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작성자가 구상한 오리지널 스토리입니다. 시점은 대략 리로드와 리로드 블래스트 사이입니다.
● 연인드림 위주가 아닙니다만 저팔계 오리주 연인드림 요소가 있습니다.
● 드림주의 트라우마가 간접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 For real 가사 중 ‘いつが わがままな うたごえが きみに とどいてそんな しゅんかんに この せがいは かわっでゆく’ 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해석: 언젠가 내 멋대로의 노랫소리가 너에게 닿을 거야. 그런 순간에 이 세계는 변해.)
여느 때와 같이 팔계가 모는 지프를 타고 일행은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산옥은 호랑이로 변해 가방 안에 제 몸을 구겨 넣은 지 오래였다.
“나 이러고 있으니까 멀미날 것 같아.”
“조금만 더 힘내요, 산옥. 마을에 도착하면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오면 되니까.”
“엄살 아니냐?”
“아니거든! 야, 네가 이 작은 가방에 들어가 보고 얘기하지 그래?”
“너네 또 맞고 싶으면 적당히 떠들어라. 앙?”
“다물겠습니다.”
쿠션감이 안 좋아. 불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에 오공이 고개를 말했다.
“산옥!”
“네!”
“저기 봐, 마을이다!”
“정말요?”
오공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정말 마을이 있었다. 차가 멈추자 모두가 차에서 내렸다. 산옥은 가방에서 빠져나와 인간의 모습을 하고서 그들의 뒤에 섰다. 그러자 백룡이 본모습을 하고 팔계의 어깨에 자리를 잡았다. 하룻밤 묵을 곳을 찾아보기로 한 그들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그들이 마을 안으로 들어오자,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들렸다. 현장 삼장에 대한 소문이 퍼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눈치였다. 그 수군거림을 들은 오정이 말했다.
“어이, 삼장 오빠. 아주 인기가 넘쳐흐르는데?”
“닥쳐.”
“아이고, 무서워라. 무서워서 뭔 말을 못 하겠네.”
“괜히 법사님 신경 거스르지 말고 알아서 입 좀 다물지? 이런저런 소리 듣는 거 별로 좋은 일도 아닌데.”
산옥이 중재하듯 대꾸하자, 오정은 입을 다물었다. 옆에서 걷는 삼장의 표정이 가히 살인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셋이 투닥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팔계는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활기가 넘치네요, 우리는.”
“저게 활기같지는 않은데, 팔계?”
“아하하.”
오공의 지적에 팔계는 머쓱했는지 어색하게 웃었다. 걷다 보니 아이들이 놀고 있는 공터가 눈에 띄었다. 아이들은 공터를 뛰어다니며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놀이가 아닌 것 같았다. 한 아이가 다른 아이를 등에 업고 달리는데 그게 왠지 좋아서 업고 다니는 게 아니었다. 적어도 산옥이 보기에는 그랬다. 마른 아이가 자기보다 더 덩치가 있는 아이를 업고 허걱대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정당하지 않은 일이라 생각하리라. 더구나 아이는 다리를 덜덜 떨며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가을의 선선한 날씨도 무색하게 땀을 흘리던 아이는 결국 주저앉아 버렸다. 업혀 있던 아이가 풀썩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바닥 위에 서더니 쓰러진 아이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야, 누가 넘어지래. 진짜 또 맞아봐야 정신 차릴 거냐? 일어나, 일어나라고!”
술래잡기를 하던 다른 아이들도 몰려와 발길질을 해댔다. 그 전부터 산옥이 분노에 가득 차 주먹을 쥐고 있었는데, 발길질하는 것을 보자 결국 참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네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기에 사람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야, 빨리 안 꺼져?”
화났다. 삼장 일행 모두가 바로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산옥은 평소에 화를 다 억누르는 타입인데, 폭력에 관해서 상당히 예민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그런 것을 목격하면 참지 못했다. 팔계가 말리려고 나섰지만 이미 산옥은 눈이 돌아간 지 오래였다. 만류하기도 전에 맞고 있던 아이를 틈바구니에서 빼내 제 등에 업더니 말했다.
“뭐하는 놈들인지 몰라도 얘는 내가 데려간다. 허튼 짓 했다간 지옥불에 던져놓을 줄 알아. 알았어?”
그 말에 아이들이 씩씩대더니 산옥에게 달려들었다. 산옥은 어렵지 않게 발길질을 피했다. 아이들의 발길질 정도야 말 그래도 ‘어린애 장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능숙하게 발길질을 피하는데, 뒤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오는 소리가 들렸다. 산옥은 한 쪽 팔을 뒤로 돌려 손가락으로 불꽃을 일으켜 그것을 태워버렸다. 그 모습에 아이들이 몸을 떨었다. 현장 삼장 일행 중에 불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 사람이 설마 눈앞에 있으리라곤 생각지도 못한 얼굴이었다. 덜덜 떠는 아이들을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산옥이 말했다.
“괜한 녀석 괴롭히지 말고 알아서들 놀아. 너희들도 좋은 어른이 되고 싶을 거 아니야. 안 그래? 가요, 여러분.”
아이들은 멍하니 서 있다가 금방 각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아마 산옥의 모습을 어른들에게 이야기해 줄 게 뻔했다. 산옥은 아이를 업고 가다가 내려주었다. 짜증과 화가 섞여 있던 표정이 풀리고 한껏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디 더 다치지는 않았어?”
“네? 네.”
“다행이다. 난 그런 거 못 참거든. 누가 당하고 있는 거 말이야.”
아이는 삼장 일행과 같이 걸어가다가 말했다.
“무서웠어요.”
“누구나 그런 상황에서는 다 무서울거야. 집까지 바래다줄게.”
“누나랑 같이 있는 형들은 현장 삼장 법사님하고 같이 여행 가는거죠?”
“어떻게 알았어?”
“예전에 아빠가 얘기해 줬어요.”
“그랬구나.”
아이를 집까지 데려다 주고 자초지종을 이야기해주자, 아이의 부모가 일행에게 머리 숙여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머리 숙여 인사한 부모는 삼장의 이야기에 자신의 집에서 머물러도 좋다며 일행을 안으로 데려왔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산옥은 오정과 삼장에게 이야기했다.
“아이가 있을 때는 어떻게 하라고 했죠?”
“술은 어른의 허락을 받고 마시고, 담배는 자중하며, 마작 같은 도박은 일체 하지 않는다.”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말이라 삼장은 이미 외워버린 지 오래였다. 줄줄 읊는 걸 듣고 나서 산옥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공이 팔계에게 말했다.
“산옥이 저 둘의 부모님 같다.”
“미안하지만 그건 조금 징그러워요, 오공.”
“아, 팔계 입장에서는 그렇겠네.”
“너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오공이 동조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오정과 삼장이 동시에 소리를 질렀다. 그에 웃음이 터진 셋은 집주인 부부가 방을 골라줄 때까지 한참 동안 웃고 있었다. 나중에 저녁 식사를 하며 이아기를 들었는데, 부부의 아들인 정와는 알 수 없는 불치병을 앓고 있어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이 줄어들고, 몸이 말라간다는 내용이었다. 산옥은 그 이야기를 들으며 찔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근본적으로 마음이 약한 그였으니까. 잠들기 전 정와는 홀로 차를 마시는 산옥을 보고 다가갔다,
“누나.”
“응? 정와 안 잤어?”
“누나는 안 자요?”
“응. 조금 이따가 자려고. 차 마실래?”
“아니에요. 괜찮아요.”
정와는 산옥의 맞은편에 앉아서 차를 마시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산옥은 그런 정와를 알면서도 재촉할 생각이 없어서인지 느긋하게 차를 계속 즐기고 있었다.
“누나가 아까 당하고 있는 모습은 못 참는다고 그랬잖아요. 그리고 혼내줬고요.”
“음, 혼내줬다고 해야 하나? 딱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그래도요. 누나같이 강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나같은 사람? 글쎄.”
산옥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인지라 조금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스스로가 강하다고 여겨본 적도 없었으니까. 뭐라 말해주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는데 밖에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산옥은 정와를 보다가 말했다.
“정와야,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금방 갔다 올게.”
산옥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산옥의 모습에 팔계는 그를 부르려다 말고 일행들 전체를 불러 따라 나갔다. 산옥은 일행들의 기척을 느끼고 바닥 위에 손을 갖다댔다.
“몇 명이나 있는 것 같냐?”
“다섯 명은 될 것 같은데요. 한 명씩 맡을까요?”
“그러지 뭐. 어차피 삼장은 잡는 것 이상일 테지만.”
“그러면 가 볼까요?”
산옥이 기운을 읽어내 요괴가 있는 곳으로 일행을 이끌었다. 도착한 곳은 아까 정와를 구해냈던 공터였다. 정와를 괴롭히던 아이들이 요괴에게 위협당하고 있었다. 귀찮은 것들. 그렇게 중얼거린 소리에 요괴들이 뒤를 돌아보았다. 삼장이 뭘 쳐다보냐는 듯한 얼굴로 쳐다보자 오공이 말했다.
“와, 삼장. 방금 진짜 악당 같았어.”
“성질 더러운 스님으로는 삼장을 이길 자가 없지.”
“해 보자는 거냐? 앙?”
“그러면 저 먼저 실례할게요.”
산옥은 다투는 오정과 삼장을 보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넌 뭐야?”
그렇게 묻기가 무섭게 산옥이 칼을 빼어 요괴의 어깨를 베었다. 기습 공격을 당한 요괴가 산옥을 노려보았지만 그는 오히려 태연한 표정으로 요괴를 응시하고 있었다. 어깨를 베인 요괴가 산옥에게 달려들자, 산옥은 아무렇지 않게 다가가 이번에는 허리를 베었다. 그 동작이 너무도 깔끔하고 유려해서 일행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언젠가 산옥은 보고를 하러 가는 삼장에게 그런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법사 님. 보고하러 가세요?”
“엉. 뭐 필요한 거 있냐?”
“혹시 천계에서 유명하신 무용수 한 분 여기다 잠깐 모셔오면 안 되는지 여쭤보면 안 돼요?”
“그건 뭐에 쓰려고.”
“필요하니까 부탁드리죠. 네? 안 돼요?”
“일단 물어는 보겠는데 확실하게 온다 어쩐다고 말 못한다. 알지?”
“네, 감사합니다!”
갑자기 무용수는 뭐에 쓰려고 그러는 건지 알 수가 없는 삼장이었지만 산옥이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그런 것이라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산옥은 천계의 무용수에게서 무용을 배웠다. 틈틈이 그가 찾아올 때마다 산옥은 열심히 배웠고, 지금은 무용에 능숙해진 지 오래였다. 무용 연습을 하고 있는 산옥에게 오정이 물었다,
“그거 배워서 뭐에 쓰려고 그러냐?”
“품위 유지.”
“지지고 볶고 싸우는 상황에 품위가 무슨 소용이라고.”
“나중에 보면 알게 될걸. 이게 얼마나 중요한지.”
산옥이 한 말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한 오정이었지만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무용을 배우기 전까지 산옥은 주로 공격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었다. 그게 이상할 건 없지만, 산옥의 공격적인 태도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두려움을 숨기기 위한 가면처럼 보였다. 살육을 즐기는 것처럼 자신을 감추던 그는 싸움이 끝날 때 종종 손을 가늘게 떨 때가 있었다. 초기에는 그랬고, 나중에는 유혈이 낭자한 상황에서 두렵지 않다는 걸 보여주려는 듯 웃었다. 하지만 그게 얼마나 비틀린 행동이었는지 모를 이는 일행 중에서 아무도 없었다. 무용을 배우며 산옥은 몇 배나 침착해졌고, 몸짓이 한층 유연해졌으며, 한결 침착해졌다. 산옥에게 있어서 무용은 약간 일종의 정신치료 같은 게 아니었을까 하고 오정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그의 연인인 팔계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부분이었다. 비호(산옥이 쓰는 검)를 휘두르며 싸움을 이어간 그는 순식간에 네 명을 쓰러뜨렸고, 한 명만이 남아 있었다. 홀로 남은 요괴는 분에 못 이기고 산옥을 덮치려 들었지만 산옥이 발로 그를 걷어찼다.
“어딜 건드려. 진짜 죽고 싶어 환장했지?”
“커헉, 컥.”
“내가 아니더라도 지금 이 쪽에 내 애인님 계신다. 몸 사리는 게 좋을걸?”
산옥은 그렇게 말하며 팔계 쪽을 향해 눈짓하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모양이 여유가 넘쳤다. 팔계는 그 미소를 보고 저도 따라 웃더니 일어나려는 요괴 하나를 상대하기 시작했다.
“한 명 분도 못하면 내일 점심은 없는 걸로 할까요?”
“앗, 찬성!”
“왜 너네 둘이 합의 보는 건데?”
둘의 이야기를 들은 셋이 한 명씩 해치우기 시작했다. 산옥이 상대하는 요괴가 리더였는지 악착같이 버티고 있었다. 물론 산옥의 입장에서는 아직 비호에 불도 끼얹지 않을 정도로 봐 주고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슬슬 시간을 너무 끌고 있는 생각이 들어 비호에 손을 가까이했다. 그 때였다.
“내가 계집애한테 죽게 생겼냐? 고작 조그마한 계집애한테?”
그 말을 들은 산옥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다. 그러다 겨우 표정을 관리하더니 요괴에게 다가가 말했다.
“자기야, 그거 알아?”
“뭐, 뭘.”
“‘고작 계집애가 날 죽일 수 있을까?’ 같은 소리는 말이야.”
그렇게 말한 산옥은 비호에 불을 끼얹어 가차 없이 요괴의 흉부를 베었다. 단발마의 비명이 들리고 피가 얼굴에 튀었음에도 산옥은 개의치 않았다.
“그 계집애한테서 살아남을 수 있을 때 해야 하는 말이야.”
그렇게 말한 산옥은 팔계를 돌아보며 씩 웃었다. 팔계 역시 상대하고 있던 요괴를 해치운 눈치였다. 삼장이 경문을 읊고 난 뒤, 일행은 아이들을 챙겨 돌아갔다. 아이들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산옥이 정와의 집에 도착하자, 정와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누나!”
“괜찮아. 이건 실수니까. 맞다, 정와야.”
“네?”
“나같은 사람이 되려면, 조금 제멋대로 굴어도 돼. 그런데 그 제멋대로 구는 것도 결국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렇게 해야 하는 거야. 나는 그렇게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그러니까 정와는 건강하게 있어야 해. 알았지?”
정와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다. 그렇게 말한 산옥은 정와의 머리를 쓰다듬고 욕실로 향했다. 피에 묻은 얼굴을 닦아내며 그는 조금 더 스스로를 단련시켜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