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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도는 새파란 하늘이 펼쳐진 여름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나시로 실업 고등학교에 패한 세이도는 그렇게 여름을 조금 이르게 마무리 지었다. 처음으로 선배들 앞에서 소리 내어 운 것 같았지만, 아무도 그것을 탓하지 않았다. 3학년의 타카코 선배가 괜찮다며 매니저들을 달래주는 사이에서 카논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

 

제 오른팔이 망가진 이후로, 그렇게 운 적은 처음이었던 것 같았다. 한 번도 제게 우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던 료스케를 포함하여 그날, 그날만큼은 모두가 울었다. 야속하기도 하지, 구름 하나 없이 파랗고 높은 하늘은 저들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거 마셔”

 

하루이치가 내민 찬 이온음료에 카논은 아직도 멈추지 않은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우는소리를 내며 캔을 세게 쥐었다. 손이 시리게 차가운 포카리의 캔 위로 눈물이 쏟아졌다. 그런 카논의 어깨에 굳은살이 박인 손을 얹으며 울지 마, 하고 말해주는 하루이치를 보며 카논은 엉망이 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나, 하루룽이랑, 고시엔... 료쨩이랑, 가고 싶었는데...”

“울지 말고...”

“하루룽이랑, 료쨩이랑... 셋이서, 다 같이...”

 

고시엔에 가고 싶었는데. 카논이 차마 내뱉지 못한 말이었다. 숨을 고르지 못하게 들이쉬며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닦던 카논은 처음으로 하루이치의 우는 모습을 보았다. 긴 앞머리에 눈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앙 다문 입술의 옆으로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미안해, 미안해 하루룽. 하루이치의 얼굴에 제 소맷자락을 대며 카논이 말했다. 내가 약한 모습 보여서 미안해, 울지 마.

 

한참이나 포카리의 캔을 따지도 못하고 구석진 벤치에서 둘은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하루이치는 제 형인 료스케와 함께 고시엔에 가고 싶다고 했다. 카논은 그 얘기를 듣고는 어릴 적 자신을 고시엔에 데려가 주겠다고 약속한 것도 지키라며 호탕하게 웃었고, 그 약속은 올해 여름엔 지킬 수 없었다.버스에 올라탄 후, 메일이 잔뜩 날아온 제 휴대전화를 보며 카논은 눈시울을 벅벅 문질렀다. 쓰라린 감각이 올라왔지만, 적어도 다시 울 것 같지는 않았다.

 

바탕화면에 뜬 메일 목록을 확인하며 카논은 키보드를 눌렀다.

 

[코미나토 마망♡]

카논, 수고 많았어. 료쨩이랑 하루이치는 괜찮니? 다들 너무 속상해하지 말고 잘 쉬렴.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

우리 딸 수고했어, 하루이치랑 료스케랑 잘 위로해주고 너도 기운 내.진정되면 전화 주렴

 

탁, 하고 휴대전화를 닫아버렸다. 고개를 뒤로 젖혀 눈물이 흐르지 않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한번 터진 눈물은 다시 흐르고 있었다. 분명 제가 우는 것을 보면 선수들 또한 진정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다시 눈가를 세게 문질러 울지 않은 척했다.

 

야속하기도 하지, 버스가 학교에 도착하고 난 후에도 몇몇은 울음을 그칠 줄 몰랐고, 저녁시간이 다 되어서 식당에 모인 부원들은 다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이도의 여름은 끝이 났다. 3학년들의 고교 야구는 그날에서 멈춰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괜스레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여름이었다.

 

봄 고시엔에 출전하게 된 세이도는 꽤 좋은 성적을 낸 후 돌아왔고, 그렇게 3학년들은 졸업했다. 다시 끔 여름의 제패를 위해 세이도의 그라운드는 달리고 있었다.-

 

“끝내준다”

“고시엔 말이야?”

“응, 고시엔... 다시 가고 싶어, 아니! 다시 가고 만다.”

 

여름에! 카논이 그렇게 외치자 저 멀리서 사와무라가 맞장구를 쳤다. 올해 여름엔 고시엔! 기필코 고시엔! 멀어져 가는 사와무라의 외침을 들으며 카논은 다시 하루이치의 옆에 앉았다. 아쉬워? 카논의 물음에 하루이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랑 같이 오고 싶었는데, 아쉬워. 하루이치의 대답에 카논은 하루이치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며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료쨩은 대학 가서 야구, 계속하겠지? 카논의 물음에 하루이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둘 다 그의 야구는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카논은 하루이치의 굳은살이 있는 손을 만지작거렸다. 잡아줄게, 하고 깍지를 껴오는 하루이치에 카논은 피식, 하고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제 손에도 굳은살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다 사라져 부드러운 느낌만이 남아있었다. 제가 야구를 그만두게 된 사고가 일어난 그날, 정신을 차린 제 손을 붙잡고 하루이치는 말했다. 자기가 고시엔에 데려다주겠다며, 그렇게 말하는 제 친구를 보며 카논은 흐릿하게 웃어 보였다.

 

고마워.

 

하루이치는 의아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냥 고마워서, 하고 배시시 웃어 보이는 카논을 보며 하루이치는 기분 좋게 미소 지으며 뭐야, 하고 맞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꽉 잡았다. 카논이 손을 뻗어 앞머리를 넘기자 하루이치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아까와는 다른 목소리로 뭐냐며 물어왔다.

 

“하루룽 눈이 보고 싶어서.”

“눈?”

 

하루룽 눈은 언제나 빛나고 있으니까. 카논은 그렇게 말하며 볼에 짧게 입을 맞췄다. 저 눈동자가 가진 빛을 잃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더 앞을 향하고 있는 그의 눈이 다시 긴 머리칼에 가려졌다. 이제 가자, 하고 카논이 그를 일으켜 세웠다. 뛰어, 하루룽! 늦으면 혼난다. 하루이치는 제 앞에서 뛰는 척을 하는 소녀를 보며 웃었다.

 

내 빛나는 미래, 하루이치는 제 앞에 있는 소녀를 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어릴 적부터 자신을 일으켜 세우곤 함께 걸어준 카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빨리빨리, 하고 제 야구 잠바를 빌려 입어 헐렁한 소매 사이로 작은 손이 까딱거렸다. 그 손을 탁, 하고 잡자 눈이 동그래져서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가자며, 하고 손을 잡고 이끌며 달리자 카논은 휘청거리더니 곧잘 따라 뛰며 갑자기 이러는 게 어딨어! 라며 꿍얼거리며 저를 쫓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 아래에서 하루이치와 카논은 여름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지도, 멈추지도 않고 작년 여름처럼 뜨겁고 눈부신 그날을 향해 각자, 둘이서, 또 다 같이 달리고 있었다.

 

올해 여름, 하늘이 무척이나 높고 맑다.

고시엔의 검은 흙을 흰 유니폼에 묻히고, 교복 구두가 불편한 줄도 모르고 계단을 오르내리며 부원들과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팔이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공을 잡고 쳐낼 것이고, 선수들과 똑같이 늦은 시간에 자고 이른 시간에 일어나 그들과 함께 러닝을 하며 호루라기를 불 것이다.

 

둘이 서로 수줍게 맞잡은 손이 고시엔에서 더 세게 맞잡을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공을 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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