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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어둠을 헤매던 정신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느껴지는 익숙한 꽃내음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몸이 향기에 이끌리듯 일으켜졌고, 그 탓에 몸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얇은 이불이 스르륵 어깨에서 흘러내렸다. 오래도록 이불에만 있었던지라 후끈하게 달아올랐던 몸에 조금은 차갑다고 느껴질 수도 있는 공기가 맞닿아 소름이 오소소 돋았지만 소리는 개의치 않았다.

 

소고가 일부러 문을 열고 간 걸까.

 

활짝 열린 방문 앞으로 벚꽃잎들이 남몰래 살며시 들어오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경치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소고는 분명 제가 벚꽃에 이끌려 나오길 바라고 문을 열고 간 것이겠지.

 

소리는 이불을 제 몸에서 떼어내고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밖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다 문득 보인 것에 멈추어 섰다. 전에는 등에 닿던 머리카락 끝이 골반보다도 조금 아래까지 길어져있었다. 언제 이렇게 자란 거지. 소리는 제 머리카락 한 줌을 쥐어 가만히 응시했다. 무언가 결단을 내린 건지 주변을 둘러보다 눈에 들어온 가위를 쥐고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제 머리카락을 전부 잡고는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다. 막무가내로 잘라 엉성하지만 어깨에 살짝 닿는 길이가 마음에 들어 입꼬리가 들어올려졌다.

 

소리는 머리카락을 대충 한 손으로 헝클어 정리하고 언제나 그러했듯이 자연스럽게 방문을 나섰다. 따뜻하게 살랑이는 봄바람을 맞으며 툇마루에 걸 터 앉았다. 벚꽃을 보니 추억들이 서서히 떠올랐고, 그 뒤를 따라오는 이가 있었다. 아직은 볼 수 없는, 그립고 그리운 사람. 눈을 뜨면 제일 보고 싶고 눈을 감아도 제일 먼저 아른거리는 내 사랑. 어두운 색채의 머리카락과 눈동자를 가졌음에도 벚꽃이 그렇게도 잘 어울리던 나의 토시로..

 

서로의 마음을 전하고, 그와 함께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누던 그 추억의 장소가 눈앞에 그려지자 코끝이 찡해졌다. 꽃잎 때문에 분홍빛으로 물든 하늘을 바라보니 더욱더 그리움이 번져나갔다. 그와의 만남을 위해선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 저 혼자만 그 순간에 멈춰있을 순 없는 것이다. 소리는 자리에서 일어나 분주하게 움직였다. 헐렁한 유카타를 벗어던지고, 한곳에 걸어져 있던 빳빳한 와이셔츠와 외투를 걸치고 짧아진 머리를 대충 묶었다.

 

당신이 사랑하는 카부키쵸 거리를, 진선조를 저와 모두가 함께 지키고 있을 테니 비어있는 이 자리를 채워주세요.

예전처럼 당신이 이곳을 사랑하고 행복할 수 있도록. 당신을 기꺼이 환영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 놓을게요.

그러니 이 벚꽃 잎이 다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 수고했다며 다정하게 웃어주고 따뜻하게 안아주세요.

 

소리는 거리로 나서기 전에 마지막으로 벚꽃을 바라보며 자그마하게 소망을 빌었다.

나의 말이, 이 다짐이 부디 살랑이며 날아가는 저 벚꽃 잎들로 인해 그 사람에게 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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