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적의 연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다.
정의관이 흔들리는 일뿐 아니라연인에게 악의를 품은 자가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얀은 단한순간도 그러한 이유로 제 연인의 손을 놓으려 한적이 없었다.
신이 아니기에 스스로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도 인생을 바꿔 줄 수도 없다 생각해
자신과 같은 길이 아니라고 연인을 매도하지 않았고,
악의를 품고 달려드는 자에게 원망이나 분노가 아닌 법대로 움직여 집행했기에
그 일들을 제 연인과 관련시키지도 않았다.
하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명령은 하루사메에 거짓정보를 흘려 잡는다는 내용의 임무였다.
멍청한 대가리는 그저 가능성 따위 염려하지 않은 자살 특공대같은 명령
실패한다면 거슬리던 패가 없어진 것이고,
성공하면 운이 좋게 잘풀린것이고
거절한다면 꼬투리를 잡게 되니,
이 모든 것이 떡하니 보이는 명령에 부장님은 서류를 집어던졌고 대장님은 욕을 내뱉으며 밖으로 나가셨다.
얀은 연인을 잡는 것에 대해 화가 난 것은 아니다.
그저 ‘정의’가 약하니 제 적을 이기기 위해 비겁한 수단을 쓴다는 것이 싫었다
배를 불릴 생각만 하는 탐욕적인 머리들이.
위선자들이 싫었다.
결과가 좋다해도 수단이 정의롭지 않으면 그것이 정의라 할 수 있겠는가.
얀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는 살고 싶지 않았다.
올려다 본 하늘은 더 이상 푸르지않았다.
얀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졌다.
*“먼저 이렇게 부르다니 별일이네.”
얀은 늘 칼처럼 일정표를 지킨다.
언제나 불쑥 찾아와 시간을 보내자고 청하는건 제 몫이였기에, 아부토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지않고 얀의 기색을 살폈다.
확실하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빛을 죽인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듯 유리 속 물처럼 찰랑거리고있었다.
시간을 두고 들어보려던 말은
언제나처럼 올곧은 얀에 의해 본론으로 바로 진입하여
거짓이나
꾸밈없이
아부토의 귀에 들어갔다.
*
“저는 아무것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요.”
긴말을 끝내고 마주한 눈동자는 여전히 빛을 잃었지만 단호하게 어둠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저는 거짓을 고하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도망치지도 않을 것이며,
모두를 말려들게 하지도 않을 것이에요.”
결심을 하고 온 건지 지금 결심을 하는건지 모를 말은
위인의 명언처럼 단호하고, 곧았지만
결론은 자신이 모든 것을 짊어진 채 배를 가르겠다는 의미였다.
그것은 그녀속에서 결단코 희생이 아니라, 자신이 정한 길이자 운명이였고
아부토는 그것이 퍽 마음에-….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해도 아가씨의 고집은 꺾을 수 없겠지.”
얀을 바라보던 아부토는 그저 뒷목을 마사지하듯 누르며 언제나와 같은 나른한 말투로 답을 했다.
고집쟁이 아가씨.
아부토가 보는 얀은 그러했다.
그러한 고집의 모습에 반한 자신이 진것이였다.
그 고집을 사랑했고
아이러니하게 그 정의감이 마음에 들었었다.
자신을 위해 대신 죽어달라던가, 죽여달라던가 말했다면
어쩌면 얀을 죽였을지도 몰랐을 일이다.
얀이 얀으로 남아있지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까 잠깐 실례할게”
“????아부토씨?”
갑자기 시야가 바뀌고 자신을 들쳐 맨 아부토에 얀은 상황을 이해하려 애썼다.
“신센구미 아가씨. 지금부터 하루사메 제 7사단 부단장 아부토에게 납치되는거야.”“네??”
“집에 가고싶다 떼써도 안보내줄꺼니까 지구에 바이바이해”
“바이바이요??”
“좋아 그럼 이대로 간다.”“!?!?!!!?”이대로 얀이 사라진다면
납치된 얀을 임무에 투입할 수 없기에 자연스럽게 명령은 철회될 것이고,
동료를 잃은 신센구미에게 그 책임을 감히 지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얀은 자신의 정의관을 버리지 않았고,
해적은 자신이 마음에 든 것을 강탈해 간 것뿐 이였다.
아부토는 얀이 이대로 남아있어준다면,
다시 빛을 품은 눈동자를 한다면
자신의 작은 히어로가 무너지지않는다면
자신은 악당이여도 좋았다.
원망을 받아도 좋았다.
자신에게 증오로 가득한 눈을 해도 좋았다.
상대에게 자비로운 얀이 그럴 일은 없겠지만
아부토에게 들쳐매져서 배로 향하는 중 올려다본 하늘은
몹시도 푸른 밤이여서 얀은 조금 웃었다.
얀은 더이상 떠나고 싶지 않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