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시리스의 세 번째 초회 한정판 앨범이 자쿠로의 원룸 아파트로 도착한 것은 11월의 토요일 저녁이었다. 공교롭게도 19일이었다. 첫 번째의 쿠루스 마코토가 불에 타 죽은 날이기도 했고 두 번째의 쿠루스 마코토가 지금도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여자와 결혼식을 올린 날이기도 했고, 열일곱 번째의 쿠루스 마코토가 자택에서 목을 매단 날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에야 마침내 자쿠로는 정말로 이 숫자를 제 최악의 징크스로 꼽아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지만 그는 앨범을 감싼 비닐을 칼이나 가위 따위를 쓰지 않고도 기스 없이 찢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손가락에 잠깐 신경을 집중하면- 이렇게, 동글동글한 타원형 모양의 손톱이 순식간에 목을 그으면 사람 하나는 간단히 저승으로 보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흉기로 변하니까. 다만 오늘의 그는 평소와 다른 절차로 앨범을 음미했다. CD 플레이어를 찾는 일보다 가장 먼저 앨범의 케이스를 장식하는 가사 수록집을 조금은 머뭇거리며 꺼내었다. 이번 가을의 신 수록곡인 Re:incarnation의 가사는 수록집의 가장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져 있었다. 주인공은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거대한 지구본을 배경으로 한 철칙처럼. 평소 같으면 30초도 채 되지 않을 시간에 가사를 정독했을 그였지만, 오시리스의 멤버들이 우아하게 푸른 소파 위에 걸터앉아 수려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그 가사집의 표지는 5분이 넘도록 자쿠로의 손아귀에 들려있었다. 이어 오랜 잠수 끝에 물 위로 올라온 것처럼 거친 한숨을 뱉었다. 설마. 아니겠지.
시간에 저항하고 저항하고, 상처입히면서, 그래도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이데아 속,
썩어문드러져도 다시 되살아나는 환생한 생명-…….
-라고, 정말 넘길 수 있는 걸까. 사실 확신을 해야할지 말지를 따지는 타당성이 있는 까닭 자체가 없었다.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이제 스물 세 살의 생일을 맞은 자쿠로의 영혼은 사실 삼백 살 정도에서 나이 세기를 포기했다는 거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쿠루스 마코토를 따라 되살아나는 일 자체도. 바로 그의 지금 생 이전의 원환축에서. 군의관이었던 자쿠로는 마지막에 수류탄의 폭발력에 다리뼈와 갈비뼈가 한번에 으깨지는 고통 속에서 막연하게 생각했다. 다음 생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이 목숨이 끝나면 더 이상 그의 영혼은 원을 그리며 흐르지 않을 것이라고.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사안이라고 생각했을 회귀하는 생명들의 만남은 정말 그의 예상대로 불공평하게 기억을 부여했다. 왜냐하면 키리가쿠레 자쿠로는 악마였으니까. 자신을 기억조차 못하던 사람에게 내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당신을 처음 만났는지를 설명한다 한들, 그가 단편적이고 조작의 가능성이 다분한 이야기를 신뢰해 기꺼이 마음을 의탁해줄까. 자쿠로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실제로 아닌 결말을 20번 약간 넘는 횟수로 맞이했다. 그의 마음을 이해하는 만큼 자쿠로의 영혼이 낡아가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었다. 다음 번이 정말 마지막, 다음 번이 정말 마지막. 언제 20캐럿짜리 진퉁 다이아몬드를 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에 광산을 파헤치는 사람들처럼 흙더미같은 지하를 기는 것도 지쳤다. 작은 다이아몬드처럼 지금의 제 어미의 품에 안겼을 적, 분명히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을 곱씹어보면, 아마 그는 오시리스의 새로운 라이브 투어 명이 Re:incarnation이라는 사실에서부터 감을 잡았어야 했을까? 이번 곡의 작사가 드물게도 쿄와 마코토의 합작이라는 사실에서부터 감을 잡았어야 했을까? 그러나 결국 그저 오시리스 특유의 탐미적이고 몽환적인 가사를 고안한 결과물로 넘겨왔던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눈을, 링커네이션의 라이브 스테이지에 오른 쿠루스 마코토는 하고 있었다. 빨간색, 검정색, 파란색. 라이브마다 그는 색색의 피크를 바지 주머니에서 빼어 팬 서비스로 하나씩 던졌고 마치 주인이 정해져 있던 것처럼 매번 다른 색의 피크가 자쿠로의 발치로 남들 모르게 떨어졌다. 그 피크들은 지금도 자쿠로의 화장대 첫 번째 서랍에 조용히 웅크리고 있었다. 알록달록한 삼각형이 꼭 형편없이 깨진 교회의 스테인드 글라스 조각을 보는 것 같아서 불내가 나는 것 같다. 낡다못해 곰팡이가 서린 기억이 아련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그것이 싫은 이유는 그 희망에 다음 순환의 고리를 떠올리는 자신의 뇌가 존재함이라. 자쿠로는 무심결에 손등으로 눈가를 눌렀다. 열기와, 열기 외의 무언가로 뭉근하게 차오른 안구가 그녀의 눈꺼풀 너머에서 느껴졌다.
왜 이제 와서.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바람이 현실성을 갖게 되고 예감에 대한 불신이 드는 감각에서 헤어나올 방법을 찾는 것이 급했다. 조금 자면 나아질 수 있을까? 그녀는 가사 수록집을 곱게 케이스에 끼워넣고 애벌레처럼 침대로 기어가 담요로 몸을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