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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라이몬 일레븐에 의해 갓 에덴의 전원이 축구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들과 함께 짧은 시간을 보낸 후. 갓 에덴에 남을 수밖에 없는 슈우를 제한 제로의 멤버들이 섬을 떠나기 직전 일어난 일이었다.

 

“ …떠나기 전에 다 함께 사진을 찍자고? ”

 

“ 응. 어때? 이대로 헤어지기엔 좀 아쉬운걸. 사진기라면 있는데.  ”

 

에이엔은 어디서 난 건지 모를 하늘빛 필름카메라를 하쿠류와 슈우, 두 사람 앞에서 가볍게 흔들어보이며 짓궂게 웃었다. “ 어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적어도 나는. ” 이라고 덧붙이며.  에이엔의 말을 가만히 듣던 하쿠류는 잠시 고민하나 싶더니 이내 에이엔이 가지고 있던 카메라를 손으로 가리키곤 말했다. 

 

“ …사진을 찍자, 는 건 둘째치고, 그 카메라는 어디서 난 거지? ”

 

“ 아, 이거? 교관들이 놔두고 간 거 슬쩍했어. ”

 

하쿠류의 질문에 여전히 웃는 낮으로 카메라를 살짝 들어보이며 태연하게 답하는 에이엔을 보고 하쿠류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어쩌면 경멸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으로 에이엔을 쳐다보았다. 이 자식, 미쳤나. 아니. 아무리 그래도 벗을 의심하는 건 안 되겠지. 이 자식은 미쳤군. 아무리 교관들이 제로와 라이몬의 축구가 종료된 이후 곧바로 자취를 감췄다고 해서 그걸 함부로 슬쩍해오다니. 그런 하쿠류의 시선을 눈치챈 에이엔은 멋쩍게 웃고는 곧바로 입을 열었다.

 

“ …잠시만.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줄래? 당연히 농담이지. 내 거야. ”

 

진짜 농담 하나를 못 하게 해요, 농담 하나를. 에이엔은 어이없다는 듯 자신을 잔뜩 경멸하는 듯한 하쿠류를 흘겨보곤, 오해를 풀기 위해 카메라 한 구석에 제 이름의 한자 넉 자가 적혀있는 걸 보여주며 말했다.

 

“ 섬 들어오기 전에 말야, 섬이면 풍경 예쁠 것 같은데 사진이나 좀 많이 찍어둘까, 하고 챙겨온 건데 섬 들어오자마자 기밀유지 조항이 어쩌고. 하면서 교관한테 뺏겼었거든. 이제야 다시 되찾았단 말이지. ”

 

“ ...호오. ”

 

“ 필름도 넉넉히 챙겨왔는데 바로 압수당해서 사진 하나도 못 찍은게 좀 아쉬워서 말야. 지금이라도 좀 많이 찍어두고 싶어서. ”

 

카메라를 되찾은 이후 찍었던 갓 에덴의 풍경이나, 라이몬의 매니저와 함께 찍고 나눠가진 라이몬 일레븐 및 제로의 사진 몇 장을 팔랑, 하고 보여주며 에이엔은 말했다.

 

슈우는 에이엔의 말을 듣자마자 어딘지 기쁜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곤, 갓 에덴의 풍경이 생생히 찍혀있는 사진 몇 장을 손으로 가리키곤 입을 열었다. 

 

“ 헤에…. 나쁘지 않네, 나는 좋아. 그나저나 이 사진 몇 장은 내가 가져도 돼? 풍경 예쁘게 잘 나왔네. ”

 

“ 응? 아아, 마음대로. 또 찍으면 되니까. ”

 

슈우에게 갓 에덴의 풍경사진 몇 장을 건네며 슈우의 허락을 받아낸 에이엔은 너는 어때? 라는 표정으로 하쿠류를 바라보았고, 하쿠류는 그런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끄덕였다.

 

“ …하아. 몇 장 정도라면 괜찮겠지. ”

 

하쿠류의 동의를 받아낸 에이엔은 짓궂게 웃고서는 사진기를 들어보았다.

 

 

*

 

 

이후 몇 분이 지났을까. 습관처럼 필름을 몇 번 털며, 셋이서 함께 찍은 사진이 나오는 걸 확인하던 에이엔은 잠시, 기분이 들떠 잊고 있었던 사실 하나를 자각했다. …어라. 그러고보니 슈우는 어떻게 이렇게…멀쩡하게 찍힌 거지? 유령인데?  …모르겠다. 이런 건 생각하지 말자.

그렇게 잡념을 지운 에이엔은 문득, 온전히 나온 사진을 슬쩍 바라봤다. 정확히는, 사진에 찍힌 슈우와 하쿠류의 모습을.

 

사진에 찍힌, 어쩐지 뻣뻣하고 어색한 슈우와 하쿠류를 보며 에이엔은 문득 생각했다. …그나저나, 말인데. 왜 이렇게 어색하게 찍힌 거야, 둘 다? 에이엔은 조금 당황스러운 듯한 기색으로 사진을 한번 팔랑, 하고 흔들더니 이어 말했다.

 

“ …저어기. 잠시만. 둘 다 너무 뻣뻣하게 나오지 않았어? 너무 긴장한 거 아냐? ”

 

에이엔의 말을 듣고 슈우는 조금 멋쩍은 기색으로 살짝 소리내어 웃더니 고개를 슬쩍 돌렸다.

 

“ …아하하. 어쩔 수 없잖아, 사진 찍는 거, 거의 처음인걸. ”

 

…그래, 하긴 슈우는,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여러모로 예외적인 존재이니. 이런 거에 서투른 것도 이해가 가긴 하다. 슈우의 멋쩍은 말에 그런 그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슬쩍 끄덕인 에이엔은 이내 고개를 돌려 하쿠류를 쳐다보았다. 그래, 슈우는 그렇다 쳐도……

 

“ 아니, 그래. 슈우는 그렇다 쳐도 주장은? 그래도 좀 많이 찍어보긴 했을 거 아냐? ”

 

“ …? 찍어본 적 별로 없다만. ”

 

 무슨 문제라도 있냐는 듯 역으로 제게 당당히 물어오는 하쿠류의 말을 듣고, 에이엔은 순간적으로 할 말을 잃고 되려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진짜냐…. 이 자식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거야.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에이엔은, 이내 어찌됐든 좋다는 듯 고개를 절레, 흔들고는 다시금 사진을 바라보았다.

 

어색하고 뻣뻣해 보이는, 허나 나름대로 미소를(확실히 미소라고 칭할 수 있을 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슈우는 그렇다 쳐도, 하쿠류의 그 무뚝뚝한 표정을 미소라고 칭할 수 있다면, 이겠지만.) 짓고 있는 두 사람과 자신이 생생히 찍혀있는 사진 몇 장.

 

…물론 사진과는 그다지 연이 없던 두 사람이 조금, 아니... 조금 많이 어색하고 뻣뻣하게 나오긴 했을지라도. 뭐어, 이런 사진 또한 나쁘지 않다. 이런 모습이 오히려 더 좋은 것 같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할까, 좀 신선하잖아? 잔뜩 어색하고 긴장한 표정의 슈우와 하쿠류라니. 이런 귀한 걸(?) 또 어디 가서 보겠어. 에이엔은 그리 생각하곤, 저도 모르게 피식, 하고 웃고서는 슬쩍 하쿠류를 쳐다보더니 노골적으로 하쿠류를 놀리듯이 입을 열었다.

 

“ 이야, 천하의 하쿠류 군에게도 서투른 게 있었을 줄이야~ 이거 놀라운데. ”

 

“ 시끄러워. ”

 

뒤이은 하쿠류의 잔뜩 성난 듯한, 으르렁거리는 말은 무시한 채로(…) 뻔뻔하리만큼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잘 나온 사진들을 대략 정리해 하쿠류와 슈우, 두 사람에게 건네는 에이엔을 문득 바라보던 슈우는 하하, 하고 피식 웃으며 에이엔이 제 몫으로 건넨 사진을 살짝 매만지곤, 시선을 사진으로 돌린 채 한참동안 사진을 쳐다보았다.

 

슈우가 그러고 있을 무렵, 하쿠류와 한창 티격대던(이라기보단 하쿠류를 일방적으로 놀리던) 에이엔은 그런 슈우의 행동을 눈치채곤 슬쩍, 요령 좋게 하쿠류의 옆에서 빠져나오더니 슈우에게 다가가 물었다.

 

“ 어때, 슈우. 사진 찍힌 건 좀 마음에 들어? ”

 

“ 응? 아아, 응, 마음에 드네. ”

 

에이엔은 안심한 듯 웃어보이곤 사진기를 살짝 툭, 하고 매만지고는 진심을 밝혔다.

 

“ 다행이네. 사실 사진 찍자고 했던 거, 네가 신경쓰여서였거든. ”

 

에이엔의 말을 듣고, 슈우는 어쩐지 놀란 표정이 되어 에이엔에게 되물었다.

 

“ ...내가 신경쓰여서? ”

 

“ 걱정된다, 고 해야 하나... 그게, 하쿠류와 나마저 떠나면 넌 이제 이 섬에 혼자 남겨지는 거잖아. ”

 

슈우는 에이엔의 한 마디를 듣고 모든 것을 파악하고서는 아, 하고 작게 소리내었다.

 

더 이상 갓 에덴에 있을 이유가 사라져 곧 이 곳을 떠난 갓 에덴의 멤버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들의 뒤를 따라 떠날 에이엔이나 하쿠류와는 다르게, 슈우는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갓 에덴을 떠날 수 없는 몸이었다. 슈우 본인이 떠나고자 마음먹으면 떠날 수 있지만 일부러 그러지 않는 건지, 아니라면 갓 에덴의 무언가가 슈우를 이 곳에 묶어두고 있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슈우 본인만이 알고 있겠지만.

 

아무튼 이는 곧, 하쿠류와 에이엔마저도 떠나면 슈우는 이 섬에 홀로 남겨진다는 뜻이었다.

 

홀로 남겨진다는 것에서 밀려오는 고독함, 그리고 외로움을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던 에이엔은, 그 사실이 심히도 신경쓰여 내내 자신을 걱정했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자신들과 함께했던 추억을 잊지 않고 기억해달라, 너는 혼자가 아니다...따위의 말을. 세 사람의 추억을 담은 사진을 찍는 것을 통해 자신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비록 에이엔은 그 추억과 기억에 대해서 전혀 기억하고 있지 않지만) 아주 오래 전 함께했던 추억과 기억 덕에 의외로 정이 많고 세심한 눈 앞의 친구의 성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슈우는 옅게 미소짓고는 이해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곤 중얼거렸다.

 

“ ...너는 역시 변하지 않았구나, 엔. 다행이야. ”

 

“ ...응? 뭐라고 했어? ”

 

“ 아하하,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고마워, 에이엔. ”

 

“ 싱겁긴. ...그래, 별 말씀을. ”

 

슈우의 감사인사를 듣자 어쩐지 좀 머쓱하고 부끄럽다는 듯한 표정이 되어 아무 말 없이 제 뒷머리를 긁적이던 에이엔을 보고 있던 슈우는 아하하,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훈훈한 분위기도 잠시. 에이엔은 몇 분 뒤, 아까 전 에이엔이 하쿠류를 일방적으로 놀려먹은 것 덕에 잔뜩 화난 하쿠류로 인해 명치에 공을 얻어맞게 되지만, 그건 나중의 이야기로 남겨두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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