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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나부!”

“학교에선 이름만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내가 여기서 강의하는 사실과 미래의 아내가 미인인 건 아무런 관계가 없다, 고 했다며!”

 

히이라기의 잔뜩 화가 난 목소리가 연구실에 울렸다. 아, 또 시끄럽겠군. 살짝 기울어져 있던 유카와의 눈썹이 일자가 되며 한숨 소리가 살짝 새어 나왔다.

 

“과학자 맞아!? 논리성 있어?! 우리가 이 학교에서 만난 걸 알면서도 어떻게 마나부 입으로 관계가 없다고 할 수 있어?”

“유카와 조교수님, 이라고 할 수는 없나?”

“흘러가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의 특성 때문에라도 굳이 수정해 말을 하는 일은 하고 싶으니까 이대로 말하겠어.”

“비효율의 극을 달리고 있군.”

 

유카와 조교수라고 불러주면 될 것이 싫다는 사유를 이렇게까지 길게 말하다니, 비논리성과 비효율성의 절정을 보여준 히이라기의 말을 들은 유카와가 감탄을 표하듯 한 마디를 내뱉고 모니터 앞에 둔 키보드를 느릿하게 두드렸다. 슬슬 기말고사를 준비해야 할 시즌인지, 모니터 옆의 달력에는 붉은 동그라미가 하나 쳐져 있었다.

 

“비효율을 유도한 건 마나부잖아?”

“그래. 히이라기 시즈카는 잘못 같은 것 안 하는 사람이지.”

“비꼬는 것 같은데 기분 탓 아니지?”

“그래서, 내가 말 한 게 뭐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래?”

“유카와가 여기서 강의하는 사실이 어떻게 미래의 아내인 내가 미인인 것과 관계가 없어? 유카와가 여기서 강의를 하니까 미인인 나를 만났지.”

“우리가 결혼을 한다고 한 적이 있던가?”

“내가 프러포즈를 했는데 ‘아직 작성을 덜 한 논문이 있어서, 결혼은 나중에 하지.’ 라고 말 한 건 마나부씨잖아?”

“아, 그랬었지.”

“장난하냐!?”

 

단조로운 키보드 소리가 히이라기의 말소리 뒤로 이어졌다. 한참을 대답 없이 키보드를 치던 유카와의 표정은 여전히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내가 이런 게 뭐가 예쁘다고 고백을 했는지, 히이라기는 히메컷으로 쳐내둔 옆머리를 손으로 빗어 정리한 다음에 뒷머리를 손으로 모아 묶어 올리고는 유카와의 맞은편에 앉았다.

 

“마나부씨는 나랑 연애하는 게 별로야?”

“그럴 리가 있나, 히이라기 시즈카라는 학자만큼 나와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마나부는 학자 히이라기 시즈카를 좋아하지, 연인으로서의 히이라기 시즈카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서?”

“이렇게 지나치게 논리성을 잊을 때는 매력이 없어진다는 생각이 들긴 해.”

“마나부 말은 늘 치쿠린의 잘못된 곳에서 잘 자란 대나무 같단 말야.”

 

유카와의 테이블에 엎드린 채 입술을 비죽이며 말을 하던 히이라기가 가만히 그를 올려다봤다. 반 정도만 까 올린 앞머리 아래에 있는 또렷한 이목구비가 객관적으로 봐도 잘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돌린 채 그를 올려다보느라 옆머리에 얼굴이 덮인 그녀는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제 애인을 한참 올려다봤다. 커튼 너머로 저 멀리에 있는 그를 보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시야에 손가락이 살짝 가까워졌고, 그와 함께 시야가 넓어졌다.

 

“얼굴을 보이러 온 거면 계속 보여주지 그래. 그렇게 가리고만 있지 말고.”

“모니터 보고 있으면서 얼굴 보는 척 말하기는.”

“방금 다 쓰고 연인의 얼굴을 보려고 하던 차였는데.”

“이, 이제 와서 연인이라고 하지 말지!?”

“실로 재미있군, 연인인 히이라기 시즈카를 본다는 것을 이렇게 선명하게 거부하다니.”

“거, 거기서 연인이라고 하기 있어!?”

 

연인이라는 단어에 질겁하며 몸을 일으킨 히이라기를 보며 유카와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히이라기는 그 제스처에 기운이 빠져 다시 책상에 몸을 기대듯 엎드렸다. 그녀는 이런 식으로 능글맞게 구는 유카와가 밉기도, 좋기도 했다. 책상에 팔을 두고 턱을 괸 유카와는 엎드린 채 입술을 비죽이는 히이라기를 가만히 내려다보다 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제 뻔뻔한 태도는 무결하다는 일종의 주장 같은 것이었다.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는 유카와의 얼굴을 보던 히이라기는 갑자기 얼굴에 열이 오르는 기분이 들어 옆머리를 팍 내려 다시 얼굴을 가렸다.

 

“그 성격이나 표정을 보니 알겠군. 지나가면서 말하는 걸 듣고 화가 나서 찾아와 일단 따지고 봤겠지? 내가 그 뒤에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고.”

“사랑이란 건 우연일 뿐, 공식에 대입하긴 불가능하다고도 했다며, 쿠사나기씨에게 전부 들었거든?”

“지금 우리가 하는 것이 비논리적임의 완벽한 증거라는 말도?”

“그러곤 수업 짠-하고 끝낸 것도.”

“내가 왜 그런 이야기를 했는지는 알고?”

“양자역학의 비논리성을 설명하기 위해서였지!”

“맞아. 우연하고 비논리적이기에 공식에 대입할 수도, 명확한 정리를 내릴 수도 없다는 것도 설명했고.”

 

턱을 괴고 있던 유카와가 천천히 몸을 낮춰 히이라기의 옆에 엎드리며 고개를 돌렸다. 히이라기는 제 눈에 담긴 선이 짙고 또렷한 그의 눈에서 뻗어나온 속눈썹이 길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카와는 다시 한 번 히이라기의 옆머리를 손으로 걷어내주며 눈을 맞췄다.

 

“예시가 별로였다면 다음 강의에서는 취하하도록 하지.”

“취하하기 싫어도 취하해야 할걸.”

“제법 무서운데.”

“그렇지, 천재 물리학자 유카와 마나부도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으니까?”

“맞아. 세상에서 가장 난폭한 파동함수를 가진 히이라기 시즈카의 미래라면 더더욱 예측할 수 없지.”

“지금 날 양자로 만든 거야, 마나부씨?”

“시즈카의 모든 행동이 내가 든 예시가 틀리지 않았다는 방증이 되는 중이라서.”

 

책상에 엎드린 채 대화를 나누던 유카와가 웃음을 터트리며 작게 어깨를 들썩였다. 자신을 놀리는 것이 퍽 재미가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도 드러내고 있었다. 아주 재미가 드신 제 애인을 보던 히이라기는 아랫입술을 비죽 내밀며 유카와의 볼을 확 꼬집었다.

 

“양자 공격!”

“아이에 앗게 점 널디 그애.”

“인식되는 파동이 불확실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모르겠습니다, 유카와 마나부 조교수님.”

 

나이에 맞게 좀 놀지 그래. 질색하는 표정으로 말을 하는 유카와를 보던 히이라기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이름에 직책까지 더해 말을 하는 것은 히이라기가 쌓아둔 불만이 있다는 사인이었다. 한껏 눈살을 찌푸린 얼굴을 보니 이 고착된 비논리적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유카와는 저렇게 자신이 불렸을 때의 증례들을 머릿속에서 천천히 분석했다. 분석의 과정이 꽤 길었다. 유카와는 시즈카의 손에 양 볼이 모두 붙잡히고 나서야 이 비논리적인 상황을 끝내기 위해 타인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카와는 허망하게 제 연구실의 문을 바라봤다. 자칫 다른 말을 했다간 어떤 미래가 찾아오게 될지 그로서는 ‘예측할 수 없었기에’, 이 비논리적인 상황에서 누군가가 구해주기만을 바라며 히이라기가 알아채지 못 할 비언어적 표현을 하는 것이 그가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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