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기. 복도에 눌러앉아있는 폭타…, 누구 포켓몬인지 아는 사람?”
“응?”
직원 휴게실에 모여서 지급된 간식을 먹고 있던 마그마단 조무래기들은 동료의 물음에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폭타라면 간부들 포켓몬이겠지. 구열 님 포켓몬인가?”
“하지만 구열 님은 오늘 외근 가셨잖아?”
“그럼 호걸 님….”
“이미 물어봤어. 아니라고 하시더라고.”
과연. 뜬금없이 물은 게 아니라 나름대로 알아보고 물어본 건가. 하지만 두 간부의 포켓몬이 아니라면 도대체 누구의 폭타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물론 두 사람 외에도 폭타를 가진 간부라면 존재했지만…. 과연 그 사람이, 자신의 포켓몬을 아무 곳에나 방치해 둘까?
“그럼 마적 님 폭타 아냐?”
“에이, 리더 마적이 칠칠맞게 포켓몬을 두고 다닐 리 없잖아?”
“그건 그렇긴 한데….”
“아니, 그것보다 진짜 폭타가 있다고?”
“그럼 내가 거짓말 하겠냐. 나가서 보고오던가!”
백번 떠드는 것 보다는 한 번 보는 게 낫다. 불변의 진리에 공감하는 조무래기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복도로 나갔고, 일제히 감탄을 내뱉었다.
확실히 폭타가 있다. 홀로그램이나 메타몽이 변신한 가짜가 아닌, 진짜 폭타가 복도의 구석에 앉아 하품을 하고 있다.
천장이 높고 폭이 넓은 복도라 통행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지만, 확실히 저렇게 커다란 포켓몬이 떡하니 앉아있으니 편하게 오고가기는 힘들어 보인다. 얼른 치우지 않으면 곤란해질 것 같은데, 대체 누구의 포켓몬이란 말인가.
“…그러고 보니, 비담 님도 폭타가 있었지?”
느긋하게 쉬고 있는 폭타를 보며 침묵을 유지하던 네 명의 조무래기들 중, 아직까지 간식을 우물거리던 한 남성 조무래기가 자신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아.’ ‘그러고 보니.’ 동료들은 그 말에 이제야 기억났다는 듯 대꾸했지만, 아무도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듯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비담 님이 포켓몬을 방치할 것 같지…, 않다고 할까. 애초에 볼에서 포켓몬 꺼내는 모습을 거의 못 보신 것 같은데.”
“전에 침입자 꼬맹이가 왔을 때 배틀한다고 꺼내긴 했지만, 확실히 그 이후론….”
“침입자 꼬맹이라니, 휘웅 군은 훌륭한 트레이너라고.”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그래서, 결국 비담 님 포켓몬도 아닌 것 같다면 누구 포켓몬인건데?”
폭타를 가진 사람들 중 포켓몬을 분실한 사람이 없다면, 혹시 조무래기의 둔타가 진화한 것은 아닐까? 조무래기들 중에서는 자신의 포켓몬을 두고 다닐 칠칠치 못한 인물이 넘치도록 있으니, 오히려 이쪽이 더 가능성 있어 보였다.
“여기서 둔타 잃어버린 사람 없지? 방송이라도 해볼까. ‘둔타 잃어버린 조무래기 찾습니다!’ 하고?”
“그게 빠르…, 어라?”
‘저것 봐.’ 누군가가 말을 끊고 손가락질하자, 나머지 조무래기들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였다.
터벅터벅. 거침없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복도에 나타난 인기척은 아까 전 자신들의 입에 이름이 오르내렸던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바닥에 늘어져있는 폭타에게 슬그머니 다가간 비담은 땅이 꺼져라 길게 한숨을 내뱉더니,
“어디 갔나 했더니….”
꾸벅꾸벅 조는 폭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우우…”
“그래. 그래. 리더가 찾고 있으니 얼른 돌아가야지.”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는 것 같은 비담의 말투에 조용히 지켜보던 조무래기들의 입이 떡하니 벌어졌다. 평소엔 기계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딱딱하게 말하는 그가, 저렇게 말할 줄도 알았다니. 단언컨대 비담이 리더 마적과 그렇고 그런 관계인 걸 알게 되었을 때도 이 정도로 충격적이진 않았었다. 말은 안 했지만, 여기 모여 있는 모든 조무래기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일어날 기미가 없네.”
폭타는 비담의 손에 머리를 부비기만 할 뿐, 자리에서 일어나거나 움직임을 보이진 않았다. 곤란하다는 듯 폭타를 살펴보던 그는 제 주머니에서 몬스터 볼을 꺼내들더니, 넉넉한 빈 공간에 든 제 포켓몬을 꺼내놓았다.
“타아!”
볼에서 나온 것은 그가 마그마단에 들어왔을 무렵 받았던 폭타였다. 늘어져있던 마적의 폭타는 울음소리만으로도 상대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인지, 두 눈을 번쩍 뜨고 일어나 비담의 폭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겨우 일어났네. 하여간, 자기 주인 닮아서 손이 많이 간다니까.”
“기껏 찾아놓고 한다는 말이 그건가, 비담.”
“아.”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어떻게 이런 타이밍에 등장할 수 있는 걸까. 폭타 한 쌍의 사이좋은 한 때를 지켜보던 비담은 숨소리도 내지 않고 다가온 마적을 보고 어깨를 으쓱였다.
“제가 뭔가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손이 많이 가는 건 내가 아니라 네 쪽이라고 생각한다만.”
“먹이를 챙겨주려다가 깜빡해서 포켓몬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그런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군요.”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그랬다고 말하지 않았나.”
오고가는 말은 그리 다정하지 않지만, 마적과 비담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두 사람의 표정은 평소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였지. ‘단 둘이 있을 땐 저런 얼굴이 되구나.’ 어느새 숨을 삼키고 두 사람을 지켜보는 조무래기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 급한 일은 끝나셨습니까?”
“아아. 일단은.”
“그럼 포켓몬 좀 데려가십시오. 조무래기들이 보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갑자기 폭타가 길을 막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오지 않은 게 다행일 지경인데.”
아니, 사실 신고 수준을 넘어 아예 방송을 하려고 하긴 했지만…, 아직 실행 전이었으니 괜찮을까. 비담의 말에 괜히 뜨끔한 조무래기들은 서로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일단 자네 폭타도 넣는 게 어떤가. 아무리 이 기지가 커도, 역시 폭타 두 마리가 붙어있는 걸 보고 있자니 숨이 막히는데.”
“그러도록 하죠. 언제 이렇게 사이가 좋아져선….”
“뭐, 많이 붙어있었으니 말이지.”
물론 저 붙어있었다는 건 폭타들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나란히 서서 자신들의 포켓몬을 보던 두 간부는 불쾌하지 않은 실소를 짓고 포켓몬들을 볼에 넣었다.
“일 다 끝나셨으면 커피나 한잔 하러 가죠.”
“그럴까.”
넓어진 복도의 가운데를 딱 붙어서 걸어가는 그림자가 참으로 다정하다. 분명 사건은 해결되었지만 어쩐지 자리를 뜰 수 없었던 조무래기들은 훈훈한 연애행각의 현장을 끝까지 지켜본 후에야 뒤늦게 해산할 수 있었다.