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해석, 설정 날조 주의
*급전개 급마무리주의
처음 이곳으로 올 때를 떠올린 하나자와는 고개를 들었다. 싸라기눈이 내리던 그날, 멋도 모르고 덤볐다가 크게 혼쭐이 난 날.
하나자와는 혀를 차며 눈앞에 있는 레드를 향해 몬스터 볼을 던졌다. 당연히 경기장 끝과 끝에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몬스터 볼은 아무리 멀리 던져도 닿을 리가 없었다.
땅에 닿으려던 몬스터 볼이 공중으로 살짝 띄어지며 전룡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꺼낸 잠만보에 전룡은 준비 자세를 취한다. 하나자와의 손에 힘이 들어가자 옆에 있던 윈디가 하나자와 쪽으로 몸을 기대어왔다. 자신이 불안해하면 포켓몬에게도 분명, 이 기분이 전해질 것 같았다. 긴장하지 말자. 최선을 다하자. 반드시 이기겠다. 하나자와는 윈디의 갈기를 쓰다듬었다.
“전룡, 힘껏 치기!”
눈앞에 파여진 구멍과 바닥에 쓰러진 피카츄를 보았다. 하나자와는 멍하게 쓰러진 피카츄를 바라보았다. 싸라기눈에 의해 휘날린 머리카락이 눈을 찔러왔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긴장은 극도로 올라가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을 잡아당겼다. 일어나지 마. 부스럭 소리에 시선은 소리가 난 곳으로 옮겨졌다. 큰 구멍 안에서 앞발이 올라온다. 입술을 깨물던 하나자와는 큰 소리로 윈디를 불렀다. 윈디는 그에 대답하듯 크게 짖었다.
레드에게 도전한지 몇 번이 되었을까.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그 몇 번의 도전 중 처음으로 시합장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곧 쓰러질 것 같은 윈디에게로 달려가 몸을 날려 힘껏 끌어안았다. 시합이 종료되었고 레드는 피카츄를 몬스터 볼 안으로 들여보낸다. 저를 핥는 윈디에게 고맙다며 고생했다며 끌어안았다. 싸라기눈이 어느새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되어 내린다. 자신을 축하하고 있는 거라고 하나자와는 믿기로 한다.
레드가 다가오자 하나자와는 고개를 들었다. 제게 내미는 레전드 리본과 보상금을 받는다. 이 리본을 받기 위해 몇 번의 도전이 있었던가. 저와 비슷한 시기에 여행을 떠났던 히비키와 코토네 보다 더 늦게 오래 걸린 이 날, 하나자와는 잊지 않을 거라 리본을 꽉 쥐었다.
“감사합니다.”
하나자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윈디를 쓰다듬는다. 경계하던 윈디에게 그러면 안 된다며 웃으면서 쓰다듬는다. 허한 느낌도 들었지만 기뻤다. 목표를 이룬 이 순간을.
“너 그렇게 웃는 거 오랜만에 본다!”
“아? 아… 히비키 너였어?”
“뭐야 류! 그 반응은…. 아 참. 축하해.”
“축하하긴. 또 졌을까 봐 놀리러 온 거겠지.”
“아냐, 정말로 축하하러 온 거라니까?”
웃으면서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히비키의 행동에 그러지 말라며 평소의 표정을 보이면서 히비키의 손을 붙잡아 머리카락을 붙잡는다. 투닥거리는 두 사람 사이로 윈디가 끼어들자 하나자와는 혀를 차며 윈디를 꼬옥 안는다. 고급 상처 약을 꺼내 치료하며 다른 기절한 포켓몬에게 모아뒀던 기력의 덩어리를 사용했다. 히비키는 오랜만에 만난 레드에게 안부라도 물을까 했지만 레드의 시선이 하나자와쪽으로 향해있으니 씩 웃으면서 등을 툭 친다.
“저런 얼굴도 하는구나 싶은 거 같은데 포켓몬 대결 땐 잘 안 웃어요. 특히 졌을 땐 더…….”
그의 말에 레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나자와가 제 포켓몬 하나하나 상태를 확인한 후 몸을 일으켰다. 기운 차린 윈디가 좋아하고 있자 갈기를 양손으로 마구마구 쓰다듬은 뒤 가방을 챙겨든다. 벌써 갈 준비를 하는 걸까 싶었지만 하나자와는 가방에서 꺼낸 걸 레드 쪽으로 내민다.
“기력의 덩어리랑 기력의 조각이랑 상처 약…. 여하튼 받으세요. 그리고 가끔 와서 시합해도… 되죠?”
레드가 옅은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자 하나자와는 몸을 획 돌린다. 평소엔 안 웃더니 왜 갑자기 웃고 난리야. 중얼 거리고 선 고장 난 듯 삐걱거리는 로봇 마냥 어기적거리며 걷는다. 레드가 제 포켓몬을 치료하는 동안 히비키가 하나자와와 레드를 번갈아 보더니 이번엔 하나자와 쪽으로 다가간다. 양손에 힘이 들어가고 어깨는 살짝 들린 체 귀까지 빨개져있다. 다가가 얼굴을 보려 앞으로 걸었다. 점점 빨개진 얼굴을 보고 있던 히비키는 생각을 그대로 입으로 뱉어낸다.
“류, 너 얼굴 빨개졌… 아, 아! 미안! 얼굴 아파!”
한 손으로 히비키의 얼굴을 부여잡은 하나자와의 표정은 잔뜩 화가 나다 못해 너무 무서워 표현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히비키가 제 손을 억지로 떼어내서도 변하지 않던 표정은 폭신한 부드러움에 사르륵 녹아내린다.
어깨 위로 올라온 묵직함과 이어 뺨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움에 긴장하고 있던 하나자와의 몸이 저절로 움직였다. 어깨 위에 올라온 그것을 히비키의 얼굴을 부여잡듯 잡으니 버둥거리는 피카츄가 눈에 들어온다. 히비키에게도 저에게도 없는 이 피카츄는 분명 제 포켓몬과 싸운 피카츄임이 틀림없었다. 한 손으로 잡았던 피카츄를 양손으로 잡더니 제 눈앞에 가져왔다. 발버둥 거리던 피카츄는 자세가 편했는지 버둥거리지 않고 얌전히 하나자와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귀엽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노랗고.”
“내 모자도 노랗고 귀여운데?”
히비키의 모자와 피카츄를 번갈아가면서 보던 하나자와는 피카츄를 히비키에게 내밀었다. 전혀 아닌 데라고 말해 히비키는 반격을 해오기 시작했다. 그 반격을 하나하나 받아치다 대화를 멈추고 짧게 숨을 뱉어낸 뒤 다른 대화를 시작한다.
“박사님들이 네 안부 묻던데.”
“누구?”
“오키도 박사님이나 우쯔기 박사님이나… 두 분께 찾아갈 거지?”
“몰라. 생각해보고.”
하나자와의 말에 히비키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생각해보고라니… 오키도 박사님이 우쯔기 박사님께 널 소개해줘서 여행을 떠날 수 있었던 거잖아?”
“아닌데? 난 삼촌의 경기를 보고 여행을 떠나기로 한 거였어. 그래서 삼촌이 살고 있는 성도지방에서 여행을 시작한 거고.”
“아, 그랬지.”
“내 윈디는 삼촌이 가디였을 때 내게 맡긴 거였고. 이 포켓 기어도 삼촌이 준 거고 뭐… 그래도 많이 도와주셨으니까.”
“솔직하지 못하긴.”
시끄럽다고 중얼거리곤 다시 제 앞으로 가져와 양손으로 들고 빤히 피카츄를 쳐다보았다. 얌전히 있는 피카츄가 귀여운지 손가락을 움직여 마사지까지 해준다. 그걸 제 곁에 자리 잡고 앉은 윈디가 자신도 해달라는 듯 하나자와의 등을 머리로 툭툭 쳤다.
놀라 피카츄를 놓쳐 버둥거리던 손 옆으로 다른 손이 다가와 피카츄를 붙잡았다. 안도의 숨을 쉬던 하나자와는 그 손에 낀 반장갑을 보고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아, 죄송합니…”
분명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뒤쪽에 서서 팔을 피카츄에게 뻗은 체 저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이렇게 가깝게 있던 건 처음이었고 조금 전의 미소가 떠오른 하나자와가 레드의 팔을 피해 뒤로 걷다가 허리에 뭔가 닿자 걸음을 멈춘다. 허리 쪽에 있는 건 레드의 손바닥. 이 한손도 분명 피카츄를 붙잡기 위해 내민 것이라 추측을 하다 보니 결론은 제 몸 뒤로 레드가 서있고 양손을 뻗고 있는 상황이라고 정리한다. 옆으로 가 아닌 앞으로 걸어 나오면 해결될 일. 하나자와는 앞으로 걸어 나온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연속으로 보인 하나자와가 웃긴지 히비키의 웃음소리가 점점 메아리까지 치며 들려오는 것 같았다. 급 울컥한 하나자와가 빠르게 걸어 나와 앞에 있던 히비키의 멱살을 잡는다.
하나자와가 화를 내며 앞뒤로 흔들자 히비키의 몸이 그에 따라 움직인다. 그런 둘을 보고 있던 레드는 제 어깨위로 올라탄 피카츄를 보다 옆에 있던 윈디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화내는 소리와 목소리가 섞여 이상한 화음을 만들고 근처에 있던 포켓몬들이 점점 관심을 보이며 쳐다보기 시작했다는 건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다. 다이아몬드 더스트가 점점 싸라기눈으로 다시 바뀌는 것도 모른 체 끊이질 않는 목소리에 레드는 짧게 숨을 뱉어내며 지켜보기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