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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 마을 입구쯤에 위치한 그 경찰서에는, 경찰관도 섬의 왕도 아닌 수상한 트레이너가 한 명 거주하고 있다.

 

“나누야.”

 

울라울라섬의 왕이자 이 마을의 유일한 경찰인 나누는 여유롭게 나옹들의 밥을 주다가 느릿느릿 고개를 들었다. 스컬단이 점거한 이 포마을에 외부인이 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그 외부인 중에서, 자신의 이름을 편히 부를 수 있는 이는 극소수에 불가했지.

 

“에휴.”

 

얼굴을 보지 않아도 상대를 알 수 있는 그는 곤란하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나오옹.’ 포켓몬 푸드를 먹다 말고 꼬리를 흔드는 나옹들은 이름을 호명한 상대를 향해 정감 있는 목소리로 울어보였다.

 

“또 귀찮은 일은 만들어 왔구만, 그렇지?”

“하하….”

 

어색하게 웃은 상대는 품속의 춤추새를 푹신한 쿠션 위에 내려놓았다.

상처를 입은 채 덜덜 떨고 있는 보라색 춤추새는 비를 맞은 탓에 푹 젖어있었다. 물론, 품속에 숨어있던 춤추새가 젖었다는 건 그 품의 주인 또한 물에 빠진 생쥐 꼴 마냥 젖어있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감기 걸린다. 너.”

“나는 괜찮아.”

“괜찮기는 무슨, 네가 아직 10살짜리 애인 줄 알아? 너도 나도 아저씨 아줌마라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누는 서랍을 뒤져 마른 수건 몇 개를 꺼냈다. 하나는 춤추새에게, 다른 하나는 제 동거인에게 넘겨준 나누의 입에선 절로 앓는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산은 뒀다 뭐하는지….”

“잃어버렸어.”

“당당하게 말할 건 아닌 거 알지?”

“하하….”

 

허탈한 웃음을 짓는 얼굴은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분명 제 건강은 둘째 치고, 도움이 필요한 포켓몬을 구해준 게 기분 좋은 거겠지. 그는 제 동거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봐온 소꿉친구 사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긴 했지만, 그래도 꼭 시간이 이해의 깊이와 정비례 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우니, 저 녀석은 어떻게 할 거야?”

“춤추새 말이야?”

“그래. 하늘하늘 타입이라면 포니섬에서 온 것 같은데, 참 멀리서 날아왔구만.”

“그렇지? 해안가에 쓰러져 있었어. 힘들었나봐.”

 

두 사람의 대화를 훔쳐들은 나옹들은 앓고 있는 춤추새의 근처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이 녀석들, 밥이나 먹어.’ 무심하게 기르는 나옹들을 물러서게 한 그는 우니를 대신해 축 늘어진 춤추새를 정성스럽게 닦아주었다.

 

“상처약은 발라준 거야?”

“아니. 대신 큐아링으로 치료했어.”

“우산은 잃어버리면서, 이런 건 야무지게 하네.”

“내가 한 게 아니라 큐아링이 해준 거니까. 야무진 건 큐아링이 아닐까.”

 

겉보기에는 조금 멍하게 보여도, 의외로 해야 할 일은 어떻게든 해낸다. 그런 면에서 이 두 사람은 지나치게 닮아있다.

나누는 트레이너의 성품을 꼭 닮은 우니의 큐아링을 떠올리다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역시 포켓몬과 트레이너는 닮는 게 분명하다. 악 타입 전문가인 그가 이런 생각을 하면 꼭 불필요한 자학의 의미를 내포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애초에 나누는 스스로를 그리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 애가 나으면.”

 

어느새 머리의 물기를 다 닦아낸 우니는, 나누의 옆에 살포시 다가와 상체를 숙였다.

 

“포니섬에 데려다 줄까 생각하고 있어.”

“어떻게?”

“…헤엄칠까?”

“…….”

 

안 그래도 심드렁한 얼굴이, 피곤한 나옹과 같은 표정으로 물든다. 역시 제 동거인은 지나치게 엉뚱하다.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 못 말리는 소꿉친구가 어디로 튈지 제대로 예측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던가. 행동의 이유 정도는 쉽게 간파해도, 저 머릿속에 정확하게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 나누는 문득 몇 십 년의 세월이 부질없게 느껴져 고개를 저어버렸다.

상대의 반응을 본 우니는 소리죽여 웃더니, 슬쩍 나누의 손을 마주잡았다.

 

“괜찮아, 카푸 님이 답을 주겠지.”

“…너무 섬의 수호신만 믿지 말라고.”

“응. 나는 카푸브루루 님도, 나누도 믿으니까.”

“아니, 날 믿는 건 더 곤란한데. 난 힘없는 아저씨라고.”

 

‘차라리 수호신을 믿어.’ 그런 속뜻이 숨어있는 말이라는 걸 우니는 알고 있지만, 그는 굳이 반박하거나 어쩔 수 없다는 듯 긍정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말수가 적고 격정적이지 않은 이 여인은 다 알면서도 그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곁으로 다가온 나옹을 쓰다듬을 뿐이었지.

 

“우리도 밥 먹자. 나옹들은 다 먹었나봐.”

 

나아옹. 우니의 말에 답하는 목소리 안에는 사람의 음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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