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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메키는 인간을 좋아했다. 그들과 교류하고 싶어 했으며, 그들의 삶에 함께 녹아 들어가고 싶어 했다. 주변에서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부정 탄 생각이라고 해도 도도메키는 인간과 함께 살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녀는 귀뚜라미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새벽, 그 어떤 요괴도 알 수 없게 조용히 요괴들의 무리가 있는 곳을 벗어나 인간의 마을로 향했다.

 

도도메키는 산으로 가는 입구 근처에 오두막을 짓고, 그곳에서 인간과 교류하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자신의 몸 곳곳에 있는 눈들을 들키지 않기 위해―그것 말고도 이유는 있었지만―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고 그 틈에 섞여 살아갔다. 도도메키는 인간들과 함께하는 이 시간이 즐겁기만 했다. 서로 종족이 달라도 이렇게 지낼 수 있음을 느꼈으니까.

 

하지만, 도도메키와 오래 알고 지냈던 구미호와 텐구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인간이 뭐가 재밌다고 그런 쓸데없이 위험한 짓을. 그렇게 생각하며 둘은 도도메키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둘은 늘 도도메키를 찾아갔다. 하루빨리 저 생활에 지쳐 돌아오길 바라면서.

 

 

“여어~, 하루.”

“… 윽, 또 왔어?”

“뭐야, 그 질색하는 반응은. 오랜 친구가 걱정돼서 찾아와줬더니.”

 

“성의를 이렇게 무시해도 돼?”라며 제 귀를 파던 구미호가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도도메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걱정 좋아하시네! 그냥 나 귀찮게 할 생각으로 온 거잖아. ‘아, 언제쯤 얘가 포기하고 다시 돌아오려나~.’의 생각으로.”

“그거 나랑 진짜 안 닮았다, 그렇지 오오구시 군?”

“이 얘기에 나는 왜 끌어들이는 거야.”

“매정하네! 정말. 자기는 나랑 다르게 그런 생각 없이 정말 걱정돼서 왔다는 듯 얘기하고 싶나 본데, 하루는 이미 다 알아봐서 의미 없걸랑?”

 

얄밉게 웃으며 놀리는 투로 말하는 구미호를, 텐구는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며 “난 네놈이랑 다르게 정말 걱정돼서 온 게 맞으니까.”라고 답했다. 물론 그렇게 말한다 한들 도도메키의 눈에는 둘 다 다를 것 없이 보였지만.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도도메키는 구미호와 텐구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둘이 이렇게 계속 찾아와서 의지를 꺾을 생각은 없다는 듯.

 

“어쨌든. 난 안 돌아가. 여기서 지내는 것도 재밌는걸? 다들 무척 잘해주신다고. 히지카타 씨랑 톳짱이 너무 걱정이 많은 거 아니야?”

“잘해줘? 하루, 너무 둔해진 거 아니야? ‘인간으로’ 생각하니까 잘해주는 거겠지. 나중에 네가 요괴라는 걸 알아봐, 그랬다간 큰일인 거 알아?”

“그래, 이 녀석 말대로야. 나중에 들켰을 때 책임은 어떻게 지려고 이러는 거지?”

 

순식간에 장난스러웠던 분위기가 가라앉자, 도도메키는 당황한 듯 눈을 깜빡이다 이내 마른침을 삼키고 입을 열었다. 어떻게든 둘의 걱정을 덜어내고 보내서. 자신은 이곳에서 편하게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문제없어. 이렇게 붕대로 몸도 다 잘 감싸고 다니고 있고…. 여긴, 마을에서 좀 거리가 있는 곳이라 늘 오시는 분 아니면 다른 사람들은 오지도 않아. 그러니까, 크게 들킬 일은 없을 거야.”

“… 그게 문제라는 거야. 너 예전부터 조금만 잘해주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잖아.”

“그래, 그러다가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어.”

“톳짱도, 히지카타 씨도 역시 과한 걱정이야 정말…. 괜찮아. 무슨 일이 생겨도 나 혼자 어떻게 해볼 수 있고, 들키지 않게 늘 주의하고 있으니까. 알겠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 찾아와. 자신은 정말 괜찮으니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구미호와 텐구의 등을 떠밀며, 도도메키는 그냥 밝게 웃어 보였다.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도도메키를 보던 텐구는 “무슨 일이 있으면 말해라. 금방 올 테니까.”라고 했고, 구미호는 “그럼 무슨 일이 생겨도 안 도와줄 거니까, 알겠어!?”라고 화를 내더니 텐구에게 무슨 헛소리냐면서 한 대를 맞고 돌아갔다.

 

짧은 폭풍이 오가고 난 후, 도도메키는 “이제야 조용해졌네….”라며 기지개를 켜다 제 손목에 붕대가 풀린 것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좀 전에 구미호와 텐구를 보내다 풀린 것이 분명해, 도도메키는 주변을 살피고는 다시 붕대를 풀어냈다. 도도메키의 팔에 있는 셀 수 없이 많은 눈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게 들키면 정말 큰일 나겠지…. 절대 들켜서는 안 돼. 절대로….”

 

고개를 끄덕이며 도도메키는 다시 붕대를 고쳐맸다. 때마침 도도메키를 찾아 산에 오르고 있던 아주머니가 그녀의 손목에 부릅뜨고 움직이고 있는 눈을 보고만 것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그날은 어느 때보다 소란스러운 밤이었다. 귀뚜라미의 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란스러워, 도도메키는 그 소란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오두막집을 나섰다. 바깥의 주변을 둘러보는 도도메키는 곧 사람들이 큰 소리를 내며 횃불과 무기를 들고, 자신이 살고 있는 오두막으로 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무언가 이상하다. 이를 깨달은 도도메키가 무언가 행동을 취하는 했지만,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아, 있다! 있어!”

“마을 사람들이, 여긴 왜….”

“이 여자가 맞아?”

 

이 여자가 맞냐니, 무슨…. 자신의 질문은 그냥 무시하며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는 마을 사람들에, 도도메키가 눈을 깜빡이며 물어보려는 순간, 뒤쪽에서 자주 자신에게 찾아와 인사하던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여자가 맞아! 저 여자, 손목에 눈이 있어. 움직이는 눈이 셀 수 없이 많이 있었다고!”

“네…?”

 

머리가 이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도도메키의 심정은 딱 그랬다. 지금 자기가 무슨 얘기를 들은 것인지, 도도메키는 알 수 없었다. 눈? 내 손목에 눈? 그걸 언제? 그렇게 조심했는데? 여러 생각이 교차하며 주변의 소리가 들리지 않던 때였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손목을 확인한다며 도도메키의 손목을 거칠게 끌어당겨 손목에 있던 붕대를 풀어냈다. 그때 정신이 돌아온 도도메키가 다급하게 손목을 뿌리쳐 내고자 했으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요, 요괴다!”

“사람의 손목에 눈이 있어!”

“당장 죽여!”

 

다급하게 손목을 뿌리친 도도메키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사람들의 눈빛이 살의로 바뀐 것은 한순간이었다. 도망가야 한다. 그 순간 도도메키의 머릿속에 떠오른 단어는 이것 하나뿐이었다. 사람들이 가져온 무기를 들기도 전에, 도도메키의 다리가 먼저 움직여 산으로 몸을 움직이게 했다.

 

이제 전부 다 끝이었다.

 

 

“저 여자를 잡아!”

“마을에 들어오려 한 불경한 것이야. 잡아 없애야 해!”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 같은 화살들을 피해 달리며, 도도메키는 거친 숨만 내쉬었다. 이미 다리에 하나, 어깨에 하나 화살을 맞아 빠른 속도로 달리는 것은 그녀에겐 너무 무리였다. 적어도 마을 사람들만 따돌린다면 어떻게든 하겠노라. 그렇게 생각하며, 도도메키는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아내며 더 숲속 깊은 곳을 향해 달렸다. 이렇게 잡혀 죽고 싶지 않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사람들의 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 것을 깨달은 도도메키는 그 자리에 엎어져 주저앉았다. 그제야 화살에 맞고, 나무에 베이고 했던 곳들이 아프기 시작했다. 현재 이 상처를 치료할 수 있는 붕대가 없었기에, 도도메키는 제 옷소매를 찢어 상처 부위에 붕대 대신에 묶어냈다. 상처에 옷가지가 쓸릴 때마다 그 상처 난 부위가 아픈 것만 같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파…. 여기까지 아픈 줄도 모르고 달렸구나, 나….”

 

상처를 치료하고, 공간이 조용해지자, 도도메키는 몰려오는 복잡한 감정에 그저 두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내 존재가 그렇게 잘못됐던 걸까.’라는 생각을 하니 너무 억울하기만 할 뿐이라, 도도메키는 제 다리를 끌어모아 안으며 꾹 참던 눈물을 터트린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인간과 요괴가 서로 조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자신이, 주변의 말처럼 정말 어리석었던 것인가 싶어 서럽기만 할 뿐이었다. 그때였다.

 

“… 하루?”

“카츠시카, 이게 무슨….”

 

앞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목소리에, 도도메키는 고개를 들어보았다. 구미호랑 텐구. 누구보다 자신을 걱정하던 둘이 지금 앞에 있는 것을 보자, 도도메키는 그제야 자신이 요괴들이 살고 있는 곳과 가까운 곳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만 안심이 된 나머지 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긴토키, 히지카타 씨….”

“너 왜 울어. 무슨 일이야.”

“이 상처들은 또 무슨 일이지….”

 

그 모습에 당황한 구미호와 텐구는 어쩔 줄 몰라 하다 도도메키의 몸 곳곳에 생채기와 지혈하려는 듯 엉성하게 묶인 옷소매를 발견했다. 인간들과 어울리고 싶다고 하며 인간들의 마을에 간 요괴가 한밤중에 다친 채로 숲속 깊은 곳에 와서 울만 한 일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그 둘은 잘 알고 있었다. 평소에 사고를 치는 것과 거리가 먼 도도메키가 그곳에서 정체를 들키게 된 것이 마을에서 소란을 피웠기 때문이 아니란 것 또한 마찬가지로.

 

“… 돌아가지.”

“네? 하지만, 히지카타 씨…. 전….”

 

그렇기에 구미호와 텐구는 상처받았을 도도메키를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었다. 바보 같이 착하기만 해서 약간의 호의에도 그 상대가 친절할 것이라 믿는 이 요괴가 상처받은 것이 속상했으니까. 도망치듯 마을을 나온 자신이 돌아가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 머뭇거리는 도도메키를 보며, 구미호는 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녀의 말은 더 듣지 않은 채, 곧바로 도도메키를 업어냈다.

 

“잠깐, 내가 돌아가는 건 역시 좀…!”

“뭐가 어때서. 넌 원래 여기서 살던 앤데, 고향에 돌아가는 게 뭐 문제 있어? 그렇지, 히지카타 군?”

“그래, 그런 몸으로 다른 곳을 간다고 하는 것도 이상한 것 같은데. 같이 돌아가지.”

 

등 뒤에서 잠깐 기다리라고 하는 도도메키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건 지금 구미호와 텐구에겐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었을뿐더러 들어줄 의향 또한 없었다. 일단 도도메키의 이 상처를 치료하는 게 우선이었으니까. 이야기를 듣는 것은 그 후에 해도 된다고 생각하며, 셋은 더 깊은 숲으로 걸어갔다. 귀뚜라미의 소리만 들리는 어느 깊은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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