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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늘 별종 취급을 받곤 했다. 아가씨답지 않다며 간혹 집안 메이드들도 이야기할 정도로 철도 없고, 능력치가 대단히 뛰어난 것도 아니고, 품격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그런 평가는 자연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런 나도 예쁘다고 챙겨주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가족이야 피가 섞였으니 어쩔 수 없다 쳐도 다섯 손가락 정도 꼽을 정도로 날 위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거겠지.

 

“아가씨.”

“왜?”

“내일 행사가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

“아, 뭐 하는 거라고 했더라?”

“독서 감상문 대회 축사해 주시는 날입니다.”

“아, 맞다.”

“축사 준비는 다 하셨나요?”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하게.”

“괜찮으시겠습니까? 아가씨 말주변 없는 거 다 아는데.”

“야!”

“하긴 쿠죠인 가 내에서 유일하게 이와 관련된 분이시니.”

“너 놀리는 거지?”

“일단 차부터 드시죠.”

 

위하는 사람 중 하나이긴 한데 어째 위하는 것보다 놀리는 데 맛 들린 녀석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애인이니 어쩔 수 없나. 나오키가 건넨 차를 마시며 창밖을 내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이따 행사 끝나고 저녁은 밖에서 먹을까?”

“집안에서 충분히 식사가 가능한데 굳이 외식을 하셔야 하겠습니까?”

“데이트 하자고, 데이트.”

“옷 쇼핑하는 조건이면 가고.”

“집에 옷이 없는 것도 아닌데 왜 또 사?”

“넌 있는 옷도 내가 골라주지 않으면 안 입잖아.”

“패션 센스가 엉망인 걸 어떡해!”

“하긴, 그러네.”

“야! 진짜 놀릴래?”

 

차를 다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니 나오키가 물었다.

 

“그래서, 쇼핑하러 갈 거야?”

“비싼 거 사잔 소리 하지 마.”

“주인님이 주신 카드도 있는데 굳이 저렴한 걸 살 필요가 없잖아. 쿠죠인 가 품위를 생각해야지.”

“몰라, 그런 거. 너 내가 그런 거 따지면서 산 거 본 적이나 있어?”

“좀 챙기면 어때. 이제 나이도 스물둘이고 집안 위치라는 게 어떤 건지 알잖아.”

 

저게 진짜. 그런 게 싫어서 발버둥 쳐 온 걸 뻔히 알면서 잘도 그런 소리를 한단 말이야? 짜증이 솟구쳐 따지려고 하니 나오키가 먼저 선수 쳤다.

 

“나 때문에 돌아온 거잖아. 그러면 어느 정도 그에 따른 책임을 져 달라는 게 어려운 이야기는 아닐 거라 생각하는데?”

 

그렇게 이야기하면 내가 무슨 말을 하냐고. 나오키 말마따나 내가 다시 일본으로 돌아온 건 순전히 나오키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무슨 일을 하든 나오키 옆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돌아왔으니. 못 본 새에 나오키는 날 향한 확신이라도 생긴 것처럼 전보다 훨씬 강경해졌다. 그게 싫지 않은 내가 진짜 콩깍지가 제대로 씌워진 거지.

 

“화려한 거 빼고 사는 거로.”

“알겠습니다.”

“쇼핑 다 하고 나서 스키야키 집 갈 거야.”

“네.”

“크레이프도 먹으러 갈 거고.”

“그리고?”

“노래방 가자!”

“네. 그러면 그렇게 일정 짜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오늘 옷은 이미 골라뒀습니다.”

“고마워.”

 

짧게 입 맞추고 떨어지니 나오키는 멍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왜 그런 표정을 짓는담. 귀엽게.

 

아침을 먹고 나오키와 나는 쇼핑에 나섰다. 원체 옷 보는 눈이 없어서 의류 쇼핑은 잘 하지 않았는데 나오키가 직접 골라 주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살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게 뻔했다.

 

“오늘 목표는 아가씨 평상복, 행사 때 입을 정장, 구두, 운동화, 카디건을 사는 게 목표입니다.”

“잠깐만, 누구 마음대로?”

“제 마음대로죠. 자, 오늘 노래방까지 가려면 생각보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사람이 하나인데 무슨 옷을 그렇게 많이 사!”

“사람이 하나라고 한 가지 생활만 합니까?”

“윽.”

“이 쪽으로 가시죠.”

 

나오키는 익숙하게 나를 이끌었다. 백화점에 들어가 직원과 몇 번 이야기를 나누더니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얼마 되지 않아 직원이 정장 여러 벌을 들고 서 있었다.

 

“아가씨가 입으신다면 이런 건 어떠실까 하고 다 들고 왔는데.”

“이렇게나 많이요?”

“전부 다 사지는 않을 겁니다. 두세 벌 정도 살 거니까요.”

“우리 오빠가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주인님께서 다 사도 좋다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아가씨가 옷 사는 데 취미를 붙이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면서.”

“오빠도 참.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 사도 된다는 소리는 왜 해?”

“원체 아가씨를 아끼는 분이잖습니까. 그러니 각각 두세 벌씩만 사시죠.”

“각각 두세 벌이라는 건 카디건 두세 벌, 정장 두세 벌, 뭐 그런 식으로 사자는 거야?”

“네.”

“그냥 한 벌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

“단벌은 제 쪽에서 용납 못합니다. 아가씨 옷 고르는 일도 보통이 아니라는 점 감안해 주십시오.”

“알았어.”

 

하긴 행사 때마다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며 나오키가 불평하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니 그냥 오늘은 작정하고 고를까. 분명 오늘 옷을 사면 한 몇 개월 정도는 옷 안 사도 될 것 같았다. 나오키는 내가 옷 욕심이 너무 없다며 불평하더니 이내 그럴싸한 것들을 하나하나 따져 가며 내게 내밀었다.

 

“입어 보세요.”

“네.”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고 벗고를 반복하는 동안 나오키는 내가 괜찮다고 했던 것들을 다시 훑어보고 계산했다. 오히려 신발 쇼핑은 내가 발이 아픈 게 싫어 발이 덜 아플 만한 것으로 고르기만 하면 되었기에 금방 끝났다. 문제는 평상복도 사계절 별로 입을 것을 사야 한다며 의류 매장에서 나올 생각이 없었던 나오키였지.

 

“아가씨는 돈도 많으시면서 쇼핑도 많이 해 주시면 좋은데.”

“내가 돈이 많나요? 오빠가 많지.”

 

옷이며 신발을 잔뜩 샀는데 같이 따라 나온 수행원들이 그걸 전부 챙겨 들어 나나 나오키는 들 게 없었다. 내 옷이니 몇 벌은 내가 들겠다고 말했지만 옆에 있는 나오키는 그런 꼴을 보지 못하는 아주 성실한 집사였다. 수행원들이 산 것들을 차에 싣는 동안 나오키가 말했다.

 

“한동안 옷 안 살 생각이십니까?”

“응. 옷 사는 거 너무 지겨워.”

“얼마 사지도 않으시면서 지겹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하지만 계속 입었다 벗었다 반복해야 하잖아. 어떨 때는 팔이 아프다니까?”

“엄살은.”

“아니거든?”

“전부 실었습니다.”

“고생했어요! 배고프다. 스키야키, 스키야키. 달걀 톡 까서 노른자에 찍어먹고.”

 

정체 모를 노래를 흥얼거리는 나를 나오키가 힐끔거리더니 말했다.

 

“생각해 보니 아가씨가 뭘 먹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도 오랜만이군요.”

“아, 그러네.”

“아가씨는 한 번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면 먹을 때까지 그 생각이 오래 가기는 하지만 한 번 먹고 나면 아무래도 좋다는 식이니까요.”

“너 완전히 나를 다 파악했구나?”

“아가씨가 단순하신 거죠.”

“아, 기사님. 얘 여기 처음 들어올 때도 이렇게 얄미웠어요?”

 

기사님은 그저 웃기만 했다. 얄미워서 눈을 흘기니 나오키는 별로 타격이 없는지 어깨를 으쓱거렸다.

 

“식사 끝나고 바로 크레이프 드시러 가실 겁니까?”

“아니. 잠깐 책 보러 갈 거야.”

“서점으로요?”

“응. 이번에 독서 감상문 대회 하는 책들 웬만큼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목록 보니까 안 읽은 것도 있더라.”

“아가씨도 참여하실 겁니까?”

“아니. 그냥 읽기만 할 건데?”

“알겠습니다.”

“엄청 뿌듯한 얼굴 하고 있네.”

“그래도 아가씨는 교양은 놓지 않으시는 것 같아서요.”

“참나. 나도 나름 쿠죠인이거든?”

 

내 말을 들은 나오키는 싱긋 웃더니 내게만 들릴 정도로 작은 목소리를 귓가에 흘렸다.

 

“응. 잘 하고 있어. 근사해.”

“뭐, 뭐야. 갑자기 그런 부끄러운 말을 다 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건 아니까. 그래도 패션 센스는 노력해도 안 될 것 같지만.”

“너 꼭 그렇게 한 마디씩 붙일래?”

 

하지만 나오키 손이 은밀하게 내 손 위에 겹쳐져 나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쿠죠인 가 내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연심이 있다는 걸 모를 이가 없을 텐데 나오키는 주변인들을 의식하는 건지 뭔지 몰라도 여럿과 함께 있을 때 스킨십을 꽤나 조심스럽게 했다. 그게 더 부끄러운데도 말이다.

 

먹고 싶었던 스키야키를 먹고, 서점으로 가면서 미리 받아둔 독서 감상문 대회 필독 도서 목록을 하나하나 훑었다. 그리고 아직 읽지 않은 책들을 골라 나오키에게 건넸다.

 

“계산!”

“책 욕심은 많으셔서 다행입니다.”

“그거 무슨 뜻인데?”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면 좀 더 둘러보실 겁니까?”

“응. 보다가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또 사야지.”

 

크레이프도 먹고 노래방도 가려고 했는데 올케 언니가 급히 나를 찾는 바람에 결국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아, 초콜릿 잼 듬뿍 바른 크레이프 먹고 싶었는데.”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언니는 뭐 때문에 날 찾는 거야?”

“아마 아가씨가 읽는 책 중에 관심 가시는 게 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럴 수 있지. 그럼 가자.”

 

집에 돌아가니 올케 언니는 날 보고 한걸음에 달려 나왔다. 언니가 다짜고짜 나를 품에 끌어안은 탓에 나와 나오키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서로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언니는 곧 집 안으로 들어와 우리 두 사람을 소파에 앉게 했다. 나오키는 집사 신분이라며 앉지 않겠다고 했지만. 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온갖 칭찬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아가씨는 천재인가봐!”

“엥? 언니, 무슨 일 있었어요?”

“전에 내가 아가씨한테 책 하나 추천해 달라고 했잖아요. 독서 모임에서 읽을 거라고.”

“아, 그랬었지. 어떻게 됐어요?”

“그게 어른들 읽는 동화다 보니까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좀 슬프잖아요? 그걸 내가 읽는데 사모님들 몇몇 분들이 막 우시면서 ‘요새 동화도 이렇게 무거운 메시지를 던질 수 있구나.’ 하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막 하는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요. 그런 데는 고상한 티낸다고 고전이나 어려운 책 들고 가서 콧대 세우려는 사람들 천지라고. 책은 글자 하나하나를 읽는 거라 단순 사교 모임용으로 책을 이용하는 거 안 좋은 건데 아직도 그러고 다니는 사모님들 많다니까. 아우, 나는 너무 싫어. 그래서, 언니 그 때 분위기 확 잡았겠네?”

 

올케 언니는 내 한 마디에 신이 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늘어놓았다. 대화 도중에 다과가 놓여져 나와 언니는 나오키를 보았다. 빠르기도 하지. 내 앞에는 약속대로 초콜릿 잼이 발라진 크레이프가 있었다.

 

“아싸, 크레이프!”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품위를 어느 정도는 유지하십시오, 아가씨.”

“집인데 풀어지면 좀 어때!”

“그런데 아가씨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에이, 대단한 것도 아닌데요. 말했잖아요. 나 그런 거 되게 싫어한다니까. 내가 좋아하는 게 사모님들 말 안 듣기거든요. 우리 엄마 빼고.”

“흠.”

“뭐야, 그 반응?”

“아무것도 아닙니다.”

“너 나 놀리는 거지!”

 

우리가 실랑이를 벌이려는 걸 보고 언니가 싱긋 웃었다.

 

“아가씨는 마카베한테 투정은 부리셔도 좋아하는 게 티가 난다니까요.”

“언니!”

“마카베는 좋겠다. 아가씨 같은 사람이 애인이라.”

“누가 보면 언니는 결혼 안 한 줄 알겠어.”

 

내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걸 본 두 사람이 쿡쿡 웃었다. 앞에 놓인 다과를 다 먹은 걸 본 나오키가 물었다.

 

“더 가져다 드릴까요?”

“이따가. 나 책 읽으러 갈 거야.”

“알겠습니다.”

“아가씨, 읽다가 나한테 추천해 줄 만한 책 있으면 알려주기예요?”

“네.”

 

내 방으로 들어가려니 나오키도 뒤를 따랐다. 그가 문을 닫자 바로 책을 꺼내 읽으려는데 흐뭇한 표정으로 날 보는 게 느껴져 눈을 깜빡였다.

 

“왜?”

“아가씨도 가만 보면 성실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이렇게라도 해야 그나마 덜 눈 밖에 날 거 아니야.”

“그런 걱정을 하시긴 합니까?”

“내 능력이 모자라는 건 나도 알아. 그러니까 없는 판 안에서 뭐라도 해야지.”

 

집은 책을 펼치려는 순간 나오키가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게 입을 맞추고 떨어지며 말했다.

 

“아가씨는 지금도 잘 하고 계십니다.”

“아부는.”

“진짜인데. 이렇게 이야기해도 불안하면 내가 부적 줄까?”

“부적? 별일이네. 네 입에서 부적이라는 말이 다 나오고. 그럼 받을래.”

“알겠습니다. 내일 챙겨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오늘 하루는 푹 쉬십시오.”

“응.”

 

나는 나오키가 방을 나선 뒤 저녁 먹을 때가 아니고서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고 책만 읽었다. 집안 식구들도 내가 책 읽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여간해서 내 독서를 방해하려 하지 않았다. 슬슬 독서를 그만두고 자려고 했는데 타이밍 맞춰 나오키가 문을 열었다.

 

“왜?”

“내일 입으실 옷들을 걸어 두겠습니다.”

“아, 응.”

“이제 책은 그만 읽으실 겁니까?”

“그러려고. 슬슬 눈 아파.”

“알겠습니다. 향초 피워 놓을까요?”

“아니. 옷 걸어두고 다시 와.”

“네?”

“그거 입고 잘 거 아니잖아.”

 

나는 나오키가 입은 옷을 가리켰다. 집사복 차림인 그를 가리키니 나오키가 나를 잠깐 보다 싱긋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나오키는 내가 입기 편하게 옷을 걸어두고 나갔다. 그리고 잠옷 차림으로 돌아왔다.

 

“이제 주무실 시간입니다.”

“아, 오늘 진짜 많이 읽었다. 눈 아파.”

“무리해서 읽지 말지.”

“재미있으니까 그냥 정신없이 읽었지 뭐.”

 

나오키는 옆에 누워 내 눈가를 살살 쓸더니 품에 안았다.

 

“잘 자.”

“나오키도.”

 

자고 일어났더니 나오키는 없었다. 부지런한 집사는 가만있으면 좀이 쑤시는 건가. 일어나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뒤, 메이드들에게 붙잡혀 공들인 화장을 받았다.

 

“아, 나 이렇게 화장 안 해 줘도 된다니까.”

“아가씨, 공식 석상이니까 오늘은 참으세요.”

“공식 석상에서 화장이 필수면 아저씨들도 하고 나오라 그래. 수염 자국 다 보여서 흉하다고.”

“아휴, 정말.”

“내 말이 틀려?”

“아가씨, 화는 나중에 내시고 일단 가만히 계세요. 안 그러면 마카베 집사님 부를 거예요.”

“하여튼 나 다루는 데는 전문가들이지.”

 

내 불평에 메이드들이 키득키득 웃었다. 화장까지 끝내고 방을 나서려는데 나오키가 안으로 들어왔다.

 

“왜 그래?”

“브로치를 달아드리겠습니다.”

“웬 브로치?”

“공식 석상이니까 특별히.”

“알았어.”

 

나오키는 루비가 큐빅처럼 조그맣게 박힌 브로치를 내 가슴팍에 조심스레 달았다. 거울 앞에 서서 옷매무새를 다듬으려다 브로치에 눈길이 갔다. 이거 어디서 본 건데. 뭔가 떠올라 나오키를 불렀다.

 

“나오키.”

“네?”

“이리 와.”

 

나오키는 내가 뭔가를 알아챈 걸 눈치 챘는지 조금 머뭇거렸다. 새하얀 얼굴에 홍조가 도드라졌다.

 

“얼른.”

“알겠습니다.”

 

나는 까치발을 들려 했다. 그러자 그가 먼저 허리를 숙였다. 역시나 내 눈에 들어온 건 나오키 가슴팍에 달린 브로치였다. 내가 달고 있는 것과 같은 디자인이었지만 나오키 것은 그가 지닌 눈동자 색과 같은 색인 자수정이 박혀 있었다. 그 브로치는 내가 나오키 생일 선물로 사준 것이었는데 그가 같은 디자인에 루비가 박힌 것으로 구해 온 모양이었다.

 

“뭐야, 이거.”

“크흠.”

“응? 뭐야, 어디서 구해 온 거야? 네 건 내가 주문제작 한 건데.”

“같은 데서 주문제작 한 겁니다.”

“돈이 어디서 났어? 이거 꽤 비싸서 나 대학 때 모은 돈으로 겨우 맞춰 샀는데.”

“아가씨께 선물하고 싶다고 했더니 주인님이 조금 도와주셨습니다.”

“오빠가?”

 

나오키는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브로치 선물을 받고 나서부터 저도 답례할 준비를 하고 있었겠지. 그게 마침 행사 때 만들어진 거고. 나는 나오키 브로치를 보고 말했다.

 

“역시 잘 어울리네. 옷 되게 잘 골랐다.”

“감사합니다. 아가씨도 근사하십니다.”

“그런 아부 안 해도 된다니까.”

 

나오키 손을 잡고 거울 앞에 선 순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쩐지 그가 골라준 옷은 마치 커플룩 같았다. 시밀러룩이라고 해야 하나. 완전히 같은 거라고 한다면 브로치 하나뿐인데 정장과 셔츠까지 비슷한 디자인이라 일부러 맞춰 입은 것 같았다. 아, 아니. 일부러 맞췄겠지. 내 옆에 있는 근사한 집사님이. 내 시선에 더 얼굴이 붉어진 나오키가 말했다.

 

“그럼 슬슬 행사장에 가실까요?”

“부적 잘 받았어.”

“잘 받으셨다니 다행입니다.”

 

슬며시 웃은 나오키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당연하게 그것을 잡고 차로 가는 동안 나는 내 옷차림과 그 옷차림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치 어디 있어도 함께 있겠다는 나오키 식 표현 같아 행사장에 도착할 때까지 난 웃음을 머금은 채로 옷차림을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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