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오, 카메라 들고 온 거야?"
"네에. 별 일 없으면 들고 다니는 편이라서요."
"그러고보니, 기자가 꿈이라고 했었지?"
"하하…"
레오나르도는 제 볼을 긁적였다. 헬살렘즈롯에 왔을 때, 처음 했던 얘기가 떠오른 탓이었다. 동생의 눈과 제 눈에 대해 자세히 설명할 생각이 없던 때, 수습기자라며 카메라를 들고 자신을 소개했던 날이 있었다. 라이브라에 들어간 이후로 기자처럼 활동할 일은 없었지만, 카메라는 여전히 어디든 들고 다녔다. 덕분에 일을 해결한 때도 있었고, 이 정도의 크기면 불편할 정도가 아니니 두고 다닐 이유도 없었다. 지나간 순간을 보며 추억에 빠지기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언제까지 라이브라로 활동할지 모를 일이니까. 그러고보면…
"난 사진 같은 건 남겨본 적 없는 것 같네."
이어질 제 생각을 눈치라도 챈듯이 유진의 말에 레오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고보면, 제 카메라에는 유진의 모습이 담겨 있지 않았다. 왜냐고 해도, 그와 다니는 건 대부분 라이브라 임무를 수행할 때였고, 때로 카메라가 일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전투요원에 가까운 유진의 모습을 찍을 날이 손에 꼽는 편이었다. 유진은 대부분 건물 위로 올라가거나 숨어서 정찰을 했고, 빠르게 움직여 그 모습을 눈으로 쫓기도 어려웠다. 신의 의안을 쓰면 놓치지 않겠지만, 다른 모습도 아니고 싸우는 모습을 담을 생각은 없었다. 유진이 자신을 소개할 때 주로 암살을 한다고 했으니 평범한 레오나르도의 머리로는 그가 어디에 숨어서 전투태세에 돌입하는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쫓아 사진을 찍는 일도 웃긴 일이고. 유진과 보내는 일상에서는… 부끄럽게도 한순간도 눈에서 떼고 싶지 않아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만큼 유진을 좋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였다. 본인한테 말할 수 없는 의미. 이런 제 생각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앞서 걷던 유진은 고개를 반쯤 돌려 레오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 레오는 유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제가 갖고 있는 신의 의안이 마치 사진처럼 그 순간을 담아낼 수 있었다면, 레오는 몇 번이고 유진의 모습을 담아 저장했을 게 분명했다. 자신과 같이 걷는 날, 대화하며 아이스크림 먹는 날, 다친 저를 내려다보거나 아주 조금 차이나는 키에 저를 올려다보는 날까지. 그렇게 가득 찬 이후에야 저는 유진의 또다른 모습을 담고 싶다며 생각이 들텐데. 그가 먼저 입을 열기 전에 레오는 드는 의문부터 내뱉었다.
"사진에 찍히는 걸 싫어해요?"
"음, 그건 아닐거야."
그에게서 흔히 듣지 못하는 말투였다. 자신의 행동이 평범한 레오의 눈에 엉뚱하거나 이해 못 할 행동이라고 해도 언제나 당당하게 웃어보이던 유진이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는 건 그만큼 생소하다는 의미였다. 사진에 찍힐 순간이 없었거나 사진이란 존재 자체가 어색한지도 모른다. 찍히는 게 싫은 것도 아닌데 어릴 적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걸 보면, 분명 유진의 모습을 찍고자 한 사람이 없다는 말이겠지. 어쩌면 그에게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할 타이밍이 지금인지도 몰랐다. 같이, 찍어도 된다면, 아니, 적어도 유진의 모습이라도 좋으니까. 레오는 긴장한 채로 제 손을 꽉 쥐었다. 사진 찍자는 말이 원래 말하기 어려운 거였나? 아니면 어떠한 사심이 담겨 있어 말하기 어려운 걸까. 그래도 분명 지금이었다. 거절 당하더라도 일단 말해야만 한다.
"저기, 그럼…"
"레오."
"네?"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데. 제 기분을 알 리가 없는 유진이 제 팔목을 잡고 이끌더니 입술 위에 검지를 세운 채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보내었다. 그 신호를 따라 입을 다물면… 아, 어쩐지 수상한 무리가 인간 하나를 데려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평범하게 보기에는 다친 사람을 챙겨가는 모습인데, 하필 장소가 으슥한 골목이었다. 유진이 또다시 눈짓하자 레오는 신의 의안을 발동해 그들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인간들 사이에 숨겨진 존재가 레오의 눈에 띄었다. 납치인 걸까, 하고 유진이 소근거리면 레오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존재가 섞여들어온 이후로 인신매매, 장기밀매 등 다양한 범죄가 판치는 도시였다. 이를 막기 위해 라이브라가 존재하는 것이고. 고민도 없이 유진이 그들을 잡기 위해 움직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레오 또한 사진 따위 이미 뒤로 물러난 상태였다. 위험에 빠진 사람이 자신의 욕망보다 더 중요할 리가 없었다. 적어도 레오가 살아온, 평범한 삶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유진은 발소리를 죽여 그들을 쫓기 시작했다. 레오는 이를 따라 가는 일만 해도 급급해 어떠한 말소리도 더 낼 수 없었다.
*
수상한 무리를 따라간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어느 폐공장이었다. 인적이 드문 장소에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끌고 왔다는 건 이미 말할 것도 없는 일이었다. 혹시 몰라 레오가 신의 의안으로 폐공장 안을 바라보자 안에는 또다른 무리와 시체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들이 시체를 이용해 무얼 하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시체가 쌓여있다는 사실만으로 속이 메스껍게 느껴졌다. 레오가 손으로 제 입을 가리자 유진은 더 묻지 않고 폐공장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레오는 곧장 그 뒤를 쫓았다. 따라 가지 않아도 유진이 전부 해결할 거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를 혼자 두고 싶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싸움기술이 없는 레오에게 유진은 먼 존재였다. 싸움에 망설임이 없었고, 목숨마저 쉽게 걸었다. 레오는 유진이 그러지 않길 바랐다.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동료이기도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하나의 생명이었다. 그가 희생해야하는 이유 따위 없었다. 우리는 나이도 같은데.
"스티븐 씨한테 연락해. 가고 싶지 않다면 나혼자 가도 좋아."
"아뇨, 저도 갈 거예요."
제가 느낀 불편함을 알았는지 유진은 뒤따라오는 레오를 손으로 막아냈다. 그가 가진 고집이 있듯이 레오도 마찬가지였다. 단호하게 고개를 내젓자 유진의 얼굴에는 망설임과 걱정, 작은 안도감이 함께 했다. 미세한 표정이라고 해도 레오는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절대 들어가지 않을 장소에 따라 가준다는 의미를 유진도 모르는 게 아니었다. 함께 해주는구나, 하고 유진의 생각이 들리는 기분이었다. 신의 의안 따위 쓰지 않아도 레오는 그의 기분을 알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깨진 창문으로 들어가 보이는 건 사람의 형태를 벗어난 존재들과 퀘퀘한 냄새였다. 레오는 곧장 얼굴을 찌푸렸지만, 유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보다는 익숙한 사람처럼 보였다. 가까이서 보고 싶지 않은 시체더미와 낭자한 혈흔 자국마저. 레오는 그에 대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인식하면 할수록 유진이 멀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런 감정은 갖고 싶지 않았다. 하나, 둘, 속으로 수를 세던 레오는 작은 목소리로 어딘가 숨어있는 존재들에 대해 유진에게 알려주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이뿐일까, 생각이 들면 유진은 발걸음을 뻗었다. 이번에야말로 전투의 시작이었다. 유진과 다르게 레오에게는 어떠한 무기도 없었다. 있다고 해도 쓸 줄 아는 무기는 없을 터였다. 그런데도 레오는 저도 모르게 그를 향해 손을 뻗었다.
"지금부터는 위험하니까 여기 있어."
"잠깐, 저도 같이…"
"레오."
차분한 목소리에 레오는 그를 붙잡고 있던 손에 힘을 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저런 목소리를 낸다는 건 가만히 있으라는 말과 같았다. 힘으로 이길 수 없는 상대이기에 레오는 더 이상 그를 붙잡지 못했다. 아무리 잡아도 가버릴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차라리 멀쩡하게 돌아오라는 말을 하는 게 나은 일이었다. 유진은 자신의 부탁이라면 웬만해서 들어주고자 했으니까. 레오는 완전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 유진은 앞서 나갔다. 누군가 다치거나 싸우는 일은 하루이틀 보는 게 아니면서도 유진이 싸울 때면 레오는 이를 지켜볼 수 없었다. 유진이 다치는 모습을 보기 싫은 이유도 있었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에 대한 환상도 있는 탓이었다. 싸울 때의 유진은 평소 제가 알던 유진이 아니었다. 가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고, 저를 보며 웃어보이고, 다른 동료들과 장난치는 모습이 아니라 아무리 피가 튀겨도 아무렇지 않은, 비명소리 한 가운데 서서 다음 타깃을 노리는, 평범하지 않은 모습들. 공포와 실망, 그가 자신의 편이라 다행이라고 안심하면, 그때만큼 스스로가 싫은 적이 없었다. 유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유진인데. 저를 보며 웃어주는 유진과 살생을 하는 유진은 분명 같은 사람이었다. 이곳이 헬살렘즈롯이라는 게 슬퍼질 정도로. 레오는 공포에 떨리는 제 손을 세게 쥐었다. 아무도 죽지 않으면 좋을텐데. 사치스런 생각이란 건 알고 있다. 그러나 저는 좋아하는 소녀와 평범한 데이트를 하고 싶은 평범한 소년이었다. 유진에 대해 떠오르자면 몇 번이고 포기하게 되는 상상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제 태도에 달린 것이다. 받아들여야 한다. 라이브라와 그들의 싸움에서 벗어날 때까지. 레오는 몸을 움직여 유진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타겟이 되면 곤란하니 눈에 띄는 행동은 할 수 없었다. 그저 지켜보면, 혹시 도울 틈이 생긴다면 도와주고, 그뿐이었다. 충분히 어렵지 않은 일이다. 한참 유진을 쫓던 눈은 유진의 움직임이 멈췄을 때, 같이 멈추었다. 그가 움직임을 멈췄다는 건 싸움이 끝났다는 걸 의미했다. 숨소리와 비명소리만 오가던 폐공장 안은 침묵을 유지하였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른 채 레오는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작은 소리였을텐데도 유진은 레오를 향해 고개를 움직였다. 아니, 애초에 움직이지도 않았으니 그가 저를 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지도 몰랐다. 그가 다가오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유진의 얼굴에는 피가 잔뜩 튀어 그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제 반응을 그가 모를리가 없었다.
"아, 미안. 얼굴이 더럽지? 스티븐 씨한테 잔소리 들을지도."
"유진! 잠시만요!"
"응?"
묻어난 피에 제 얼굴을 문지르는 유진을 레오는 다시 붙잡았다.
"사진, 같이 찍어요."
"지금 이 얼굴로?"
"…괜찮아요. 어느 정도 깨끗해졌어요."
그 말에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유진 옆에 레오는 가까이 섰다. 물론, 손이나 옷으로 열심히 닦아낸 얼굴은 그가 폐공장에서 싸우기 직전과 똑같은 얼굴은 아니었지만, 지금 순간을 놓치면 그와 사진 찍을 기회가 오지 않을 듯했다. 여기는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헬살렘즈 롯이니까. 아까도 찍으려고 했으니 지금이라도 다를 바 없다. 레오는 그하고 같이 붙은 채로 셔터를 눌렀다. 바로 직전에 찍은 사진은 시체들 사이 얼굴에 피가 묻은 채 저를 보고 웃는 유진의 모습이란 건 더 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했다. 스티븐 씨가 지원과 함께 도착해 납치된 사람을 무사히 돌려보낼 때까지도 레오는 저와 얼굴을 가까이 한 채 수줍게 웃어보이는 유진의 사진만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