의자를 제자리에 돌려두었다. 아무리 사람이 잘 오지 않는 곳이지만 혹시라도 괜한 말이 나올까 싶어 시간차를 두고 나가자는 말을 꺼내려던 캐서린은 대뜸 자신에게 들이밀어진 팔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보았다. 마치 무도회에서 숙녀를 에스코트 할 때에나 쓸 법한 자세였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올려다보자 시리우스는 그저 능청스레 입꼬리를 비틀 뿐이었다. 캐서린이 물었다.
“...뭐하는 거야?”
“약속과 거래를 끝까지 지키겠다는 맹세의 표시?”
“아, 정말 널 그냥 죽여버렸어야 했는데.”
이번의 진심은 삼켜지지 못하고 허공 위로 툭 떨어져내렸다. 그러나 시리우스는 질린 표정 한 번 없이 꿋꿋하게 팔을 내밀고 있었다. 캐서린은 지금이라도 이 웃기지도 않은 동급생을 밀어내고 혼자 바깥으로 나갈까 생각했다가, 저보다 머리 두 개 쯤은 더 큰 남자애를 밀쳐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절망했다. 남들 클 때 못 큰 것도 아니고, 남들보다 유달리 키가 작은 것도 아닌데. 눈 앞의 이 빌어먹을 동급생은 대체 자라면서 뭘 먹은 것인지 같은 학년 안에서 손에 꼽히도록 키가 컸다.
우직한 기사님이라도 되시는 양 여전히 팔을 내밀고 있던 시리우스가 그를 향해 느긋하게 눈짓했다. 어차피 네가 질 텐데 그냥 포기하라는 의미였다. 캐서린은 눈매 끝에 있는 힘껏 독기를 실어 시리우스를 노려보았다가, 이제는 익숙해진 긴 한숨과 함께 힘없이 그 팔 위로 손을 걸쳤다. 어차피 엮일대로 엮인 사이에 이런 장단을 맞춰주기 싫다고 빼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더 실랑이를 이어갈 힘도 없었다.
시리우스는 그제서야 배부른 포식자처럼 만족스러운 얼굴로 캐서린을 문 바깥으로 이끌었다. 정말로, 이번에 약속한 것만 끝나면 얘랑 엮이지 말아야지. 캐서린은 지친 얼굴로 문 밖을 나서며 생각했다. 그는 이제 곧 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했고, 특히나 의대 입시는 바늘 구멍처럼 좁았다. 이것만 끝나면 정말로 도서관에 틀어박혀서 죽은 듯이 공부만 할 것이라고, 캐서린은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러나 캐서린 캠벨은 아직 몰랐다. 인생은 어떻게 흘러갈지 도저히 알 수 없다는 것을.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친구들까지 끌어들여 가게 된 시리우스의 삼촌 소유의 해변에서, 그렇게나 보고싶다고 노래를 불러댔던 자신의 꼬리가 아니라 수면 위로 떠오른 자신의 모습을 홀린듯한 얼굴로 바라보는 시리우스를 캐서린 자신도 비슷한 표정으로 바라보게 되리라는 것, 해안가의 바위에 무릎을 꿇고 자신을 바라보는 그의 뺨을 충동적으로 감싸쥐고 입을 맞추리라는 것, 그 서툴고 미지근한 입맞춤이 자신의 모든 계획과 결심을 돌풍처럼 망가뜨릴 것이라는 그 모든 미래를 모르는 채로, 땅 위를 걷는 어린 인어가 다시 한 번 긴 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