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에도의 봄날 나는 당신을.
백목련이 흩날리고 벚꽃이 다복히 떨어지는 그날 나는 툇마루에서 당신의 뒷결을 쫒았다. 당신이 모습을 감추고 1년, 5년, 10년. 그 시간은 정갈한 마루바닥에 삐끄덕대는 시간의 흐름을 남긴 갈퀴를 긋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툇마루는 퇴색되고 변조된 빛감을 빤한 툇마루에 비춰내었다. 시간의 흔적에 툇마루는 변색되고 중간 간간에 외갈빛으로 물든 흔적이 선명했다. 아버지에게 소개받은 남자. 그래, 내가 살던 시대에서는 고논문을 연구하는 엘리트로 알려진 남자가 이 달밤에 앉아 나를 불러냈던 시간에서 10년의 날이 흘렀다. 마음이 목각인형같은 남자. 상시 모노틀에 미동이 없이 멈칫해 있던 남자는 제 감정을 터뜨리듯 그날은 유독 힘이 실린 음색으로 뇌까렸다. 그 엘리트를 믿지 마십시오. 당신은 그와 함께해서는 안 됩니다. 흰 모노클을 낀 차가운 은안의 남자는 그리 말하였다. 나는 나와 차를 함께 마시며 내 말을 들어주는 것에 심사를 다한 남자가 내게 부탁하는 것은 그날 처음 보았다. 이 날이 예외적인 날이었다지 그는 항상 내 말을 들어주는 쪽에 가까웠다. 바보같은 엘리트군요, 몬자야키 덮밥을 먹지 않는다니, 맛을 모르는 엘리트입니다. 핸드폰 기종을 고민했다고요. 당신이 골라줘서 장장 한 시간의 고민을 접고 핸드폰을 골랐다고요. 엘리트의 자격이 없습니다. 당신은 친절하십니다 공. 나라면 가게 대거리에 버려두고 가겠습니다. 저의 신념을 물듯 던지고 손으로 끌어내지 않는 남자는 엘리트의 자격이 없습니다. 내가 꿈속에서 만난 남자에 대해 말하자면야 장난스레 툭툭 비하의 말을 건네며 내 말을 들어주는 것이 우리의 관계였다. 그 날 밤 나는 평소에 말하듯 그에게 그 남자와 결혼한다고 말했다. 나는 평소에 그랬듯 그가 이루 들어줄거라 여겼다. 그의 굳은 표정을 보고 흠칫 놀라는 일이 생길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했다. 내 손매를 잡고 흠칫 놀란 듯 당신은 그와 함께해서는 안 된다는 음색이 어제 일처럼 귓가에 선연했다. 내 손매를 잡고 옷깃을 주억거리다가는 그는 손을 놓고 만다. 허공에 무색하게 뜬 손은 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그의 품에 거둬져 들어갔다. 양 미간이 구겨지고 음색은 건조하게 날선 음색을 했다. 오늘은 꿈을 꾸지 마십시오. 잠들지 말고 이 만월에 나와 함께 있어주십시오. 나는 그가, 그리 감정을 드러낸 것은 내 일생에 있어 처음이었다. 괜찮아요. 엘리트씨. 보통 사람은 낮에 정인을 보고 밤에 잠이 들지요, 나는 그와는 반대로 낮에 잠이 들고 밤에 내 마음을 준 정인을 보는 것과 같은 관계니까요. 내 시간의 반쪽을 주는 것과 같답니다. 저 하늘의 빛나는 달의 반쪽처럼요. 그는 꿈속 세계에서 내 세계의 반절을 가지고 있겠지요. 나는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남자는 황급히 제 행동이 평소 우리의 관계를 넘었다는 걸 깨달았는지 손을 놓고 사과했다. “미안합니다.” 묵묵한 당신이 그날처럼 격정에 휩싸이고 갈등을 내밀히 빗어내었던 일은 없었다. 그의 목소리가, 내 잃어버린 달의 밤이 그날처럼 선선히 마음속에서 덩이진채 떠올랐다. 이사부로, 나와같이 세계를 넘나든 내 꿈의 정인. 내 뒤늦은 깨달음은 마음속에 긴 후회를 남기고 떨어졌다. 그가 누군지 깨달은 나는, 나는, 당신을, 그 몇십년의 시간을 넘어 온 당신의 손을 잡았을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