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도 평소와 같았다. 두살 어린 반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고 수업을 같이 듣고 점심도 함께 먹고 농구부니까 부 활동을 위해 농구부에 오는 것까지. 분명 거기까진 그랬었다.
“병찬형. 여자친구분이 형 찾는데요?”
“뭐?”
“오오.”
주변의 반응을 듣던 병찬은 하던 스트레칭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없는 여자친구가 갑자기 생긴 탓에 병찬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해보기로 했다. 부 활동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었고 감독님도 안 온 애매한 시간. 보통 이시간 때 보러 온 사람이라면 부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거나. 외부인이거나. 교내에서도 인기 있던 사람이니 외부에서 오는 것도 당연했다. 누굴까. 주변 반응에 하지 말라고 대답하며 체육관 문 쪽으로 다가간다.
“이초원, 너 형 여자친구도 알아?”
“형 폰에 사진 있었어.”
아. 병찬은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전부 지웠다.
“걔는 그냥 아는 사람이야.”
“와 나 형 때문에 아는 사람 한명도 없다.”
“그냥 아는 사이인데 사진이 폰 앨범에 있다고요?”
“그건 엄마가 카톡으로 다른 사진들 사이에 걔 사진을 같이 넣어서 보냈는데 실수로 모두 저장 눌러서”
“형네 어머니도 아세요? 그런데도 그냥 아는 사이에요?”
병찬은 부원들끼리 저를 보며 대놓고 큰 소리로 말하는 걸 넘기고 체육관 밖으로 나오자 벽에 기대어 누군가와 통화 중인 그를 발견한다. 문 근처에 있던 슬리퍼로 갈아신고 그가 있는 곳으로 가려니 그가 먼저 저를 발견해 통화를 끊고 빠른 속도로 걸어왔다. 저 뚱한 표정은 여전하구나. 어릴 땐 나름 웃는 게 귀여웠었던 것 같았는데. 그 이후로는 아주 가끔 가족 모임 때만 본 정도였던 것 같다. 본인 일도 있었기도 해서 가족 모임 때 자주 안 나간 게 원인이었을까. 엄마 친구 아들, 딸의 관계가 가족 모임이 아니면 그 이상은 가까워지기도 애매한 사이니까. 그래도 최근엔 폰으로 연락도 주고받았는데…
“야. 박병찬. 내 말 듣고 있어?”
잠깐 딴생각 하고 있던 차에 눈앞에 마주하니 너무 놀라 목소리도 안 나왔다. 뭔가 말을 하고 있었던 걸까. 병찬은 일단 대답부터 하기로 했다.
“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나도 안 듣고 있었네. 아빠가 이번에 뭐 때문에 미국 갔다 오셨는데 너한테 주려고 사 왔다더라.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라고.”
유명 메이커가 그려진 종이가방을 내밀자 병찬은 내용물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뭔지 알 것만 같았다. 다시 농구를 시작한다 했을 적 엄마를 통해 받은 것도 많았다. 잠깐의 과거를 떠올렸던 병찬은 고맙다며 받아서 든다.
“이거 주러 온 거야?”
“엄마가 너랑 잘 지내보라잖아. 우리가 뭐 싸웠냐고. 그나저나 너 내 사진 다른 사람한테 보여주고 그래? 아까 너희 애가 날 먼저 알아보고… 어머. 안녕하세요.”
갑자기 웃는 얼굴에 순간 당황해 고개를 돌리니 몰래 숨어보고 있던 애들이 일어나더니 머쓱한 표정과 함께하며 인사를 하기 시작한다. 애들 앞에선 저와 다르게 웃으면서 대화하니 이미지메이킹 하는구나 싶어 괜히 툭툭 어깨를 치며 장난치니 그는 표정 변화 없이 손등으로 병찬의 손을 밀어낸다. 여러 시선이 두사람의 닿은 손에 집중되자 알아차린 그가 빠르게 병찬의 손을 쳐낸다. 소릴 내며 우는 척 하는 병찬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 것을 보며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키가 정말 크네요. 병찬이가 큰 편이 아니었구나.”
“나도 큰 편인데?”
“뭐래. 여기 중에서 제일 작은 것 같은데. 그럼 전 이만 갈게요. 부 활동 열심히 하세요. 박… 병찬아 넌 나중에 카톡 하자.”
다른 애들의 인사를 받으며 자신에겐 고개도 안 돌리고 바로 가버리는 그를 보면서 병찬은 일단 슬리퍼에서 농구화로 갈아 신고는 안으로 들어온다. 아, 망했네. 쟤를 어떻게 달래줘야… 내 주변엔 무슨 이런 애들 뿐이야. 병찬이 숨을 푹 쉬어는 동안 종이가방을 보며 부원들이 근처로 모인다.
“이거 미국에서만 한정으로 나왔다던 그거 아닌가? 그런 걸 그냥 주시네.”
“쟤네 아빠가 예전에 농구선수였거든. 지금은 감독하시는데 이번에 미국 갔다가 내 생각나서 사 왔데.”
“어딘데요?”
“(어딘가엔 있을법한 팀 이름).”
순간 정적에 아차 싶었다. 자기 사진 보여줬다고 저 난리인데… 괜히 제 입을 때린 뒤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받은 종이가방을 코트 밖 근처에 내려놓고선 마저 스트레칭을 시작한다. 곧 감독님도 올 거고 많이는 못 하겠지만 이렇게 어필하면 조금이라도 더 시켜줄지도 모른다. 부원들이 저만 빼고 자기들끼리 시선을 마주치고 있기에 신경 쓰지 말자 싶다가도 신경이 쓰여 쳐다보았다. 시선이 마주쳐 마주친 김에 얘기하자고 입을 열었다.
“얘들아”
“형 혹시 그 누나분 남친 있데요?”
또 한 번의 정적. 제일 먼저 깬 건 초원이었다.
“병찬형이랑도 안 사귄다는데 너는 되겠냐?”
“초원아 너 그게 무슨 말이야.”
“나도 인기 있는 편인데.”
“응. 아니야. 나라면 모를까.”
“너도 아니야.”
그러다 갑자기 자기들끼리 웃기 시작하는 걸 보고선 병찬은 지금은 보관함에 있을 폰을 떠올렸다. 정말 우연히 들어간 사진 하나 때문에 이런 상황이 왔으니 원인이 된 그 사진을 지워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