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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

조명 하나 없는 부둣가로 파도가 들이쳤다. 거친 아스팔트에 신발 밑창을 끌며 걷던 사내가 문득 몸을 돌렸다. 자정이 훌쩍 넘어선 상가의 불빛은 전부 꺼져있었다. 그야말로 새카만 밤이다. 어느덧 부둣가 끝자락에 다다른 그가 바다를 바라보았다. 먹을 들이 부은 듯, 빠져들면 어디가 끝인지 모를만큼 만큼 까맸다. 끝이 보이지 않는 새카만 바다. 다른 사람이라면 발끝이 저려 뒤로 물러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내에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수영하기 딱 좋다며, 씩 휘어진 입꼬리에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손에 쥐고 있던 커다란 수건을 바닥에 내던져놓고 티셔츠를 벗었다. 쌀쌀한 밤공기가 수분기를 머금고 살갗에 눌러붙었다. 보통 인간이라면 급작스러운 온도차로 인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어 얕은 뭍에서부터 들어가야 하지만 사내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다이빙 준비를 하듯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스트레칭을 하는데, 문득 시야에 이상한 형상이 스쳤다. 놀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다를 들여다봤다. 수면 아래에 잠겨있는 하얀 물체. 나폴나폴거리는 게 얼핏보면 해파리처럼 보였으나 그건 명백히 머리카락이었다. 둥그렇게 떨어지는 하얀 머리카락 아래로 남색 머리카락이 나있다. 그 아래로 가늘고 긴 팔다리가 물결에 맞추어 흔들렸다. 시선이 그곳까지 닿자 숨이 턱 막혀왔다.

 

“사람이잖아?”

 

고민할 시간 따윈 없었다. 준비 운동도 채 끝나지 않은 사내가 바다로 몸을 던졌다. 손끝에서부터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살을 가르는 감각이 선명하다. 이윽고 온몸을 휘감는 시린 온도에 그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하지만 엄살을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물살이 흐르는대로 몸을 맡긴, 죽은 듯 미동도 않는 여인을 향해 팔을 뻗었다. 움켜쥔 팔은 부러질듯 가늘었고 약한 힘으로 끌어당기자 쉽게 끌려왔다. 물살에 하늘거리던 머리끝이 사내의 팔뚝을 간질였다. 일순 전기가 오르듯 따끔했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끌어당긴 그녀의 어깨를 받쳐 수면 위로 끌어올렸다. 축 늘어진 흑색 머리카락을 쓸어올리자 잔뜩 일그러진 눈썹이 드러났다.

 

“이봐, 괜찮아? 정신이 들어?”

얼굴을 덮어오는 물기를 내내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사내가 물었다. 격양된 목소리가 밀려오는 파도소리를 뚫고 그녀에게 닿았다. 편안히 내리 감았던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힘겹게 열렸다. 속눈썹에 알알이 맺힌 물방울이 흩어지며 눈가를 따라 흘러내렸다. 투명한 유리구슬 같은 눈동자 아래서부터 단번에 자줏빛 색이 번진다. 마치 물에 물감 한 방울 떨어트린 듯이 말이다. 여닫히는 눈동자 속에 사내의 당황한 얼굴이 투영되었다. 이윽고 어깨를 크게 들썩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커다란 한숨에는 얼핏 안도감이 서려있었다.

 

“술이라도 마신건가. 하아, 얼마나 놀랐는데.”

“저기 뭔가 오해하는 것 같은데.”

 

파랗게 질린 입술에 서서히 혈색이 돌기 시작한다. 시체처럼 핏기 없던 피부가 밝아졌다. 그녀는 팔을 한 번 휘저어 그에게서 멀어졌다. 물살이 서서히 밀려났다. 그러자 팔에 휘감긴 머리카락이 풀어진다. 하얀 머리카락을 타고 흐르는 달빛은 마치 진주처럼 반짝였다. 아니, 오팔 같기도 하다. 실물로 본 적은 없지만 사내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얀 머리카락의 겉표면이 잠기지 않고 물위로 흐트러진다. 물살을 따라 하늘거리는 모양새가 얼핏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밀려드는 달빛이 차가웠다.

 

“그냥 헤엄 치던 중이었어.”

“그럼 다행이지만, 누가 봐도 죽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말야."

 

앞으로 헤엄 칠거면 그렇게 하지 말라는 등의 사족을 덧붙이고 만다. 누가 헤엄을 그렇게 친다는 거지, 되새겨보니 어이가 없어 실소를 비집었다. 사내 또한 이 시간에 헤엄치러 온 사람이긴 했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이 또 있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앞뒤로 흐느적 흔들리던 다리의 감각이 어느샌가 뭉특해졌다. 빠르고 가볍게 움직이던 다리가 밧줄에 묶인 듯 답답하자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시선을 따라 마주 선 그녀 또한 눈을 내리깔았다. 한밤중의 바다와 같은 까만색 꼬리. 배꼽 아래에서부터 인간의 형상을 잃고 일체화 되어버린 모습에 그가 멋쩍게 웃었다. 까만 꼬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자줏빛 눈동자가 별을 한아름 품은 듯 투명하게 반짝였다.

 

“너, 고래야?”

“보다시피. 그러니까 이 시간에 몰래 헤엄치러 온 거야.”

 

목을 살짝 오른편으로 기울이자 아가미가 작게 펄럭였다. 아주 먼 과거라면 모를까, 현대 사회에서 수인은 그렇게 귀한 존재는 아니었다. 과거엔 신의 형상이니, 대리인이니 하며 떠받들여졌을지 몰라도. 인간의 추악한 욕망으로부터 기인되어 시작된 번식 아래에 지금은 그저 흔하디 흔한 돌연변이 일 뿐. 하지만 고래 수인은 달랐다. 전세계 인구를 뒤져도 100명이 채 되지 않는 개체수였다. 애초에 해양 수인 존재 자체가 희귀했는데, 그 중 바다의 왕이라 불리는 고래는 두말할 것도 없었다. 물속에서 꼬리를 흔들자 투박한 물살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 그가 소녀에게 다가가자 만들어진 물결에 밀려나고 말았다. 가까이 다가갈 수록 멀어지는 그녀를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쪽 입꼬리만 틀어올린 채 입을 열었다.

 

“비밀로 해줄래?”

 

남에게 알려지면 꽤 귀찮아거든. 사내의 목소리가 마치 동굴에서 울리듯 깊어졌다. 귓가에서 웅웅거리는 목소리에 마주 선 그녀가 눈을 굴렸다. 이윽고 팔을 휘저어 그에게 다가온다. 달빛이 밀려오는 것 같다고, 그는 문득 떠올렸다. 코앞에 다가온 그녀가 자줏빛 눈끝을 샐쭉 휘어 접었다. 흐물거리던 머리카락이 그의 살갗에 닿자 짜릿한 감각이 팔을 타고 올랐다. 뼈가 도드라진 하얀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잡았다. 자연스레 수그러드는 고개에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유려하게 휘어진 입술 사이로 가장 은밀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도 내 비밀을 하나 알려줄게.”

 

 

01

한밤중의 부둣가는 오늘도 어김없이 캄캄했다. 그는 슬리퍼 밑창을 질질 끌며 부둣가 끝으로 향했다. 어깨에는 역시나 타월이 걸쳐져 있었다. 평소랑 다르다면 한 장 더 걸쳐져있다는 점이다. 매서운 파도소리보다 먼저 반겨오는 소리가 있다. 콧노래를 작게 흥얼거리는 감미로운 목소리는 마치 동화 속 인어를 연상케 했다. 질질 끌리던 발걸음이 한층 더 가벼워졌다. 조금 빨라진 걸음으로 다가가자 부둣가에 걸터앉은 여인이 보였다. 그 모습에 반가움을 주체하지 못한 입꼬리가 반사적으로 씩 올라갔다.

 

“카논!”

 

적막한 부둣가에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는 부름에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저번과는 다르게 정수리에서부터 떨어지는 머리카락이 까맸다. 마치 밤하늘을 들여놓은 듯 은은하게 푸른빛이 섞여 흐르는 색이었다. 끄트머리는 파도와 같이 하얗게 밀려들었다.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사내를 보자 카논도 마주 웃었다. 신. 하고 작게 내부른 이름이 숨처럼 흩어졌다. 부둣가에 걸터앉아 다리를 흔들거리던 몸을 일으켰다. 자줏빛 눈동자가 선명히 빛났다.

 

“오늘은 조금 늦었네.”

“아, 나 밴드하거든. 연습하고 오느라 늦었어.”

 

안그래도 덥다는 듯이 그가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온도에 민감한 카논은 그 주변에 후끈거리는 열기를 느꼈는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수건 가져오라길래. 그리 말하며 어깨에 걸친 수건을 건네려던 찰나, 그녀가 짓궂게 웃었다. 한쪽 입꼬리만 비틀어 웃는 모습이 누군가를 쏙 빼닮았다.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난 그녀의 몸이 기울었다. 허공에서 흐드러지는 머리카락 너머로 드넓은 바다가 펼쳐졌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새카만 바다가 말이다. 일순 놀란 신이 손을 뻗었다. 뼈마디가 얇은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움켜쥐었으나, 지탱하는데 역부족이었다. 오히려 휘말려버리고 말았다. 결국 탈의 하지 못한 채 끌려가듯 바다에 빠지고 만다.

귓가를 가득 메워오는 물과 마찰음. 거품처럼 터지는 기포들이 귓속으로 밀려드는 감각에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파고들어오는 짭쪼름한 바닷물에 입안이 텁텁해졌다. 그가 수면 위로 고개를 치켜들며 숨을 터트렸다.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을 쓸어올리는 손길이 제법 거칠었다. 눈썹을 울컥 구긴채 눈만 빼꼼히 내민 그녀를 내려다봤다.

 

“준비할 시간 정도는 줘야하는 거 아냐?”

“어차피 죽지도 않으면서.”

 

입술을 달싹일때마다 그녀의 입에서 보글보글 거품이 올라왔다. 불퉁히 내민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목소리가 기포처럼 흩어졌다. 고개를 수면 아래로 집어넣은 그녀가 천천히 드러누웠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침대 위라도 되는 양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잡은 손끝을 여전히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에 힘을 주어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어깨가 들썩이곤 한숨이 흘러내렸다. 어쩔 수 없지. 늘 이런 식이었다. 제멋대로인 그녀에게 하릴없이 휘둘렸다. 수면 아래로 몸을 밀어넣으며 그녀의 곁으로 다가갔다.

어느새 정수리에서부터 하얀색 머리카락이 베일처럼 그녀의 머리카락을 뒤덮었다. 끝이 동그랗게 말려버린 머리카락은 잔뜩 풀어져 하늘거렸다. 잡은 손을 놓았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한 손에 들어오는 얇은 팔뚝을 자신 쪽으로 끌어오자 인형처럼 손쉽게 끌려온다. 오히려 그녀는 편안한 듯 얕게 숨을 내쉬었다. 물살을 따라 흔들리던 머리카락이 그의 팔을 휘감았다. 저릿한 감각이 간지러워 웃음이 났다.

수면 아래에 깊이 잠긴 채 물 위를 올려다봤다. 눈앞에 밀려드는 파도 아래로 달빛이 투명하게 비쳐들었다. 흔들리는 달빛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두 사람은 물결을 이불처럼 덮고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같이 밴드하는 친구들은 전부 고양이 같다는 말도 했다. 하늘을 올려다본 그녀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더욱더 깊은, 새카만 바다를 향해서 말이다. 무슨 생각인지 한참을 그렇게 바라보다가 입을 떼었다.

 

“너는 저 아래까지 가본 적 있어?”

“뭐, 종종 심심하면 가긴 하는데. 왜?”

“그럼 나 좀 데려가주라.”

 

눈빛이 변하는 건 찰나에 불과했다. 차분하던 자줏빛 눈동자가 별을 품은 듯 반짝였다. 은은하게 비춰오는 달빛을 받으며 말이다. 어두컴컴한 바닷속에서 오로지 그녀만이 빛났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놀란 그가 푸른 눈을 한 번 굴렸다. 어려울 건 없지만. 대답을 흐리는 입술 끝에 망설임이 묻어났다. 직접 가볼 수 있지 않냐고 물으려 했던 목소리를 그녀가 가로막았다.

 

“나도 갈 수는 있는데, 돌아오지 못할까봐.”

 

해파리잖아, 나는. 덧붙인 말에 그가 아, 하고 탄식해버렸다. 해파리는 헤엄치는 힘이 약해 물결을 따라 움직이는 종족이었다. 그저 물속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생존이었지만 촉수에 강한 독성을 지닌 생물이었다. 그러니 아름다움에 속아 손을 대었다가는 큰코를 다치고 만다. 마치, 바닷 속의 장미가 따로 없다. 그가 꼬리를 크게 휘두르고 나면 그녀는 저만치 밀려나기도 했다. 어려운 부탁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를 어떻게 데리고 가야하는지, 그게 고민이었다. 입을 꾹 다문 채 고민하던 그가 조금 긴장한 듯이 물었다.

 

“그럼 잠깐 실례한다?”

 

말끝을 맺기 무섭게 팔을 잡아끈 그가 허리에 팔을 둘렀다. 단단한 팔 아래에서 선명한 박동이 느껴졌다. 물에 의해 식어버리다 못해 시리도록 찬 그녀와 달리 그는 뜨거웠다.따스한 체온에 그녀의 미간이 풀어졌다. 그 잠깐의 소란에 의해 기포가 발생했는지 귓가가 간지럽다. 이윽고 그가 힘차게 꼬리를 휘둘렀다. 앞뒤로 크게 너울대는 꼬리가 마치 물결과도 같았다. 더욱 깊은 곳으로, 그렇게 가라앉았다. 새카만 바다를 더욱 파고들 수록 추웠다. 흔들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가 고개를 부볐다. 괜찮아? 바닷속에서 깊이 울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닿자 움찔했다. 그의 팔을 붙잡은 손끝이 잘게 떨렸다.

 

“어, 으응. 괜찮은데.”

“그래? 그럼 저 위를 봐봐”

 

빙글. 물속에서 부드럽게 그가 몸을 뒤집었다. 한참 아래로 들어와 저 멀리서 희미한 빛이 보였다. 사위가 새카맸고 은갈치 무리가 눈앞을 스쳐갔다. 그들은 마치 수면에 비친 물비늘처럼 반짝였다.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작게 탄성을 지르는 반응에 그가 눈끝을 접어 웃었다. 형형색색의 물고기나 동화에서 보았던 바다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건 마치 바다가 아니라 밤하늘을 유영하는 것처럼 보였다. 등에 맞닿은 살갗 너머로 둔중한 박동이 울렸다. 카논이 고개를 틀어올리자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었다. 해파리 수인인 카논의 머리카락은 촉수나 다름없다. 강한 독성을 가지고 있었지만, 범고래 특징상 두꺼운 가죽탓인지 그는 그저 간지럽다고만 할 뿐이었다. 이런 반응도 너밖에 없을 거다. 라고. 언젠가 그의 수면을 떠들며 나눴던 대화가 뇌리를 스쳤다.

 

“너 아니었으면 나는 이런 거 평생 못봤겠지.”

“나도 누구랑 여기까지 온 건 처음이거든.”

 

조금만 더 깊이 가보자. 내가 더 좋은 거 보여줄게. 그리 말하던 사내의 꼬리가 세차게 물길질을 했다. 하반신이 앞뒤로 크게 너울대자 앞으로 숙 나아갔다. 갑작스러운 속도에 그녀가 놀라지 않게끔 허리에 두른 팔에 힘이 들어가자 근육이 꿈틀댄다. 단단히 조여오는 팔을 붙잡은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줏빛 눈동자를 힐끗 사선으로 들어올렸다. 어딘가 들떠보이는 그의 옆얼굴에 달라붙은 시선이 떨어질 줄을 모른다. 문득 해파리 소녀는, 범고래 소년이 홀로 봐왔을 그 풍경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홀로 이 드넓은 밤바다를 유영했을 범고래 소년에 대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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