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패러디 소설
* 재즈 드림
* 주제가 드림 합작
Nobody can save you now
It's do or die
- Imagine Dragons <battle cry> -
도망자의 삶은 의지할 곳 없는 부평초를 닮았다. 작은 물결만 닿아도 이것이 저를 휩쓸어버릴 거센 물살의 전조일까 전전긍긍해야 한다. 나는 최근들어 이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물건을 계산대에 올려놓자 점원이 살갑게 웃으며 인사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하도 안 오시길래 여길 떠나셨나 했어요."
사람 좋은 미소와 상냥한 말투에는 호의가 가득했지만 나는 대답하는 대신 모자를 눌러썼다. 그의 웃음소리가 어색하게 변했다. 그리 자주 온 것도 아니었는데 점원이 내 얼굴을 기억할 줄은 몰랐다. 자연스럽게 시선이 미리 봐두었던 CCTV의 위치로 향했다. 여전히 같은 자리, 내 얼굴이 찍히지 않을 각도에 있었다. 점원이 부르는 가격의 돈을 계산대 위에 놓고 가게를 나섰다. 이제 두 번 다시 저 가게를 찾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며 다른 가게의 위치와 어느 길목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지를 떠올렸다.
이곳 쿠바에서 대놓고 나를 수배하는 군인들은 없었지만, 그 뜻이 곧 안전은 아니었다. 나와 재즈는 숨을 죽이고서 주변의 기척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장 봐 온 물건을 풀고 있는데, 시몬스 요원이 오랜만에 우리의 안전가옥을 찾았다. 새 소식과 함께 말이다.
"라쳇 마저도 사냥당한 모양이야."
나는 입을 틀어막았고 재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상냥한 말투 대신 섬세한 손길을 가진 군의관을 떠올렸다. 유기체의 상처는 잘 모른다면서도 내게 붕대며 약을 챙겨줬던 늙은 오토봇마저 우리 곁을 떠났다. 미카엘라와 샘을 비롯해 이제는 볼 수 없는 나의 친구들과 아이언하이드, 디노, 사이드 스와이프... 차례차례 사냥당한 오토봇들의 모습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옵티머스로부터는 아직까지도 아무 연락이 없어."
드디어 재즈가 입을 열었다. 겨우 분을 삭히는 목소리였다.
"그 양반도 숨어 있는 거 아니겠어? 조심해야 할 때지."
"언제까지? 락다운이 우리를 포기할 때까지? 그 전에 몰살 당하겠지. 전쟁이 끝나고 나니 이제는 사냥이군."
냉소적인 말에 시몬스 요원은 입을 다물었다. 무겁고 불편한 침묵이 차고를 채웠다.
그날 밤에는 꿈을 꿨다. 재즈의 몸이 두동강이 난 채로 바닥에 던져졌다. 사람들이 달라붙어 그를 조각내기 시작했다. 이 부품은 이렇게 쓰이고, 저 부품은 어떻게 만들고. 그들은 끊임없이 떠들며 유해를 날랐다. 개미 떼 같은 모습을 나는 무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마지막 남은 재즈의 머리를 가져갈 때, 나는 그제야 그가 서서히 죽어가는 중이라는 걸 알았다. 깨진 바이저 너머로 옵틱의 파란빛이 깜빡였다.
눈이 떠졌다. 비명도 거친 호흡도 없었다. 그저 불안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스름한 새벽녘의 보랏빛이 방안을 물들였다. 쫓기듯 나와 차고로 들어갔다. 다 낡아 빠진 집에 딸린 그만큼이나 허름한 차고 안에 있는 은색의 스포츠카는 잘 못 붙여놓은 포토샵처럼 이질적이었다. 그 차의 창문에 대고 주먹을 말아 두들겼다.
"재즈, 문 좀 열어 봐."
차 문이 열리자마자 그 안으로 들어가 몸을 말아 누웠다.
"악몽이라도 꿨어?"
"응."
"걱정하지 마. 누가 오더라도 내가 지켜줄게."
'재즈, 내가 걱정하는 건 너야. 너와 내가 처한 상황, 이 모든 게 걱정돼.' 이리 생각하면서도 구태여 대답하지는 않았다. 의도가 어찌 되었든, 그의 말이 맞았다. 재즈는 여기 있었다. 에어컨에서 미지근한 바람이 불었다. 긴장으로 굳어있던 몸이 풀리는 걸 느끼며 눈을 감았다. 옵티머스가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