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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주가 사망했다는 전제로 서술됩니다.

 

유키치 군에게

 

-병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고 늦게나마 편지를 써볼까, 해. 그동안 주변에 편지를 쓸 일이 없기도 했고 또 그 마지막 상대가 몇 년을 보지 못한 유키치 군이라 이렇게 편지를 쓰자니 너무 어색하지만,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으면 분명 유키치 군 혼자 오랜 시간, 분명 쓸쓸해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이걸 보면 분명 속으로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우리 만난 지 30년은 넘은 거, 알지? 그 정도는 바로 알 수 있다고? 벌써 상상도 되는걸? 아직은 40대라 산에 거뜬히 올라갈 수 있어서 직접 찾아가 이 편지를 건네주고 싶지만 난 지금 병원에 있어서 말이야…. 아마 이 편지는, 친척들이 내 말에 따라 산에 가서 유키치 군에게 전해주지 않을까 해.

그나저나 우리가 처음 만난 게 언제였지? 너무 오래돼서 이제 기억도 잘 안 나네…. 아마 10살 때쯤이었던가? 다른 친구들을 따라 산에 갔다 혼자 미아가 돼서 길을 잃어 울고 있을 때 먼저 말을 걸어줬었지? 그러고는 날 산의 입구까지 데려다줬었고. 그때 혼자였다면 분명 아무것도 못 하고 울기만 했을 텐데 유키치 군이 먼저 도와줘서 다행이었어. 그 뒤로 친구들에게 덤벙이란 별명이 붙긴 했었지만, 결과적으론 유키치 군을 알게 됐으니 잘 된 거라고 생각해.

그다음 만남은 아마 첫 만남 이후로 이틀 후였지? 내가 유키치 군을 만났던 곳으로 다시 찾아가려고 했더니 나무 위에서 “또 길을 잃을 생각이야?”라고 했던 거 말이야. 물론 난 “아니, 널 만나러 왔어!”라고 답문했지만. 어쨌든, 그날 내가 유키치 군에게 준 막과자, 기억해? 부모님이 막과자 집을 하신다고 하면서 줬던 거 말이야. 유키치 군이 무척 좋아했지, 그거~. 지금도 팔고 있으니, 산에서 나올 수 있게 될 때, 언제든 놀러 와. 겸사겸사 나도 좀 보러 오고. 그때까지 살아있도록 노력해 볼 테니까:)!!

그리고 나서는 우리 꽤 오래 만나고 같이 놀았지? 늘 내가 먼저 찾아간 거지만… 유키치 군은 늘 산에서 놀다가 보면 불쑥 사라지기도 하고 집이 어딘지 알려주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늘 찾으러 산으로 가는 것밖에 유키치 군을 만날 방법이 없었지, 어딜 다 돌아다녀도 유키치 군은 늘 산에만 있었으니까. 늘 날 산 입구에 데려다주고 작별 후에, 산에서 사당이 있는 쪽으로 들어갔지? 처음엔 사당 쪽에 집이 있다고 생각했다니까, 나? 하하. 그러고 보니 얘기하다 갑자기 든 생각인데 말이야, 유키치 군은 늘 성장이 날 따라가는 느낌이었지? 내가 성장기일 때 전날은 나보다 작다가 그다음 날이 되면 나보다 조금 커져 있었으니까. 처음에는 의아해했는데 이제는 알 것 같아. 그러니 다음에 또 모르는 아이가 찾아온다면 그때는 때에 따라 잘 맞춰봐. 내가 먼저 시범을 보여줬으니까.

그나저나 쓰다 보니 같이 놀았던 기억이 많이 떠오르는 것 같아. 있지, 기억해? 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나서 3학년 말 때쯤에 있던 일 말이야. 학교에서 존경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에게 종이꽃을 만들어 가라고 해서 히비스커스를 만들어 유키치 군에게 줬던 거, 기억하지?. 학교에서 3학년한테 왜 그런 걸 시켰는진 아직도 이해할 수 없지만 그래도 만족스러웠던 것 같아. 그날 유키치 군한테 종이꽃을 줬을 때 표정이 어땠는지 알아? 지금까지 만났던 중 가장 얼굴에 홍조가 진했다니까? 유키치 군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말이야. 사실 그날 정말 기뻤어. 나만 이렇게나 좋아하고 있던 게 아니었구나 싶어서. 그래서 무척 기뻤어. 좀 더 옆에 가까이 있어도 괜찮겠구나 싶었거든.

하지만 역시 그건 무리였나 봐. 그 후 성인이 되고 나서 갑작스럽게 생긴 병 때문에 계속 병원을 왔다 갔다 해야 해서 자연스럽게 유키치 군을 자주 보러 못 갔으니까, 말이야. 지금도 그 병 때문에 곧 죽게 될 테지만 말이야.

지금 이쪽을 읽고 있다면 내가 병으로 자주 만나러 오지 못했다는 이 얘길 왜 꺼냈는지 묻고 싶을 거라고 생각해. 음…, 이유랄까, 뭐랄까,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 병 덕분에 알게 되었으니까. 유키치 군이 인간이 아니란 걸 말이야. 있잖아, 성인이 되면 남자는 여자보다 훨씬 더 크게 돼, 앳된 모습도 줄어들고. 하지만 병원을 들락날락한 이후 어찌저찌 다시 만나게 된 유키치 군을 예전의 앳된 모습 그대로였어. 변한 게 하나도 없었어. 좀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야. 딱히 타박하는 건 아니야. 단지, 그걸 보고 깨달았어. 옆에 있어도 되겠지만 너무 옆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말이야. 유키치 군이 너무나도 좋지만, 이 감정을 널 위해서, 널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서 고이 속에서 간직해야 한다는 걸 말이야. 하지만 난 너무 욕심쟁이라 네 옆에 계속 있고 싶어. 내가 먼저 죽고 유키치 군은 그대로 남아 다른 인간들을 지켜보게 될지라도 그저 한 추억으로 남고 싶어. 하지만 그건 너무 괴롭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이건 작별의 편지야. 이 편지에 우리가 나눴던 추억을 담아서 유키치 군에게 보낼게. 그러니 부디, 날 기억에서 지워줬으면 해. 영원히 죽지 않을 당신을 사랑했던 한 인간을 기억에서 잊어줬으면 해. 같이 사랑했더라도 그저 기억에서 잊어줬으면 해. 아프지 않도록, 부디…. 당신을, 정말로 사랑했어, 유키치.

 

당신에게 마음을 담아, 아이카와 코토하가

 

 

사당에 놓여있었던 편지를 다 읽었다는 듯 편지를 다시 곱게 접으며 후쿠자와 유키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르고 맑은, 구름마저도 오늘은 절대 맑을 것이 분명하다고 말하는, 편지를 쓴 장본인인 아이카와 코토하의 웃는 모습이 생각나는 그런 하늘을. 사람의 걸음이 적은 이 사당에 사람들이 무슨 볼일이 있다고 왔나 했는데 이것 때문이었나…. 후쿠자와는 하늘을 바라보던 두 눈을 슬며시 내리감았다. 그러고는 추억했다. 자신과 아이카와 코토하의 첫 만남부터 마지막 만남까지를. 그리고 아이카와 코토하에 대하여.

 

아이카와는 한결같은 여자였다. 늘 후쿠자와, 자신의 옆에서 웃어주고 손을 잡아주던, 실눈을 뜨고 있어 제대로 된 눈동자를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그럼에도 늘 따스함이, 상냥함이 느껴지는 그런 사람이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처음에 후쿠자와는 매번 찾아오는 아이카와가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늘 그녀 나이에 따라 모습을 성장시켜야 한다는 사실이 골치 아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턴가 후쿠자와는 아이카와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은 이 산을 지키는 신이기에 나갈 수 없어 찾으러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안타까워하면서. 또, 기뻐하기도 했었다. 자신을 찾아 이 산에 올라오는 아이카와가 보일 때면 티는 내지 않아도 무척이나 기뻐하였으니까.

 

그러면서 처음에는 인정하지 않던 사실을, 자신이 아이카와를 사랑한다는 그 사실을, 후쿠자와는 점점 인정해 가기 시작했다. 만날 때면 즐거웠으며 떠날 때면 더 있어 주었으면 했기 때문에, 또 웃는 얼굴을 보며 옆에 닿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후쿠자와는 이 감정을 그저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분명 아이카와가 죽으면 괴로울 게 뻔한 감정임을 알고 있음에도 분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당의 구석에 먼지를 먹고 있던 붓과 먹, 종이를 들고나오며 후쿠자와는 저 멀리 보이는 마을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자신을 절대 너를 잊을 리가 없다고, 함께 했던 추억을 담아 보낸 이 편지를 잊어주길 바라는 작별이 아닌 잊지 않을 기억의 편지로 두겠다고, 후쿠자와는, 산신은 생각했다.

 

아이카와가 살던 마을이 보이는 적절한 곳에 먹을 한 가득 머금은 붓을 들어 후쿠자와 유키치는 편지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잊어주길 바라던 편지에 대한 답변인지, 아니면 잊지 못한다고 하는 새로운 내용의 편지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받는 이가 누구인지는 분명하였다. 그 편지의 받는 이는, 더는 볼 수 없는, 후쿠자와 자신의 하나뿐인 친구이자, 늘 옆을 채워주던 사람이자. 후쿠자와 자신을 사랑했던 인간이자―

 

사랑하는 코토하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인간인 아이카와 코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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